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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다해 8월8일 월요일 [(백)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
[수도회] 성전이신 예수님께 바쳐야 할 마음의 성전세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제1독서 에제 1,2-5.24-28ㄷ○ 제2독서 히브 11,1-2.8-19
† 복음 마태 17,22-27
도미니코 성인은 1170년 스페인 북부 지방의 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성덕을 쌓는 데 몰두하던 그는 사제가 되어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열정적인 설교로 사람들을 회개의 길로
이끌었다. 도미니코 사제는 1206년 설교와 종교 교육을 주로 담당하는
도미니코 수도회를 세우고 청빈한 삶과 설교로 복음의 진리에 대한
철저한 탐구를 강조하였다. 1221년에 선종한 그를 1234년
그레고리오 9세 교황이 시성하였다.
◈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의 성전 세 납부 문제로 논란이 일어납니다.
당시 스무 살 이상의 유다인 남자들은 성전 세를 낼 의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세상 임금들이 세금을 자녀들에게도
거두느냐고 질문하시자, 베드로는 남들에게서만 받는다고 대답하지요.
이에 예수님께서는, 자녀들은 세금을 면제받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니 하느님께 성전 세를 낼
필요가 없다는 의미이지요.
그러고는 말씀을 이어 가십니다. “우리가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 …….” 이 말씀은 ‘남들을 걸려 넘어뜨릴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이어 “고기를 잡아 입을 열어 보아라. 스타테르 한 닢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을 가져다가 나와 네 몫으로 그들에게 주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성전 세 몇 푼을 내려고
기적을 베푸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분은 당신을 위해서 기적을
베푸신 적은 결코 없으셨지요. 이는 성전 세를 내려고 나름대로 일을
하라는 뜻으로 쓰인 것입니다. 베드로는 고기 잡는 어부였지요.
그러기에 베드로가 어느 하루, 고기를 잡아 팔면 세금 낼 돈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까? 이를 극적으로 표현하려고 예수님께서는 고기를 잡아
입을 열어 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역시 각자의 직업이나 고유한 일에 먼저 충실해야
하겠습니다. 이런 숭고한 노동과 활동을 통해 하느님에 대한 의무를
다하도록 더욱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 매일 미사 -
◈ [인천]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016년 다해 8월8일 월요일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
제1독서
<그것은 주님 영광의 형상처럼 보였다.>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1,2-5.24-28ㄷ
복음
"사람의 아들은 죽었다가 되살아날 것이다. 자녀들은 세금을
면제받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22-27
어떤 신부와 이야기를 하던 중에, 길이 단위인 1인치가 얼마만큼의
길이인지로 서로 의견이 달랐습니다. 저는 1인치가 2.54Cm라고
말했는데, 신부님 중에서 다른 분이 1.54Cm라는 것입니다. 그럴리가
없다고, 2.54Cm가 분명하다고 했지만 이 신부님은 1.54Cm가
정확하다는 것입니다. ‘맞다, 틀리다’를 반복하다가 결국 잘 모르면
찾아보는 인터넷 검색을 했습니다. 저의 말처럼 1인치는 2.54Cm
이었습니다.
이 길이 단위는 전 세계 어디서나 딱 정해진 기준이지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싸움처럼 목소리를 높이 세운 사람 마음대로 기준을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 한 사람이 새롭게 규정할 자유가
없다는 것이지요. 어쩌면 주님께서 강조하셨던 선(善)을 따르는 것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많은 성인 성녀들이 힘주어 강조하신
말씀은 이것이었습니다.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라.”
그래서 사랑을 실천하는 삶은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상관없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이며 기준인 것입니다. 그런데 왜
어기고 있을까요? 내 안에 가지고 있는 욕심과 이기심이
발동해서입니다. 내가 중심이 되는 삶을 먼저 생각하다보니 주님의
중심이 되는 삶과는 멀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성전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성전세인 반 스타테르는
부자나 가난한 이 막론하고 영혼과 육신의 구원을 위해 성전을 드나드는
이는 누구나 내야 한다고 율법이 정한 액수였습니다. 그런데 과연
예수님께서 성전세를 낼 의무가 있냐는 것이지요. 성전은 하느님의 집,
따라서 그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집이라고도 말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성전세를 낼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자기 자신이
중심에 서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전세를 걷는 이들의 편에 서서 그냥
성전세를 내십니다. 남이 원하는 대로 남에게 해주라는 황금률을
따르는 모습인 것이지요.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께서도 내가 중심이 아니라 남이 중심이
되는 삶을 사셨습니다. 특히 남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들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의 죽음까지도 받아들이셨습니다. 이런 모범을 보여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 역시 그렇게 살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자신의 욕심과 이기심을 채우는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시는 희생과 나눔의 삶을 살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는 호수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올라오는
고기를 잡아 입을 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스타테르
한 닢을 성전세로 내라고 하시지요. 실제로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서 성전세를 낼 수가 있었습니다. 이는 곧 주님의 명령에 복종했을
때 우리들이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닌,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명령에 복종할 때 비로소 우리는 정말로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빵 한 조각 때문에 죽어가는 사람도 많지만, 작은 사랑도
받지 못해서 죽어가는 사람은 더 많다(성녀 마더 테레사).
성 도미니코 사제.
눈물 나도록 사십시오(‘사랑밭 새벽편지’ 중에서)
두 아이의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 대장암 4기 진단을 받고 종양을
제거하기 위해 두 번의 수술을 받았다. 25차례의 방사선 치료와
39번의 끔찍한 화학요법을 견뎌냈지만 죽음은 끝내 그녀를 앗아갔다.
3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샬럿 키틀리는 죽기 직전 자신의 블로그에
마지막 글을 남겼다.
살고 싶은 날이 참 많은데 저한테 허락되지 않네요. 내 아이들 커가는
모습도 보고 싶고 남편에게 못된 마누라가 되어 함께 늙어 보고 싶은데
그럴 시간을 안 주네요. 죽음을 앞두니 그렇더라고요.
매일 아침 아이들에게 일어나라고 서두르라고 이 닦으라고 소리소리
지르는 나날이 행복이었더군요. 딸 아이 머리도 땋아줘야 하는데,
아들 녀석 잃어버린 레고의 어느 조각이 어디에 굴러 들어가 있는지
저만 아는데, 앞으론 누가 찾아줄까요.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고 22개월을 살았습니다. 그렇게 1년 보너스를
얻은 덕에 아들 초등학교 입학 첫날 학교에 데려다주는 기쁨을 누리고
떠날 수 있게 됐습니다. 녀석의 첫 번째 흔들거리던 이빨이 빠져 그
기념으로 자전거를 사주러갔을 때는 정말 행복했어요.
보너스 1년 덕에 30대 중반이 아니라 30대 후반까지 살고 가네요.
복부 비만이요? 늘어나는 허리둘레요? 그거 한번 가져봤으면
좋겠습니다. 희어지는 머리카락이요? 그거 한번 뽑아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만큼 살아남는다는 얘기잖아요.
저는 한번 늙어보고 싶어요. 부디 삶을 즐기면서 사세요. 두 손으로
삶을 꽉 붙드세요. 여러분이 부럽습니다.
가지지 못한 것을 먼저 생각하다보니 불행하다고 여기고 있지요.
그러나 가지고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정말로 눈물 나도록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샬럿 키틀리와 그 가족.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 [수도회] 성전이신 예수님께 바쳐야 할 마음의 성전세
- 기 프란치스코 신부
2016년 다해 8월8일 월요일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
마태 17,22-27
“자녀들은 세금을 면제 받는다.”(17,26)
Payment of the temple tax
성전이신 예수님께 바쳐야 할 마음의 성전세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모여 있는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그들 손에 죽을 것이다. 그러나 사흗날에
되살아날 것이다.”(17,22) 라고 하십니다. 벌써 두 번째 수난 예고인데
예수님의 말투에는 수난의 임박함이 짙게 묻어 있습니다. 이에
제자들은 몹시 슬퍼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카파르나움으로 갔을 때 성전세를 거두는
유대인들이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성전세 내는 문제에 대해 묻습니다.
서기 70년 8월 29일 로마군이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기 이전에는
제관들을 제외한 스무 살 이상의 이스라엘 남자는 모두 성전 유지를
위해 매년 반 세켈을 바쳤습니다(탈출 30,13-15).
예수님께서는 지상의 권위자나 군주들은 자국민들이 아니라 식민지
지배를 받는 이들에게 세금을 받듯이, 하느님의 자녀들은 세금을 면제
받았다고 하십니다. 성전 자체이며 성전의 주인이신 예수님과 그분을
따름으로써 성전에 속한 제자들은 당연히 성전세를 낼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긴 하지만 그들의 비위를 거스를 필요는 없으니
세금을 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하신 까닭은 만물의 주인으로서
인간의 질서를 거스르지 않고도 얼마든지 당신의 뜻을 이루실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이것을 앞부분에서 예고하신 수난의 맥락에서 묵상해보면 성전은
결국 그들의 물질적 탐욕과 이기심, 적대와 배척으로 포장된 세금으로
유지하려 하여도 결국 무너지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전이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과 부활, 파스카 희생제사로서 성전을
대체하실 것입니다. 성전이신 예수님께서 성전세를 바치심으로써
성전을 정화하려 하신 것이지요.
세상에 속하지 않기에 자유로우신 예수님께서 세상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세상의 질서를 받아들이신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바칠 세금은 손에 만져지는 화폐가 아니라 그
이상의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성전세를 어떤
마음으로 바쳐야 할까요?
성전세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살이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자신 전부를 기꺼이
바쳐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세를 바치심으로써 세상
한복판으로 들어오시어 세상을 정화하시고 구원하셨듯이 우리 또한
그렇게 살아야겠지요.
어떤 사람은 철저히 인간적이고 물질적인 데 초점을 맞추며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금 문제를 포함하여 사회생활 대인관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들이 하느님의 마음으로 하느님을 닮기 위해
예수님처럼 행해지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화폐로 세금을 바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전이신 예수님께
순수하고 진실한 마음, 거룩한 마음과 헌신하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바쳐야 할 세금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실행함으로써
그분을 닮고 그분의 사랑과 정의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물질의
봉헌이나 형식적 의무이행은 꼬박꼬박하면서도 동료 인간들에게
무관심하고 나누지 못한다면 인간답다고 할 수 없겠지요.
오늘도 성전 건물을 유지하기 위해 성전세를 내는 형식적이고 가식적인
신앙생활에서 벗어나 진정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나와 우리
공동체의 모습을 기꺼이 봉헌하는 우리이길 기도합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
◈ [수도회] 알타반의 말씀사랑
2016년 다해 8월8일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
<그렇다면 자녀들은 면제받는 것이다.> (마태 17,26)
우리 삶 안에서 면제를 받는 경우들이 꽤 있습니다.
군복무 면제, 세금 면제와 감면, 죄의 사면과 감면,
이런 면제를 받는 것은 큰 행운이지요.
여러분은 어떤 의무에서 면제 받아 본 경험이 있나요?
작은 경험들은 있었을 겁니다.
멤버십 할인도 그런 일종이겠지요.
이처럼 우리도 하느님 나라의 멤버십을 가지고 있는
회원이기에 각종 혜택을 누리고 삽니다.
이 혜택, 프리미엄을 언제나 누릴 자격이 있지만
사실 이 혜택 없이도 우리는 다른 이들 못지않게 열심히 살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하겠지요.
오늘 내가 갖고 있는 회원권과 그 혜택을 한 번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느님 나라의 회원권을 가지고 있는
나는 얼마나 복된 사람인지 돌아봅시다.
그 귀한 회원권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매일매일 포인트를 쌓아 나갑시다.
하느님 나라 회원권을 가진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 프란치스코회 성심원 원장 오상선 바오로 신부 -
◈ [수도회] "그렇다면 자녀들은 면제받는 것이다."(마태 17, 26)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6년 다해 8월8일 월요일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
"그렇다면 자녀들은 면제받는 것이다."(마태 17, 26)
무언가를 소유하면 할수록
하느님과의 관계맺음은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소유하지 않는 이는 잃어버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버려야 할 것은 언제니 우리의 헛된 마음입니다.
헛된 마음을 버렸기에 하느님의 자녀는
모든 것에 자유로운 사람들입니다.
쓰러뜨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다시 일으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 도미니코 사제는 쓰러져있는 이들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살아있는 말씀의 선포자가 되었습니다.
말씀의 선포자는 매순간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하느님의 뜻을 따릅니다.
자신의 뜻을 버릴 수 없기에 누군가를 일으켜 본 적도 없습니다.
물질로는 결코 채워질 수 없는 우리들의 시간입니다.
삶의 의미는 하느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살아계신 하느님의 뜻은 살아있는 말씀으로 선포되듯
무엇보다도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진리의 시간되시길 기도드립니다.
진리의 시작은 말씀에 있기 때문입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수도회] 진리를 관상하십시오!
그 진리를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십시오!
2016년 다해 8월8일 월요일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
"사람의 아들은 죽었다가 되살아날 것이다. 자녀들은 세금을
면제받는다."
† 마태 17,22-27
진리를 관상하십시오! 그 진리를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십시오!
수도공동체! 하면 언뜻 생각하기에 다툼이나 분열, 상처나 괴로움은
전혀 없는 지상천국으로 상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수도공동체
역시 또 하나의 세상일 뿐입니다. 근본적으로 결핍된 존재들, 세상
속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이 모인 수도공동체이다보니 그 안에서
구성원끼리 벌어지는 옥신각신, 티격태격, 아옹다옹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나와 너무나 다른 너로 인해 상처입고 괴로워합니다.
반대로 그로 인해 또한 행복해지고 그와 더불어 성화의 길로
나아가기도 합니다. 고통도 당하고 십자가도 크지만 수도공동체,
그 안에서 성장도 하고 기쁨도 누리는 사랑과 증오로 섞여진 맛있는
비빔밥 한 그릇이 수도공동체인 것입니다.
이렇게 만만치 않은 수도공동체 생활 해나간다고 ‘쌩고생’하는
봉헌생활자들에게 참으로 큰 귀감이 되는 성인(聖人)이 한 분
계십니다. 스페인 태생의 명설교가이자 정통 가톨릭교회의
수호자이면서 도미니코 수도회 창설자이신 도미니코(1170~1221)
신부님이십니다.
도미니코회 역사 자료에 따르면 그는 언제 어디서나 말과 행동으로
자신이 복음의 전달자라는 신원의식을 드러냈습니다. 낮 동안 동료들과
엮어가는 수도생활 속에서 그는 더없이 명랑하고 소탈했습니다. 얼마나
다정다감하고 붙임성이 많았는지 그의 주변은 언제나 그를 존경하는
동료 수도자들로 넘쳐났습니다. 그러다가 밤 시간이 다가오면 그보다
더 열렬히 기도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는 자주 밤새워 기도하곤
했는데, 너무 열심히 기도하다보니 동료 형제들이 그의 기도소리에
밤잠을 설치기까지 했습니다.
그의 덕행 중에 눈에 띄는 것 한 가지는 그의 과묵함입니다. 그는
수도공동체의 분열과 상처의 주원인이 되는 말을 지극히 아꼈습니다.
그가 입을 여는 순간은 주로 이런 때였습니다. 하느님을 찬미 할 때.
형제들을 칭찬할 때. 하느님 앞에 형제들의 성화를 위해 기도드릴 때.
무엇보다도 도미니코 신부님은 지극히 겸손했습니다. 그의 탁월한
인품과 높은 성덕에 감화를 받은 그 지역 교황대사가 몇 번에 걸쳐
그를 주교품에 올리도록 청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때 마다 손사래를
치며 강하게 거절했습니다. 그러면서 주교직에 오르기보다는 공동체
형제들과 더불어 겸손하고 가난한 한 수도자로 남기를 간절히
염원했습니다.
도미니코 신부님이 살아가셨던 12~13세기는 교회, 정치, 경제적으로
급변하던 혼돈의 시기였습니다. 인구의 증가와 도시의 발달, 여러
국가들의 출현이 있었지만 그에 따른 빈곤층을 양산했습니다. 십자군은
이슬람과의 끝도 없는 전쟁을 계속 하고 있었습니다.
교회 내부적으로는 이런 저런 이단으로부터의 위협이 있었습니다.
당시 인간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극단적 청빈주의, 극단적 금욕주의를
지향하는 이단들이 성행했는데, 알비 지방의 카타리파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토록 어려운 시기에 하느님께서는 특별한 선물을 세상에
보내셨는데 그가 바로 도미니코 신부님이셨습니다.
도미니코 신부님은 여러 이단들로부터 가톨릭교회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정통 교리에 능통한 설교단이 필요하다고 여겼습니다.
따라서 유능한 설교자들로 구성된 도미니코회를 창설하게 됩니다.
오늘날에도 정통 가톨릭 신앙의 파수꾼으로서 선봉에 선 도미니코회
회원들은 언제 어디서건 누군가의 회개를 위해서라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려갑니다. 그들의 모토인 ‘진리를 관상하십시오! 그 진리를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십시오!’에 따라 밤낮없이 기도하며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진리를 공부하고 그 깨우친 바를 너그러운 마음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도미니코 신부님께서 남기신 모범 가운데에서 오늘 날
우리 사제들에게 큰 의미로 다가오는 것은 ‘말로서 만의 설교’가 아니라
복음 선포자가 먼저 복음대로 살아감을 통해 가르치는 ‘행동이
뒷받침되는 설교’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감동적이고 효과적인
설교의 배경에는 늘 깊은 하느님과의 일치와 기도가 자리 잡고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 [서울]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
2016년 다해 8월8일 월요일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
"사람의 아들은 죽었다가 되살아날 것이다. 자녀들은 세금을
면제받는다."
† 마태 17,22-27
오늘은 도미니코 사제 축일입니다. 동창 중에는 두 명이 도미니코
본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신부님은 운동을 잘 하셨습니다. 테니스,
농구, 축구와 같이 공으로 하는 운동을 잘 하였습니다. 다른 신부님은
음악을 잘 하셨습니다. 전체 회식이 있을 때면 우리 반을 대표해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두 분 신부님 모두 한번 마음먹은 것은 꼭 실천에 옮기는
성격이었습니다. 한분은 운동만으로 20킬로를 감량하였습니다.
그것을 10년째 유지하고 있습니다. 감량도 중요하지만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더욱 힘들다고 들었습니다. 다른 신부님은 악기를
손에 잡으면 능숙하게 다룰 수 있을 때까지 연습을 하였습니다.
오늘 축일을 맞이하는 동창 신부님들을 생각하면서 문득 생각합니다.
‘신앙은 관념이 아니고 실천이다.’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생각은 많이
합니다. 그러나 정작 실천을 할 때는 주저하곤 합니다. 실천을 하다가도
며칠 하고 그만두곤 합니다. 그래서 ‘작심삼일’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금연을 하겠다고, 금주를 하겠다고,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결심은
하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고객이 만족할 때까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기업은 이윤을 목표로
사업을 합니다. 기업의 이윤은 고객들에 의해서 생기게 됩니다. 고객의
만족이 높으면 기업은 더 많은 이윤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어느 기업에서
생각해 낸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런 기업은 성공할 것입니다. 한걸음 더
나간다면 ‘고객이 감동할 때까지’도 있을 것입니다. 감동한 고객은
본인은 물론 이웃들에게도 소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에 저는 ‘고객을 감동시키는’ 경험을 했습니다. 4달 전에
운동화를 샀습니다. 요즘은 와이어로 조종하는 신발이 생겼고, 저는
그런 신발을 샀습니다. 신발 끈을 묶는 불편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와이어를 조종하는 둥근 부분이 떨어졌습니다. 수리를 맡기려고
전화를 했습니다. 어디로 갔다 주어야할지 알기 위해서였습니다.
상담원은 제 전화를 받고 이렇게 이야기 하였습니다. ‘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가 가겠습니다. 수리를 해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회사에서 저의 신발을 가져갔습니다. 수리를 하면 갖다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감동’했습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이 하는 만큼은 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과연 교회가 세상 사람들이 하는 만큼 하는지 돌아봅니다. 사목은
‘서비스’라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러 왔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벗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목의 현장에서
사제들이 교우들이 만족할 때까지, 교우들이 감동할 때까지 봉사하면
좋겠습니다. 교황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양 냄새가 나는 목자’가 되면
좋겠습니다.
수녀님과 함께 성당에서 주보 정리를 하고, 화장실 청소를 하는 사제가
있다면, 넓은 마당을 청소하고, 쓰레기를 줍는 사제가 있다면, 장례가
나면 가장 먼저 빈소를 찾아가서 연도를 하는 사제가 있다면, 교우들이
오기 전에 성당에서 기도를 하는 사제가 있다면, 아침 일찍 일어나서
기도를 하고, 그날의 말씀을 묵상하는 사제가 있다면, 아픈 신자가
있으면 찾아가서 위로를 하고, 기쁜 신자가 있으면 찾아가서 함께
기뻐하는 사제가 있다면, 약수터로 가서 교우들이 마실 물을 떠오는
사제가 있다면 좋겠습니다.
한 주간이 시작되는 월요일입니다. 하느님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나 자신을 위해서 계획한 것들, 생각한 것들을 실천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 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서울] 예수님만이 하신 말씀
2016년 다해 8월8일 (월) 성 도미티코 사제 기념일
예수님만이 하신 말씀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의 말은 신경 쓰면서 정중히 새겨들어야지요.
자식이 부모의, 학생이 스승님의, 후세가 노인들의 말씀을 그렇지요.
말 말 말들이 매우 다양하지만 삶 죽은 같은 심각한 말엔 관심둬야죠.
무관심이 때론 큰 사고를 내요. 누가 이런 말 직접 들어본 분계신가요?
‘나는 사람들 손에 죽을 것이나 사흗날에 되살아나겠다.’란 말말입니다.
이 말 역시 유일하게 예수님만이 하신 말씀이며 신중히 새겨들어야지요.
“갈릴래아에 모여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그들 손에 죽을 것이다. 그러나 사흗날에
되살아날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몹시 슬퍼하였다.(마태오 17,22~23)”
죽을 일에 대해서 전혀 무관심하다가 죽음 앞에서 황당 다급해 합니다.
죽음 전후를 확실하게 알려주신 예수님 앞에서 벌벌 떠는 거 당연해요.
- 서울 대교구 이기정 사도요한 신부 -
◈ [청주] 적절한 순서와 아량 |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6년 다해 8월8일 월요일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
"사람의 아들은 죽었다가 되살아날 것이다. 자녀들은 세금을
면제받는다."
† 마태 17,22-27
적절한 순서와 아량
“똥이 무서워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행동이
좋지 않은 사람은 서로 상종할 수 없으니 이쪽에서 삼가서 피하라는
뜻입니다. 물론 “전혀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나쁜 사람도 없고, 완벽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삶의 지혜가 필요하다는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상대가 되지 않으면 때로는 기다려야 하는
아량이 필요한 것입니다.
성전세를 거두는 이가 베드로에게 다가와 “여러분의 스승님은 성전
세를 내지 않으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세금은 로마 총독이
로마제국을 위해 거둬들이던 세금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자체적으로
징수하던 인두세였습니다. 희생제물을 봉헌하기 위해서 기부하는
것입니다. 사실 세상의 임금들은 관세나 인두세를 남에게서 받아내지
자기 가족에게 부여하지는 않는 법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님께서 세금을 내셔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의
참 주인이시고 “성전보다 더 큰 분”(마태12,6)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전세도 바치셨습니다(마태17,27). 성전의 참
주인이신 분께서 성전세를 내신 까닭이 어디 있을까요? 그야말로
요즘 표현으로 스캔들이 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 세금을 바치십니다. 그런데
예기치 않았던 돈으로 성전 세를 내십니다. 호수의 고기를 잡아 그
입안에 있던 돈으로 베드로의 몫과 주님의 몫으로 주도록 함으로써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신다.’는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자이시라는 모습에는 손상을 입지 않으시면서, 하느님께는 영광이
드려지며 인간의 비위는 조금도 건드리지 않는 모습에 참 지혜를 만날
수 있습니다. 마음이 꼬인 사람에게는 우선은 한발 물러서는 것이
좋습니다. 원리(原理)는 소중합니다. 그러나 실천하며 살아가는 데는
적절한 순서와 아량이 필요합니다. 오늘 하루, 우리의 마음을 어디에
두고 살아야 할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우리가 일상 안에서 많은 일들을 접하면서 그때 마다 다른 사람에게
걸림돌이 되고 있지 않은지 신중히 고려해야 할 상황들이 있습니다.
아주 분명하고 명확하게 말하거나 일관되게 행동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그릇이 되지 않는데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더더욱 비굴하게 물러서는 것 같이 보이는 때 정말 참 지혜가 필요함을
절감합니다.
때로는 비유를 들고, 때로는 비유를 해설해 주시던 예수님, 손가락에
침을 발라 눈을 닦아주시고, 귀 구멍을 열어주시던 예수님, 일어서라고
하시며 손을 잡아주시던 예수님,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리라 하시던 사랑의 예수님을 기억합니다.
내 생각을 앞세우지 않고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넉넉한 마음으로
지혜를 갈망하는 날 될 수 있길 희망하며 눈높이를 맞춰가는 가운데
기쁨과 평화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미루지 않는 사랑을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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