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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나해 11월7일 연중 제31주간 토요일
[청주] 부자였으면 좋겠지? -
청주교구 청주 성모 병원 반영억 라파엘 신부 -
○ 제1독서 로마 16,3-9.16.22-27
+ 복음 루카 16,9ㄴ-15
◈ 오늘의 묵상
어제 복음과 이어지는 루카 복음 16장은 재물과 관련된 여러 말씀을
모아 놓은 부분입니다. 오늘 복음 앞부분(9-13절)은, 예수님께서 어제
말씀하신 ‘약삭빠른 집사’의 비유를 풀이하시며 다양한 가르침을
주시려는 것으로 보이지만,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
라는 말씀은 매우 낯섭니다. ‘불의한 재물’이라는 표현 뒤에는, 정당하든
정당하지 않든 모든 재물은 죄스럽고 불의하다는 루카 복음사가의
생각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재물’이 이 세상을 자기의
노예로 만드는 능력을 지닌 괴물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겠지요.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그래서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재물이 없어질
때’는 재물을 가진 사람이 죽을 때거나 세상 종말의 때를 말씀하시는
것으로 이해되는데, 결국 이 말씀에는 가난한 이들에게 자선을 베풀라는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애덕을 실천할 때, 그나마 물질적
재산에서 긍정적인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복음은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바로 이 재물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제자들의 성실성과 충실성이
판가름 나게 될 것입니다.
“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이 말씀에서 하느님과 마주한 ‘재물’은 거짓
신이면서도, 하느님의 자리를 위협하는 존재로까지 들어 높여졌습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우상으로 섬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누구나 묵묵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벌어먹고
살아야 하지만(2테살 3,12 참조), 우리는 결코 재물을, 우상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물론 재물을 어떻게 관리하는가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성실하다고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십니다. 재물을 섬기는 사람에게는 재물을 위해
양심을 팔고 신의를 저버릴 수 있는 가능성도 다분히 있겠지만, 재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재물을 맡겨도 성실하게
관리할 것입니다.
- 매일 미사 -
◈ [인천]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주신 하느님이십니다.
2015년 나해 11월7일 연중 제31주간 토요일
<너희가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 루카 16,9ㄴ-15
우리의 심장은 하루에 몇 번쯤 뛸까요? 사람마다 다르지만, 보통 하루
평균 약 100,000번 뛴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뛰지 않으면 사람은
살아 있을 수가 없지요. 그런데 이렇게 심장을 뛸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하고 있는 노력은 무엇입니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인체가 저절로
움직일 뿐입니다. 바로 하느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주신 것이지요.
실제로 인간의 노력만으로 심장을 하루에 100,000번 정도 박동하게
하려면 수많은 특수 전지를 갈아 넣어야만 한다고 합니다.
또 한 가지, 이 심장의 수명은 얼마나 깁니까? 우리들이 사용하고 있는
가전제품들을 보십시오. 아끼고 아껴서 잘 써봐야 10년을 넘기기가
힘듭니다. 자동차도 10년 넘은 차를 몰고 다니는 분들을 보면
대단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 심장의 수명은 10년이 뭡니까?
보통 8~90년 동안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내 몸만 보아도 하느님의 특별한 보살핌이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 보살핌을 기억하면서 감사의 삶을 살아야 하며, 그 사랑에 대해
응답해서 하느님의 뜻에 맞춰 살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하느님의 뜻에 맞춰 살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세상 안에서 불합리함을 겪게 되는 것만 같고, 그렇게
살았다가는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당할 것만 같습니다. 또한 내가
행복하지 못한데 어떻게 남에게 행복을 전해줄 수 있냐면서, 먼저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이 채워진 뒤에야 하느님의 뜻대로 사랑을
나누면서 살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불합리하신 분이
아닙니다. 무조건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내어 놓으라고 하지
않으시지요. 모두가 극기와 희생의 삶을 살라고도 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당신이 먼저 먹고 마시기도 하셨으며, 당시 종교지도자들과
대립해서 때로는 율법을 어기는 듯 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그러한 합리적인 모습을 보여주시지요. 재물을
소유하지 말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불의 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고 하십니다. 재물을
나의 편함과 유익을 위해 존재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잠시 빌려 주신 재물임을 기억하면서 이 재물들을 이용해서 하늘의
부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주신 하느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과연
누구의 것입니까? 내 것이 아니라 잠시 하느님께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잠시 받은 것을 이용해서 또 하늘의 부자가 될 수 있는 길까지도
열어주시는 하느님이신 것입니다.
과연 하느님이 불합리하신 분일까요? 무조건 내 중심의 사고를
함으로써 불합리한 분이라고 단정 짓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과거의 은혜를 회상함으로 감사는 태어난다. 감사는 고결한 영혼의
얼굴이다(T. 제프슨).
인간의 심장만 봐도 하느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생각은 모두 다릅니다.
40대 중반의 한 남성이 안타깝게 병으로 일찍 주님의 곁으로 갔습니다.
그에게는 아주 친했던 친구 4명이 있었는데, 장례식장을 찾은 그들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합니다. 한 친구는 ‘그 친구와 함께 했던 아름다운
추억이 생각나네. 벌써 친구가 그립네.’라고 생각하고, 또 다른 친구는
‘몸 관리를 하지 않고 무리를 하더니.... 나라도 신경 써줬어야 하는데
미안하네.’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평소에 친구들과의 만남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친구는 ‘슬픈 일이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친구들이 모두 뭉치게
되었네. 아마 그 친구도 우리가 즐겁게 옛날이야기 하길 원할 거야.’
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한 친구는 조용히 나가 병원에 전화를 걸
건강검진을 예약했다고 하네요.
어떻습니까? 장례식장이라는 같은 공간에 있지만 가지고 있는 생각은
모두 다릅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저 친구는 잘못
되었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에 따라서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다양성을 인정해주시고, 그 다양성을 통해서 세상을
더욱 더 넓게 볼 것을 말씀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불의 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는 말씀 역시 세상을 더욱 더 넓게 볼 수 있도록
하신 것이었지요. 그런데 우리들은 왜 이렇게 자신의 틀에 갇혀서 속
좁은 생각만을 하고 있을까요?
넓은 마음으로 우리를 포용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이제
더 이상 속 좁은 생각은 그만!!!
사랑합시다.
◈ [수도회] 알타반의 말씀사랑
2015년 나해 11월7일 연중 제31주간 토요일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성실하고, 아주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일에도 불의하다.> (루카 16,10)
우리는 가끔 내가 하는 일이 보잘것 없어 보이고
남이 하는 일은 대단하게 여깁니다.
내가 청소를 하든 빨래를 하든 밥을 하든
오늘 나에게 주어진 일들은 모두 중요한 일들입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일이랍니다.
그분께서 이 일을 맡기든 저 일을 맡기든
우리는 최선을 다해 성실히 수행하기만 하면 됩니다.
나는 이 일이 싫어요. 저 일만 할래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작은 일에도 얼마나 기쁘게 성실하게 일하느냐에 따라
그분은 우리에게 더 큰 일도 맡기실 겁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그분의 눈엔 그 어느 것도 중요하지 않은 일이 없고
귀하고 천한 일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 스스로가 어리석게도 직업과 일의 귀천을 따질 뿐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일을 하시는지요?
자긍심을 가지십시오. 하느님께서 맡기신 일이랍니다.
오늘 기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일을 해 봅시다.
그 일이 아무리 보잘것없어 보여도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하면 하느님의 칭찬을 받게 될 겁니다.
멋진 날 꾸미소서.
- 구속주회 오상선 바오로 신부 -
◈ [수도회] 올바른 재물 사용과 섬길 주인 - 기 프란치스코 신부
2015년 11월7일 연중 제31주간 토요일 루카 16,9-15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루카 16,13)
올바른 재물 사용과 섬길 주인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불의한 재물로라도 친구를 사귀어 영원한
거처에 들어가라고 말씀하십니다(16,9). 여기서 ‘불의한 재물’이란
바리사이들이 성전에 들어오는 재물을 자신을 위해 불의하게
사용했듯이 의롭지 못한 동기와 목적으로 소유한 재물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비록 재물이 우리를 탐욕에 빠지게 하고 이 세상을 자기
노예로 만드는 힘을 지니긴 했지만 그것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자선을
베풀고 성실하게 관리할 줄 알아야 참된 것을 맡을 자격이 있다고
가르치십니다.
재물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기에 재물 없이 살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부는
하느님 나라를 위해 쓰여야 하는 방편에 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주신 모든 것들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 사랑하는데 쓰지
않고 소유하려 하면 할수록 오히려 재물의 노예로 전락할 뿐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모든 재물은 하느님의 선과 사랑과 창조를 위해 존재하는데 그것을
자기만족과 쾌락을 위해 사용하고 나누지 않을 때 비인간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세상의 모든 것을 ‘맡겨주셨을 뿐’임을
깨달아 어떤 경우에도 거기에 집착하지 말 일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청지기인 우리는 그분이 주신 재물을 오직 모두의 행복과 사랑을 위해
나누고 되돌려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비로소 ‘영원한 거처’에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돈과 재물은 하느님의 선과 이웃 사랑을 위해 흘러가야 하는데 그것을
소유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하느님 위에 두고 우상으로 섬기는
어리석음에 빠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16,13)고 하십니다. 돈을 더
좋아하고 중요시하면서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재물을 소유하고 돈을 우상처럼 섬길수록 그런 것들이 영혼을 가득
메워 하느님을 소유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을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16,13)고
하시자,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들이 이 모든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비웃었습니다(16,14).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착하게 산 데 대한 하느님의
축복의 결과가 물질적인 부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지닌 부(富)를 통해 선한 사람임을 드러내기를 좋아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그들을 향하여 ‘혐오스럽다’(16,15)고
하십니다.
공기처럼 늘 붙어서 지내는 재물과 물질들을 나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성찰해봐야겠습니다. 정말 기꺼이 기분 좋게 오직
하느님의 뜻만을 좇아 다른 이들을 위해 쓴 적이 얼마나 되는지
살펴봐야겠지요. 마지못해서, 선심 쓰듯이, 자기를 드러내려고 또는
나도 꽤 좋은 일을 하며 산다는 자기만족 속에서 건네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봤으면 합니다. 내 것이란 애초에 없었다는 것을 잊고 손에 움켜쥐고
거기에 마음을 다 빼앗기며 허송세월을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돈과 재물을 주인처럼 애지중지 모시는 우상숭배를 그만 두고, 하느님
나라의 청지기로서 모든 것을 사랑으로 되돌리며, 공생하기 위한 생태의
호흡을 되찾는 행복한 가을이 되길 기도합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 [수도회]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5년 나해 11월7일 연중 제31주간 토요일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가장 분명한 것은 유한한 생명을 지닌 우리들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재물과 건강을 포함한 이모든 것은 없어질 때가 올것이며
넘치는 것또한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삶과 죽음의 이모든 것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연결체임을 뜨겁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우리의 죽음은 우리의 친구처럼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우리들의 진정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살아온 시간을 성실하게 하는 건 주님을 섬기는
성실한 우리의 마음뿐입니다.
참된 것은 주님을 향하는 참된 관계뿐입니다.
성실한 마음과 참된 관계는 하나입니다.
재물에 묶여서 버리지 못하는 우리들을 향해 주님께서는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우리의 시간을 사용할지가 관건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시간을 친구의 관계처럼 성실할 수 있다면
죽음또한 우리를 받아들이는 주님의 축복이 될 것입니다.
부족하지만 우리의 시간을 다루는 데에 성실했으면 좋겠습니다.
참된 가치와 성실함은 늘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참된 것의 시작은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서 시작됩니다.
우리의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를 다시금 깊이 성찰해보는
위령성월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청주] 부자였으면 좋겠지?|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5년 나해 11월7일 연중 제31주간 토요일
<너희가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 루카 16,9ㄴ-15
부자였으면 좋겠지?
돈을 좋아하는 사람은 바라던 만큼 돈을 가지게 되어도 결코 만족하지
않습니다. 어느새 욕심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욕심을 그칠 줄을 알면
부끄러움이 없을 것인데 그것이 마음과 같지 않습니다. “조금만 더”
하다보면 돈 때문에 죄를 짓고 재물을 쫓는 사람은 눈이 멀고 맙니다
(집회27,1). 결국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자들은 사람들을 파멸과 멸망에
빠뜨리는 유혹과 올가미와 어리석고 해로운 갖가지 욕망에 떨어집니다.
사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따라다니다가
믿음에서 멀어져 방황하고 많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1티모6,9-10).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저를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지
마시고 저에게 정해진 양식만 허락해 주십시오. 그러지 않으시면 제가
배부른 뒤에 불신자가 되어 ‘주님이 누구냐?’하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아니면 가난하게 되어 도둑질하고 저의 하느님 이름을 더럽히게 될
것입니다”(잠언30,8-9). 우리는 재물에 의지하지 말고 재물을 하늘에
쌓아두어야 합니다. ‘주님을 경외하며 가진 적은 것이 불안 속의 많은
보화보다 낫습니다.’(잠언15,16).
오래 전의 일입니다. 제가 신학교에 입학할 때 본당 신부님께서 용돈을
주셨습니다. 일 만원 이었습니다. 주시면서 그러셨습니다. 본당신부가
부자였으면 좋겠지? 신학교에 가니 용돈을 학교에 맡기게 되었는데
동료들과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누구보다도 많은 용돈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일 만원, 그것은 신부님의 전 재산이었기
때문입니다. “부자였으면 좋겠지?”하시던 신부님은 오늘도 여전히
그렇게 사십니다. 신부님은 정말 부자이십니다. 하늘에 보화를 쌓으시는
큰 부자이십니다. 물질에서 자유로우시니 부자이십니다. 저는 아직
물질에 매여 살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섬기는 일과 재물을 섬기는 일은 양립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도시를 두루 다니시며 복음을 선포하시고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아무것도 지니지 않고 다니시길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이들을 축복하셨습니다. 그렇지만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선행을
하고 율법을 어기는 일이 없으며 자신들이 의롭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영예를 추구하면서 부는 덕의 보답이요, 가난은 죄의
벌로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자기들이 누리고 사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판단을 뒤엎으셨습니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마태19,21).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루가12,15).
경제적으로 어렵더라도 주님의 권고를 생각하면서 물질에 매이지 않길
바랍니다. 지금의 어려움은 열심히 노력하는 가운데 극복되어질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지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오늘이기를
기원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청주 성모 병원 반영억 라파엘 신부 -
◈ [서울] 연중 제31주간 토요일
2015년 나해 11월7일 연중 제31주간 토요일
제1독서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16,3-9.16.22-27
복음
<너희가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9ㄴ-15
교구에서 준비하는 여러 가지 행사가 있습니다. 가톨릭 대학교 설립
160주년 기념 음악회도 있었고, 순교자 현양 위원회에서 준비한 행사도
있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의 초대 주교님이신 소 부르기에를 주교님
선종 170주년을 기억하는 미사도 있었습니다. 지난 수요일에는 고통
받는 시리아 교회를 위한 행사도 있었습니다. 행사를 준비하는 분들은
제게 부탁을 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행사를 진행하는 티켓을
맡아달라고 하시기도 하고, 행사에 참석하실 분들을 모아달라고
하시기도 합니다. 제가 도와 드리는 단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소국장이기에 성소후원회 회원들이 계십니다. 복음화 학교 담당
신부이기에 복음화 학교 공동체 회원들이 있습니다. 중서울 지역 엠이
대표를 맡고 있기 때문에 엠이 부부들과 모임이 있습니다. 제가 도와
드릴 수 있는 일이면 기꺼운 마음으로 도와 드리고 있습니다. 저와
관계를 맺고 있는 분들도 교회를 위한 일이라면 기쁜 마음으로 함께 해
주십니다.
이렇게 좋은 관계를 맺으면 더 좋은 결실이 맺어지는 것을 봅니다.
성소국에서는 복음화 학교에서 피정을 가면 간식을 도와줍니다. 복음화
학교는 성소국에서 차량이 필요하면 승합차를 빌려 줍니다. 엠이 모임을
할 수 있도록 성소국에서 회의실 대관을 해 줍니다. 엠이 모임에서는
성소국에 과일을 드리기도 합니다. 복음화 학교의 공동체는 엠이 모임을
할 수 있도록 강의실을 빌려드립니다. 엠이 사무실에서는 복음화
학교에서 공동체를 할 수 있도록 사무실을 빌려드립니다. 만인은 일인을
위해서, 일인은 만인을 위해서 도움을 준다는 신협의 이념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명심보감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선한 일은 아주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하고, 악한 일은 아주 작은 일일지라도 하지 마라!’ 잠시 마음을 정리할
수 있도록 해준 짧지만 좋은 글이었습니다. 처음부터 도박 때문에
큰돈을 잃는 사람은 없습니다. 작은 돈일지라도 습관이 되면 나중에
큰돈을 탕진하게 됩니다. 속담에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된다.’고
합니다. 이것역시 작은 것들이 나중에 한 사람의 인격을 그릇된 길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당에 나오지 않는 분들 중에서
커다란 이유 때문에 성당에 나오지 않는 분도 있지만 많은 분들은 작은
이유 때문에 성당에 나오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서 아는 사람들이 없어서 성당에 나가지 않는 경우도 있고,
어쩌다 한번 주일 미사를 빠졌는데, 그 뒤로 성당에 나가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중고등학생의 경우 학교 공부 때문에 성당에 빠지는 경우가
생기고, 나중에 대학에 가서도 성당에 나오지 않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성실하고, 아주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일에도
불의하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들에 대해서는 아주 민감하게 반응을
합니다. 재물을 좀 더 얻기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합니다. 의사가 처방전을
주면 약국에 가서 약을 사는 것도 빨리 합니다. 건강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몸의 건강을 위해서라면 의사의 지시대로 금식을 하기도
하고, 병원에서 진찰을 받을 때 시간 약속을 반드시 지키며, 의사의
말이라면 옷도 쉽게 벗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영혼이 아플 때,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삶의 의미를 상실하고, 보람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하는 일이 재미없고, 성당에 나가지 않는 날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즉시 영혼의 건강을 되찾기 위해서 피정을 하거나, 사제에게 면담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서를 묵상하고,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찾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는 우리가 영적인 일에
민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일에도 충실해야 하지만, 영적인 건강도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영적으로 민감한 사람은 과거의 일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은 자비하시니, 과거 나의 잘못을 너그럽게
용서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또한 나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민감한 사람은 오늘 나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니 오늘 일용할 양식을 청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구하라
찾을 것이다.’ 영적으로 민감한 사람은 내일 나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삶의 여정에서 찾아오는 많은 유혹을 이겨낼
수 있도록 용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작은 일일지라도 주님을 위한 일에는
최선을 다하는 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서울]
- 서울 대교구 이기정 사도요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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