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바 마리치(세르비아어: Милева Марић, 독일어: Mileva Marić, 1875년 12월 19일 ~ 1948년 8월 4일)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과학자이다.
양 력: 1875년 12월 19일
음/평: 1875년 11월 22일 여자
시 일 월 년
@ 乙 戊 乙
@ 卯 子 亥
丁 丙 乙 甲 癸 壬 辛 庚 己 대운: 순행
酉 申 未 午 巳 辰 卯 寅 丑
85 75 65 55 45 35 25 15 5.13
사망일자: 1948년(74세, 乙未대운 戊子년) 8월 4일 반신불수로 말년에 침대생활을 한 후에 사망함.
1902년 첫 딸 리제를 아인슈타인 출산.
1903년 알베르토 아인슈타인과 결혼함. 첫 딸 리제를 아인슈타인 사망(?)
1904년 장남 한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1904-1973) 출산.
1910년 차남 에두아르트 아인슈타인 (1910-1965) 출산
1919년 알베르토 아인슈타인과 이혼함.
1921년 노벨물리학상 수상함.
서프라이즈, '충격' 아이슈타인의 업적, 알고보니 아내와의 공동작업?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2015.05.17
'서프라이즈'에서 아인슈타인과 아내 밀레바 마리치의 이야기가 방송돼 화제에 올랐다.
17일 오전 방송한 MBC 예능프로그램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는 '아인슈타인의 두 얼굴' 편을 다루어 천재로 불리는 아인슈타인의 숨겨진 이야기를 전했다.
이날 서프라이즈에서는 아인슈타인은 천재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미국 크리스토퍼 폰 비랴크네스의 이야기를 담았다.
아인슈타인 전문가로 불리는 크리스토퍼는 '아인슈타인, 구제불능자'라는 책 등을 통해 "아인슈타인의 논문을 작성한 사람은 따로 있었다"고 계속해서 밝혀왔다.
그는 "아인슈타인은 수학에 약점이 있었다.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은 아내였던 밀레바다. 밀레바가 없었다면 아인슈타인도 없다"고 말했다.
크리스토퍼는 "어려운 계산이 필요한 논문을 아인슈타인이 발표했을 리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아인슈타인은 밀레바와 결혼한 지 2년 후에 희대의 유명한 논문을 발표했다.
당시 아인슈타인은 "6일 내내 특허사무실 사무관으로 일했기에 연구를 할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했고, 아내 밀레바의 도움없이 획기적인 논문을 발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날 ‘서프라이즈’에는 아인슈타인 최초 논문에는 말레바의 이름이 함께 적혀있었다는 증언이 있었고 지인과 주고 받은 편지에도 공동연구의 흔적이 있었다고 전했다. 그런데 최종 논문에는 밀레바의 이름이 빠져 결국 아인슈타인이 노벨상을 통한 명성을 혼자 독차지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크리스토퍼는 ‘서프라이즈’에서 아이슈타인이 노벨상 상금으로 받은 3억원 정도의 금액을 밀레바의 입을 막기 위해 이혼 중이었던 밀레바에게 줬다는 것을 이유로 제기했다. 이 상금도 채권으로 주었는데 세계 경제 대공황으로 채권이 휴지가 되어 밀레바는 덕을 보지 못했다.
[천재를 사랑한 여인들] ‘천재 물리학자’ 아이슈타인의 첫 아내, 밀레바 마리치
응접실 2008/01/03 22:18
밀레바 마리치는 1875년에 태어나 1948년에 73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그녀는 ‘상대성 이론’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천재 물리학자’ 알베르토 아이슈타인의 첫번째 아내였다.
유럽에서는 비주류 민족이라고 할 수 있는 세르비아계였던 밀레바는 선천적인 장애로 한쪽 다리를 절었다. 하지만 신의 그녀에게서 ‘신체적 건강’을 빼앗아간 대신에 명석한 두뇌를 선물했다.
밀레바는 수학, 물리학, 음악, 미술 등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남성 우월주의가 팽배해 여학생의 대학 입학이 어려웠던 유럽에서, 유일하게 입학인 가능했던 취리히 공과대학에 입학했다. 밀레바는 대학에서 4살 연하였던 아인슈타인을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이것은 불행의 서곡이었다.
밀레바 마리치와 알베르토 아인슈타인
밀레바와 아인슈타인은 서로의 천재성에 반해 열애를 시작했고 결혼하기에 이른다. 밀레바와 아이슈타인은 상대성 이론과 광양자 이론을 비롯해 세계사에 길이 남을 물리학 논문 3편을 공동 저작한다. 상상력은 뛰어났지만 수학적 재능은 부족했던 아이슈타인에게 밀레바는 특급 도우미이자 훌륭한 학문적 파트너였다.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강의하던 마리 퀴리 교수는 아이슈타인을 늘 ‘마리치 아이슈타인’이라 부르며, 그녀의 업적을 높이 샀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그의 명성이 높아질수록 밀레바를 부담스러워했다. 급기야 자신의 사촌인 엘사와 재혼하기 위해 그는 밀레바에게 이혼을 요구한다. 당시 밀레바와 아이슈타인 사이에는 2명의 아들이 있었지만, 아인슈타인은 그녀와 자식을 모두 버리고 당시 유럽에 불어닥친 파시즘을 피해 홀로 미국으로 망명했다.
말년의 알베르토 아인슈타인
아이슈타인에게 버림받은 밀레바의 생활은 비참했다. 이후 굉장한 생활고에 시달린다. 아이슈타인이 미국에서 세계적 명성을 높여가는 동안 그녀는 초라한 동네의 피아노 강사와 수학 교사 일을 하며 어렵게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그녀가 낳은 두 번째 아들은 극심한 정신질환을 앓았고, 밀레바 역시 정신적 스트레스로 말년에는 반신불수가 되어 침대 생활을 한다. 결국 아이슈타인과 더불어 ‘상대성 이론’을 완성시켰던 밀레바는 초라한 노파의 모습으로 외롭게 숨을 거둔다.
아래 밀레바의 천재성을 엿볼 수 있는 명언을 한 구절 소개한다.
“I don’t think the structure of the human skull is to be blamed for man’s inability to understand the concept of infinity. He would certainly be able to understand it, if when young, and while developing his sense of perception, he were allowed to venture out into the universe rather than being cooped up on earth. If someone can conceive of infinite happiness, he should be able to comprehend the infinity of space - I should think it much easier.”
"무한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인간의 두개골을 비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젊을 때 인식능력을 충분히 개발하고, 지구라는 새장에만 갇혀있지 않고 우주를 모험할 수 있다면 인간은 확실히 무한의 개념을 알게 될 것입니다. 누군가 무한한 행복을 품을 수 있다면 그는 무한한 우주도 이해하게 될 겁니다. 우주의 무한성을 이해하는 게 더 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첫댓글 인성과 비겁이 많아서... 좋은 팔자가 안되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