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2016년 8월23일 화요일 [(녹) 연중 제21주간 화요일]
[수도회] 하느님의 아름다운 잔이 되어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제1독서 2테살 2,1-3ㄱ.14-17
† 복음 마태 23,23-26
◈ 오늘의 묵상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위선을 강하게
비판하십니다. 이런 비판과 질책은 요즘 계속되지요. 그들은 율법의
외면은 잘 지켰지만 정작 그 율법의 정신인 사랑은 제대로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누구나 하느님께 십일조를 바쳤습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은 오늘 복음에 나오는 박하, 시라, 소회향까지도 십일조를
바치라 한 것입니다. 시라와 소회향은 미나리과의 한해살이풀로서
향신료로 쓰고 있습니다. 따라서 박하, 시라, 소회향 같은 것들은
음식의 양념으로 쓰려고 집에서 몇 포기씩 텃밭에다 심은 것인데,
이런 사소한 것마저 십일조로 내라고 하니, 너무 지나치지 않습니까?
이처럼 그들은 형식에만 얽매였던 것입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그 많은 계명을 세세하게 지키는 데
집중하다 보니 정작 더 크고 중요한 일에는 소홀하고 맙니다. 바로
사랑의 실천이지요. 가장 중요한 계명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이웃이 ‘계명을 지키는가, 안 지키는가?’
이 점만 따지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다른 이들의 약점만 보려 할
때 오히려 위선에 빠지기 쉽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아무리
제단을 잘 차리고 기도를 오랜 시간 한다 하여도, 이웃에 대한 배려가
없으면 무엇합니까? 이는 이기적인 신앙, 위선적인 신앙밖에 안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소한 일이나, 사소한 계명에만 집착하기보다는,
하느님의 참된 뜻을 파악하고 이를 실천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 매일 미사 -
◈ [인천] 사랑이신 주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2016년 8월23일 연중 제21주간 화요일
제1독서
<여러분이 배운 전통을 굳게 지키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테살로니카 2서 말씀입니다. 2,1-3ㄱ.14-17
복음
<십일조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더 중요한 것들을 실행해야만 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3,23-26
저는 아침마다 자전거를 타고서 1시간 정도를 달리고 옵니다.
운동으로는 최고라는 것을 10년 이상 자전거를 타면서 느끼고 있기
때문에 비나 눈이 오지 않는 한 무조건 나갑니다. 어제 역시 자전거를
타고 왔습니다. 그리고 평소에 하던 대로 성지의 초 봉헌을 신청하신
분의 지향을 가지고 봉헌대의 초에 불을 붙였습니다. 아침부터 너무나
더웠습니다. 자전거를 타서 땀에 흠뻑 젖어있는 상태라 초에 불을
붙이는 것이 더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바람이 부는 것입니다.
땀 흘려 붙인 촛불이 꺼질 정도로 센 바람이 불었습니다.
몇 개의 초가 꺼졌다고 화가 났을까요? 아닙니다. 바람이 너무나
시원해서 그 자리에서 일어나 두 팔을 벌려서 바람을 맞았습니다.
너무나 기분이 좋았습니다. 요즘 같이 바람 한 점 없이 덥기만 한
날씨에 한 줄기 바람은 더위를 잊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사실 초를
켤 때에 바람이 부는 것은 정말로 불편하게 하고, 또 힘듭니다. 그런데
그 불편하게 하고 힘들게 하는 바람이 저를 기분 좋게 하고 그래서
감사하게 합니다.
많은 이들이 자신에게 찾아온 고통과 시련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면서
그래서 불행하다면서 주님께 하소연합니다. 그러나 어제 아침의 체험을
통해 꼭 고통과 시련이 찾아온다고 행복하지 않은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초를 켤 때 힘들게 하는 바람이 오히려 감사의 이유가 되는
것처럼, 나를 힘들게 하는 고통과 시련 역시 감사의 이유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큰 것을 보지 못하는 우리들의 작은 마음 때문에 일상 안에서의
큰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요? 즉,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는 주님을 보지 못하고 대신 작은 아픔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해서 어렵고 힘들다며 불평불만으로 가득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사랑이신 주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주님 안에서 모든 문제들을
풀어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이 세상의 것들을 더 중요하게
여기면 문제의 풀이는 너무나도 힘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위선자라고
하면서 “불행하여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박하와 시라와
소회향은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처럼 율법에서 더
중요한 것들은 무시하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박하와 시라와 소회향은 음식에 곁들이는 양념일 뿐 반드시 꼭 필요한
음식은 아닙니다. 그런데 당시의 유대인들은 이 양념에 불과한
것들까지도 십일조를 내야만 한다고 생각했지요. 사소한 것들까지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나쁘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사소한
것들에 온통 주의를 기울이는 작은 마음 때문에 정작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들을 소홀하게 한다는 것이지요. 즉, 의로움, 자비, 신의와 같이
주님께 연관된 것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작은 것도
충실할 수 있어야 하겠지만, 그래서 크고 중요한 주님을 놓치기 때문에
불행한 것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주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불행이 아니라 행복한 내가 될 수 있습니다.
보상을 구하지 않는 봉사는 남을 행복하게 할 뿐 아니라, 우리 자신도
행복하게 한다(마하트마 간디).
페루 리마의 성녀 로사.
사랑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한비야, ‘그건, 사랑이었네’중에서)
벼랑 끝 100미터 전.
하느님이 날 밀어내신다. 나를 긴장시키려고 그러시나?
10미터 전. 계속 밀어내신다. 이제 곧 그만두시겠지.
1미터 전. 더 나아갈 데가 없는데 설마 더 미시진 않겠지?
벼랑 끝. 아니야. 하느님이 날 벼랑 아래로 떨어뜨릴 리가 없어.
내가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너무나 잘 아실 테니까.
그러나 하느님은
벼랑 끝자락에 간신히 서 있는 나를 아래로 밀어내셨다.
.......
그때야 알았다.
나에게 날개가 있다는 것을...
이런 느낌을 누구나 체험하지 않았을까요? 하느님께서 계속 밀고
있는 듯한 느낌……. 그런데 몰랐습니다. 내게 날개를 주셨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밀었던 것이군요.
세상을 훨훨 날라고…….
저희 성지 후원회원들에게 드리는 묵상노트. 후원회원들이
좋아하셨으면 합니다.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 [수도회] 하느님의 아름다운 잔이 되어 - 기 프란치스코 신부
2016년 다해 8월23일 연중 제21주간 화요일 마태 23,23-26
“눈먼 바리사이야! 먼저 잔 속을 깨끗이 하여라!”(마태 23,26)
Denunciation of the Scribes and Pharisees
하느님의 아름다운 잔이 되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겉 다르고 속 다른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먼저 십일조에 관한 그들의
행태를 지적하십니다. 구약 시대에는 하느님의 절대적 점유권을
상징하는 뜻에서 소출의 십분의 일을 사제들의 생활에 보태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은 모든 소출에 십일조를 확대시켜
적용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일조를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를 실행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23,23).
곧 십일조라는 최소한의 규범을 지키는 것에만 만족하지 말고,
각 사람 특히 가난하고 약한 이들의 권리와 인격을 보호하고 이롭게
하며, 성경 말씀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활고와
실업 등으로 십일조마저 낼 수 없는 가난한 이들을 품지 못하는
교회는 존재할 이유가 있을까요?
또한 예수님께서는 중요한 것을 고의적으로 외면하거나 사소한 일에
집착한 나머지 중요한 것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됨을 깨우쳐주십니다
(23,24). 어떤 상황에서든 본말이 뒤바뀐 생각과 행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복음 가치의 상대화, 대인관계의 갈등, 인간 소외와
불의를 가져오게 마련입니다.
가톨릭 교회법전은 “교회법적 공평을 지키며 영혼들의 구원을
명심하여야 한다. 이것이 교회에서 항상 최상의 법이어야 한다.”
(1752조)고 규정합니다. 이는 모든 교회규범을 관통하는 가장
근본적인 정신을 언급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경우에 이 근본정신을 망각한 채 문자에 얽매여 신속한 문제해결만
서두르는지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뜻대로
모든 이가 인간답게 사는 것인데 말입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겉은 깨끗하나 속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찬
잔과 접시로 상징되는 인간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누구든 겉과 속이
같아야 하고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합니다. 아름다운 사람이란 외모가
빼어난 사람이 아니라 가난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아름다움이시고 선이시며 정의이신 하느님을 반사하는
사람이 진정 멋진 사람이겠지요.
살다보면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서, 또는 자신의 부끄러운 부분을
감추기 위해서 위선적인 행동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이는 결국
자기중심적이며,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 자신의 뜻을 이루려는 교만한
태도라 할 것입니다. 영적 성숙, 거룩함은 달리 말하면 하느님 앞에서의
정직함이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바리사이들은
이와는 달리 실천 없이 말로만 가르치며 위선에 빠졌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가르침대로 영혼 구원을 위한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라는
근본정신을 망각하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머리나 입으로만
살려 하지 말고, 온 마음과 온 정신과 혼을 쏟아 그 근본정신을
실행하도록 힘썼으면 합니다. 설령 영적인 것이라 하여도 이것저것
다 탐내고, 좋은 강의는 다 듣고 싶고, 많은 것을 가르친다 해도 사랑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다른 이들에게 겉으로는 그럴싸하게 보이면서도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지 않고 실천하지 않으며, 다른 이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의
마음이 없다면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이겠지요. 죄로 기우는 경향을
지니고 세상의 유혹에 맞서 싸우며 살아야 하는 우리의 삶 자체가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렇지만 그 십자가를 지고 그래도 하느님의
사랑을 품고 그분의 뜻대로 행동하는 아름다운 우리였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거룩함의 원천이신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예수님의
가르침과 발자취에 초점을 맞추고 집중하여 행동함으로써, 겉과 속이
모두 깨끗하고 아름다운 주님의 그릇이 되길 희망합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
◈ [수도회] 알타반의 말씀사랑
2016년 다해 8월23일 연중 제21주간 화요일
"하느님 우리 아버지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격려하시고 여러분의 힘을
북돋우시어 온갖 좋은 일과 좋은 말을 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2테살 2,17)
올해는 유난히도 무더위가 오래 지속됩니다.
갈수록 지구온난화는 가속화될 것이 뻔하니 더 걱정입니다.
이렇게 더위가 지속되면 짜증이 많이 나게 되고
불쾌지수가 높아져 좋은 일과 좋은 말을 많이 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테살로니카인들에게 이럴 때일수록
묵묵히 전통에 충실하라고 당부하네요.
예수님과 아버지 하느님께서 친히 여러분의 마음을 격려하시고
힘을 붇돋워 주셔서 온갖 좋은 일과 좋은 말을
하게 해 주시길 빌어주네요.
저도 바오로 사도처럼 여러분을 위해 기도합니다.
오늘도 좋은 일 많이 하시고 좋은 말도 많이 하세요.
그게 복짓는 일이니까요.
그게 하느님 나라를 만드는 길이니까요.
- 프란치스코회 성심원 원장 오상선 바오로 신부 -
◈ [수도회] "눈먼 바리사이야! 먼저 잔 속을 깨끗이 하여라."
(마태 23, 26)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6년 다해 8월23일 연중 제21주간 화요일
"눈먼 바리사이야! 먼저 잔 속을 깨끗이 하여라."(마태 23, 26)
하느님의 현존을 가리는 것은 언제나 우리의 탐욕과
지나친 방종입니다.
나약하고 모순된 우리의 삶에서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신앙과 기도의 실천입니다.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자신을 드러내기에
너무도 빨리 우리는 지치게됩니다.
참된 정화는 우리를 깨끗이 하시는 하느님께로 되돌아가는 길입니다.
우리 힘으로는 참된 정화에 이를 수 없습니다.
정화의 방향성은 먼저 우리 내면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위선의 익숙함에서 벗어나는 길은 우리의 위선을
정직하게 하느님께 인정하는 길입니다.
신앙의 길은 정화의 길이며 우리의 내면이 성장하는 길입니다.
하느님과의 충실한 관계를 통해 하느님의 의로움
하느님의 자비와 신의를 배우는 은총의 시간되시길 기도드립니다.
모든 정화의 출발점에는 자만이 아니라 겸손이 있었음을 기억합니다.
참된 겸손이 참된 정화이기 때문입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서울] 연중 제21주간 화요일
2016년 8월23일 연중 제21주간 화요일
<십일조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더 중요한 것들을 실행해야만 한다.>
† 마태 23,23-26
1991년 8월 23일 사제서품을 받았습니다. 오늘은 25년이 되는
날입니다. ‘은경축’이라고 말을 합니다. 지난 25년을 돌아보면 감사할
일들이 많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건강을
주셨습니다.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는 가족과 교우들이 있었습니다.
주어진 일들을 큰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저의 능력보다는
함께 하는 동료들의 힘이 컸습니다.
은경축을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 주시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저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복음화 학교’입니다. 복음화를 위해서 헌신하는
신자들의 단체입니다. 모든 분들이 열정과 신념을 지니고 있습니다.
저와는 20년 이상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복음화 학교의 많은 분들이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셨고, 축하해 주셨습니다.
24년간 만남을 이어오고 있는 서울대교구 남성 제152차 꾸르실료
동기모임입니다. 30대 초반이었던 저는 50대가 되었고, 50대
초반이었던 분들이 이제 70대가 되었습니다. 24년 동안 제가 있는
사목의 자리를 찾아와 주셨고, 이번에도 작은 정성을 함께 해
주셨습니다.
중서울 지역 엠이 모임에서도 축하의 자리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11년 전에 엠이 체험을 하였고, 주말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엠이
모임에서는 영상물을 만들어서 제게 선물을 주었습니다. 아름다운
음악과 지나온 날들을 담은 사진들을 담은 영상물입니다.
성소국의 신부님, 수녀님, 직원들이 함께 축하 해 주었습니다. 제게는
소중한 분들입니다. 세상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말처럼, 소중한 이웃들이 있어서 행복한 날들이었습니다.
동양 사람과 서양 사람은 생각하는 것이 다를 때가 있습니다.
동양 사람들은 관계와 맥락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서양
사람들은 문제 자체와 속성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교통사고가 났을 때, 동양 사람은 그로인해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길이 막혀서 피해를 입은 사람들까지도 생각을 합니다.
교통사고가 났을 때, 그날 사고를 낸 사람의 행동이나, 기분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서양 사람들은 교통사고 자체만 생각하지
그로인해서 피해를 입었을 다른 사람들은 별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동양 사람들은 방송을 해도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서부간선도로에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그로인해 많은 사람들의
출근길이 늦어졌습니다.’ 하지만 서양 사람들은 방송을 해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동부간선도로에 교통사고가 있었습니다.’
사고자체만 보도를 하지, 사고로 인해서 벌어진 여러 상황들은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동양은 고 맥락 사회라고 하고,
서양은 저 맥락 사회라고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런 점을 이야기 하십니다. ‘율법을
지키고, 십일조를 성실하게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비와 자선을
베푸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율법을 지키고 십일조를 내는 것은
본인의 문제이고, 속성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자비를 베풀고, 자선을
베풀며 이웃을 돕는 것은 관계의 문제이고 맥락의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개인이 하느님을 믿어서 구원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동체가 더불어서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십니다. 그래서
교회를 만드시고, 제자들과 공동체의 삶을 사셨습니다. 예전에
우리사회는 고 맥락 사회였습니다. 이웃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고,
이웃의 기쁨을 함께 기뻐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점차 문제 자체와
사물의 속성만을 생각하는 저 맥락의 사회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바로 이런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바로 그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십시오. 누가
예언이나 설교로 또 우리가 보냈다는 편지를 가지고 주님의 날이
이미 왔다고 말하더라도, 쉽사리 마음이 흔들리거나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누가 무슨 수를 쓰든 여러분은 속아 넘어가지 마십시오.”
우리들의 겉모습을 가꾸는 그만큼, 우리들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서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서울대교구는 1998년부터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가톨릭 굿뉴스’입니다. 가끔씩 게시판에 글을 쓰기도 했고,
최근에는 매일 복음 묵상을 나누고 있습니다. 지난 25년을 돌아보며,
그동안 쓴 글들을 모아서 책을 한권 만들었습니다. 저의 묵상을 읽어
주신 분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댓글로 주소와 이름을
달아 주시는 분들에게는 저의 마음을 담아 우편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직원연수가 있어서 묵상 글은 27일부터 올리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 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서울] 속빈 영혼 영원불행 당연!
2016년 다해 8월23일 연중 제21주간 화요일
속빈 영혼 영원불행 당연!
목욕 샤워 세수 자주 하며 몸을 씻지만 정신마음은 안 씻고들 살지요?
썩을 육체만 열심관리 했고 영혼은 때투성이 병투성이 잘 한 건가요?
육신과 영혼이 하나 되어 살다가 죽으면 육신은 없어지고 영혼만 남죠.
그 영혼은 영양부족 취급소홀로 완전 병신 그게 바로 ‘나(吾)’란 거죠.
참 나인 안 죽는 내 영혼을 평생 짓밟고 살았으면 와! 미치죠. 구제불능.
영혼갉아 잠깐 세상 몸유지에 다 써버렸으니 속빈 영혼 영원불행 당연!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그 안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마태오 23,25)”
세상에 시간 돈 잔뜩 들여 겉치레하느라 영혼자리 악마에게 넘겼잖아요.
세상엔 얼굴하나 디리밀며 사는 사람형 욕심 악마들이 우글거리니 으악!
- 서울 대교구 이기정 사도요한 신부 -
◈ [청주] 마음은 신용장 |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6년 8월23일 연중 제21주간 화요일
<십일조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더 중요한 것들을 실행해야만 한다.>
† 마태 23,23-26
마음은 신용장
매일 같이 이를 닦고 얼굴을 씻고 옷매무새를 고칩니다. 외출을
하려면 거울을 보고 다시 한 번 몸단장을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일상입니다. 어떤 이는 ‘아름다운 얼굴이 추천장’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성형수술도 하고 외모를 가꾸려 많은 정성을 기울입니다.
그에 비하면 마음을 가꾸는 일에는 너무도 인색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마음이 깨끗하면 표정이 맑고, 얼굴이 빛납니다. 그‘아름다운 마음은
신용장’입니다. 그리고 “마음이 똑바로 향해 있으면 행동 또한 바릅니다.
그리고 마음과 행동이 일치할 때 구원의 은혜를 입을 것입니다"
(성 아우구스띠노).
그럼에도 마음을 가꾸는 것에 정성을 기울인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로마12,2). 라고 권고합니다.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정결 예식에 대한 법을 지키고
가르치는 데 신중을 기했습니다. 그럼에도‘위선자’소리를 듣는 것은
중요한 것은 외적인 의식(컵을 닦고 그릇을 닦는 것)이 아니라
속마음이라는 것을 간과했기 때문입니다. 겉을 깨끗이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닦아야 할 속을 버려두고 겉만 닦는 데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잔이 아무리 좋은 잔이고 화려해도 속이 더러우면 쓸 수가
없습니다. 속이 깨끗하면 다른 것은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 더럽히는 것은 오히려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마태15,11). “입에서 나오는
것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인데 바로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살인 간음, 불륜, 도둑질, 거짓증언, 중상이 나온다”
(마태15,19-20). 그러므로 마음을 깨끗이 하고 하느님과 스스로에게
정직할 수만 있다면 외적 행동 또한 빛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가꾸는데 인색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신독"(愼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홀로 있어도 부끄러움이 없다는 뜻입니다. 사실
우리는 홀로 있을 수가 없습니다. 언제나 하느님 앞에 있습니다.
하늘의 그물은 누구도 빠져나갈 수가 없습니다. 혹여 내가 누구를
속였어도 그것은 내가 빠져 나간 것처럼 여길 뿐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마음이 즐거우면 얼굴이 밝아지고 마음이 괴로우면
기가 꺾인다”(잠언 15,13).“무엇보다도 네 마음을 지켜라. 거기에서
생명의 샘이 흘러나온다”(잠언 4,23). 그러니 기도합니다.
“주님, 당신께 찬미 노래 부르오리다. 흠 없는 길에 뜻을 두리니 언제
저에게 오시렵니까? 저의 집 안에서 온전한 마음으로 걷고 불의한
일을 저의 눈앞에 두지 않으오리다.,,,그릇된 마음 제게서 멀리
떨어지고 악한 것을 제가 알지 않으리이다”(시편101,2. 4). 미루지
않는 사랑을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