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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다해 12월13일 주일 [(자) 대림 제3주일]
[수도회] 사랑과 정의 실천으로 얻는 기쁨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제1독서 스바 3,14-18ㄱ
○ 제2독서 필리 4,4-7
† 복음 루카 3,10-18
오늘 전례
○ 대림 제3주일이며 자선 주일인 오늘 독서와 복음은 우리에게
주님께서 오실 날이 가까웠으니 기뻐하며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라고
권고합니다. 주님께로 돌아가는 회개와 이웃을 향한 선행의 실천으로,
한 걸음 다가온 성탄을 기쁘게 맞이하고자 준비하면서 경건하게 미사에
참여합시다.
◈ 오늘의 묵상
오늘 전례 말씀은 모두 어떤 ‘때’를 암시하면서 우리가 기뻐해야 할
충분한 이유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스바니야 예언자는 시온에게 기뻐하라고 권고하지만, 그 당시
예루살렘의 시대 상황과 분위기는 기뻐할 만한 처지가 아니었기에,
“두려워하지 마라. 힘없이 손을 늘어뜨리지 마라.”는 말씀은 황폐해진
예루살렘의 모습을 역설적으로 보여 줍니다. “늘 기뻐하십시오.”
라고 권면하는 바오로 사도의 처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온갖
수고를 감내하면서 전교 여행을 하였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보람이나 칭찬이 아니라 오히려 박해와 투옥이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서간들 가운데서도 특히 기쁨이라는 주제를 강조하는 필리피서는,
놀랍게도 그가 감옥에서 쓴 편지였습니다.
어떻게 기뻐할 수 있을까요? 바오로 사도가 그 답을 알려 줍니다.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스바니야도 “주님께서 네 한가운데에
계시니”라고 말하면서 바오로와 그 맥을 같이합니다.
너무 교과서적인, 그래서 식상한 대답같이 여겨지십니까? 성탄이 왜
기뻐야 하는지를 생각해 볼까요.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성탄 선물
때문에 기뻐하실 나이는 이미 지나신 것 같고, 쉬는 날이라서
기뻐하신다면 신자가 아닌 사람이나 다를 것이 없겠지요. 하루하루
살아가기 쉽지 않은 이 세상 안에서, 주님께서 우리와 똑같은 살을
취하시어 우리 안에 거처를 마련하시고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믿기에 우리는 기뻐하는 것이며, 아니, 기뻐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기뻐해야 할 이 ‘때’를 준비하는 자세를 세례자 요한은
“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이에게 나누어 주어라.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여라.”, “정해진 것보다 더 요구하지 마라.”, “아무도
강탈하거나 갈취하지 말고 너희 봉급으로 만족하여라.” 하고 알려
줍니다. 한마디로 요한의 이 가르침은 작은 사랑을 실천하고 직업윤리를
지키며, 개인적인 욕심을 버리고 분수에 맞게 살면서 당연한 정의를
실천하라는 것으로 요약됩니다.
- 매일 미사 -
◈ [인천]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은 무엇입니까?
2015년 다해 12월13일 대림 제3주일
제1독서
<주님께서 너 때문에 환성을 올리며 기뻐하시리라.>
○ 스바니야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3,14-18ㄱ
제2독서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필리피서 말씀입니다. 4,4-7
복음
<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10-18
이제 호주에서의 일정도 거의 끝나갑니다. 오늘 낮에 마지막 특강을
마치고 내일 새벽이면 이곳 호주를 떠나 한국으로 갑니다. 그래서 내일
새벽 묵상 글은 올리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이곳 새벽 시간에 공항으로
가야하기 때문에 묵상하고 글을 올릴 시간이 없을 것 같네요. 이제 하루
쉬고 15일(화) 새벽에 만날 것을 약속하면서 오늘의 새벽 묵상 글을
시작합니다.
대통령 전용차에 대해 듣게 되었습니다. 우선 그 가격이
어마어마하더군요. 왜냐하면 이 차의 성능이 대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무거워 보이지 않지만 무게가 2톤 가까이 나가는, 거의 장갑차
수준이라고 합니다. 방탄유리는 기본이고, 폭발물에 의해 타이어 4개가
모두 펑크가 나도 시속 80Km의 속도로 100Km 정도 달릴 수 있는
런플랫 타이어까지 장착되어 있다고 합니다.
어마어마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막강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자리에
있지만, 신변 안전이라는 이유로 방탄차는 물론이고 많은 경호원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활동의 제약을 겪는 대통령의 위치가 과연 행복할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권력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저는 온 몸이
다 드러날 수밖에 없는 자전거를 타고 다녀도 전혀 불안하지 않으며,
자유롭습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과연 권력이란 것이 좋은 것일까요? 막강한 힘을 구사할 수는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자유를 억압당하면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자유롭게 살아가는 자리가 더 행복한 것은
아닐까요?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세례자 요한을 봅니다. 그는 광야에서 기쁜 소식을
전하지요.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들을 구원할 메시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도 불러일으키는 엄청난 인기를 받았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내가 바로 메시아다.”라고 말만 했어도 세례자 요한은 더 큰
지지와 사랑을 얻었을 것입니다. 스스로를 메시아라고 속여서 사람들이
자신의 말에 무조건 복종할 수 있도록 하면 편안한 점이 더 많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그는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합니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오신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사람들을 꼼짝 못하게 할 만한 권력을 누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자신이 메시아가 아니며 더 큰 능력을 지니신 주님이 오심을
분명하게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면서 주님 앞에 작은 자라는 것을 이야기하지요.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권력을 걷어 차 버리는 말입니다. 세상의 권력이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보다는 주님께 순명하고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작은 자의 모습이 더욱 더 행복한 삶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은 무엇입니까? 주님을 위해서라면
작은 자의 모습도 기쁘게 선택할 수 있는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이렇게 주님 앞에 작은 자만이 곧 다가오실 주님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습니다.
현명한 사람은 그의 사랑하는 사람의 선물보다도 선물을 보내주는
사람의 사랑을 귀중하게 생각한다(토머스 켄피스).
어제 강의를 했던 호주의 Normanhurst 성당 내부입니다.
두 마리의 토끼
어떤 연구소에서 두 마리의 토끼 다리에 깁스를 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살펴보았지요. 그런데 이 두 마리의 토끼가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입니다.
한 마리의 토끼는 자신의 다리를 감싸고 있는 깁스를 풀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는 것입니다. 그동안 먹이가 바로 옆에 있어도
거들떠보지 않았습니다. 그저 온 힘을 다해 깁스를 풀기에만 집중하고
있었지요. 그러다보니 점점 힘이 약해졌습니다.
다른 토끼 역시 처음에는 깁스를 물어뜯으면서 벗어나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깁스에서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는지
깁스에서 벗어나는 것을 포기하고 평상시와 같이 생활하는 것입니다.
이 토끼는 힘도 그대로고 전혀 변화가 없었습니다.
똑같이 깁스라는 자신을 옭아매는 고통이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한
마리는 그 고통에만 집중했고 다른 한 마리는 그 고통을 무시하기
시작했지요. 그 결과는 어떻습니까? 자신의 고통에 집중한 토끼는 힘이
약해지면서 생명력을 잃은 반면, 자신의 고통을 무시한 토끼는 생명력을
유지하면서 평상시와 똑같이 생활했습니다.
우리 인간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똑같은 고통 속에 있어도, 이
고통에만 집중을 하다보면 살 수가 없습니다. 그 고통을 무시하면서
다른 것에 집중할 수 있을 때 삶의 기쁨은 계속될 수 있는 것이지요.
고통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고 계신가요?
호주 시드니 주교좌 성당 앞의 대형 구유입니다.
◈ [서울] 대림 제3주일
2015년 다해 12월13일 대림 제3주일
<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 루카 3,10-18
훈훈한 이야기와 감미로운 음악이 어울려진 ‘응답하라 1988’은 지친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고 있습니다. 이문세, 신해철, 전인권,
김광석의 노래를 즐겨들었던 분들에게는 젊은 날의 추억이 떠오르는
드라마입니다. 27년 전의 이야기인데 꽤 먼 날의 이야기와 같습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급속하게 발전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드라마는
풍요와 발전이라는 옷을 바꿔 입으면서 쉽게 버렸던 것들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웃들과 함께 고통을 나누고, 이웃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이웃들과 함께 문제를 풀어가는 모습들입니다.
우리들은 ‘상조, 연금, 보험, 요양원, 도우미’와 같은 말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이제 이웃들이 우리를 돕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조직과 복지
체계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내는 돈으로 우리들의 노후와
건강을 돌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을 보면 아직도 사회의
조직과 복지 체계에서 벗어난 가난한 이들이 있습니다. 스스로의 돈으로
노후와 건강을 책임지지 못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드라마는 나눔으로써 밥상이 풍성해지는 모습을 잔잔하게 보여 줍니다.
아내와 사별한 남자와 그 아들이 맛있는 저녁을 먹는 모습도 보여줍니다.
‘깍두기, 불고기, 카레, 나물무침, 귤’은 모두 이웃들이 정겹게 나눈
것들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요구하지 않아도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오늘 세례자 요한은 함께하는 이웃들에게 ‘응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이에게 나누어 주어라.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여라.”
세리들에게도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정해진 것보다 더 요구하지
마라.” 하고 일렀다. 군사들에게도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아무도
강탈하거나 갈취하지 말고 너희 봉급으로 만족하여라.” 세례자 요한은
회개하였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 주어야 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나보다 더 크신 분이 오신다.’고 이야기 합니다. 바로
구세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지금 그분이 보여 주신
사랑을 기억하며 ‘성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과
표징과 삶으로서 하느님의 뜻에 응답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자비로우신 것처럼 우리도 자비를 베풀면서 살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느님께 감사 기도를 올리신 다음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개로
오천명을 먹이셨습니다. 벗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것 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타
언덕을 오르셨습니다.’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맹자는 우리 사람들에게는 4가지의 품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입니다.’ 불쌍한 사람을 보면 도와주고 싶어 하는
것은 사람들이 가진 고유한 품성이라고 말을 합니다. 주역은 또 이렇게
말을 합니다.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 선행을 행하는
집에는 반드시경사가 찾아온다.’는 이야기입니다. 동양에서는 우리가
자선을 베푸는 것은 우리에게 있는 품성이며, 그런 자선은 결국 우리를
이롭게 한다고 말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착한 사마리아’사람의 비유를 들어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혈통이나, 직책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강도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길에 쓰러져 있는 사람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쓰러져 신음하는 사람을 못 본척하고 스쳐지나간 사람들은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일생을 가난한 이들과 함께 했던, 빈자의 어머니 마더 데레사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랑을 그 일에 쏟아 넣었는가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주고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랑을 그러한 증여에 쏟아
넣었는가가 중요합니다.”우리는 지금 한해를 정리하는 12월 달을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대림시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올 한해를 돌아보면서 나는 과연 내가 하는 모든 일에 나의 사랑과 나의
마음을 담았는지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또한 나는 내가 가진 것들을
이웃과 나누기보다는 소유하려고만 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오늘 제 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항상 기뻐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사실 바오로 사도가 그 말을 할 때, 바오로 사도는 감옥에 있었습니다.
감옥이 호텔도 아니고 어디 휴양지도 아닌데 항상 기뻐하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데 감옥에 있으면서도 항상 기뻐하라고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분은 점점 커져야하고, 나는 점점 작아져야 합니다.”
라고 말했던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던 바오로 사도의 철저한 겸손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많이 소유한 사람이 반드시 많이 나누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일은 작다고 하여 미루지 말고, 악한 일이 비록 작다고 행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선현의 말씀이 귀를 울립니다.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서울] 평온하여 행복 맛보며 사랑해요.
2015년 다해 12월13일 대림 제3주일
평온하여 행복 맛보며 사랑해요.
암튼 욕심은 문젭니다. 사람 사는 데 골치 아픈 건 다 이 때문입니다.
특히 돈 욕심, 한 동안 ‘부~자 되세요.’ 했더니 이젠 심각해졌습니다.
새해엔 무슨 인사가 유행할지 의문됩니다. ‘거~지 되세요.’라 할까요?
형제 잃고 가정 깨고 친구 속이며 번 돈이 나를 병들게 하는 데도요?
나물 먹고 물마시며 허허롭게 시원한 마음으로 거침없이 살면 좋지요.
매인 것들 다 풀어버리고 평온하여 행복 맛보며 사랑받고 주면서요.
“군사들도 그에게 ‘저희는 또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요한은 그들에게 ‘아무도 강탈하거나 갈취하지 말고 너희 봉급으로
만족하여라.’ 하고 일렀다(루카 3,14)”
- 서울 대교구 이기정 사도요한 신부 -
◈ [수도회] 사랑과 정의 실천으로 얻는 기쁨 - 기 프란치스코 신부
2015년 다해 12월13일 대림 제3주일 루카 3,10-18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필리 4,4)
사랑과 정의 실천으로 얻는 기쁨
대림 3주일의 말씀들은 하나같이 기쁨을 노래합니다. 스바니야
예언자는 기원전 6세기 바빌론 유배를 당하여 식민 통치 아래서 온갖
핍박과 하느님을 찬미하지 못하는 서러움 속에 지내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알립니다. “이스라엘아, 크게 소리쳐라. 딸
예루살렘아, 마음껏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4,14)
사도 바오로는 감옥에 갇힌 상황에서 필리피 신자들에게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의 너그러운
마음을 모든 사람이 알 수 있게 하십시오.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
(4,4-5)라고 권고합니다. 스바니야 예언자와 바오로 사도 모두 온갖
악과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영원한 구원의 기쁨을 외친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며(루카 3,3),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3,8) 하고 권고합니다. 그 말을 듣고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나눔, 공평, 정의를 실천하라고
가르칩니다. 요한의 답은 어찌 보면 평범하지만 참 기쁨을 얻기 위해
매우 중요한 길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는 군중에게 그는 “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이에게 나누어 주어라.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여라.
(3,11) 하고 답합니다. 삶에 필수적인 것 가운데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은 다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나라가 음식물 쓰레기로 골치를
앓지만 지구 한편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어 갑니다. 갈수록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그에 따라 신앙생활에서마저 소외현상이
드러납니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 가난한 사람이 없어야(신명 15,4)
비로소 정의로운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세리들에게는 “정해진 것보다 더 요구하지 마라.”(3,13)
고 답합니다. 정해진 것보다 더 요구하지 않는 ‘공평’을 지키는 것이요,
그렇게 하려면 탐욕과 이기심을 버려야 합니다. 공평이 깨지면 부의
균형만 깨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불공정과 착취가 판을 치게 될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와 ‘흙수저’로 갈리는 사회는 병든 사회입니다.
사회진출, 부의 획득, 기본권의 실현 등에서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사회는 썩어 비인간화를 자초할 것입니다. 정해진 것보다
더 요구하고, 권력과 재력을 이용해 예외와 특권을 보장받는 사회는
인간을 도구화 하고 게토화 하는 비극을 초래할 뿐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군사들에게 “아무도 강탈하거나 갈취하지 말고 너희
봉급으로 만족하여라.”(3,14) 하고 말합니다. 이는 자신이 지닌 힘을
이용하여 힘없는 이들에게 강제로 부당하게 빼앗지 말아야 한다는
‘정의’를 언급한 것입니다. 나아가 탐욕을 부리지 말고 사회적 약자들을
자비롭게 대하라는 것입니다.
회개의 열매는 기쁨이요 구원입니다. 우리 모두 참 기쁨을 얻는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마저도 못 가진 이들에게 건네고, 탐욕과
이기심을 버리고 공평을 되찾으며, 자신의 지위와 권력과 재력을
이용하여 힘없는 이들로부터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습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 [수도회] 알타반의 말씀사랑
2015년 다해 12월13일 대림 제3주일
<여러분의 너그러운 마음을 모든 사람이 알 수 있게 하십시오.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 (필리 4,5)
성탄을 준비하고 한해 마무리를 준비하는 때입니다.
어떤 마음으로 이 시기를 보내야 할까요?
오늘 독서와 복음은 한결같이 두려워 하지 말고 걱정하지 말고
무조건 기뻐하고 기도하면서 감사하라고 하네요.
여기까진 네 알겠습니다 하겠는데...
다만 한 가지 여러분의 너그러운 마음을 모든 사람이 알게 하라네요.
자비럽고 너그러운 마음 그것을 다른 모든 사람이
알게 될 정도가 되려면 어찌 해야 할까요?
이번 한주간 더 너그럽고 더 자비롭게 살아봅시다.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이보다 더 중요한 준비가 없으니까요.
왜냐하면 성탄의 신비는 하느님의 자비와 선물을
경축하는 축제이기 때문이지요.
여러분의 너그러운 마음이 저에게도 보이네요. 감사합니다.
- 작은 형제회 오상선 바오로 신부 -
◈ [수도회] "스승님,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5년 다해 12월13일 대림 제3주일(자선 주일).
"스승님,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루카 3,10-18)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따라야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리가 사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가난하고 약한 이들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기쁨으로 드러납니다.
모든 사람 안에서 끊임없이 일하시는 성령을 믿고
성령을 거스르지 않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이끄시는대로 사는 것입니다.
성령안에서 기도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세례를 통해 내어맡기는 삶을 우리가 사는 것입니다.
하느님 자비를 통해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분명 자선의 여정을 걸어가는 사람들입니다.
자선의 여정을 걸어가는 이들은
우리의 약함을 겸손되이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손과 발이 되는 것이 자선의 본질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하느님의 선물을 우리가 나누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선물을 나누는 것이 하느님으로 채워지는
참된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참된 자유는 자선을 통한 적극적인 사랑의 나눔으로 드러납니다.
자신을 내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자선의 중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처럼 나누고 내어주는 삶을 우리또한 살아야합니다.
성령을 거스르지 않는 삶이란 감사하며 나누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향하는 가장 구체적인 길은
분명 자선의 길임을 믿고 고백합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청주]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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