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없음 기쁨 -
☆ 2015년 나해 11월4일 수요일 [(백) 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 기념일]
[청주] 집 나간 사람 -
청주교구 청주 성모 병원 반영억 라파엘 신부 -
○ 제1독서 로마 13,8-10
+ 복음 루카 14,25-33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는 1538년 이탈리아 북부 지방 아로나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비오 4세 교황이 그의 외삼촌이다. 신심 깊은
가정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일찍부터 학문 연마에 힘썼으며, 사제가
되어 훗날 밀라노의 대주교로 임명된 뒤에는 교회 개혁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또한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는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제도적인 지원책을 마련하여 널리 보급시켰다. 1584년에 선종한
그를 1610년 바오로 5세 교황이 시성하였다.
◈ 오늘의 묵상
탑을 세우려면 분명 공사에 들어가는 경비가 있는데, 그것은 계산하지
않고 무턱대고 작업을 시작해서는 안 되겠지요. 전쟁을 할 때에도 병력을
먼저 헤아려 보고, 승산이 없으면 전투를 시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라나서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용서하시고 세리와 창녀와도 어울리시면서 율법 학자들이 배척하던
이들에게도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해 주시고 그들을 받아
주시지만, 제자가 되어 당신을 따르겠다고 나서는 이들을 모두 받아
주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자 청년에게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시자, 그는 따라나서지 못했고
(루카 18,22-23 참조),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고 오겠다는 사람과,
가족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오겠다는 이에게는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루카 9,62) 하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을 제자로 받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결단은 물론 그분을 끝까지 따를 각오가 되어
있는지 깊은 성찰도 필요합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려면 주님보다 가족을
더 사랑해서는 안 되며, 세상의 모든 것을 과감하게 끊고, 주님께서
주시는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하며 재산을 포기해야 합니다. 곧 우리
삶에서 하느님이 첫째가 되고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주님을 따르는 데에도 계획이 꼭
필요합니다. 그분을 따르려고 세운 계획과 내린 결단은 무엇이며 이를
위하여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신지요? 구원이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동의와 협력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 매일 미사 -
◈ [인천]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을 실천
2015년 나해 11월4일 수요일 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 기념일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 루카 14,25-33
한 여행객이 남미를 여행하다가 안데스 산맥의 오솔길에서 노새를 타고
오는 농부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 농부의 뒤에는 그의 아내가 노새
없이 그냥 터벅터벅 걸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습이 보기에 좋지
않아서 농부에게 물었습니다.
“왜 당신의 아내는 노새를 타고 가지 않습니까?”
그러자 농부는 “저도 아내가 그냥 걸어오는 것이 안타깝고 미안합니다.
하지만 아내가 탈 노새가 없으니 어떻게 합니까?”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농부는 자기만 편하게 노새를 타고 가는 것을 미안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새가 한 마리밖에 없으니 어쩔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못된
남편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이 농부와 같지 않은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즉, 우선 나의
만족을 먼저 채우고 여유가 있을 때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돈이 있어야 가난한 사람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러지 못하는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너무 많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은 차고 넘친 뒤에 베푸는 사랑이 아닙니다. 부모
형제나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 미워하더라도 주님을 따르는 사람, 나의
희생이 감수해서라도 베풀 수 있는 사랑을 간직하는 사람, 자기 소유를
다 버리더라도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랑의 사람이 될 것을 오늘
복음에서도 나오듯 주님께서는 강조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 역시 제1독서를 통해 사랑은 율법을 완성하는 것으로 우리가
반드시 실천해야 할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어려운 이웃을 동정하기는 하지만 행동으로는 실천하지 못하는 우리가
아니었을까요? 하느님께서는 내가 가진 것 이상을 요구하시는 분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내가 가진 것을 꾹 움켜잡고서 베풀지 않는 우리의
모습을 원하시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즉, 자기가 가진 것만큼 베풀 수
있는 사랑 가득한 우리를 원하십니다. 따라서 내가 가진 것 이상을
넘어서야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 속 좁은
나의 뜻일 따름이라는 것이지요.
적당한 합리화를 말하면서 자신은 죄인이 아니라 의인이라고 말하는
뻔뻔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실 사랑에는 세상의 합리적인
사고가 통하는 것이 아니지요. 그렇기 때문에 적당한 합리화가 아니라,
그냥 무작정 실천하는 사랑의 모습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제 2015년도 겨우 두 달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한 것이
없다고 아쉬워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부터라도 뜻깊은 2015년이 될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을 실천해보면 어떨까요? 한 여행객이
남미를 여행하다가 안데스 산맥의 오솔길에서 노새를 타고 오는 농부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 농부의 뒤에는 그의 아내가 노새 없이 그냥
터벅터벅 걸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습이 보기에 좋지 않아서
농부에게 물었습니다.
“왜 당신의 아내는 노새를 타고 가지 않습니까?”
그러자 농부는 “저도 아내가 그냥 걸어오는 것이 안타깝고 미안합니다.
하지만 아내가 탈 노새가 없으니 어떻게 합니까?”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농부는 자기만 편하게 노새를 타고 가는 것을 미안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새가 한 마리밖에 없으니 어쩔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못된
남편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이 농부와 같지 않은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즉, 우선 나의
만족을 먼저 채우고 여유가 있을 때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돈이 있어야 가난한 사람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러지 못하는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너무 많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은 차고 넘친 뒤에 베푸는 사랑이 아닙니다. 부모
형제나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 미워하더라도 주님을 따르는 사람, 나의
희생이 감수해서라도 베풀 수 있는 사랑을 간직하는 사람, 자기 소유를
다 버리더라도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랑의 사람이 될 것을 오늘
복음에서도 나오듯 주님께서는 강조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 역시 제1독서를 통해 사랑은 율법을 완성하는 것으로 우리가 반드시
실천해야 할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어려운 이웃을 동정하기는 하지만 행동으로는 실천하지 못하는 우리가
아니었을까요? 하느님께서는 내가 가진 것 이상을 요구하시는 분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내가 가진 것을 꾹 움켜잡고서 베풀지 않는 우리의
모습을 원하시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즉, 자기가 가진 것만큼 베풀 수
있는 사랑 가득한 우리를 원하십니다. 따라서 내가 가진 것 이상을
넘어서야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 속 좁은
나의 뜻일 따름이라는 것이지요.
적당한 합리화를 말하면서 자신은 죄인이 아니라 의인이라고 말하는
뻔뻔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실 사랑에는 세상의 합리적인
사고가 통하는 것이 아니지요. 그렇기 때문에 적당한 합리화가 아니라,
그냥 무작정 실천하는 사랑의 모습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제 2015년도 겨우 두 달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한 것이
없다고 아쉬워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부터라도 뜻깊은 2015년이 될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을 실천해보면 어떨까요?
절망에 맞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황을 바꾸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는
것이다. 아무리 사소한 일도 매일매일,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도록 행동을
취하는 것(제인 구달).
십자가
한 가지 더 헤아리는 마음(‘좋은생각’ 중에서)
어느 날, 한 소년이 등굣길에 풀 한 포기를 발견했다. 그는 풀을 꺾어
스승에게 가져가 이름을 알려 달라고 했다. 한참을 살피던 스승은 고개를
저으며 모르겠다고 했다.
“네 아버지가 식물학 박사이지 않느냐? 가서 물어보렴.”
실망한 채 집으로 돌아온 소년은 아버지에게 풀을 보이며 말했다.
“아버지, 이 풀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스승님은 모른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풀을 살펴본 뒤 이렇게 답했다.
“나도 잘 모르겠구나. 내일 알아본 뒤 가르쳐 줄게.”
소년은 놀랐다. 아버지는 어떤 식물이든 다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소년이 학교에서 수업 준비를 할 때였다. 스승이 다가와 물었다.
“어제 보여 준 풀의 이름을 알아냈느냐?” 소년이 아버지가 알려 주지
않았다고 답하자 스승이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소년은 전날 스승에게
실망해 그를 비웃었던 걸 진심으로 뉘우쳤다.
풀의 이름도 모르던 스승이 어떻게 갑자기 설명할 수 있었을까? 사실
소년의 아버지는 그 풀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얘기하면 아들이
행여 스승을 소홀히 생각할까 염려되어 스승에게 전화해 풀에 대한
정보를 주었던 것이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보게 됩니다. 솔직히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
모른 척 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이러한 모른 척이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를 위해서 한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것이지요. 그러나
이러한 배려가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 배려를
통해서 이 세상이 살기 좋은 세상이 되도록 만들어 주지요. 자신을 낮추고
남을 위하는 마음을 갖기란 쉽지 않지만, 조금만 더 크게 생각한다면
어떠한 마음으로 행동해야 할지를 깨닫게 됩니다.
예쁜 자전거를 보니까 자전거를 타고 싶네요.
◈ [수도회] 알타반의 말씀사랑
2015년 나해 11월4일 수요일 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 기념일
<형제 여러분,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그러나 서로 사랑하는
것은 예외입니다.> (로마 13,8)
여러분은 빚이 많나요?
집을 얻는다고 자식들 교육시키고 시집장가 보낸다고
이런저런 빚이 조금씩은 있겠지요?
자본주의 사회는 빚더미 사회입니다.
빚을 잘 활용할 줄 알아야 지혜롭게 살 수 있다네요.
국가도 빚쟁이 기업들도 빚쟁이 가정들도 빚쟁이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오늘 빚지지 말라고 하시지만
자본주의 사회를 모르고 하는 말이니
빚 조금 있다고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사랑의 빚쟁이임을 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사실 아무리 갚아도 다 갚을 수 없는 것이 사랑의 빚 아닐까요?
그러니 우리는 영원한 사랑의 빚쟁이일 수밖에 없답니다.
오늘도 사랑의 빚을 지고 그 빚을 최선을 다해
갚아나가는 노력을 해야하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우리가 나중에 하느님 앞에 셈바쳐야 할 것은
내가 갚아야 할 돈이 얼마냐가 아니라 내가 받은 사랑을
나는 얼마나 갚으려 노력했느냐가 아니겠습니까.
자, 오늘도 우리가 받은 사랑에 깊이 감사하며 나도 다른 사람에게
나의 작은 사랑을 나눔으로써 사랑의 빚을 조금이라도
갚아 나가도록 합시다.
사랑의 빚은 일시불이 아니라 매일 죽을 때까지
장기저리로 갚아야하는 하느님 나라의 금융상품이랍니다.
- 구속주회 오상선 바오로 신부 -
◈ [수도회] 예수 추종의 세 가지 조건 - 기 프란치스코 신부
2015년 나해 11월4일 수요일 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 기념일
루카 14,25-33)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33)
예수 추종의 세 가지 조건
치열한 경쟁 시대에 사람들은 돈과 권력과 ‘스펙’(specification)을
중요시합니다. 사회 분위기도 성공하고 잘 살려면 그런 것들이
필수적이라고 여기는 듯합니다. 다시 말해 남보다 잘 살고 행복하려면
무엇이든 갖추고 지녀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돈과
힘과 자격을 얻는데 집중하고 그것을 위해 시간과 정력을 쓰며
살아갑니다. 이런 가치관 속에 살아가는 이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로서 당신을 추종하기 위한 세 가지
조건을 제시하십니다. 제자는 자기 목숨까지 미워해야 하고(14,26),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야 하며(14,27), 자기 소유를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14,33).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모두 자기포기와
희생을 강조하면서 그 길을 통해서 행복에 이를 수 있음을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무엇보다도 가족은 물론 심지어 자기 목숨보다도
더 하느님을 사랑해야 합니다(14,26). 예수님께서는 효도를
강조하시면서도(마르 7,10-12), 하느님의 뜻과 예수님을 추종하는 것을
혈연관계보다 더 중요시하셨습니다(9,57-60). 주님을 따르는 일을 첫
자리에 두고, 자기 목숨보다 하느님을 더 사랑하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임을 거르치신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분간하고 덜
중요한 것들은 과감히 포기해야겠습니다.
다음으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14,27)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각자가 져야 할 자신의 십자가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신의 나약함과 부족함, 죄, 상처, 어두움, 성격적 특성, 무지, 내적 외적
고통과 결함, 신앙심의 부족 등 매우 다양한 나의 그림자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누가 대신 져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온전히 나의
몫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일은 쉽지 않기에 끝까지
따르기 위한 준비와 각오가 필요합니다(14,28).
끝으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14,33) 곧 예수님을 따르려면 하느님의 뜻과 무관하고
사랑 실천에 걸림돌이 되는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성공을
위해서는 많은 것을 소유해야 하지만, 사랑을 위해서는 소유한 바를
완전히 버려야 합니다. 자기를 내놓지 않고, 자신을 버리지 않으며,
소유에서 해방되지 않은 채 예수님을 따라 사랑의 길을 갈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재물에 대한 탐욕뿐 아니라 자신의 명예욕, 자애심과
이기심, 고집과 독선, 선입견과 편견, 고질적인 습관 등을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그분을 추종하려면 자기 것으로 삼으려는 애착과
인간적 집착, 자신을 만족시키려는 자애심의 탯줄을 끊어버려야 합니다.
이렇듯 예수님을 추종하는 길은 어렵지만 그 길이 아니고서는 참 행복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렇게 사랑과 행복의 길은 자기포기와 희생의
길입니다. 버리고 낮추고 작아지는 몸짓을 통해 모두가 행복해졌으면
합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에게 당신 자신 전부를
바치시는 분께서 여러분 전부를 받으실 수 있도록 여러분의 것 그
아무것도 여러분에게 남겨두지 마십시오.”(형제회에 보낸 편지 29절)
이 가을에 행복으로 가는 길목을 가로막고 있는 온갖 애착과 집착,
소유와 탐욕, 자기애와 독선, 왜곡되고 고착된 시각과 생각 등의 낙엽을
태워버리고 기쁘게 주님을 따라가는 행복한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 [수도회]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5년 나해 11월4일 수요일 성 가를로 보로메오 주교 기념일.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루카 14,25-33)
영원히 지속될 수 있는 건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음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그 무엇도 소유할 수 없는 우리들의 삶입니다.
하느님께서도 소유하지 않으시고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내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소유하지 않을 때 우리의 부족함조차 기쁨이 될 수 있음을
십자가의 신비에서 다시 배우게 됩니다.
미움도 사랑도 자기 소유로 여기는 데서 우리의 고통은 시작됩니다.
삶이란 탑은 맡기고 버리는 것에서 온전해 질 수 있음을
떠나보내면서 깨닫게 됩니다.
내 것이 아님을 알기에 하느님의 것임을 알기에
십자가마저도 짊어지고 당신 뒤를 따르라 말씀하십니다.
삶의 시작과 마침은 십자가에 있기 때문입니다.
소유하려 빼앗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내어드려야 할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소유하지 않을 때 모든 것은 평화로울 것입니다.
모든 것을 평화로 이끄시는
하느님을 믿는 평화의 시간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청주] 집 나간 사람|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5년 나해 11월4일 수요일 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 기념일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 루카 14,25-33
집 나간 사람
서로의 의견은 다를 수 있고 그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 ‘다르다’는
것이 서로 ‘틀리다’는 것으로 인식되어 서로 등을 돌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그래서 부모와 ‘의견이 틀리다’는 이유로 집을 뛰쳐나가기도
합니다. 이때 우리는 그가 ‘가출’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똑같이 집을 나간
행위이지만 어떤 뜻을 품고 구도의 길을 걷겠다고 나가면‘출가’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은 그야말로 ‘출가’의 길입니다. 집착을 버리지
않고서는 갈 수 없는 길입니다. 단순히 집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모두를 내려놓고 떠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다른 여러 유대관계를 뒤로하고 모든 것에
앞서 주님을 첫째자리에 모셔야 합니다. 인맥에 매이게 되면 자유를
잃고 주님의 뜻을 행하는데 있어서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주님께 집중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사랑이신
주님께서 다음 일을 안배하십니다.
가출한 사람은 온갖 것에 마음을 쓰며 궁리합니다. 그러나 출가한 사람은
지금 당장은 집을 버린 것 같지만 결코 집안을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사랑 자체이신 주님을 따르는데 어찌 사랑을 외면하고 자기 실속만
챙기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출가한 사람을 존경하고 우러러 봅니다.
어떻게 그 어려운 길을 가시게 되었느냐고 묻습니다. 참 훌륭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작 자기 자녀의 출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훌륭하다고
한 그 길에 자기 자녀는 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자의 길에 신중함이 있어야 하지만 하느님의 부르심에는 단호한
결단과 응답이 요구됩니다. 내 자녀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하느님의
자녀임을 인식하기 바랍니다. 혹 남의 자녀가 출가하는 것은 환영하고
내 자녀의 출가는 막는 이가 있다면 그 집착을 버리기를 희망합니다.
출가하는 자녀가 많아지길 기도하며 그 길에 은총 충만하길 빕니다.
하느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탈란트를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오늘 기억하는 가롤로 성인의 말씀을 기억해 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당신의 생활과 행동 자체가 설교가 되도록 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당신이 이렇게 말하고 저렇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당신의 말을 비웃고 고개를 내젖기 시작할 것입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청주 성모 병원 반영억 라파엘 신부 -
◈ [서울] 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 기념일
2015년 나해 11월4일 수요일 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 기념일
제1독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13,8-10
복음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25-33
모든 성인의 날 대축일 아침이었습니다. 교구청 식당에서 카드를 하나씩
뽑았습니다. 카드 안에는 참된 행복이 적혀 있었습니다. 제가 뽑은 카드는
‘행복하여라 나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였습니다. 저는 내용이 부담이 되어서 내려놓고 다른 카드를 뽑았습니다.
새로 뽑은 카드는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하느님의 자녀가 될
것이다.’였습니다. 아무래도 박해를 받는 것이 싫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그날 저의 행동이 조금 부끄러웠습니다. 내년에는
‘행복하여라 나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를 뽑더라도 바꾸지 않으려고 합니다.
같은 내용을 만 번 정도 되풀이 하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좋아하는 노래를 오랫동안 연습했습니다. 어느 날부터는
악보를 보지 않아도 노래를 연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손가락이 기억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또 하나 얻은 것이 있습니다. 다른 노래도 좀 더 쉽게
연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뮤지컬 배우들이 긴 대사를 외우고, 노래하는
것도 같은 이치인 것 같습니다. 방법은 오직 하나입니다.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머리가 아닌, 몸이 기억을 하는 것 같습니다.
세례를 받은 신앙인들은 하느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신앙인들도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이제 제자들이 스스로 설 수 있도록 권한과 능력을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처음에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낼 수
있었고, 기적을 행하였으며,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지고 갔습니다.
순교의 영광을 얻었습니다.
신앙은 은총을 받는 것이지만, 신앙은 받은 은총을 이웃들에게 나누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의 실천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오늘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가진 것을 나누는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위령성월’입니다. 우리보다 앞서 세상을 떠난 분들을 위해서 기도하며,
우리들 또한 언젠가 주님의 품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도록
주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따라야 하겠습니다.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서울] 예수님이 들어오시려 하네요.
내 것을 버리는 것과 잃는 것과 뺏기는 것과 바치는 것 다 다릅니다.
버리는 것이면 남들이 편히 가져갈 수 있다는 게 다른 것과 다릅니다.
잃는 것은 아쉽고 속상한데 비해 빼앗기면 화나고 분노가 생깁니다.
예수님은 가진 것을 버리라 하십니다. 남들이 쉽게 갖도록 말입니다.
즉 나누어 주라는 것이며 내 것이라는 소유욕을 함께 버리는 거지요.
그렇게 비워놓으면 예수님이 그 안에 들어오시겠다는 거 그게 맞네요.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33)”
- 서울 대교구 이기정 사도요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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