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대 한국과 고대 아메리카 인디언과의 관계
고대 아메리카 인디언은, 동방족들의 일부가 알래스카와 베링해협을 거쳐 북미대륙과 멕시코와 남미 대륙까지 뻗어 가게 되었으며, 이러한 사실은 이들의 언어와 풍습에서 증명되고 있고, 지질학적으로도 베링해협이 얼어붙어 있었기 때문에, 과거에는 걸어서 이 곳을 건널 수 있었다는 것이 이미 증명되어 있다(오른 쪽 그림). 그리고 흑요석의 분포도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다(그 아래). 또한, 인디언의 말 중에 한국인의 언어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도 있다.
아래 그림은 아메리카 인디언의 상징인 버팔로 들소가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이다. 원래 인디언은 배고플 때만 버팔로를 잡았지 재미로 잡은 일이 없다. 그런데 백인들이 인디언들을 멸족시키기 위해서 버팔로를 멸종시켰죠. 먹지도 않고 가죽도 쓰지 않으면서 오로지 인디언을 굶겨 죽이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멸종될뻔 했던 버팔로가 현대과학적 노력으로 지금은 다시 복구되기 시작했다. 인디언들이 썼던 말들 중에 한국인과 유사한 말이 많다. 아리조나 주에 살던 인디언들 중에서 아파치족들이 있었는데, '아파치'라는 말은 인디언 말로서, 영어로 번역하면 'Father', 즉, 우리말로 '아버지'라는 뜻이다.
미국의 가장 아름다운 국립공원 '요새미티' 공원은 인디언 말로 '웅주마티'에서 왔다. 이것을 영어로 번역하면 'there are many bears', 즉, '여기는 곰이 많지' 이런 뜻이다. 이것도 우리말과 매우 유사하다. 곰 수가 많다는 뜻에서 '웅수 많지' 라고 발음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미국 동부지방 '커네티컷'은 인디언말로 '큰네터갓' 라고 하여 강가의 넓은 땅이라는 뜻이다. 우리말로 하면 '큰 내터 가' 가 되지요. 오른 쪽 그림은 커네티컷 지방의 큰 내터 가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인디언 중에 '이시이' 족이라고 있다. 이 이시이 족이 쓰고 있는 깃발을 보면 갑골문자로 나무 목 자와 아들 자 자를 기록해 두었다. 나무 목(木) 자 밑에 아들 자(子) 자가 있으면 한자로 '오얏 이(李)' 자 이씨(李氏) 다. '이씨'니까 '이시이'가 된다. 갑골문자는 본래 만주와 한반도 사람들의 문자다.
왼쪽 그림은 캐나다의 도시 토론토다. '토론토'라는 말도 인디언 말인데 그것을 영어로 번역하면 'meeting place' 라는 뜻이다. 인디언 추장들이 모여서 토론하던 터, 즉, '토론 터'인 것이다. 그리고 북미 인디언들이 철인5종 경기를 할 때 동네 원로들이 모여서 응원을 했다. 이들이 응원가를 20번이나 30번 할 때까지 젊은이들이 돌도 지고 가고 통나무도 지고 가서 산 위에까지 다녀오는 것이다. 그 노래가 너무나 놀랍다. "에이 챵해이라 코시앵헤 창헤이라" 이렇게 부른다. 그 동안에 청년들이 산꼭대기까지 다녀오면은 철인5종 경기 메달을 따는 것이다. 이 노래가사를 자세히 들어보면 "에이 장해라! 고생해, 장해라!"라고 부르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말 그대로의 응원가인 것이다. 이렇게 우리말들이 북미대륙의 곳곳에 남아 있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언어학적인 확실한 증거인 것이다. 즉, 고대 한국인들이 아메리카로 이동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또한, 인디언들은 동방족의 특징인 머리를 길게 따고(아래 왼쪽), 짚신을 신고 살았다(아래 가운데). 새와 깃털을 숭상했고, 집을 비울 때는 정랑을 걸며, 인디언 신생아의 엉덩이에는 몽고반점이 있다. 미국이나 멕시코의 인디언 박물관에 가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우리 한국의 민속박물관과 꼭 같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가장 정확한 증거는 인디언과 한국인의 혈연관계에 나타난다. HLA에 의한 혈연관계를 조사해 보면 분명한 증거가 나타난다(위 오른 쪽). 인간 조직적합성항원 연구의 세계적 중심기관인 미국 UCLA의 HLA센터 교수들이 연구해 본 결과 한국인과 인디언들이 100퍼센트 똑같다는 것이 밝혀졌다. HLA A2 나 B62, C3 와 같은 것은 한국인 외에는 세계 어디에도 안 나오는데 인디언들에게 나온다. 그것은 고인돌 문화를 가지고 있었던 인디언들은 바로 아메리카로 이동한 한반도 사람들이라는 의미다.
2. 고대 한국과 고대 일본과의 관계
악연으로 이어져온 한일관계에 있어 임진왜란과 일제 36년을 통하여 [왜]로 인식되는 일본이란 나라의 실체를 알아보자. 한일관계의 악연의 배경은 아마도 고대 고구려.신라.백제와의 관계에서 찾아야 근본적인 원인과 해결책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특히, 신라에게 멸망당하여 일본열도로 이동한 가야와 백제는 신라를 원수처럼 여길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한일관계를 그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보자면 아마도 백제와 신라와의 끝나지 않는 전쟁정도로 보면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전쟁으로 해결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전쟁으로는 해결될 수 없고 전쟁으로는 악순환만 지속되기 때문에 역사적 인식을 통하여 서로가 화해할 것은 화해하고 배상할 것은 배상하여 미래의 동반적 관계로 나가야 한다고 본다. 특히, 가야와 백제을 멸망시키고 일본열도로 축출시킨 신라의 김알지 후손들은 백제왕족들의 피가 흐르는 일본황실에 대해 사죄하고, 일본황실 또한 한반도침략에 대해 사죄하고 일제하 피해에 대해 배상한다면 한일관계로 더 협력과 동반자 관계로 발전해 나가리라 본다. 화해와 협력은 사죄와 배상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한일관계는 한국과 일본의 극단적인 국수주의와 극우세력에 의해 왜곡되거나 감정적 차원으로 발전해 나가서는 대립과 갈등의 연속일 뿐, 전혀 문제해결에 도움이 안된다. 한국과 일본의 공동의 적은 군국주의와 침략주의와 역사왜곡세력임을 전제로 고대 일본의 천황(天皇)가는 우리 민족하고 긴밀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밝혀 보기로 한다.
백제 무녕왕릉(황제사망시 표기되는 '붕어'라는 지석판이 발견). 아시아의 해상제국 백제황실이 백제 담로국의 하나였던 왜열도 왕실에 하사한 칠지도(왼쪽부터)
대륙과의 혈연설을 부정해 왔던 일본황실이 족보상 백제 무녕왕(곤지)과 관계된다고 언론방송에 공식발표하는 일본의 아끼히토 천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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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의 원흉 '히로히또' 천황(天皇)이 천황 집안의 오래 전 생활을 그린 그림책을 보여 주었는데 거기에 놀라운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일본 사람들은 하지 않고 천황족(天皇族)들만 하는 특수한 문화가 있는데, 천황족(天皇族)들만 먹는 특수한 떡을 만드는 방법과 떡을 그려 놓고, 그 옆에 가다가나(일본어)로 '시루또꾸'라고 써 놓았다. 그 떡은 바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먹는 '시루떡'이었다.
그리고 일본 여자들은 과거에 원시적이어서 팬티를 안 입고 살았는데, 천황족(天皇族)들만 유일하게 팬티를 입고 살았다. 그 팬티를 그려놓고 가다가나로 '고쟁이'라고 써 놓았다. 이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입던 '고쟁이'이다. 지금은 수의로 쓰이는 고쟁이는 고쟁이는 한복과 함께 입는 옛 속옷 가운데 하나로 고구려시대부터 여성 속옷으로 고구려 벽화속에도 나온다. 그래서 일본황족들은 우리하고 혈연관계가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일본천황은 히로히또의 아들 '아끼히또'다. 이 사람이 위 동영상 자료가 증명하듯이 얼마전 언론방송에 고대 일본천황은 백제와 혈연관계가 있다고 발표했다. 자신의 몇 대 할머니는 백제 무녕왕(곤지왕)의 누구였고... 하는 것을 말했다. 일본 천황족과 관련이 깊은 무녕왕은 바로 일본에서 [사마]로 불리던 백제 무령왕이다. 일본의 국보급 문화재인 '칠지도(七支刀)' 안에 이렇게 쓰여 있다. "높으신 백제왕이 그 밑에 급인 일본 왕에게 주노라." 당시 일본황실에 대한 백제의 위상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일본황실은 백제황실이나 마찬가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아시아 해상제국 백제는 일본열도는 물론이요 쥐나의 동남지역과 동남아시아에 이르기까지 22담로를 두었는데, 그 담로의 왕은 바로 백제황족들이였다. 그러니 당연히 일본황실은 백제황족들일 수 밖에 없다.
왼쪽 그림은 일본의 기토라 고분의 무덤 천정에 그려진 천체도다. 일본 어디에도 이런 모습을 관찰할 수 없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천체도는 바로 한국땅 평양의 하늘에서 보이는 천체도였던 것이다. 아마도 고구려 출신의 한국인이 일본에 와서 천황족으로 살다가 죽을 때가 되자 꿈에도 잊지 못할 자신의 조국 평양의 하늘을 사모하여 무덤에서라도 내 고향의 하늘을 보겠다고 유언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말 속에도 우리말이 많이 남아 있다. 우리말 '나라'를 일본에서도 '나라' 라고 한다. 우리말의 '왔소'가 일본에서는 전라도 사투리에 가까운 '왔쇼이', 우리말의 '도착'이 일본에서 '도차꾸' 다. 일본사람들이 크게 낭패를 만났을 때 일본말로 "백제가 망했는데... (더 이상 무슨 희망이 있느냐)"라는 표현을 쓴다. 백제가 망한 지 천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고대 일본이 백제와 얼마나 긴밀한 관계였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백제 무녕왕릉에서도 발굴되었다고 하는 ‘기모노’는 귀족 여성들의 예복으로 본래 백제의 상복에서 유래되었다. 백제가 신라에게 패망후 상복을 벗지않았다는 백제 왕족들과 귀족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나라를 찾을 때까지 벗지 않겠다며 고집한 백제의 상복이다. 그 옷이 일본 예복인 기모노로 발전한 것이다. 우리 나라의 상복과 기모노의 패턴을 외관상으로 비교하여 보면 동일하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기모노에서는 잘룩한 허리, 볼륨있는 가슴, 유연한 소매나 어깨 라인등은 전혀 발견할 수 없으며 오직 직선만이 있을 뿐이다. 치렁대는 긴 소매도 간단하게 뚝 절라 버리면 간편하련만 굳이 우리 선조들이 가르쳐준 상복의 원칙을 충실히 지키며 직사각형으로 축 쳐진 소매를 오늘까지 면면히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넓은 의미의 기모노(着物)란 일상적인 의상까지도 모두 포함하는 포괄적인 의미이지만 좁은 의미의 기모노(着物)라 함은 화복(和服) 그 중에서도 本絹이라고도 불리고 비단이라고도 하는 100% PURE SILK 원단 위에 먹물로 수 많은 점(点)을 찍고 그 점을 굵은 면사(綿絲)로 한 땀씩 묶은 후에 염색을 하고 건조 후에 묶었던 면사를 다시 풀어 내면 실이 묶여있던 부분에는 염료가 침투를 하지 못하여 흰색으로 남아 있고 실이 묶이지 않았던 머리 부분은 염색이 되어 일정한 간격의 물방울 무늬를 형성하게 되는 원단이 되며, 이 원단의 주요 포인트에 손 자수를 넣거나 손으로 그림을 그리고(手描) 금박이나 은박으로 장식하여 완성된 원단으로 제작한 일본의 전통적인 의상을 말한다.
그리고 고대 일본의 글자 '가나'는 알고 보니 신라 사람들이 만들어 준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지난 2002년 4월에 일본의 NHK에서 방영되었다(아래 그림은 불경에 각필로 토를 단 것이다).
일본의 신사에서 기도드릴 때 "중년의 여인이여 어서 오셔서 우리를 어려움에서 구해 주오" 라는 뜻의 기도문을 외운다. 이것은 일본 황실제사에서도 그대로 행해지고 있다. 일본 발음 그대로 읽어보면: "아! 아지매! 어서 오게, 오게!" 경상도 말 그대로다. 번역할 필요가 없다. 고대 한국인들 특히 경상도 아주머니들이 일본에 가서 글도 가르치고 문화도 가르치고 문명도 가르쳤기 때문에 그 도움을 입었던 일본의 천황족과 원로들이 아쉬울 때마다 경상도 아주머니(아지매)를 그리워한 것이다. 일본글 가나가 만들어지는 시기가 10세기이다. 그럼 그 이전 9세기 이전은 기록이 남아있는 것이 만엽집이다. 4세기부터 8세기기까지 이룩된 향찰식표기(이두문/엄밀히 말하면 다르다)로 한자의 "소리"를 차용한 용자법이다. 한자는 뜻글자이만 한글처럼 표음문자로 한자를 사용한 것이다.(향찰식표기법) 이렇게 보면 일본이란 나라는 백제계의 일본황실을 중심으로 해서 고대 고구려,신라,백제,가야 문화가 혼합된 국가임을 알 수 있다.
8세기 이전 일본노래 만엽가도 순수 한국말임을 증명
8세기 일본인들의 말이 지금 우리들이 사용하는 한국어라는 결정적인 증거는 일본에서 사용되었던 향찰식 노래가 만엽가다. 약 4600수가 전해내려오고 있다.신라향가와 같은 맥락이다. 우리향가는 25수가 남아있다. 이 만엽가의 주인공은 일본왕실을 비롯한 왕자,여왕,귀족들의 노래들이다. 이 노래가 일본 인들이 해석해 놓은 것을 보면 의미불명이라해서 완독을 못하고 있으며 의문투성임을 그들도 인정하고 있다. 그들이 가정 어렵다고 한 2991번 만엽가를 해독한 "전혀다른 향가와 만엽가"(우리문학사/1993년 김인배,김문배공저)에서 1수 발췌하여 일부분만 올려 이 만엽가가 한국어임을 알게하고 일본왕실과 그 주체세력의 정체성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일본,아스카 와 같은 국호까지 한국향찰식의 소리글로 지은 그들의 정체를...
(만엽가)
본문:垂乳根之母我養蠶乃眉隱馬聲蜂音石花蜘(蟲廚)荒鹿異母二不相而(27자)
垂(드르우)乳(젖)根(근)之(지)母(어미):드르(들판의 고어)우(上)젖 큰 지어미
我(아)養(기를)蠶(눗헤)乃(내) :아기를 눕혔(눗헤/누에:고어)네
眉(미)隱(은)馬(말)聲(성)蜂(버리)音(그늘):미운 말썽버리(벌/버리/고어)거늘
石(돌)花(화)蜘(거믜) :돌아 거믜(까물아지다/고어)
(蟲廚)(쥐메노호리/쥐메늘/고어) :째매놓으리
荒(그츠)鹿(사잠)異(다르) :그치사 잠(사잠/사슴/고어)들어
母(어미)二(두)不(불)相(상)而(이) :어미두 불쌍이 (생각한다)
해설 : 들판에 젖이 큰 지어미가 아기를 눕혔네(젖먹인다) 미운 말썽부리거늘.
(젖달라고)돌아 까물어지니 짜매놓으리(우는것을)그치사+잠(寢)들어. 어미두 불쌍이 생각한다.
문자풀이:아기를(我(아)+養(기를)=목적격 "를"까지 그들이 사용했다는 것이다.이 노래를 해석하여놓고 보니 현재우리들이 사용하고 있는 말들이 그 당시에도 같이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향찰식표기는 한자의 "소리"를 차용한 것이다.한자의 의미는 은유로 사용되고 한자를 "발음기호"로 사용한 것이다. 音(그늘/陰:옛날에는 陰자 대신 音을 사용하여 "그늘"이라 했다-큰 사전 참조)
훈민정음은 우리말 소리말의 소리부호=발음부호의 창조이다. 이 시기 향찰의 표기법은 "한자"는 "소리부호" 발음부호의 역할인 셈이다.
특이 한 것은 (蟲廚)는 廚(부억/주)에 벌레 충(蟲)이 붙은 글자로서 한문사전에도 나오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이는 순전히 노래의 기록자가 고안해 낸 글자로 부엌 등의 그늘지고 습기찬 곳에 서식하는 벌레라는 의미에서 부엌 廚(주)와 벌레 충(蟲)의 會意字로 만든 글자이다. (쥐메느리/(공벌레):고어:쥐메노호리/째매놓으리/소리차용). 놀라운 용자법이다. 한국인이 아니면 어디 감히 일본인이 이것을 해석하리오. 4600수 모두 한국어로 해석된다면? 일본천황의 정체는 무엇이며? 그들이 부르짖는 만세일계의 천황계통의 허상이 깨어지는 순간들일 것이다. 이미 "일본서기 고대어는 한국어/빛남출판사1991년판"에서도 소개된 그들이 있기 때문에 그 진실은 밝혀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미발표된 만엽가가 500수가 된다고 하니 김씨들의 연구성과에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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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아직도 모르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많이 알려야 하죠.
한민족사는 고대세계사에 다름아님임을 또 깨닫게 됩니다^^ 왜와 일본은 달라도 한참 다르다 합니다~~왜는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와 같이 대륙에서 하천이나 강가에 모여 살던 부족으로 기록돼 있으며 일본은 7세기 다 돼서 일본이란 국명으로 사서에 등장합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일본은 임나일본부설로 왜곡하려 드는거죠...
왜와 일본은 다르다...그렇군요.
배우고 갑니다.
잘읽었습니다, 맞는 말인지 궁금은 하네요.
이런 자료를 많이 찾아볼수록 이런 조사를 하고 자료를 만드시는 분들이 새삼 대단함을 알게 되더군요.
유전자 검사 결과는 적어도 납득이 쉬운 과학적 자료 아닙니까^^
잘 보아네요 현대의 팬티의 역사는 일본 관동 대지진에 여성이 속옷 없이 죽은 모습 보고 입기 시작 했는데 그 이전에는 임진왜란 이후에 일본에 성인 남자가 귀해서 종족 번식 목적으로 여성들은 기모노 차림에 속옷 입지 말라고 한 통수권자의 말에 아직도 기모노 전통 차림에는 속옷 안 입는 습관이 있네요
일본 뿐이 아니라...속옷의 역사는 서양에서 조차 미개합니다. 베르사유 궁전 정원은 궁에 화장실이 없어 노상 용변장소로 쓰였다던가. 포크와 나이프는 르네상스에 생겼다거나. 속옷 외에도 미개한게 많습니다.
역학자
당신도 일본 씨요?
아니면, 아무것도 모르고, 받아 들이는 것이요......
일본을 연구하면, 분별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인들 학자가 주장하는 것 말고,
외국 선교사의 기록이나, 조선의 선비가 기록한 기행문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
수탁이 꼬리털이 있다고, 꿩이라고 주장하고, 같은 종이라고 주장하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믿고 주장합니다.
그것도, 숫자가 많으면, 닭이 꿩이됩니다.
그래서 올바른 지식으로 주장해도,
힘이 없으면, 정신병자 로 취급하고, 정신병자 만드는 것입니다.
아참, 제가 알기로 팬티는 일본이 아닌 서양에서 만들어진걸로 아는데요^^
속옷의 역사는 우리 민족 으로아는데요 비릇 삼베천 이지만 삼베천에 물감 들이면 그 안이 제대로 보일까요
잔 토종 우리 민족 이고 경상도 출신 이네요 일본 씨 아닙니다 제 할아버님은 독립 운동 하다 가서고 큰 아버님은 징용에 아직 돌아 오지 않았네요 일본이라면 지긋 지긋 하네요 얼렁 친일파 숙청 하세요
역학자님 말이 맞다면..........고맙소...... 몸조심 하시길.......
서양식 속옷요. 동양식 속옷이야 우리나라가 원조 맞지요.
이제는 상생의 시대로 가야할 것 같습니다.
일본도 이를 인정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한반도는 뿌리민족입니다.
또한 중국도 인정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사실들이 인정되면서 앞으로 한글의 가치는 올라가게 될것 같습니다.
이치적으로 뿌리는 부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해서 한국의 앞날은 희망적입니다.
뿌리민족이라. 근사한 단어입니다.
지구 상에서 조작을 제일 잘하는 나라가 일본이다.
UN 가족들이 친일파들의 잔인성 때문에,
일본인과 한국인의 차이점을 알아보기 위하여,
역사, 전통, 습관, DNA 검사를 한결과,
일본인들에게는 식인 유전자가 있음을 밝혔고,
순수 한국 혈통에게는 식인 유전자가 없음을 네쇼날 지오 그래픽에서 밝혔다.
문론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친일파 일본 씨들은 식인 DNA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면, 식인 DNA를 가지고 있는 친일파 일본 씨들의 조상이 한국인의 뿌리인가 말이다.
여자들이 입는 기모노 뒤에는 나비모양의 띠가 있다.
이것은 남자들과 장소를 구분 하지 않고, 성행위를 하기 위한 일종의 요를 형상화 한것이다.
그러면, 츠키야마 아키히로 이명박의 조상이 한국인의 조상이라는 주장이다.
삼태극의 일본인, 일본씨들은 빨리 삼태극을 떠나길 바란다.
살길은 그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