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고택
중국의 고택
일본의 고택
중국과 일본은 닮은 점이 참 많습니다. 건축에 사용하는 나무를 깎고 다듬는 일에서도 비슷합니다.
중국의 석가래와 일본의 석가래는 사각형입니다. 한국의 석가래는 생긴대로의 자연스러운 원형이고
기둥도 원형이 많습니다.
한국 고택의 내부
나무의 생긴 그대로 사용해 자연을 집안으로 들여 인간과 집이 하나 됩니다.
중국 고택의 내부
일본 고택의 내부
한국은 밥그릇을 상위에 놓인 채로 밥을 먹고 숟가락으로 밥과 국을 먹습니다.
중국과 일본은 국자형의 숟가락을 사용하여 국물만 먹고 밥그릇을 들고 젓가락으로 밥을 먹습니다.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
비슷한 듯 보일 수도 있지만 먹는 음식과 도구가 다르고 사는게 다르니 문화도 다르고 정서가 다르니
공간도 다릅니다.
한국 정원의 백미로 꼽는 '소쇄원'
한국인의 정원은 실상 자연입니다. 경치가 좋은 곳에 정자도 짓고 집도 짓습니다.
그리고 모자르는 것만을 채웁니다.
중국인들은 자연을 울안으로 들여오고...
일본인들도 집안으로 들여 오는데 축소해서 들여 옵니다.
심지어는 눈으로만 보는 자갈정원도 있습니다.
정원가 '황지해'가 첼시플라워쇼에 출품하여 수상한 '해우소 가는 길'
http://blog.daum.net/paulsong/15861459
마치 타샤튜더(Tasha Tudor)의 정원같은 자연스러움이 있습니다.
http://blog.daum.net/paulsong/15859010
한국의 3대 전통정원
우리나라 3대 정원으로 전남 보길도의 세연정(洗然停), 전남 담양의 소쇄원(瀟灑園), 그리고 경북 영양의
서석지(瑞石池)를 꼽는다. (http://egloos.zum.com/ksk3609/v/6259843)
세연정(洗然停)
전라남도 완도군 보길면 부황리에 있는 부용동(명승제34호 2008.1.8일 지정)은 조선의 시인 고산 윤선도
(孤山 尹善道. 1587∼1671)선생이 어지러운 세상을 피해 숨어살던 유서 깊은 곳이다.
병자호란의 국치와 추잡한 당쟁의 소용돌이를 피해 부용동의 아름다운 절승에 의탁해 자기 구제와 속세를
초월한 자유를 얻었다.
부용동은 고산이 51세 때(1637년)들어와 85세(1671년)로 돌아가실 때까지 13년간 살면서 7차례나 드나들었고.
어부사시사 40수와 수십 편의 한시를 창작한 곳이다.
세연정(洗然停)의 '세연'이란 '주변 경관이 물에 씻은 듯 깨끗하고 단정하여 기분이 상쾌해 지는 곳'이라는
뜻으로, 고산연보 에서는 1637년 고산이 보길도에 들어와 부용동을 발견했을 때 지은 정자라 하고있다.
정자의 중앙에 세연정, 동쪽에 호광루, 서쪽에 동하각, 남쪽에 낙기란이라는 편액을 걸었으며, 또 서쪽에는
칠암헌이라는 편액을 따로 걸었다.
소쇄원(瀟灑園)
전남 담양군 남? 지곡리에 자리잡은 소쇄원(瀟灑園)은 양산보(梁山甫, 1503∼1557)가 은사인 정암 조광조
(趙光祖, 1482∼1519)가 기묘사화로 능주로 유배되어 세상을 떠나게 되자, 출세에의 뜻을 버리고 자연 속에서
숨어살기 위하여 1530년(중종 25년)에 꾸민 별서정원(別墅庭園)으로, 제월당(霽月堂), 광풍각(光風閣), 애양단
(愛陽壇), 대봉대(待鳳臺) 등 10여개의 건물로 이루어졌으나, 지금은 몇 남아 있지 않았다.
제월당(霽月堂)은 '비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이라는 뜻의 주인을 위한 집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며, 광풍각(光風閣)은 '비갠 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이라는 뜻의 손님을 위한 사랑방으로
1614년 중수한 정면 3칸, 측면 3칸의 역시 팔작지붕 한식이다.
정원의 구조는 크게 애양단(愛陽壇)을 중심으로 입구에 전개된 전원(前園)과 광풍각(光風閣)과 계류를
중심으로 하는 계원(溪園) 그리고 내당인 제월당(霽月堂)을 중심으로 하는 내원(內園)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월당에는 하서 김인후(河西 金麟厚)가 쓴 「소쇄원사십팔영시(瀟灑園四十八詠詩)」(1548)가 게액되어
있으며, 1755년(영조31년)에 목판에 새긴 「소쇄원도(瀟灑園圖)」가 남아 있어 원래의 모습을 알 수 있게
한다.
서석지(瑞石池)
경북 영양군 입암면 연당리에 있는 서석지(瑞石池)는 조선시대 민가정원의 백미로 꼽힌다. 연당마을 입구,
수령 400년이 넘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눈길을 끄는데, 이 은행나무가 있는 흙담 안에 중요민속자료 제108호인
서석지가 자리잡고있다.
서석지는 석문 정영방(石門 鄭榮邦,1577∼1650)이 조선시대 광해군 5년(1613)년에 조성한 민가의 연못으로,
연꽃이 아름다운 연당(蓮塘)이다. 정영방 선생의 본관은 동래(東萊)로 호는 석문(石門)이고 자는 경보(慶輔)
이다. 선생은 정경세(鄭經世) 선생에게 배웠고 성리학과 시에 능하였고 진사(進士)에 합격한 뒤에는 이 곳에서
학문 연구로 일생을 마쳤다.
자양산(紫陽山) 남쪽 기슭에 자리잡은 서석지는 연못을 중심으로 서재인 주일재(柱一齋)와 학문을 논하고
후학을 가르치는 경정(敬亭)이 있다. 주일재는 방 두 칸, 마루 한 칸으로 공부하기에 알맞고, 경정은 앞
네 칸을 마루로 활짝 틔우고 뒤쪽으로 가운데 두 칸은 대청으로 삼고 양쪽에 방을 각각 한 칸씩 들여지었다.
연못가에 있는 주일재 앞에 장방형의 사우단(四友壇)을 쌓아 매화, 국화, 소나무, 대나무를 심었다. 여름이면
활짝 핀 연꽃과 함께 여러 가지 모양의 돌들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정경을 연출한다. 연못의 동북쪽에서 물이
들어오는 곳을 읍청거(揖淸渠)라 하고 서남쪽으로 물이 날가는 곳에는 토예거(吐穢渠)라 하였다. 읍청거 쪽에
울퉁불퉁 솟아난 60여개의 서석(瑞石)들은 때로 물속에 잠기기도 하고 드러나기도 하여 오묘한 정취를
느끼게 해 준다.
서석지란 이름도 연못 속에 있는 다양한 모양의 돌들에 의해 붙여졌다. 서식지에 있는 돌들은 본래부터
그 자리에 있던 것이며, 연못의 물도 돌 사이를 흐르는 물과 복류수(伏流水)로 채워지기 때문에 늘 일정한
수위가 유지된다고 한다.
보기좋게 조성한다고 억지로 만드는 것은 일본식입니다.
자연 그대로를 창문을 열어 보고 즐기는 것.. 그것이 바로 한국인의 정서입니다.
한국인의 정원은 그냥 보이는 모든 것, 생활 속 모든 것이 정원입니다.
꽃담, 화문장(花紋墻)
http://blog.daum.net/paulsong/15862151
포석정
안압지 (월지月池)
삼성에서 조성하여 희원(熙園)이라고 이름지은 전통 정원
http://blog.daum.net/paulsong/15862189
정원이 아름다운 사찰이라는 '내소사'
일본 아타미 바이엔의 한국정원
프랑크푸르트 ‘한국정원’
궁궐의 정원이 아닌 한국인의 정원은 실상 집안에 있지 않고 밖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 열어 보이는 풍경이 정원인 것...
차경(借景), 자경(自景), 한옥의 창 http://blog.daum.net/paulsong/15862134
정원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런 곳을 찾아 집을 짓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