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떠난 사람 중에서 의외로 헌금 때문에 부담이 되어 교회를 나오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물론 핑계 일수도 있겠지만 무조건 무시할 수 있는 말도 아니다.실제로 교회에서 신앙을 빙자하여 무리하게 헌금을 강요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비단 오늘날의 문제만이 아니다.예수님 당시에도 이런 일들이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교회가 헌금을 강조 할 때 자주 사용하는 본문이 오히려 이문제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마가복음 12장 42절 이하에 보면,예수님께서 성전 입구에 있는 헌금함 앞에 앉아 한 부자와 과부가 각가 헌금한 것을 보신 후 “저희는 다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라고 말씀 하신다. 이 말씀은 생활비 전부인 두 렙돈을 드린 과부를 칭찬한 것이지 전부를 그리라는데 초점이 있지 않다. 본문의 앞 부분인 38~40절을보면,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을 삼가라”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자들”이라고 하신다
실제로 당시 종교 및 사회 상황을 기록한 미드라쉬에 의하면 지도자들이 가난한
자들의 적은 예물을 무시하며 멸시하는 말들을 쉽게 자랑했던 기록들이 있다
이렇게 멸시하고 무시하니까, 이 과부는 이것마저 드리고 나면 굶어야 하는 절대
결핍의 상태에도 불구 하고 드렸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은 이렇게 드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간 종교지도자들에 대해 고발하는 것이다, 즉, 신앙이라는 미명 하에 반강제적이고
억압적인 헌금강요를 유도하는 종교적 타락을 신랄하게 비판하시는 것이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하시는 고발은 아닌가?
오늘날에도 이와 같은 헌금 강요가 종종 있다, 이 말은 축복을 제시하는 것
같지만 반대로 들으면 저주하는 내용으로 볼수도 있다, 종교가 타락하면 언제나
인간의 죄성과 탐욕 때문에 종교적 열심히 자기 치장으로 쓰일 때가 많고 자기
뱃속을 채우고자 하는 의도로 과도한 헌신과 열심을 요구 할 때도 있으며 자기를
자랑하고 싶은 탐욕 때문에 과장된 신앙적인 열심을 보일 때도 있다.
그러면 교회는 헌금에 대해서 언급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
말을 해야 한다면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
바울사도는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헌금(연보)에 대해 집중적으로 말씀을
하는 것을 볼수 있다(고후8:1~5), 그러나 바울은 그동안 고린도 교회에 이런 말씀을 할 수가 없었다,
왜내하면 고린도교회는 바울이 떠난 후 문제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바울은 준엄히 책망하는 고리도전서를 써 보낸 후 디도 편에 되돌아온 편지에 고린도교회의 영적이 상태가 놀랍게 변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이제는 말씀을
할수 있다고 판단한 후에 헌금에 대해 쓰고 있는 것이다,
영적인 이해가 깊지 않을 때는 알반적으로 헌금의 액수의 많고 적음에 따라
복의 유무가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즉, 많이 바치면 하나님이 기뻐 하셔서
복을 많이 주시고 그렇지 않으면 복을 받지 못한다고 이해하게 된다,
한마디로 헌금을 이 땅에서 축복을 받기위한 수단으로 여길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아직 영적으로 이런 수준에 머물러 있는가?
그렇다면 한국교회가 시급히 해결하고 정리해야 할 것은 기복신앙에 물들어
있는 복음의 본질과 회심의 정확한 기초를 새롭게 하는 것이다
기독교는 이 땅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을 주는 종교가 아니다, 복음은 인생의
진정한 가치와 헛된 가치를 깨닫게 하며 영원한 가치가 바로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복음을 통해 영원한 가치를 발견한 사람은 다른 모든 것을 상대화 시킬수 있으며, 진정한 가치를 붙잡고 대신에 다른 헛된 가치를 내려 놓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깨달은 마게도니야 교회는 극심한 가난 가운데서도 넘치는
헌금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고후8:2).
하나님의 거룩한 일에 우리와 같이 동역하자는 차원에서 부르시는 것이 헌금이다
이것이 헌금의 의미이다, 이런 부르심 앞에 기쁘고 즐거운 심정으로 드려야 할 헌금을 강요와 위협으로 제시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성경에는 헌금을 많이 하면 하나님께서 많은 복을 주시고, 그렇지 않으면 복을
주시지 않는다는 말씀은 없다, 이제 한국 교회는 이런 저차원적인 기복신앙과 샤머니즘의 요소들을 과감하게 제거하고 시급히 복음의 본질을 회복하는 일에 강단이 먼저 변해야할 것이다
돌아오는 주일 부터 이 글을 복사 프린트 하여 현장으로 나가려합니다. 또한 일단 십일조와 주일성수 문제를 제외한 성전 건축에 관한 좋은 글들을 발췌하여 편집해서 함께 인쇄할까 합니다. 더 좋은 의견 있으시면 참여해 주세요.<십일조 문제와 주일성수에 대한 편견 사안은 심히 돌출될 수 있는 역효과를 우려하여 차차 하기로 합니다>
송태근 목사님의 한국교회의 헌금강요설교문제에 관하여 공감합니다. 그런데 설명하시면서 과부의 두렙돈 문제를 좀 이상하게 해석하셨습니다. 송목사님의 말씀에 의하면 이 과부는 억지로 다른 사람에게 무시 안받을려고 헌금한 경우가 되거든요... 억지로 드린 헌금도 예수님께서 칭찬하시는 내용이 되나요? 좀 예를 다르게 드신 경우가 아닌가 싶습니다.
첫댓글 동감합니다. 이 글의 내용을 편집하여 각 중대형 교회의 목사시무실 책상에 두어장 씩 놓고 나와야겠지않습니까! 답답한 이 현실... 그리고 식당 화장실 일층 로비등에도, 설사 안 먹혀들어갈지라도 그들 조금은 긴장할 것입니다.
돌아오는 주일 부터 이 글을 복사 프린트 하여 현장으로 나가려합니다. 또한 일단 십일조와 주일성수 문제를 제외한 성전 건축에 관한 좋은 글들을 발췌하여 편집해서 함께 인쇄할까 합니다. 더 좋은 의견 있으시면 참여해 주세요.<십일조 문제와 주일성수에 대한 편견 사안은 심히 돌출될 수 있는 역효과를 우려하여 차차 하기로 합니다>
합동측에도 이런 목사님이 있다는 것에 주님께 감사함을 드립니다
하나님 더 이상 착한 성도들이 헌금으로 고통받지 않게 하옵소서... 한국교회에서 몰아내야 할 헌금강요문제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죠.
좋은글이십니다.특히 과부의 두렙돈사건,이것를 가지고 ,과부도생활비전부를 넣었으니,성도들도,본받아라는씩?의설교가난무하지요, 한마디로 성령이무지한 목회자들이 많다는애기이지요...
이제는 성도들이 깨어있어야 할 시대인것 같습니다. 어느 목사가 "아니다"라고 말해야 아니고 "맞다" 라고 말하면 맞는게 아니라 스스로가 성령안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목사의 말에 눌리지 않을 정도의 영적 파워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송태근 목사님의 한국교회의 헌금강요설교문제에 관하여 공감합니다. 그런데 설명하시면서 과부의 두렙돈 문제를 좀 이상하게 해석하셨습니다. 송목사님의 말씀에 의하면 이 과부는 억지로 다른 사람에게 무시 안받을려고 헌금한 경우가 되거든요... 억지로 드린 헌금도 예수님께서 칭찬하시는 내용이 되나요? 좀 예를 다르게 드신 경우가 아닌가 싶습니다.
개신교의 기복에 쩔은 거품을 제거하여야 합니다. '성경 말씀 그대로'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