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통들
한혜영
안전장치가 시원찮은 밥통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폭발한다
거리이거나 학교이거나 회사이거나
상관없이 날아간 뚜껑들은
고물상에서 재빠르게 수집해간다
어떤 뚜껑이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하다가
왜 폭발했는지를 전문으로 다루는 고물상이다
몇만 마일 바깥에서 끌고 온
전쟁이라고 해도 고물이기는 마찬가지다
다소 위력적으로 날아간,
저울 눈금을 약간 더 보탤 뿐인
불량 밥솥이 마구잡이로 쏟아져 나오고 난 후
세상은 한결 위험해졌지만
그렇다고 미리부터 절망할 필요는 없다
지구는 망해도 밥통은
은하수를 향해서 달릴 테니까
마른 입속에 밥 한 끼 넣어주는 일에
뚜껑 앙다물고, 전력질주
압력을 압력으로 버틸 테니까
그러다 문득 고장이 났던
아버지의 뚜껑을 반세기만에 열어본다
보리밥 아직도 식지 않은,
아버진 끝끝내 밥통이시다
—《현대시학》2012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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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영 / 1954년 충남 서산 출생. 1994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태평양을 다리는 세탁소』『뱀 잡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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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통들 / 한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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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3.12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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