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원사업의 하나... 마운틴 휘트니 등정을 이루어냈다!!!
14,495 피트. 미국 본토 48개 주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토요일 새벽 12 시 반에 출발, 무박산행으로 왕복 20.8 마일의 장거리 산행을 무려 열 아홉 시간 20분만에 완주했다. 상호와 LA 런클의 강 수잔 씨가 산행에 동참했다. 마운틴 휘트니... 애초부터 무박산행은 무리였다. 2,30대 청년들도 아니고 이제 내일모레면 환갑을 바라볼 사람들이 무슨 깡으로 이런 무지막지한 산행을 감행했는지...
그 지긋지긋한 아흔 아홉개의 스위치 백을 정신나간 사람처럼 아무런 생각없이 돌고돌아 내려온 후 갑자기 배고픔을 느끼기 시작한 때가 어렴풋이 오후 두 시 반 쯤 된 것 같다. 어젯밤 론 파인의 휘트니 레스토랑에서 [마운틴 휘트니]라는 이름의 엄청난 양의 샌드위치를 먹어치우고 나서 제대로 먹은 것 없이 6,000 피트 산을 올라갔다 내려왔으니 허기를 느끼는 것은 당연했다. 그렇지만 배고픔보다 입과 목젓이 타들어가는 갈증을 먼저 해결해야 했다. 12,000 피트의 트레일 캠프에 내려오니 조그만 호수가 있다. 그곳에서 물을 정수해 반 병을 들이키고 나서 다시 한 병을 채워넣고 어젯밤에 준비해 간 써브웨이 샌드위치의 반쪽을 먹을 요량이었다. 그렇지만 고산적응에 도움이 된다는 구운 마늘과 아스피린도 이번에는 전혀 약효를 발휘하지 못했다. 샌드위치를 4분의 1만 먹고나서 다시 배낭에 집어 넣었다.
머리가 아프기 시작한 것은 새벽 두 시가 지나서인 것 같았다. 약 십 여 년 만에 해보는 야간 등반이지만 동이 트고 날이 밝아지면 몸이 제대로 적응해 두통이 사라지리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칠흑같은 어두움에 뒤덮힌 주차장을 열 두 시 반에 출발해 아무것도 보거나 느낄 수 없는 야간 산행으로 8.5 마일 지점인 마운틴 휘트니 능선인 트레일 크레스트 리지까지 약 일곱 시간이 걸렸다. 아침으로 먹기위해 준비해 간 샌드위치는 결국 반의 반쪽도 먹을 수가 없었다. 고산증이다. 머리가 깨질듯이 아프다. 힘이 없다. 나는 빨리 걷는다고 걷는데 속도감을 전혀 느낄 수가 없다. 발이 무겁다. 그보다 움직이고자 하는 의지가 점점 사라진다. 그 유명한 아흔 아홉 개의 스위치 백을 오르는 데는 고산증으로 인한 두통보다 산길을 걸어 오르는 다리근육의 통증보다 최대심박수에 근접해 그야말로 터질듯한 심장과 거칠게 들이쉬는 숨을 최대한 확장시켜 받아들여야 하는 찢어질듯한 횡경막의 고통이 더 큰 괴로움이었다. 이제 능선이다. 1.9 마일. 약 3 킬로 미터. 고도 1,000 피트만 더 올라가면 꿈에 그리던 마운틴 휘트니의 정상에 오를 수 있다. 트레일 크레스트를 돌아 조금 내려오면 존 뮤어 트레일 갈림길이 나온다. 그곳에 서면 멀리 산 정상에 산장의 모습이 보이는데 그 빤히 보이는 거리 1.9 마일을 오르는 데 무려 세 시간 반이나 걸렸다. 오전 열 시면 산정에 오를 수 있으리라는 애초의 생각은 무참히 깨져버렸고 이제는 과연 해가 떨어지기 전에 하산을 마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휘트니 산의 정상은 열 한 시간을 고산증으로 힘들게 올라온 고생에 비하면 너무하다싶을 정도로 나에게 보상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오로지 돌, 돌, 돌... 그 돌들 사이에 드문드문 보이는 발목 깊이 빠지는 눈 그리고 차가운 바람만이 나를 맞이해 줄 뿐이었다. 산정에 오르게 되면 흔히 느끼는 것이 시원한 바람과 멀리보이는 경치 그리고 여기까지 올라온 보람이 있었다는 뿌듯함과 함께 등정을 기념하는 사진을 찍는 일들일 텐데... 깨질듯한 두통과 그로인해 좁아진 시야와 메스꺼움 그리고 이미 지칠대로 지쳐버린 몸은 그런 즐거움보다는 빨리 산을 내려가서 이 지긋지긋한 통증으로부터 벗어나고싶다는 생각을 갖게할 뿐이다. 아, 그러고보니 이번에는 산정에 올라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햇다. 산장 옆의 방명록에 이름 석자 남겨놓은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내려오는 길. 상호와 수잔 씨는 이미 시야에서 사라져버린 지 오래다. 아흔 아홉 개의 스위치 백이 끝나는 지점의 트레일 캠프 다음에 만나게 되는 호수가 미러 레이크인데 거리는 2 마일 정도 된다. 그 거울같은 호수를 내려다보며 이제 좀 정신을 차려 앉아 쉬고 있는데 오르는 동안 만났던 젊은 부부 중 여자가 나에게 말을 건다. 일행이 셋인줄 알고 있는데 둘은 어디에 갔느냐 먹을 건 있느냐 물은 있느냐... 내 몰골을 보니 걱정이 되었나 보다. 배낭에는 샌드위치와 트레일 믹스, 물 반 병과 함께 지도, 각 주요 지점마다 거리를 표시해 놓은 자료가 있었다. 배낭을 열고 지도를 펴보면 앞으로 갈 거리와 시간 등을 알 수 있었지만 배낭을 열 힘 조차도 없을 정도로 이미 몸과 마음은 다 지쳐 있었다. 얼마나 더 가야하느냐고 물었더니 4.3 마일만 가면 주차장에 도착한다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그러면서 나에게 파워젤을 하나 주면서 조심히 내려오란다. 빠른 걸음이라면 두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겠지만 지금같은 몸상태로라면 해가 떨어지기 전에는 도착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헤드랜턴을 다시 머리에 쓰고 손전등을 주머니에 넣고 장거리 야간 하산준비를 했다. 1.5 마일을 내려와 론 파인 레이크의 갈림길에 이르니 벌써 건너편에 보이는 산정에 그림자가 드리워져있다. 허리가 아프기 시작한 지는 오래됐다. 산을 내려오면서부터 등산용 지팡이를 사용하긴 했지만 왼쪽 무릎과 오른쪽 다리 장경인대에 통증이 느껴졌다. 천천히를 되뇌이며 그야말로 유유자적 그러나 조심스럽게 하염없이 걸었다. 그렇다고 여느 산행의 하산길처럼 콧노래를 부르며 주위를 둘러볼 여유도 없었다. 이제 주위는 완전히 어두워졌고 머리에서 비춰주는 조명으로 바로 앞의 길만 보일 뿐이다.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다. 산은 멀리 보이는 경치와 주위 풍광을 직접 눈으로 보며 느끼고 즐길 수 있어야 제 맛인데 밤 열 두시 깜깜할 때 출발해 깜깜할 때 내려오니 무슨 산을 볼 수 있을 것인가. 게다가 산을 만끽할 수 있는 낮 시간에는 고산증으로 주위가 보이지 않을뿐더러 보더라도 아무것도 느끼거나 즐길 수 없으니 이게 무슨 산행이란 말인가...
끝이 없다. Endless... 정말 끝이 없다. 산은 시작과 끝이 있어야 하는데 휘트니 산의 하산길은 정말 끝이 없다... 오죽하면 휘트니 산의 정보를 주는 어느 인터넷 웹사이트에서도 내려오는 길은 아무 생각없이 그냥 계속 걸어 내려가는 길을 즐기라고만 했을까.
휘트니 산을 처음으로 오르는 사람들에게 전문가들은 8,360 피트의 등산로 입구나 10,360 피트의 아웃 포스트 캠프 또는 12,039 피트의 트레일 캠프에서 일박을 하고 산에 오르기를 권장한다. 일주일 중 토요일 하루만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사람들에게 1박 2일의 산행은 쉬운 결정이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더우기 여름 휴가철 휘트니 산에 오르기란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려운 일이다. 자연 생태계를 원형 그대로 유지하고 보존하려는 미국 정부의 정책에 따라 휘트니 산은 하루 등반객을 당일 등반 100 명 1박 등반 60 명으로 제한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이미 10월이 지나 가을철이 접어들게 되면 산은 종종 눈에 덮혀있어 전문 산악등반 지식이 없는 일반인들로서는 감히 등정엄두를 낼 수가 없고 겨울은 아예 산행을 금지시키고 있다. 이러한 여러 조건들이 우리로 하여금 이번에 무박산행을 감행하도록 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무리한 계획이었지만 산행을 큰 사고없이 이루어낼 수 있음에 감사하고, 고산적응에 실패한 나 때문에 더욱 고생했을 상호와 수잔 씨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야간 등반에 적응하지 못해 1.5 마일에서 하산하신 홍 사일 님과 이번에 함께하지 못한 서 일우 선배와 젊은 청년 신 승군에게는 다음 기회에 도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
마운틴 휘트니... 누가 그랬던가. 산은 저기 있기에 오른다고 그리고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고...
첫댓글 대단합니다. 스무시간 산행을 다 하시다니.....
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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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는 6시간 정도 산행하면 무릎이 자동으로 꺾이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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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하십니다요
대단한다고 할 수밖에... 존경합니다. 연대장님... 무한한 도전정신.넘치는 체력...
불굴의 의지 뭐 하나 빠지지않은 그대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냅니다..
대단한 체력입니다^^
완주를 축하합니다...
존경스럽습니다. 듬직한 연대장님...
오마이 갓.살아서 내려 왔구나.
다행이다.재작년에 여기 우리 아는 분 누님이 거기 갔다가 그만 저 세상으로 가셨는데.
대단하다.
오늘따라 연대장이 정말 우러러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