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고요에 드난살다 (외 2편)
오태환
고요에 드난사는 건 나뿐이 아니지 싶다 곰비임비 헛발질이나 하면서, 순흘림체로 물색없이 지저귀어 쌓는 무너밋골 소쩍새도 매한가지다 잘 마른 유기鍮器나 마블링이 근사한 꽃등심, 아니면 화려한 진사辰砂 때깔로 숨어 지내다가, 생각나면 닻별떼나 희치희치 비치는 어둠끼리도 그렇다
어차피 개구멍받이로 진배없지만, 고요에 염치불구 드난사는 것 중 상등품上等品은 아무래도 빗소리다 지하철도 시내버스도 끊긴 밤, 후미진 변두리로 변두리로 옮기며 듣는[落] 빗소리다 흰 발바닥이나 보이며 놀다가, 쓰러진 자전거 바큇살을 적시고 수유사거리 안마방 찌라시를 적시고 새벽 두 시, 인사불성으로 집을 찾는 취객의 두 어깨를 가만가만 적시는 빗소리다 변두리마다 하루걸러 이틀 사흘 놋낱같이 놋낱같이 내리는 빗소리에 귀기울이면
드난사는 깜냥에 드난밥이나 축내며, 수척한 몸알이 괜시리 또 아프다 쥐뿔도 그리운 게 있을 리 없는데, 웃자란 고들빼기처럼 허투루로다가 쇠기만 하는
—《작가세계》2011년 가을호
무너밋골 달빛
하릅강아지 누렁강아지 귀때기처럼 돋는 달빛
양지머리 뒷사태 斤 가웃 맑은 국거리로 한 소금씩 뜨는 달빛
으슥한 도린결 도린결만 뒤지고 다니는 따라지 달빛
마른장마 맞춰 벼르다 벼르다 듣는 감또개 같고 감꽃새끼 같은 달빛
잘 잡순 개밥그릇이나 설거지하듯 살강살강 부시는 달빛
—《현대시학》2011년 7월호
안다미로 듣는 비는
처마맡에 널어 말린 동지冬至께 무청처럼 간조롱히 뿌리는 비는
한 치 두 치 나비 재며 한 냥쭝 두 냥쭝 저울에 달며 는실난실 날리는 비는
일껏 발품이나 팔며 그늘마다 구름기슭 볕뉘처럼 움트는 비는
전당포典當鋪도 못 가본 백통[白銅]비녀 때깔로 새들새들 저무는 비는
꺼병아 꺼병아 애꾸눈서껀 엿장수서껀 칠삭둥이서껀
안다미로 눈칫밥 멕이다가 나무거울로 낯짝 가리고 내리는 비는
—《시안》2011년 가을호
------------------
오태환 / 1960년 서울 출생. 고려대 사범대 국어교육과, 동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84년 조선일보와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북한산』『手話』『별빛들을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