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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나해 11월25일 [(녹) 연중 제34주간 수요일]
[청주] 하느님의 사람 -
청주교구 청주 성모 병원 반영억 라파엘 신부 -
○ 제1독서 다니 2,31-45
+ 복음 루카 21,5-11
◈ 오늘의 묵상
이번 주간 내내 우리는 독서와 복음에서 세상 종말에 관한 말씀을
묵상합니다. ‘처음과 마지막’이신 그리스도께서 틀림없이 다시 오시지만,
언제 어떻게 오실지 모르기에, 희망이 없어 보이는 박해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교회가 신앙 안에서 참고 기다려야 한다는 점을 당시 유행하던
묵시 문학적 표현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이 장차 박해를 받게 될 것임을 예고하시며,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증언할 기회’라고 하면, 훌륭하게 증거를 보여 반대자들을 논박하고
어떤 주장이 옳다는 것을 납득시킬 순간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하기가
쉽습니다만, 제자들의 경우는 박해자들의 손에 끌려가서 임금과 총독들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증언해야 하는 것이기에 미움을 받고 죽임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께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 가운데
적지 않은 이들이 신앙 때문에 순교하였습니다. 잡혀간 그들이 해야 할
말을 스스로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뛰어난 언변과 지혜를 주실
것이기에, 그들이 사람들 앞에서 보여 주어야 할 것은 신앙의 시련을
끝까지 견디어 내는 ‘인내’였습니다.
여기서 ‘증언할 기회’로 번역된 그리스 말 단어는 ‘마르튀리온’입니다.
같은 어근에서 파생된 ‘마르튀리아’는 본디 ‘증언’을 가리켰지만 나중에는
‘순교’라는 뜻도 포함하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신앙을 증언하는 것은
말재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 신앙을 위해 고통을 견디고
죽음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 ‘인내’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생각해 봅니다.
분명 위기는 기회입니다. 박해는 복음과 하느님을 증언할 기회가 된다는
점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매일 미사 -
◈ [수도회]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인내 - 기 프란치스코 신부
2015년 나해 11월25일 연중 제34주간 수요일 루카 21,12-19
“인내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어라.”(루카21,19)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인내
흔적 없이 꼬리를 내리는 석양빛처럼, 구르는 낙엽에 영원을 담고
설레며 겨울을 부르는 해 끝! 임의 사랑에 목말라 생명의 봄을 찾아가는
길목에서 임을 바라본다. 가을이 겨울을 따라가고 겨울은 또 그렇게
봄을 그리워하듯 우리 삶이 비록 동토(凍土) 같아도 천상 고향을 향한
인고(忍苦)의 목마름을 키워가야 가리라!
예루살렘의 멸망을 알려주는 조짐이 나타나기 전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 때문에 유다인들의 회당과 감옥에 넘겨지고, 이방인 임금들과
총독들 앞에 끌려갈 것입니다(21,12). 예수님께서는 감옥에 갇히고
법정에 끌려가고 모두가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죽이고
미워하더라도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라고 하십니다(21,16-18).
인생은 끝없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싸움 속에 괴로움으로 채워지는
고해(苦海)입니다. 누구나 고통이 없는 삶을 바라지만 인간인 한 그건
죽을 때까지 끌어안고 가야 하는 피할 수 없는 실존입니다. 당장 먹고
살기 힘들고 또 그런 것들이 충족된다 하여도 단 한 사람 때문에 삶이
지옥처럼 다가올 때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뿌리칠 수 없는 고통의
터널을 지나야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선(善)이시고, 사랑이시며, 아름다움이시고 진리이시며
정의이신 하느님의 나라를 말씀과 행적을 통해 가르치셨습니다. 그분의
가르침에 따라 사는 우리는 모든 사람이 겪는 고통과 더불어 예수님
때문에 미움을 받고 박해를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만이
주실 수 있는 행복을 갈망하는 우리는 악을 추구하고, 이기심과 탐욕을
채우려고 거짓과 불의를 일삼는 이들과 맞설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인내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어라.”(21,19)
성 프란치스코도 권고합니다. “갖가지 시련을 당할 때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하여 이 세상에서 영혼이나 육신의 온갖 괴로움이나 고생을 견딜
때 우리는 더 기뻐해야 합니다.”(인준받지 않은 수도규칙 17,8)
그렇습니다! 고통은 치워버려야 할 걸림돌이 아니라 행복으로 가는
디딤돌입니다. 하느님께서 계시고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에
고통과 시련, 슬픔, 병, 심지어 죽음마저도 견디어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극도의 고통과 절망이 밀려드는 상황에서도 영원하신
하느님을 바라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더’를 외치며 다시 시작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왜냐하면 고통도 박해도 하느님 계획의 일부이며
그분을 만나고 증언할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입니다(21,13).
고통은 영원한 생명으로 건너가는 과정일 뿐입니다. 고통과 박해를
견디어내는 힘은 사랑이며, 견딤의 과정은 하느님을 드러내는 은총의
계기입니다. 참으로 삶이 퍽퍽하고 힘들며 대다수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하는 오늘의 한국입니다. 그러나 어떤 처지에서도 늘 나와
함께하시는 주님을 믿고 바라보면서 불의에 맞서고 고통을
견뎌내야겠습니다. 지금은 고통스러워도 겪은 만큼 성장하고,
견디어내는 만큼 관대해지며 순수한 영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인생은
인내로써 의미를 얻고, 우리를 위해 수난하신 예수님과 더욱 더
일치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어떤 어려움과 괴로움 중에도 함께 해주시고 보호해주시는
하느님을 바라고 믿으며, 일상의 수고로움과 고통을 견디어냄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호흡하는 날이 되었으면 합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 [수도회]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5년 나해 11월25일 연중 제34주간 수요일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루카 21,12-19)
미움과 박해까지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게 하시는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미움과 박해까지 봉헌하게 하는 것은
주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의 인내였습니다.
인내의 길은 주님께서 걸어가신 사랑의 길이었습니다.
인내는 우리의 인격을 온전하게 만들어주는 주님의 선물입니다.
우리의 삶안에서 인내없이 맺을수 있는 열매는 하나도 없습니다.
인내의 여정안에서 참된 치유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인내는 치유를 낳고 치유는 변화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인내는 성장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하느님 사랑을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변화시켜주기 때문입니다.
인내의 부족함은 사랑의 부족함으로 이어집니다.
사랑으로 출발하지만 인내없이는 목적지에 다다를 수 없습니다.
인내를 통해 얻게되는 기쁨이 참된 기쁨입니다.
우리를 기쁘게 하는 머무름에도
인내가 필요함을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머무름의 신비는 인내의 신비입니다.
생명은 인내로써 생명다워지게하는 가장 아름다운 봉헌이 됩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수도회] 알타반의 말씀사랑
2015년 나해 11월25일 연중 제34주간 수요일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루카 21,13)
순교자들을 우리는 증거자라고도 부릅니다.
순교자만이 아니라 자신의 삶으로 신앙을 드러낸
모든 이를 증거자라 부릅니다.
한마디로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자녀들이기에
자신의 말과 행동으로 신앙을 증거하는 사람입니다.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나는 얼마나
하느님의 자녀임을 증거하고 살아왔나 돌아봅니다.
어떻게 살면 신앙을 증거하게 될까요?
어떤 말과 행동이 신앙인임을 증거하는 것일까요?
신앙인의 말은 자신의 말이 아니라 성령의 영감에 따라
하느님께서 하라는대로 하는 말입니다.
그러니 내가 무슨 말을 해야할까 고민할 필요없이
겸손하게 기도하며 나를 비우게 되면
내 안에 계시는 하느님의 영이 나를 대신해서 말씀하십니다.
신앙인의 삶은 기쁘고 즐거울 때보다는
고통과 역경을 겪을 때 잘 드러납니다.
보통 사람들은 고통과 역경을 못견뎌하며
하느님과 다른 이웃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그것을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울 기회라고 여기기에 그 환난의 순간이 증거의 기회가 됩니다.
나는 한해 동안 어떤 말과 행동으로 증거자의 삶을 살아 왔는지
한번 겸허히 돌아보는 오늘 되시길 축원합니다.
- 작은 형제회 오상선 바오로 신부 -
◈ [서울] 연중 제34주간 수요일
2015년 나해 11월25일 연중 제34주간 수요일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 루카 21,12-19
며칠 전입니다. 꿈속에서 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미사를
드리면서 경문을 읽었습니다. 그러던 중 마음이 울컥해지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부활의 희망 속에 고이 잠든 교우들과 세상을 떠난 다른
이들도 모두 생각하시어, 그들이 주님의 빛나는 얼굴을 뵈옵게 하소서.
저희에게도 자비를 베푸시어, 영원으로부터 주님의 사랑을 받는
하느님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복된 사도들과 함께 영원한 삶을
누리며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소서.”
4년 전에 하느님의 품으로 가신 아버님의 생각이 났었고, 연로하신 친지
분들 중에는 하느님께로 가실 분들이 계실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하느님의 품에서 영원한 삶을 사는 것이 우리들 모두의 꿈이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이 세상에서의 헤어짐을 먼저 겪어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꿈속에서 읽은 복음은 ‘참된 행복’이었습니다. 가난한
사람, 평화를 이루는 사람, 자비를 베푸는 사람,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복음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 주님 때문에 고난을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하느님의
나라가 그들의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잠에서 깨어나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지금 잠시 헤어지지만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가? 그러기 위해서는 가난한 마음으로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해야 함을, 거저 받았으니 가진 것을 기꺼운
마음으로 나누어야 함을, 지금 나에게 주어지는 고통과 슬픔을
하느님께로 향하는 디딤돌로 여겨야 함을 알았습니다.
요즘 우리는 묵시문학의 이야기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묵시문학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무리 강한 조직과 나라일지라도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면, 하느님과 함께 하지 않는다면 악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나약하고, 작은 나라일지라도 하느님의 뜻을
따르면 하느님과 함께 한다면 주님께서 이끌어 주시니, 강가에 심어진
나무처럼 생기가 돋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신자 분들을 만나면서 많은 묵상을 하게 됩니다. 자녀문제로,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부부의 불화로 힘들고 어렵게 지내는 가정이 많았습니다.
신앙을 갖지 않았다면, 하느님을 알지 못했다면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문제들로 가슴아파하는 분들을 보았습니다. 묵시문학은 이야기 합니다.
‘이 모든 것들도 다 지나가리라.’ 결국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밝은 빛을 보리라고 말을 합니다.
“인내로서 생명을 얻으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예전에
읽었던 시가 생각납니다. “삶이 막막함으로 다가와 주체할 수 없이
울적할 때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나 구석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자신의 존재가 한낱 가랑잎처럼 힘없이 팔랑거릴 때 그러나 그럴
때 일수록 나는 더욱 소망한다. 그것들이 내 삶의 거름이 되어 화사한
꽃밭을 일구어 낼 수 있기를 나중에 알찬 열매만 맺을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꽃이 아니라고 슬퍼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서울] 기쁨의 눈물로 벅찬 영세
2015년 나해 11월25일 연중 제34주간 수요일
아픈 이를 뽑으면 시원하듯 사회의 악도 원인을 잘 찾아 빼야 합니다.
진리와 참된 기준 따라 판단해야 되는 데 세상엔 잘못 투성 뿐입니다.
어른들의 한 맺힌 욕심 찬 판단이나 집단 야욕적 판단이 그런 겁니다.
그렇지만 신앙인들은 세상 이런 판단에 물 둘지 않겠다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교리를 배워 나름 이해하고 깨닫고 이게 예비신자 과정입니다.
드디어 영세로 새로 태어날 때 그 기쁨은 눈물로 벅차기만 한 겁니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루카 21,17~18)”
- 서울 대교구 이기정 사도요한 신부 -
◈ [청주] 하느님의 사람|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5년 나해 11월25일 연중 제34주간 수요일 (루카21,12-19)
복음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 루카 21,12-19
하느님의 사람
사람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진면목을 볼 수 있습니다. 그때야 말로 그
사람의 크기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어려움을 처리하는 과정 안에서
진실 된 모습을 보게 되고 하느님의 사람인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8장28절에서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믿는
사람에게는 선을 이룰 수 있게 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 선을 지향하는 사람은 곧 하느님의 사람이요, 그렇지 않으면
하느님의 눈에 드는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신부인 저도 일상생활
안에서 하느님의 사람이 아닌 상태로 지낼 때가 종종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아마 누군가 제 속을 알면 큰 실망을 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 때문에 박해와 비난을 받게 됩니다. 어떠한
처지에서도 주님을 따라야 하지만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미리 당신의 제자들에게 위로와 힘을
주십니다. ‘박해를 당하고 감옥에 갇히게 되고….. 그 때야말로 너희가
나의 복음을 증언할 기회이다……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12-15). 박해는 그리스도를
증언할 기회라고 했지만 어디 그것이 말같이 쉬운 일입니까? 일상
안에서도 변명과 합리화시키려고 하는 마음이 얼마나 많은데…..
감옥에 갇혀서 소신을 지킨다는 것은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참으로 믿는 사람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믿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회당이나 관청이나 관아에 끌려갈 때,
어떻게 답변 할까, 무엇으로 답변할까, 또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성령께서 그때에 알려주실 것이다”(루카 12,12).
이제 믿음을 지닌 제자들은 인간적인 말재주와 인간적인 지혜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능력과 지혜로 말하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4장13절을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최고 의회에서 증언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의회 의원들은“베드로와 요한의 담대함을 보고 또
이들이 무식하고 평범한 사람임을 알아차리고 놀라워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6장10절에도 스테파노와 논쟁을 벌이는데
“그의 말에서 드러나는 지혜와 성령에 대항할 수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최고 의회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모두 스테파노를 유심히
바라보았는데, 그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처럼 보였다”(사도행전6,15)
고 했습니다.
그야말로 믿음을 간직하고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로움인지를
체험하려면 주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사람으로 서있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혹 지금
힘들더라도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루카21,16).하시는
주님의 말씀에 위안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어려움 속에서
진정한 나의 모습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시련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렇게 시험을 통과하면, 그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화관을 받을 것입니다”(야고1,12).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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