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당과 지옥 -
☆ 2015년 나해 11월27일 연중 제34주간 금요일
[수도회] 변화의 한복판에서 만나는 하느님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제1독서 다니 7,2ㄴ-14
+ 복음 루카 21,29-33
◈ 오늘의 묵상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은 주로 예언서의 첫머리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예레미야에게 하느님께서는 유다 왕국의 멸망을
선포하라고 하시며, “나는 내 말이 이루어지는지 지켜보고 있다.”
(1,12)고 말씀하십니다. 이사야서 제2부를 시작하는 40,1에서는
하느님께서 예언자에게, 유배 중인 당신 백성을 위로하고 해방의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말씀하시면서,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우리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으리라.” 하고 외치게 하십니다. 두 경우
모두, 예언자를 통해 전하신 당신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못을
박아 두시는 것이지요.
왜 그렇게 하실까요? 사람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사람들은 심판을 선고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고,
구원을 선포해도 그 약속이 성취되리라고 믿지 못합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의 역사 안에, 나의 삶 안에 개입하시고 변화를 일으키시리라는
것을 납득하지 못하고, 내일도 오늘과 같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변화의 표징에도 주의를 기울이지 못합니다.
“무화과나무와 다른 모든 나무를 보아라.” 나무는 계절이 바뀌는 것을
감지하고 늘 새로운 모습을 갖춥니다. 우리의 삶 안에서 하느님께서
일으키시는 변화들에 더 민감해져야 하겠습니다. ‘하느님이냐, 아니면
하느님 아닌 것이냐.’를 선택해야 하는데, 그것은 회개하고 복음을
받아들이라는 예수님의 최초의 복음 선포 말씀과 연결됩니다.
- 매일 미사 -
◈ [인천] 바로 나부터 실천
2015년 나해 11월27일 연중 제34주간 금요일
제1독서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났다.>
○ 다니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7,2ㄴ-14
복음
<너희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29-33
며칠 전에 편의점 앞을 지나가는데, 고성이 오가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편의점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의 자매님과 젊은 아가씨가
서로를 향해서 욕설과 함께 소리를 지릅니다. 아마도 계산에 관련된
시비가 붙은 모양입니다. 그런데 편의점 주인이신 자매님께서 젊은
아가씨에게 “너 나 무시하니?”라고 말하면서 눈물을 펑펑 쏟습니다.
누가 잘 하고, 누가 잘 못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오해로 인한
다툼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편의점 주인이신 자매님께서 참으로
억울한 마음을 가지고 있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다는 생각, 즉 자기 존재에 대해 무시 받았다는 생각에 억울함을
표시한 것이지요.
사람은 누구나 상대에게 자신이 소중한 사람이라고 여겨질 때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이 행복을 위해 주님께서는 분명히 ‘사랑’을
강조하셨지요. 서로 사랑하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행복을 느끼면서
기쁘게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습니다.
언젠가 어떤 신부님을 만나서 대화를 하는데, 자신은 고속도로 요금소를
지날 때 편하고 빠르게 지나갈 수 있는 하이패스 구간을 통과하지 않고
요금징수원이 있는 곳을 지나간다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리고
요금징수원에게 껌 한 통, 과자 한 봉지, 굴 몇 알 등등의 것을
전해준다고 합니다. 매번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요금징수원이 얼마나
힘들겠냐는 것이지요. 따라서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조금이라도 받도록
“수고하십니다. 이것 하나 드시면서 하세요.”하면서 건네면 너무나도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고 하시더군요.
세상의 모든 것은 생겼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요? 동시에 절대로 사라져서는 안 될 것은
또 무엇일까요? 주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이 점을 말씀해주십니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 특히 사랑의 말씀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사라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스스로를 소중한 사람으로 여길
수 있으며, 이로써 행복을 간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전해주시는 이 사랑을 어떻게 계속 이 땅에 남기도록 할 수
있을까요? 그 몫이 우리에게 전해졌습니다. 이웃을 향한 따뜻하고 관심
가득한 말과 행동들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실천할 것만은 아닙니다.
바로 나부터가 실천해야 할 것이며, 그때 주님의 말씀인 사랑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 사랑이 가득한 곳. 바로 이미 왔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느님
나라가 가까워졌다는 증거가 될 것입니다.
역경은 사람을 부유하게 하진 않으나 지혜롭게 한다(풀러).
어제 특강을 했던 국제성모병원의 강당입니다.
감사의 이유
말이 거친 한 여성이 카네기에게 욕을 했다. 하지만 카네기는 그저
미소만 짓고 있었다. 옆에 있던 한 기자가 물었다.
"선생님 정말 대단하시네요. 어떻게 그런 말을 듣고도 가만히 계실 수
있나요?"
그러자 카네기가 대답했다.
"그 여자가 내 아내가 아닌 것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을 만날 때는 보기 싫어서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카네기처럼 감사하는 마음을 품을 수 있다면
굳이 피할 이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인간관계를 편하게 하는 방법은
바로 이 감사에 있는 것이 아닐까요?
강철왕 앤드류 카네기.
◈ [수도회] 변화의 한복판에서 만나는 하느님 - 기 프란치스코 신부
2015년 나해 11월27일 연중 제34주간 금요일 루카 21,29-33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루카 21,33)
변화의 한복판에서 만나는 하느님
팔레스티나에서 무화과나무는 올리브나무, 상수리나무, 메뚜기
콩나무등과 달리 겨울이 오면 앙상한 가지만 남아 말라 죽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 지역은 봄과 가을이 따로 없어 메마른 가지에 잎이
돋아나면 곧바로 여름이 다가옴을 알 수 있습니다(21,30).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예루살렘 멸망과 종말 직전의 전조(前兆)들이
일어나면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라고 하십니다(21,31). 곧
변화를 알아차리고, 변화의 의미를 알아들으며, 변화 속에서 변화하여
하느님을 만나라는 것입니다.
세상만물이 다 변합니다. 지금 이 순간도 온갖 변화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살다보면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변화를 인정하지 않은듯 살기도 합니다. 건강항 때는 천년만년 살
것이라 여기고, 빈손으로 갈 수밖에 없는 인생인데도 재물에 대한 탐욕을
버리지 않으며, 맡겨진 권력을 영원히 누릴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것저것 찾아 부산하게 움직이지만 변화에 무디고, 고정된
습관, 틀에 박힌 사고방식, 아집과 편견에 사로잡혀 살아가기도 합니다.
변화를 느끼는 것보다 그 의미를 깨닫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변화는
창조와 파멸로 드러날 수 있지만 바로 그것이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표지가 되기도 합니다. 자본과 과학과 엄청난 정보로 무장한
현대인은 변화에 끌려다니면서도 그 안에 담긴 하느님의 뜻을 알아채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을 위해 영원하신 하느님마저도 부인하고
변화시키려 하기도 합니다.
무분별한 개발과 인간의 탐욕이 부른 지구온난화와 생태계 파괴, 자본과
권력의 독점, 소비주의, 빈부격차의 심화, 전쟁과 난민 문제 등
자연환경과 사회 여건의 변화, 그리고 자신의 변화가 던져주는 하느님의
뜻을 알아차려야 할 것입니다. 사소하고 하찮아보이는 변화 속에도
하느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변화 가운데에 영원토록 존재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변화의 한복판에서 변하지 않으시는 하느님을 볼 수 있는 영적 민감성을
키워가야 할 것입니다. 무화과나무에 새순이 돋듯 자연도 세상도,
인간도 변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 모든 변화에 개입하시고 그
안에서 당신의 뜻을 드러내십니다. 따라서 변화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려면 변화를 보는 하느님의 눈을 지녀야 합니다.
모든 변화 안에서 영원하신 하느님을 뵙지 못하는 것은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 영(靈)의 눈을 잃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요? 변화 속에
함께 계시는 주님을 사랑으로 만나려는 원의는 있으나 사랑의 열정과
영적 민감성이 부족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요? 이제 끊임없이 변하는
현상을 무의식적으로 좇는 피상적인 태도를 돌아보고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할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21,33) 신기루 같은 현상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은 말씀에 뿌리를 내려야 할 것입니다. 세상 모든
것을 다 얻는다 해도 사라지지 않을 말씀을 경청하지 않고 변함없는
주님을 만나지 못한다면 언젠가는 맞게 될 세상종말과 죽음은 비참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세상 변화에 집착하거나 휩쓸리지 않고, 변화 속에서 창조를
이어가시는 하느님의 뜻을 알아차리고 그분을 만나는 영원의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 [수도회]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5년 나해 11월27일 연중 제34주간 금요일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루카 21,29-33)
말씀 안에 하느님 나라가 있고 말씀 안에 진정한 구원이 있습니다.
말씀을 제외한 이모든 것은 사라져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라져갈 것에 마음을 빼앗겨서는 결코 안됩니다.
사라지지 않을 영원한 말씀에서 생명의 양식을 얻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말씀을 향해 가는 길만 존재할 뿐입니다.
하느님 말씀으로 시작된 우리의 생명입니다.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신 말씀을 지향합니다.
생명의 주인이 되시는 하느님 말씀입니다.
하느님 말씀이 생명의 주체이기에
우리는 말씀을 기다리고 말씀을 따릅니다.
말씀이 없는 생명은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말씀의 최고절정은 사람이 되어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가 다른 곳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향하기를 기도드립니다.
이 세상에서 말씀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말씀만이 이모든 것을 구원으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가까이 온 하느님 나라는 이미 말씀 안에 있습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수도회] 알타반의 말씀사랑
2015년 나해 11월27일 연중 제34주간 금요일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루카 21,31)
하루에도 수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 수많은 일들 중에는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아름다운 일들이 있는가 하면 하느님 나라를 파괴하는
무시무시한 일들도 많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일을 볼 때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욌다고 느끼시는지요?
하느님 나라가 가까웠다는 깃은 신앙인에게는
구원의 때, 속량의 때, 은총의 때가 다가온다는 것이고
이 세상만 믿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세상의 종말이요 심판의 때가 다가온다는 것이겠지요.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우리 누이인 지구가 병들어 죽어가고 있다고
절규하시며 지금부터라도 함께 힘을 모아 지구를 살리자고 호소하십니다.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하느님 나라는 새로운 생명이 될 것이고
지구의 종말이 될 수도 있답니다.
우리는 어떤 길을 택해야 할까요?
오늘 지구를 살리는 일에 나는 일조하고 있는지 지구를 죽이는 일에
일조하고 있는지 한번 잘 살펴봅시다.
사람을 살리는 일에 협력하고 있는지
사람을 죽이는 일에 동참하고 있는지
생명과 구원의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갈망하고 있는지
죽음과 심판의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재촉하고 있는지
적어도 그런 일에 일조하고 있지는 않은지 겸허하게 돌아봅시다.
- 작은 형제회 오상선 바오로 신부 -
◈ [서울] 연중 제34주간 금요일
2015년 나해 11월27일 연중 제34주간 금요일
<너희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29-33
지난 주일에는 의정부에 계시는 어머니께 잠시 다녀왔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좋아하는 굴비를 맛있게 준비해 주셨습니다. 어머니는 여전히
굴비의 머리 쪽만 드시고, 살은 제가 먹을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아침을 두 그릇이나 먹으니, 어머니께서는 무척 좋아하십니다. 아들의
나이가 50이 넘었어도, 세상에서 제법을 일을 하여도, 어머니의 눈에는
늘 아이처럼 보일 것입니다. 겨울 따뜻하게 지내시도록 내의를 드리고,
기도하실 때 켜시라고 초를 갖다 드렸더니 너무도 좋아하십니다.
어머니의 눈은 늘 사랑의 눈이고, 믿음의 눈이고, 희망의 눈입니다. 그
마음에 사랑과 믿음과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끔씩 방에 있는 피아노의 건반을 만져봅니다. 예전에 기타를 쳤기
때문에 주로 코드를 중심으로 피아노 연습을 합니다. 코드는 우리의
귀에 익숙한 음악의 길입니다. 코드와 다르게 피아노를 치면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리곤 합니다. 정해진 코드에 따라서 건반을 만지면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피아노를 반주하는 것도 정해진 길과
규칙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그 정해진 길과 규칙을
꾸준히 연습하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는 분들은 굳이
악보를 보지 않아도, 마음속의 음들이 손을 통해서 피아노의 건반을
움직이게 할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볼 수 없는 길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도, 버스를 기다릴 때도 사람들이 질서 있게 줄을
서는 것을 봅니다. 그것이 더욱 빠르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우리들의 의식에 타인에 대한 배려가 커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무조건 먼저 타려고 밀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영화도,
야구도 암표가 성행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모르는 사이에 아이들이
커가듯이, 우리들의 시민의식도 성숙했다고 생각합니다.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을 잘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다섯 가지 특징을 지닌 존재라고 합니다.
첫째, 인간은 욕망을 지닌 존재이지만, 그 욕망은 절제되어야 합니다.
둘째, 인간은 모순된 삶을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 모순된 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사랑하니까 헤어지는 것’도 인간이고,
남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던지는 것도 인간이고, 자신의 욕심 때문에
타인을 죽이는 것도 인간입니다.
셋째, 인간은 사이에 있는 존재입니다. 선과 악 사이에 있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 있는 존재입니다. 혼자서 살 수 없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넷째, 인간은 육체의 한계를 넘어서 영원을 생각하는 초월적 존재입니다.
명상과 묵상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을 찾아가는 존재입니다.
다섯째, 그래서 인간은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나그네가 언젠가 집으로 돌아가듯이, 인간은 삶의 여정을 통해서
죽음이라는 문을 넘어서야 하는 존재입니다. 생명은 죽음이 있기 때문에
생명이라고 말을 합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다가올 죽음을 거부하거나,
두려워하기 보다는, 주어진 삶에 충실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을 찾아야
합니다. 하늘과 땅이 사라질지라도, 변하지 않는 하느님의 사랑을
찾아가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며, 그것은 죽음을 넘어서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교회의 전례로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될 것입니다. 막힌 곳은
시원하게 뚫어주고, 골이 깊은 곳은 사랑으로 메워주고, 앞서가는
사람은 뒤에 오는 사람의 손을 잡아 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우습게
아는 곤충들도 우리보다 훨씬 먼저 이 지구별에서 삶을 시작하였습니다.
순간을 감사드리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작은 발걸음이라도
디딜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매일 이렇게 묵상 글을 이웃들과 나눌
수 있으면 더 바람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은혜를 베풀어주신
주님께 노래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주님 이름 찬양하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싶습니다.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서울] 천국은 행복해 미칠 지경
2015년 나해 11월27일 연중 제34주간 금요일
한창 젊은 연애시절 누구도 못 말릴 미칠 지경의 그런 사랑 알지요?
흘러가는 한 세상 인간사랑이 이렇다면 영원한 하느님사랑 어떨까요?
하느님은 세상을 너무 사랑하신 나머지 그 외아들을 보내셨다는데요?
하느님의 사랑! 세상 끝나면 사랑원천 하느님을 직접 뵙게 된답니다.
보면 행복해 미칠 지경이 천국, 못 보면 불행해 미칠 지경이 지옥이래요.
오죽하면 예수님이 이 사랑 알리려고 십자가에 목숨 바치셨겠습니까.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루카 21,31)”
- 서울 대교구 이기정 사도요한 신부 -
◈ [청주] 영적인 눈 |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5년 나해 11월27일 연중 제34주간 금요일
<너희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 루카
앞을 볼 수 있는 눈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해서 새로운 싹이 트면 계절의
변화를 느끼듯 세상의 여러 혼돈과 징표를 보거든 그것의 의미를
알아들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하나의 혼돈은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데 꼭 거쳐야 할 과정입니다. 하나의 풍파가 몰아치면 그것을
계기로 새로운 틀이 만들어집니다. 그러므로 “혼돈과 어둠 속에서 움터
오르는 새 하늘, 새 땅의 창조와 광명을 내다보는 눈”(이현주목사),
혜안을 가진 이는 행복합니다.
주님으로 말미암아 세상의 혼돈은 사라지고 하느님의 나라가 우뚝
선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큰 기쁨입니다. 또한 구원 받을 때가 가까이
왔다는 것이 마음 설레게 합니다. 그러나 솔직히 마음 한구석엔 두려움이
있습니다.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하느님께서 ‘각자가 행한 대로 갚아
주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성직자를 떠 바쳐 위하고
거룩하게 보지만 그 속을 알면 누구보다도 부끄러움이 많고 자비를
간구해야 할 사람입니다. 맑고 깨끗한 마음의 소유자로 부끄러움이
없기를 희망합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하신 약속의
말씀들은 언제나 살아있다는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을 가슴에 담고 살아야 합니다. 말씀을 들었으면 그에 걸
맞는 삶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모든 것이 사라질지라도
가슴에 남는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세상 것은 사라지지만 주님의
말씀을 차지한 사람은 영원합니다. 나자렛 예수는 사라질지라도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영원한 것에
마음을 두어야 하겠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1요한 2,17).
우리가 일상 안에서 내 마음 내키는 대로 하면 뻔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면서도 걸려 넘어지고 나서야 후회를 하고 새로운
다짐과 시작을 합니다. 마지막 날이 언제 올 것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분명한 것은 “그 날이 오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아니 그 날이 오늘 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마지막 때에 주님을 떳떳이 만날 수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앞을 내다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을 지녀야 하겠습니다.
어떤 처지에서든지 말씀 안에 자유를 누릴 수 있기를 청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내 마음 안에서 주님의 말씀이 살아 있기를 희망합니다.
“당신 말씀은 제 발의 등불, 저의 길에 빛”(시편 119,105)이기
때문입니다. 야고보 사도의 말씀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야고1,22).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 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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