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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다해 12월20일 주일 [(자) 대림 제4주일]
[수도회] 믿음과 사랑으로 꾸미는 구유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제1독서 미카 5,1-4ㄱ
○ 제2독서 히브 10,5-10
† 복음 루카 1,39-45
오늘 전례
○ 오늘은 성탄을 앞둔 마지막 주일인 대림 제4주일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은, 예수님의 탄생 예고를 받아들이신 성모님을
복되시다고 말합니다. 우리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미 가까이 오셨음을
믿고 기다리며, 임박한 성탄을 기쁨으로 준비합시다.
◈ 오늘의 묵상
마리아는 유다 산골 동네에 살고 있는 친척 엘리사벳을 찾아갑니다.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만남은 태중에 잉태된 메시아와 그 선구자와의
첫 번째 만남이기도 합니다. 엘리사벳과 그의 태중의 선구자 요한은
구세주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대표하는 반면, 마리아와 그분 태중에
잉태된 아기 예수님은 사람들 사이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대표합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의 복되고 위대하심을 찬양하였고,
태중의 요한은 아기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엘리사벳의 감사에 넘친 감탄은, 주님의 탄생이 인류가 오랫동안
고대하던 기다림의 결실이며 그 탄생으로 평화와 구원의 시간이
되었음을 알리는 고백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려고, 인간의 몸을 취하시어 이 세상 안으로
들어오시는 성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세상에 오시는
예수님께서 장차 겪으실 것이 무엇인지, 사실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성탄이 즐거운 분위기라면 파스카 성삼일은 장엄하고 진지하지요.
부활의 기쁨도 성탄의 기쁨과는 종류가 다른 것 같습니다.
오늘 제2독서는 예수님께서 몸을 지니고 태어나신 것이 제물로
바쳐지시기 위해서였다는 점을 일깨워 줍니다. 예수님의 몸은 우리를
위해 제물로 마련된 몸이었습니다. 역설적이지만, 그분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돌아가시려고 이 세상에 탄생하시기에 육화의 목적과 결과는
여기까지 이릅니다. 성탄은 아이들 생일을 축하하듯이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는 하루가 아니라,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그 모든 결과를
감수하시며 세상에 오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는 날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 매일 미사 -
◈ [인천] 주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는
2015년 다해 12월20일 대림 제4주일
제1독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
○ 미카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5,1-4ㄱ
제2독서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10,5-10
복음
<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9-45
오늘날의 영국 국기를 만든 중세시대의 영국 왕이었던 제임스 1세는
뜨거운 신앙심을 가지고 있었고, 이 신앙심을 바탕으로 아주 작은 죄도
엄격하게 다루었다고 합니다.
한 번은 어떤 도둑이 남의 양을 훔쳤다가 사형선고를 받았지요. 그는 곧
닥쳐올 사형을 어떻게 모면할까를 고민하다가 왕의 신앙심이 두텁다는
것을 기억했고 이런 꾀를 생각해서 간수를 불러 요청했습니다.
“어차피 죽을 몸, 죽기 전에 성경이나 다 읽고 싶습니다. 임금님께 제
뜻을 전해 주십시오.”
왕은 이 말을 전해 듣고는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성경을 다 읽은
뒤에 사형을 집행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이 도둑은 이날부터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1년이 지나도
사형집행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매일 성경 한 절씩만
읽고는 더 이상 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왕은 그를 풀어주며 집에
가서 성경을 읽도록 시켰지요.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며 충분한 시간도
있습니다. 단지 우리는 너무나 서두르기 때문에 충분한 시간이 없으며
그래서 극복할 수 없다고 포기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성탄을 기다리는 대림환의 불이 모두 켜진 대림
제4주일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기쁜 성탄을 맞이하기 위해 대림 기간
동안 고해성사를 통해 마음을 깨끗이 하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의
실천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준비들을 하면서 대림시기를 잘
보내겠다고 다짐했지만, 벌써 대림시기의 막바지에 들어서 있네요.
이제는 시간이 부족한 것처럼 보이고, ‘또 망했구나.’라면서 실망하게
됩니다.
그런데 주님의 구원은 단 한 번의 변화를 통해서도 이루어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직전에 구원을 얻었던 주님 옆의 십자가에 있었던 도둑을
기억해보십시오. 당시 중죄인이나 정치범에게 가해졌던 십자가형을
받을 정도라면 그는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던 도둑이었을
것입니다. 큰 죄를 지은 사람이었지만 이 사람은 한 번의 회개와 주님께
매달리는 변화를 통해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점을 기억한다면 ‘이제 틀렸어.’는 마음을 접고, 대신 ‘지금 당장
하자.’라는 마음의 변화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 변화를 통해 뜻하지
않게 커다란 선물을 받을 수 있는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엘리사벳은 성모님을 향해 이렇게 외치십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우리 역시 주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는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겸손의 덕과 침묵의 이익은 약한 것 같지만, 결국은 강한 자를 이긴다.
이 세상에는 약간의 사람만이 참다운 겸손을 알고 있다(톨스토이).
어제 강의를 했던 작전2동 성당. 새로 지었는데 너무 이쁘더라구여.
인간이 과연 하느님을 이길 수 있을까요?
아주 먼 옛날, 몇몇 인간이 자신들 역시 하느님처럼 창조를 할 수
있다면서 하느님께 창조 게임을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먼저 하느님은 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자 인간은 곧바로 그 물로
술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기뻐하며 밤새 술을 마시면서 자신들이
하느님을 이겼다면서 서로 축하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다음날 새벽에
그 인간들은 바닥을 더듬거리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하지요.
“하느님~~~ 제발 물... 물... 물 좀 주세요~~~”
인간은 절대로 하느님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런데 교만과 욕심으로
하느님을 뛰어 넘으려는 착각 속에 빠지고 있습니다. 또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 내놓아야 한다는 식으로 외치는 것 역시 하느님을
자신의 밑에 두려는 교만과 욕심의 표현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겸손하고 사랑의 마음을 갖춘 사람만이 하느님을 제대로 알
수 있으며, 하느님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대림시기, 아직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지금 당장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실천해보십시오. 하느님께서는 단 한 번의
변화로도 모든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작전2동성당 벽면에 붙어 있던 성화. 어느 유명한 작가가 기증을
하셨다는데 성함을 잊었네요.
◈ [서울] 대림 제4주일
2015년 다해 12월20일 대림 제4주일
제1독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
○ 미카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5,1-4ㄱ
제2독서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10,5-10
복음
<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9-45
대관령에 긴 터널이 완공되었다고 합니다. 터널의 길이가 21킬로가
넘는다고 합니다. 앞으로 이 터널이 개통되면 서울에서 대관령까지
2시간이면 갈 수 있을 거라고 합니다. 터널에 들어가면 우리는 주변을
볼 수 없습니다. 캄캄한 어둠 속을 지나가게 됩니다. 이제 터널의 끝이
보이면 빛을 볼 수 있고, 터널을 나오면서 아름다운 자연을 다시금
만나게 됩니다.
대림시기는 빛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하는 터널과 같습니다. 오늘은
대림 제 4주일입니다. 주님의 성탄을 준비하면서 그동안 우리는 어떤
준비를 했는지 잠시 생각을 합니다. 평소에 공부를 많이 했어도, 좋은
성적을 얻는 학생들은 시험을 앞두고 ‘요점정리’를 잘 합니다. 시험에
나올 만한 것들을 미리 요약해 놓고, 짧은 시간에 요점 정리한 것들을
읽으면서 시험을 준비하기 때문에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대림 4주일을 지내면서 그동안 우리는 어떤 말씀을 많이
들었는지 정리를 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대림시기를
보냈는지 알 수 있고, 며칠 남지 않은 대림시기를 의미 있게 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림 첫째 주는 주님의 성탄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깨어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단순히 눈을 뜨고 있다고 해서 깨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나의 마음과 나의 의식이 하느님을 향해 열려 있어야 깨어 있는
것입니다. 깨어 있는 사람들은 각자의 마음에 예수님께서 오실,
아름다운 구유를 마련하도록 해야 합니다. 교황님께서는 자비의 희년을
선포하셨고, 자비의 문을 성대하게 여셨습니다. 깨어 있는 사람들이
자비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깨어 있는 사람들이 시메온과
한나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뻐할 수 있습니다.
대림 두 번째 주는 ‘인권주일’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인간은
소중하고, 그 사람의 인격은 보호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사람이 사람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억울하게 갇혀있는 사람, 폭력으로 희생당하는 사람, 가난 때문에
굶주리는 사람, 장애인이라는 이유를 차별받는 사람들이 있으며,
여성이라서, 어린아이라서 소외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추운 겨울
차가운 물대포를 맞아 쓰러지신 농민 백남기 형제님께서는 아직도
병원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바로 이렇게 가난하고,
불쌍하고, 병든 사람들도 하느님의 소중한 자녀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그런 분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주기 위해서 오십니다.
대림 세 번째 주는 ‘자선주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착한
사마리아’사람의 비유를 들어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혈통이나, 직책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강도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길에 쓰러져 있는 사람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쓰러져 신음하는 사람을 못
본척하고 스쳐 지나간 사람들은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마태오 복음 25장에서 유명한 ‘최후의 심판’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가난하고,
헐벗고, 병든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하느님께 해 준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 그렇게 따뜻하게 해 드렸으니, 천상의 잔치에
초대 받을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자선은 나를 하느님 나라로 이끌어
주는 길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대림 4주일을 지내면서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시는 ‘신비’를
묵상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시는 것은 바로
나를 위한 것입니다. 부족하고, 죄를 많이 지었고, 별로 잘 한 것도 없는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모든 권능과 모든 권세를 가지진 분이 아주
연약한 아이의 모습으로 비천한 마구간에 태어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예쁜 꽃이 그 고운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서는 어두운 땅 속에서
끊임없이 양분과 물을 찾아 고생하는 뿌리의 수고와 노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건강 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기쁘게 생활 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주님의 성탄을 이렇게 잘 준비할 수 있었던 것은
말없이 우리를 도와주고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우리를 사랑한
고마운 이웃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고,
주님께서 하신 약속들이 꼭 이루어지리라고 믿는다면, 주어진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기쁘게 생활한다면 바로 이곳에도 분명
주님께서는 오실 것입니다. 2000년 전에 엘리사벳과 마리아를
사랑하셨던 그 주님은 이 자리에 있는 우리들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서울] 신앙인들은 조금 이해하지요.
2015년 다해 12월20일 대림 제4주일
신앙인들은 조금 이해하지요.
이심전심(以心傳心)이란 말이 탯줄로 연결된 두 몸에선 어떨까요?
남자라 잘 모르지만 임신부라면 태아와의 교감을 잘 이해할 겁니다.
태중의 아기가 운동한다 잠잔다 생각한다 그런 게 직접 전달되니까.
고령의 엘리사벳 한참 어린 마리아의 임신은 다 첫 경험들이었지요.
둘이 서로 주고받는 말 어떤 남자들도 아마 전혀 이해 못할 겁니다.
그래도 신앙인들은 조금 이해하지요. 하느님 말씀에 대한 믿음은요.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4~45)”
- 서울 대교구 이기정 사도요한 신부 -
◈ [수도회] 믿음과 사랑으로 꾸미는 구유 - 기 프란치스코 신부
2015년 다해 12월20일 대림 4주일 루카 1,39-45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루카 1,45)
믿음과 사랑으로 꾸미는 구유
오늘 성경 말씀들에 비추어 주님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도록 남은 기간
잘 준비해야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감성적이고 감각적인 기쁨을 주기
위해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몸을 전부 바치시기 위해 오시는 것입니다
(히브 10,10). 이타적인 사랑, 조건 없는 희생의 태도를 지닐 때 내 안에
아기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것입니다. 그렇게 성탄의 기쁨은 수난과
희생을 품은 씨앗입니다.
마리아가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사는 엘리사벳을 찾아갑니다. 이렇게
메시아와 그분의 길을 준비할 선구자의 만남이 그 협조자들인 두
어머니들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이 만남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연대를 보여줍니다. 하느님의 구원계획은 그렇게 힘없고
가난하지만 하느님을 믿고 그분께 의탁하는 이들의 연대를 통해
실현되어감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가득 찬 태 안의 요한(1,15)은 마리아가 인사하자 엘리사벳의
태 안에서 즐거워 뛰놀았습니다(1,44). 태 안의 요한이 자신의 예언자적
사명을 시작한 것이지요. 성령을 가득히 받은 엘리사벳은 깊은 믿음으로
마리아 태중의 아기가 메시아이신 주님이시고(1,43), 마리아가 주님의
어머니이시며 주님의 말씀을 믿었기에 복되다고 말합니다(1,45).
두 여인의 만남에서 알 수 있듯이 성령 안에 머물 때 우리 가운데 오시는
메시아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서로의 만남이 세속적인 기쁨의 추구나
현세적 만족을 추구하고 보이는 것에 집착하는 육(肉)적인 만남이라면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한 구유가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만남이
하느님을 회상케 하고 발생시킨다면 그 관계 자체가 구유가 될 것입니다.
마리아는 메시아 주님을 품으셨고 주님의 말씀을 믿으셨기에 복된
분이십니다. 우리도 성탄의 기쁨 안에 머물 수 있도록 주님의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적을 내 안에 품어야 합니다. 주님을 잉태한다는 것은
그분의 진리와 사랑과 생명을 품는 것입니다. 그분의 영(靈)을 품고,
경건하고 순수하며 거룩한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나아가 세상의 온갖 잡다한 소리가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믿는 복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은 자신을 비워 하느님의 뜻을 사랑으로
수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복된 존재가 될 때 그 안에서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굳은 믿음과 따뜻한
사랑으로 연대하며, 먹히는 밥이 됨으로써 주님을 낳는 어머니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 [수도회] 알타반의 말씀사랑
2015년 다해 12월20일 대림 제4주일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루카 1,45)
여러분은 행복하신가요? 아니면 불행하신가요?
왜 행복하고 왜 불행하다고 느낄까요?
행복하다 느낄 때가 있고 나는 참 불행하다 느낄 때도 있기 마련입니다.
성탄을 준비하는 이 때에 우리는 성모님을 통해 참된 행복은
주님의 말씀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 데서 비롯된다는 진술을 듣습니다.
사람이 행복감을 느끼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런 것은 결국
잠시 지나가는 것일 뿐이고 하느님께 대한 믿음
하느님 말씀에 대한 믿음 그분이 하신 약속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살 때 참으로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네요.
여러분은 하느님을 믿으시지요?
그분의 말씀이 사람이 되어 오신다는 것도 믿으시지요?
그분을 믿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묵묵히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 걷다보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리라는 약속도 믿으시지요?
그러니 여러분은 참으로 복되십니다.
성모님도 그렇게 믿으셨기에 정녕 복되신 분이셨으니까요?
축하드립니다.
- 작은 형제회 오상선 바오로 신부 -
◈ [수도회]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5년 다해 12월20일 대림 제4주일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루카 1,45)
행복의 참모습은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의 시각과 생각을 주님의 말씀쪽으로 방향을 돌리는 데 있습니다.
주님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말씀과 더불어 산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행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우리는 알게됩니다.
말씀은 행복을 향하고 행복은 말씀을 향합니다.
주님의 말씀은 우리 삶의 기쁨입니다.
인생의 참기쁨은 우리의 생활 속에서 말씀과 하나되는 기쁨입니다.
하나된 말씀은 기뻐할 줄 아는 우리로 변화시킵니다.
말씀과 함께 살고 말씀과 함께 일하는 우리들이 되는 것입니다.
행복은 말씀을 듣는 참된 믿음에서 일어나고 탄생되기 때문입니다.
말씀 안에 행복이 있고 주님과 하나되는 신비가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는 사람입니다.
언제나 우리의 이름은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청주] 마음을 맑게하라|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5년 다해 12월20일 대림 제4주일
<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루카 1,39-45
누구 다른 사람 없소.
찬미예수님, 사랑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은 한이 없으십니다. 당신의 사랑을 한없이 주고
싶어서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주셨고 그 아들을 통하여 구체적인 사랑을
체험케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사랑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은
마리아라는 한 인간의 믿음에 따르는 순명을 통해서 오셨습니다. 이
시간 믿음에 관해 묵상하는 가운데 우리 마음 안에 주님을 새롭게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성탄 준비를 다 하셨습니까? 트리를 만들고 구유장식을
하였고, 카드를 보내고 선물 준비를 했다고 성탄준비가 끝났다고 할 수
있나요? 아직도 마음 안에 시기, 질투, 미움, 원한을 품은채로
이기적이고 자만심이 가득 찬 채로인데....그 안에 예수님께서 편안히
머무실 수 있을까요? 열심히 일을 했지만 하느님의 일을 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했는데...희생, 봉사, 사랑의 실천에 소홀하였는데
어떻게 그 안에 주님께서 기쁘게 거처하실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외부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것보다 맑고 깨끗이 정돈된 마음,
죄악으로부터 해방된 마음을 주님께서 원하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조상으로 부르는 아브라함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이사악은 외아들 이었고 그를 두고
하느님께서는 “이사악을 통하여 후손들이 너의 이름을 물려받을
것이다.” 하고 약속까지 해 주신 아들이었지만 그를 기꺼이 바쳤습니다.
(히브11,17) 하느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번제물을 바치러 산으로 올라가는 도중에 아들 이사악이 “아버지!
불씨도 있고 장작도 있는데, 번제물로 드릴 어린양은 어디 있습니까?”
하고 묻습니다. 참으로 가슴이 메어지는 물음입니다. 아들을 제물로
바치려 하는 데 아들이 그 제물이 어디 있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차마 ‘제물은 바로 너다’ 하고 말하지 못합니다. ‘번제물로
드릴 어린양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신단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말씀을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그 자리에서 체험케
되었습니다.
창세기 19장에 보면 소돔의 멸망과 롯의 구원이야기가 전개 됩니다.
주님께서는 롯에게 자비를 베푸셔서 천사들을 통해 그 가족들의 살길을
알려줍니다. 롯의 사위들은 그 소리를 우습게 여겼고, 천사들은 결국
롯과 그의 아내와 두 딸의 손을 잡고 성읍 밖으로 데리고 나와
말했습니다. “달아나 목숨을 구하시오.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되오. 이
들판 어디에서도 멈추어 서지 마시오. 휩쓸려가지 않으려거든 산으로
달아나시오”(창세19,17). 마침내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과 불이
퍼부어졌고 온 성읍들과 온 들판들이 땅 위에 자란 모든 것들이 멸망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다 소금 기둥이
되어버렸습니다’(창세19,26). 돌아보지 말라고 했으면 돌아보지
말아야죠. 왜 돌아봅니까? 믿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하느님께서
살려주신다고 길을 알려주었는데 그대로 하지 않고서는 하느님께서
벌을 내렸다고 원망을 합니다. 하느님께서 벌을 내리신 것이 아니라
내가 죽음을 자초한 것입니다. 자업자득입니다.
민수기 21장4절 이하에는 구리뱀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갈대바다로 가는 길에 들어서서 하느님과 모세에게 불평을
합니다. “당신들은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올라오게 하여, 이
광야에서 죽게 하시오? 양식도 없고 물도 없소. 이 보잘 것 없는 양식은
이제 진저리가 나오.”(21,5) 그러자 주님께서 불 뱀을 보내어 그것들이
백성들을 물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많이 죽게 되었습니다. 백성들이
모세에게 와서 간청했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당신께 불평하여 죄를
지었습니다. 뱀을 치워주시도록 주님께 기도해 주십시오.” 그래서
모세가 기도하자 주님께서 “너는 불 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놓아라.
물린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보면 살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모세는
구리 뱀을 만들어 그것을 기둥에 달아놓았습니다. 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 그 사람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습니다.(21,9) 그러나 보지
않은 사람은 죽었습니다.
믿음은 그렇다고 아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라 그대로 하는 사람은 새로 태어나게 되고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은 죽게 되는 것입니다. 이 죽음 역시 하느님의 벌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것입니다.
등산을 좋아하는 한 젊은이가 산에 올랐다가 어둠을 맞게 되었습니다.
서둘러 내려가려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 벼랑아래로 미끄러졌습니다.
가까스로 작은 나뭇가지 하나를 붙잡고 매달렸습니다. 그는 겁에 질려
소리쳤습니다. 위에 누구 없소? 누가 날 좀 구해줘요! 하며
소리쳤습니다. 그때 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내가 여기 있다. 나는
너의 하느님이다. 내가 너를 구해주리라.” 젊은이는 이제 살았구나!
하며 “당신이 거기 계시니 정말 기쁩니다.” 하고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 “네가 잡고 있는 나뭇가지에서 손을 떼거라”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젊은이가 긴장하며 “그렇지만… 하느님..…” 주저하는
젊은이에게 하느님께서 물으셨습니다. “너는 나를 믿느냐?” 그러자
젊은이가 “예, 하느님, 당신을 믿습니다. 제가 당신을 믿기 때문에 매주
성당에도 나가고 성경공부도 하고 매일 기도시간도 가집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믿는다면 그
나뭇가지에서 손을 떼어라.” 잠시 침묵이 흐르는가 싶었는데 젊은이가
아주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거기, 누구 다른 사람 없소?”
주님의 가르침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하는 것입니다. 정말
믿는 대로 행동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에 행동이
따르지 않는 다면 그것은 죽은 믿음입니다. 마리아는 주님께서 천사를
통해 하신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이해하기 어렵고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처지를 알면서도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1,38). 하고 말하였습니다. 종은
주인의 뜻대로만 움직여야 합니다. 종에게는 주인에 대한 의무만 있을
뿐 권리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을 자처하였습니다. 그것은
주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주님을 잉태하게 되었고
빛이신 주님께서 탄생하셨습니다.
성모님은 엘리사벳이 말한 대로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고 믿었기에” 행복하신 분이십니다. 많은 사람은 성모님을
예수라는 훌륭한 아들을 낳아서 젖을 먹인 여인이기 때문에 행복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더 근원적인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였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어떤 여자가 목소리를 높여
예수님께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하고 말했을 때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루카11,29)
믿음은 이리저리 계산하고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고 행하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 때 상상하지
못했고, 기대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납니다. 하느님의 능력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실제 행하지는 않으면서 능력을 먼저 보려고 하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여러분은 먼저 하느님의 말씀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믿는 바를
행하십시오. 그리하면 하느님의 능력을 보게 될 것입니다. 2독서
히브리서 10장 9절의 말씀대로 “보십시오. 하느님,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왔습니다.” 하고 고백하며 ‘굳건히 서서 흔들리지 말고 언제든지
주님의 일을 하십시오. 주님을 위해 노력하는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어머니 마리아께서 주님의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는
믿음 안에 주님의 탄생을 가져왔듯이 이제 우리의 믿음으로 이 세상에
구세주 예수님을 낳아드려야겠습니다. 주님의 성탄을 기다리는 만큼
우리 모두가 믿음의 사람, 그래서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가정이건 직장이건 어디에 서 있든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하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어느 시골 마을에 스스로 자기자신을 못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성탄절이 다가오자 그 아이도 선물을 받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착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선물을 못 받으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습니다. “나만 못 받으면 왕따가 되는 데….”
그러다가 예수님께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예수님, 제가 앞으로 착한
아이가 될 테니 선물을 꼭 보내주세요!” 그렇지만 싸우거나, 거짓말을
안 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결국 쓰던 편지를 찢어 버리고 성당으로
갔습니다. 성당을 한참 돌아보다 작은 성모님상을 훔쳐 달아나서 편지를
다시 쓰기 시작했습니다. “ 예수! 내 말을 잘 들어라. 협박용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다. 지금 내가 네 어머니를 인질로 잡고 있다. 그러니 네
어머니를 살리고 싶거든 24시간 이내에 선물을 보내라.
선물을 보낼 장소는 000이다.”
우리는 때때로 믿음으로 기도하지 못하고 협박하고, 흥정하고 달라고
떼를 씁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기도하며 구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그것을 이미 받았다고 믿기만 하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마르11,24) 라고 말씀하시지만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이번 성탄의 아기예수님께 드리는 선물은 빛의 삶을 사는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이 세상의 빛이 되어
또 하나의 작은 예수님이 되십시오! @@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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