▲ 프로기사 나종훈 7단과 함께한 초등 저학년부 입상자. 가운데 원제훈, 오른쪽 권효진 어린이 |
어린 시절, 이세돌 9단과의 짧지만 강렬한 만남이 떠오른다. 92년 문화체육부장관배 어린이바둑대회였다. 당시 2학년이던 나는 32강에서 탈락했고, “그 정도로도 선전”이라는 지도 사범님의 말씀에 뿌듯해하고 있었다. 떨어졌지만 대회를 구경하며 기웃대던 나에게 포착된 이가 바로 한 살 위의 세돌이 형이었다.
한 살 차이밖에 나지 않았지만 바둑은 매우 강했고, 전국의 수많은 소년 고수들을 제압하며 결승까지 진출한 끝에 하호정(현 프로 3단) 누나에 이어 준우승을 차지했다. 비록 2등이지만 3학년으로서 전국의 고학년들을 모두 누르고 준우승을 거둔 세돌이 형이 나는 부러웠다.
그런데, 정작 형은 밥도 굶은 채 어머니 품에서 서럽게 울고 있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부터 키워 온 세돌이 형의 강한 승부욕이 한국 바둑 일인자의 초석이 된 것 같다.
- 박정상 9단의 2009년 한겨레 칼럼 中
준우승에 서러웠던 어린이가 있었다. 92년에 시작해 95년 4회를 마지막으로 18년 동안 멈춰 있었던 '추억의 대회'에서 이야기다. 이 대회가 올해 문화체육관광부장관배라는 이름으로 부활해 다시 학생바둑대회의 중심에 섰다.
9월 28일과 29일 이틀동안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2013 문화체육관광부장관배 전국학생바둑대회가 열렸다.
학생최강부, 대학생부, 고등부, 중등부, 초등 고학년부, 초등 저학년부, 중고등 보급부, 초중등 보급부로 총 8개 부문으로 나뉘어 진행된 이번 대회는 전국에서 학생 550여 명이 참가했다.
박정상이 이세돌을 추억하듯 참가한 학생 모두 이날을 자신의 기억속에 생생하게 넣어 둘 것이다. 다시 없을 청춘이고, 돌아오지 않는 학창시절 아닌가.
참가학생 전원에게 주최측이 정성을 다해 준비한 기념품이 주어졌고, 각 부문 3위 입상까지는 대한바둑협회장상과 함께 장학금, 트로피가 수여되었다.
이날 경기 중 가장 늦게 마친 학생최강부 결승에서는 박재근(18)이 안정기(16)에게 흑으로 6.5집승을 거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의 주인공이 되었다. 박재근은 올해 초 LG배 아마대표로 출전했고, 지난 국무총리배 세계아마추어선수권에서도 한국대표로 선발되기도 했다.
▲ 학생최강부 우승자 박재근
양천대일도장에서 입단을 준비 중인 박재근은 '두터움을 잘 이용하고 중반 수읽기가 날카롭다'는 평을 듣는아마 강자다.
결승 대국도 중반 불리한 형세에서 곳곳에서 추격을 거듭하며 대 역전승을 거뒀다. 우승소감으로는 "뜻깊은 대회에서 장관상을 받게 돼 기쁘다. 다음 달에 열리는 국무총리배에서도 좋은 결과를 거두고 싶다."라고 말했다.
한편 대회를 진행한 관계자는 "학생바둑의 열기를 되살리기 위해 한국기원과 대한바둑협회가 함께 문화체육관광부와 협의해 대회를 부활시켰다. 18년의 공백이 있어 올해는 준비에 미진한 점이 많았다. 아직 장관상이 최강부 1개뿐인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앞으로 어린 학생들이 바둑에 열의를 가지고 참가하고, 한편으로 즐기고 함께 하는 축제의 장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소감을 남겼다.
2013 문화체육관광부장관배 전국학생바둑대회는 (재)한국기원, (사)대한바둑협회가 주최ㆍ주관하고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체육진흥공단이 후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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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 부문 입상자 장학금
각 부문 우승/준우승/공동3위의 입상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학생최강부: 박재근/ 안정기/ 임경호, 이정준
대학생부: 이광호/ 박중훈/ 김준석, 이재승
고등부: 김현우/ 오동현/ 정영재, 이철호
중등부: 유준혁/ 김태헌/ 조승주, 이명로
초등고학년부: 정우진/ 이의현/ 김지명, 윤예성
초등저학년부: 원제훈/박경준/ 이종주, 권효진
중고등보급부: 권기윤/ 정승호/ 김재용, 석지성
초등보급부: 이승도/ 진석형/ 임승환, 남궁세하
▲ 초등 저학년부 원세훈과 박경준 어린이의 결승전
▲ 초등 저학년부는 원제훈 어린이가 우승을 차지했다.
▲ 초등고학년부에서 준우승한 이의현 어린이. 심판위원인 이현욱프로와 함께
▲ 초등고학년부 우승자 정우진 . 평택에서 바둑을 배운 어린이 고수다. 옆에서 누가 "배 좀 집어넣어"라고 외쳤는데...
▲ 고등부 입상자.
▲ "고등학생들보다 더 어려보여"- 대학생부 입상자와 함께한 나종훈 7단이
▲ 가장 늦게 마친 최강자부 결승. 안정기(왼편)를 꺾은 박재근이 우승을 차지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았다.
▲ 제1회 문화부 장관배 바둑대회(1992년 월간바둑 7월호) - 지금은 익숙한 프로기사들의 이름이 곳곳에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