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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 麗 (AD.918 ~ AD.1392년:475년) | |
율곤학회 | |
高 麗 (AD.918 ~ AD.1392년:475년)
① 왕건(王建)의 출생과 혈통 ※ 고려도경(高麗圖經)에 있는 왕씨계보(王氏系譜)에 의하면, 왕씨(王氏)의 선조는 여기서 개마고려(蓋馬高麗)라 하는 것은, 개마대산(蓋馬大山)에 있던 고구려(高句麗)라는 뜻이다. 후한서(後漢書) 동이전(東夷傳)에 의하면, 개마대산은 개마현(蓋馬縣)에 있다고 되어있다. 개마현은 현도군(玄菟郡)에 속하고, 개마대산이 있던 곳은 평양성(平壤城) 서쪽이며, 중국지도를 보면 섬서성(陝西省) 서안에서 서남쪽 태백산(太白山)이 있는 부풍현(扶風縣) 일대에
※ 왕씨의 선조들은 고구려인이다. 그러나 고구려가 망하자 건현(建賢)이란 사람이
※ 고려도경에서 보면 건원도주도독충대의군사(建元菟州都督充大義軍使)가 고려왕(高麗王)으로
※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고려도경에 의하면 북송(北宋)의 태조(太祖)였던 말하자면 사마악의 후손이 후한 3대 건우(乾佑)인 유승우(劉承佑)로 이어지고,
※ 성씨가 바뀌는 것은 어떤 나라에 등극할 때 그 나라 왕의 성(姓)을 따르는 것이 상식이다. 예를 들자면 황제(黃帝 BC.2679년)의 아들이 25명이었는데, 성(姓)을 받은 아들은 고작 그리고 고구려의 시조는 고신씨(高辛氏 BC.2482년)로 황제의 증손자이다.
※ 제왕운기(帝王韻紀) 본조군왕세계년대(本朝君王世系年代)에서는, 그 후 경강대왕(景康大王)에서 마지막 당세조(唐世祖)인 장종(蔣宗) 이존욱(李存勖)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 나타난 태조왕건에 대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왕씨(王氏)는 성이며, 건(建)은 죽은 후의 휘호이다. 왕씨는 한주송악군(漢州松嶽郡) 사람으로, 금성태수(金城太守)였던 아버지 융(隆)의 장자이며, 이때의 금성(金城)은 지금의 감숙성(甘肅省) 난주(蘭州)임을, 후한서와 여러 정사(正史)에서 당(唐)나라 희종(僖宗) 이현(李儇) 건부(乾符 AD.874~879년) 4년,
※ 본문에서 한주송악군(漢州松嶽郡) 사람이라 했으므로, 한주(漢州)의 지명을 찾아보았다. 고조선 때부터 삼한(三韓)과 삼국 때까지 한반도에는 한주라는, 한자로 된 지명은 없었다. 중국고금지명대사전 1103쪽에, 한주(漢州)의 지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당(唐)나라 때 두었던 곳으로, 당나라 때 이름을 고쳐 덕양군(德陽郡)이라 했다.
※ 한주(漢州)를 당나라 때 덕양군(德陽郡)이라 했으므로, 중국고금지명대사전 1,161쪽에 있는 덕양군은 후한 때 사천성(四川省) 자동현(梓潼縣) 북쪽에 두었다가, 그후 지명을 옮겼다. 앞에서 보는바와 같이 한주 송악군(漢州松嶽郡)은 중국대륙에 있는 사천성 성도(成都)임을 그러기에 태조 왕건은 한주 송악군에서 태어났으므로, 묘 역시 사천성 성도에 있는 것은
※ 고려사(高麗史)를 살펴보기로 한다. 唐나라 세조의 장자(長子) 어머니는 당나라 원덕대왕(元德大王)이었던 여기서 당나라 세조는 당무후(唐武后)인 무종(武宗 AD.841~860년) 이전(李瀍)인 그러니까 당나라 세조였던 무종(武宗)의 아들인 태조 왕건은 희종(僖宗 AD.874~877년)인 고로 AD.877년 정유년(丁酉年) 음력 正月 十四日에, 왕건은 당나라 혈통으로 한주 송악군에서
※ 고려태조 왕건은 고구려의 혈손(血孫)으로 고려(高麗)를 지금의 사천성 성도(成都)인 최초에는 전촉(前蜀) 나라를 세웠으나, 후당(後唐)에게 망한 후 궁예(弓裔)의 부하로 들어가 태조왕건이 전촉(前蜀)을 건국한 연대는 AD.918년으로, 그러므로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서는 태조왕건의 건국연대를 전촉(前蜀)을 세운
※ 이상에서 보는바와 같이 고려는 고구려의 혈통을 이어 동진(東晋)에 이르고, 왕건의 아버지는 금성태수로 있다가 후당(後唐)의 왕으로 등극한 셈이다.
※ 한무제(漢武帝 BC.140~135년)는 우거(右渠)로서, 조선을 멸한 후 고려현(高麗縣)에 그리고 후한(後漢)인 동한(東漢)이 실질적인 고구려로 내려왔다. 고려태조 왕건의 선조는 동진(東晋)을 거쳐 당나라의 혈통으로 이어지는 동안 나당(羅唐)에 또한 무종의 장남으로 태어난 왕건은 후당(後唐) 장흥(長興 AD.930~933년) 2년에 고려왕으로
※ 태조왕건의 계보와 건국은 이상과 같이 이루어졌다. 그러기에 고려는 옛 서경(西京)인 서안(西安)에서 천자국(天子國)으로서서 위업을 떨치게 되었다. 고로 한국의 국제 칭호는 고려인 코리아로 현재까지 불리게 된 것이다.
② 왕건의 활동무대와 지명
※ 왕건은 기원후 877년 정유년(丁酉年) 음력 정월(正月) 십사일(十四日), 태조왕건은 한주(漢州) 송악군(松嶽郡)에서 태어났다고 했으므로, 그곳이 어디인지를
漢州松嶽郡. 唐改曰 德陽郡. 宋曰 漢州德陽郡. 元曰 漢州. 明淸皆屬. 四川省成都府.
※ 왕건이 전촉(前蜀) 나라를 세웠으나 후한(後漢)에 의해 망한 후, 궁예의 장수로 활약할 이 지명은 삼국사기・고려사・고려도경・삼국유사・고려사절요 등에 나타난 것을 정리해 본 것이다. 굳이 지명을 정리하고자 한 것은 과연 고려가 한반도에 있었던 것인지,
※ 남주(南州)는 사천성(四川省) 만현(萬縣) 서쪽이다. 송(宋)나라 때 다시 고쳐 장주(漳州)라 했다가, 송나라는 다시 기미주(羈縻州)라 했는데,
※ 철원(鐵圓)은 철주(鐵州)로서, 조선의 평양(平壤), 철원(鐵圓)은 옛 고구려의 땅으로서 궁예가 태봉국(泰封國)을 세운 곳이라고,
※ 금성(金城)은 왕건의 아버지인 융(隆), 즉 세조였던 당나라 무종(武宗 AD.841~846년)이 또한 금성현(金城縣)은 감숙성 고란현(皐蘭縣) 西南이라고, 金城은 왕건의 아버지인 세조 무종(武宗)의 말에 따르면,
※ 광주(廣州), 충주(忠州), 청주(靑州), 괴양(槐壤)과 당성(唐城) 즉 당나라 성 등을
※ 광주(廣州)는 하남성(河南省) 노산현(魯山縣)과 양성현(襄城縣)으로 되어있는데,
※ 충주(忠州)는 사천성(四川省) 충현(忠縣)에서 다스린 것으로,
※ 청주(靑州)는 산동성(山東省) 익도현(益都縣)과 강소성(江蘇省) 단도현(丹徒縣) 東南 80리와
※ 괴양(槐壤)은 어디인지 기록이 없다.
※ 당성(唐城)은 당성현(唐城縣)으로 호북성(湖北省) 수현(隋縣) 西北.
※ 광주(光州)는 후위(後魏) 때 산동성(山東省) 액현(掖縣), 즉 지금의 산동반도 내주(萊州)이다.
※ 금성군(錦城郡)은 금현(錦縣)이며, 요(遼)나라 때 영락현(永樂縣)이라 했다. 영락현(永樂縣)은 하북성(河北省) 서수현(徐水縣)이며, 금성(錦城)을 금주(錦州) 또는 조양현(朝陽縣)이라 했으며,
※ 조양현(朝陽縣)은 하남성(河南省) 등현(鄧縣) 東南 80리와, 그러나 조양현(朝陽縣)은 지금의 서안(西安)이다(왕성(王城)).
※ 도하현(徒河縣)은 교하현(交河縣)으로서 신강성(新疆省) 토노번현(吐魯番縣) 서쪽인 (예) 조선현(朝鮮縣)을 보면 한나라 때와 후한(後漢) 시까지 진(晉)나라가 있던 곳은 왕검성(王儉城)은 왕험성(王險城)이라고도 하며, 일명 험독성(險瀆城)이라 하여,
※ 나주(羅州)는 치염강(治廉江)이 흐르는 치수(治水)이며,
※ 양주(良州)는 양성현(良城縣)으로, 강소성(江蘇省) 비현(邳縣) 북쪽 60리인 것으로 되어있다.
※ 상주(尙州)는 하북성(河北省)과 산서성(山西省) 북쪽 경계 지역이며,
※ 정주(貞州)는 정풍주(貞豊州)로서, 귀주성(貴州省) 흥의부(興義府)로, 일명 정풍현(貞豊縣)이다.
※ 등주(登州)는 산동성(山東省) 모평현(牟平縣)이다.
※ 운주(運州)는 운성현(運城縣)으로서 산서성(山西省) 안읍현(安邑縣) 西南 15리이며, 특히 운주는 신라 56대 경순왕 8년 9월에 운주계(運州界) 30여 개나 되는 군과 현을,
※ 청주축나성(靑州築羅城)은 옛 九州의 하나이다.
※ 웅주(熊州)는 하남성 노씨현(盧氏縣) 西南 70리에 있으며,
※ 염주(鹽州)는 한(漢)나라 때 두었던 고성현(高城縣)으로, 송나라 때는 다시 지명을 고쳐 서하(西夏)라 했다. 지금의 섬서성 북쪽인 내몽고(內蒙古)와의 접경지대를 말한다.
※ 위주(謂州)는 지명이 보이지 않음. 그러나 고려사(高麗史)에는 땅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 아주(牙州)는 아산(牙山)으로 흠현(欽縣) 남룡문(南龍門) 동쪽 60리로 되어있다. 한편 마안산(馬鞍山)으로 되어있어, 중국고금지명대사전을 찾아보았더니 다음과 같이 마안산(馬鞍山)은 아산(牙山)으로 처음 있던 곳부터 순차적으로 지명이 옮겨진 것을 번호 1.감숙성 경천현(涇川縣) 西北. 2.감숙성 예현(禮縣) 北 15리. 3.산서성 편관현(偏關縣) 東 70리. 4.하남성 무양현(舞陽縣) 西南 40리. 5.호북성 의창현(宜昌縣) 西北 60리. 6.호북성 포은현(蒲圻縣) 西 2리. 7.호북성 무창현(武昌縣) 南 90리. 8.호남성 봉황현(鳳凰縣). 9.산동성 봉래현(蓬萊縣) 南 15리. 10.강소성 곤산현(崑山縣) 西北. 11.강소성 강녕현(江寧縣) 西北 10리. 12.강소성 남통현(南通縣) 南 낭산(狼山) 西. 13.복건성 장락현(長樂縣) 南. 14.광동성 구룡(九龍) 北. 15.광동성 오천현(吳川縣) 南 80리. 16.광동성 성치(省治) 北. 17.운남성 은안현(恩安縣) 西南 30리. 18.봉천(奉天) 금현(錦縣) 西南 50리. 19.길림성 길림현(吉林縣) 西南 70리. 20.길림성 연길현(延吉縣). 21.길림성 길림현(吉林縣) 西南 70리. 22.흑룡강성(黑龍江省) 철려설치국(鐵驪設治局) 東北. 이와같이 지명이 옮겨진 것을 볼 수 있다.
※ 진주(鎭州)는 한나라 때 진주(鎭州). 후일 승격시켜 진정부(眞定府). 특히 고려태조 왕건 때 홍유(洪儒) 장군과 유검필(庾黔弼) 장군이,
※ 개주(開州)는 고려 경주(慶州)이며, 본시 예맥(濊貊)의 땅이며,
※ 예산현(禮山縣)은 호북성 응산현(應山縣) 東南으로 되어있다.
※ 平壤은 섬서성 서경(西京)인 장안성(長安城). 즉 지금의 서안(西安)으로 되어있다.
※ 강주(康州)는 당나라가 두었던 남강주(南康州)라고 했다. 이곳은 지금의 광동성 덕경현(德慶縣)에서 다스렸다고 되어있다.
※ 명주(溟州)는 강릉(江陵)이다. 호북성 강릉현(江陵縣)에서 다스렸다.
※ 일월사(日月寺)는 일월산(日月山)에 있으며, 이곳은 감숙성 서녕현(西寧縣)에서 다스렸으며,
※ 서경(西京)은 섬서성 서안(西安)임. 즉 평양성(平壤城)과 장안성(長安城)이 있던 도시.
※ 순주(順州)는 호북성 수현(隋縣) 北 80리.
※ 백제 연산진(百濟燕山鎭)은 하북성 계현(薊縣) 東南. 연산(燕山)은 흡사 긴 뱀과 같고, 1천리나 되며 이한(夷漢) 즉 한(漢)나라 사람으로 동이족에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는 태조왕건 8년 10월에 고려 서대장군(西大將軍)이었던 고로 백제 연산진은 지금의 북경(北京) 지방인 하북성 계현(薊縣) 東南이라고 되어있다.
※ 역주진(歷州鎭)은 역현(歷縣)으로 하북성 고성현(故城縣) 北.
※ 용주(龍州)는 후위(後魏) 때 두었던 강유군(江油郡)이나, 서위(西魏) 때에는 용주(龍州)라 함.
※ 청주(靑州)는 산동성 익도현(益都縣) 西北 8리. 또는 산동성 낙릉현(樂陵縣) 西南 30리.
※ 공산(公山)은 문산(文山)과 같은 곳으로 복건성 우계현(尤溪縣)이라고 되어있다.
※ 해주(海州)는 본래 옥저국(沃沮國)의 땅임. 발해(渤海) 때 남경(南京)이며 남해부(南海府)라 했으며, 명현(溟縣)을 위주(爲州)에서 다스렸다. 금(金)나라 때는 징주(澄州)라 했고, 명나라 때는 해주(海州)라 했다.
※ 청구(靑丘)는 신선(神仙)이 살던 곳으로 장주(長州)라 했다.
※ 경산(京山)은 호북성 경산현(京山縣) 東 10리로 되어있다.
※ 패강(浿江)은 패수(浿水)로서 한나라 위(魏)나라 시대 때의 패수(浿水)이다. 도읍지가 있던 서경(西京)에는 평양성(平壤城)이 있었다.
★ 삼국사기에는 도패대이수(渡浿帶二水)라고 하여, 패수(浿水)와 대수(帶水)라고 하고, 한반도에 있는 인천(仁川)이 미추홀(彌鄒忽)이 아니라, 패수(浿水)와 대수(帶水)가 있는 곳이
※ 패수현(浿水縣)은 한(漢)나라가 두었던 패수(浿水)의 이름이며, 여기서 의주(義州)의 주위에 있는 곳에 압록강(鴨綠江)이 있다고 했는데,
※ 압록강(鴨綠江) 일대를 한(漢)나라와 위(魏)나라 이후부터 낙랑군(樂浪郡)에서 다스렸다고
※ 갑여산(甲如山)은 갑산(甲山)으로 산동성 치천현(淄川縣) 西南 30리로 되어있다.
※ 탕정군(湯井郡)은 탕산(湯山)으로, 섬서성 서경(西京)으로 경조(京兆) 완평현(宛平縣)
※ 옥산성(玉山城)은 옥산(玉山)으로 직예성(直隸省) 만성현(滿城縣) 북쪽 15리로 되어있다. 한편 옥산(玉山)은 주(周)나라 때까지 서왕모(西王母)가 살고있던 곳으로 숙주(肅州),
※ 백주(白州)는 한나라 때 남주(南州)라 했다가, 이름을 고쳐 백주(白州)라 했다.
※ 노주(路州)는 노현(路縣)으로, 한나라가 두었던 곳인데, 섬서성 서경(西京)인 경조(京兆)로
※ 진주(眞州)는 사천성 무현(茂縣) 西北. 일면 진부(眞符).
※ 양주(陽州)는 양현(陽縣)으로 주나라 때의 양국(陽國)이다.
※ 황주(黃州)는 수나라가 이름을 고쳐 옥주(玉州)라 했다. 이곳은 옛날에 다스리던 곳이 호북성 황피현(黃陂縣) 동쪽이다.
※ 과주(過州)는 과(過)나라의 옛 이름이다. 이곳은 산동성 액현(掖縣) 북쪽으로 되어있다.
※ 경주(慶州)는 수나라 때 다시 찾아 홍화군(弘化郡)이라 했다.
※ 숙주(肅州)는 감숙성 예천군(醴泉郡・縣)임.
※ 경성(京城)은 강소성 진강현(鎭江縣)에서 다스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 이천(利川)은 이천현(利川縣)으로, 본래 만이(蠻夷)의 땅을 말한다.
※ 삼한(三韓)은 주무왕(周武王)의 아들 대부한만(大夫韓万)과 성왕(成王)의 동생 ★ 조(趙)나라는 산서성 조성현(趙城縣) 西南에 도읍했다. 이곳은 산서성 태원현(太原縣) 북쪽이다. ★ 위(魏)나라는 하남성 낙양(洛陽)에 도읍했다. ★ 한(韓)나라는 하북성 고안현(固安縣) 東南으로, 한(漢)나라 때 삼한(三韓)의 땅이라고, 다시말해 진(晋)나라가 한(韓)이며, 위(魏)・조(趙)나라도 같다. 그후 춘추시대(春秋時代)에 들어와 섬서성 한성현(韓城縣) 남쪽 18리에 도읍했다. ★ 주(周)나라 위열왕(威烈王 BC.425~402년) 23년 진(晋)나라에서 한(韓)・위(魏)・조(趙) 나라가 그후 하남성 우현(禹縣)으로 옮겨졌으나, 구한(九韓), 즉 아홉의 한국(韓國)으로 되었다가
※ 황룡사(皇龍寺)는 삼국유사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신라 24대 진흥왕(眞興王 AD.537년) 17년 癸酉 二月 하곡현(河曲縣) 사포(絲浦)에 ★ 여기서 하곡현(河曲縣)은 중국고금지명대사전 514쪽에 의하면,
※ 연산(連山)은 연주(連州)로서, 한(漢)나라 때 두양현(杜陽縣)으로 기록되어 있다. 송(宋)나라 때 와서 연주연산군(連州連山郡)이라 하다가, 청(淸)나라 때는 직예주(直隸州)라 했다. 이곳은 사천성 균연현(筠連縣)의 경계라고 되어있다. 한편 한(漢)나라 때 두양현(杜陽縣)이라고 했는데, 두양현(杜陽縣)은 호남성 침주(郴州)이며, 그렇다면 연산(連山)에 있는 연주(連州)는 지금의 호남성 침주(郴州)임을 나타내고 있다.
※ 황산군(黃山郡)은 황산궁(黃山宮)으로, 한나라 혜제(惠帝) 때 세운 곳으로 섬서성 한편 황산군(黃山郡)은 황산(黃山)으로, 중국고금지명대사전 975쪽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① 섬서성 무공현(武功縣) 북쪽. ② 산서성 호관현(壺關縣) 남쪽 28리. ③ 하남성 급현(汲縣) 西北 10리. ④ 산동성 액현(掖縣). ⑤ 하남성 확산현(確山縣) 東南. ⑥ 강소성 강음현(江陰縣) 북군산(北君山) 北 5리. ⑦ 강소성 무진현(武進縣) 西北 70리. ⑧ 안휘성 흡현(歙縣) 西北. ⑨ 안휘성 합비현(合肥縣) 東 129리. ⑩ 호남성 안향현(安鄕縣) 北 60리. ⑪ 절강성 여항현(餘杭縣) 西南 25리. ⑫ 운남성 여강현(麗江縣) 西 2리
★ 백제의 계백장군과 당나라 소정방, 그리고 신라군이 맞서 싸운 곳이 황산(黃山)의 들이라고
※ 평주(平州)는 진(晋)나라 때 나누어 둔 유주(幽州)라 했다.
※ 원주(原州) 흥법사(興法寺)는 감숙성 고원현(高原縣)에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 이 외에 고려태조 왕건 때의 지명을 총 정리해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1.위주(爲州). 2.삼문산(三門山). 3.삼능산(三能山). 4.금산(金山)은 7군데나 된다. 5.금산사(金山寺)는 감숙성 고란현(皐蘭縣) 西北이다. 6.지리산(地理山). 7.무주(武州)는 백제 땅으로, 호남성 상덕현(常德縣)과 산서성, 8.전주(全州)는 광서성 계림(桂林)이다. 9.공산(公山)은 문산(文山)으로, 산동성 평도현(平度縣)과 강서성, 복건성에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 10.고주현(故州縣). 11.계림(雞林)은 옛 신라의 이름이며, 탈해니사금(脫解尼師今) 9년에 시림(始林)이라 했으며, 12.순주(巡州)는 서경(西京)에 있는 순주진(巡州鎭)이다. 13.기주(基州)는 호북성 종상현(鐘祥縣) 남쪽이다. 14.강주(剛州)는 강현(剛縣)으로, 산동성 영양현(寧陽縣) 東北 35리이며, 15.가은현(加恩縣). 16.고창군(古昌郡). 17.모산성(牟山城)은 백제 땅으로, 산동성 모평현(牟平縣) 東北 3리이다. 18.현도주(玄菟州)는 서경(西京). 19.범주(犯州). 20.서천축(西天竺). 21.신흥사(新興寺)는 신흥군(新興郡)에 있으며, 이곳은 호북성 강릉현(江陵縣) 3리. 22.흥법사(興法寺), 세달사(世達寺), 흥교사(興敎寺), 흥선사(興善寺)는 섬서성 장안현(長安縣) 23.하주(下州). 24.목포(木浦). 25.도산성(島山城). 26.예산현(禮山縣). 27.대흥사(大興寺)는 섬서성 장안현(長安縣). 28.오관산(五冠山). 29.배산성(拜山城). 30.부산(負山). 31.탕정군(湯井郡). 32.벽진군(碧珍郡). 33.곡성(谷城). 34.곡죽령(谷竹嶺). 35.진국성(鎭國城)은 진국군(鎭國郡)으로, 섬서성 화현(華縣). 36.통덕진(通德鎭). 37.흥덕진(興德鎭)은 흥덕현(興德縣)으로, 광서성 흥업현(興業縣) 南. 38.아차성(阿次城). 39.재암성(載巖城). 40.병산(甁山). 41.동주군(東州郡). 42.안수진(安水鎭). 43.능도(陵島). 44.연주(連州)는 연산(連山)으로, 사천성 균연현(筠連縣) 경계. 45.저산도(猪山島). 46.대우도(大牛島). 47.혹도(鵠島). 48.영청현(永淸縣) 49.혜산성(橞山城). 50.아불진(阿弗鎭). 51.성주진(省州鎭). 52.수완성(修完城). 53.예성강(禮成江). 54.양주(楊州), 55.천왕사(天王寺). 56.개태사(開泰寺). 57.탐라국(耽羅國). 58.선교사(禪敎寺). 59.백성군(白城郡). 60.외주(外州). 61.죽주(竹州). 63.괴양(槐壤). 64.흥주(興州) 부석사(浮石寺)는 봉주(峯州)이며, 섬서성 약양현(略陽縣). 65.세달사(世達寺)는 흥교사(興敎寺)로, 섬서성 장안현(長安縣) 南 50리 번천(樊川) 北. 66.이천(利川). 67.치악산(雉岳山). 68.미리사(美理寺). 69.성산진(星山陳). 70.마리성(馬利城). 71.청천강(淸川江). 72.저족성(猪足城). 73.성천성(狌川城). 74.부약성(夫若城). 75.거성(居城). 76.내성현(奈城縣). 77.악곡성(岳谷城). 78.어진현(御珍縣). 79.울도현(鬱島縣). 80.의성부(義城府). 81.주천현(酒泉縣)은 감숙성. 82.진보성(眞寶城). 83.한도강(恨島江) 등.
모두 합쳐 148개소의 지명과 성(城), 그리고 절과 강(江)으로 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태조왕건과 궁예(弓裔), 견훤(甄萱) 등이 활동한 지역과 강역 등을 보면, 한가지 아쉬운 점은 현재까지 중국에는 많은 지명을 옮기고 바꾸고 없애버리는 바람에, 하지만 현재까지 나타나 있는 지명과 강역, 현군(縣郡), 그리고 절과 강(江) 등을 보면, 특히 궁예(弓裔)가 어릴 때 도망가 살았던 세달사(世達寺)는 흥교사(興敎寺)로,
③ 궁예(弓裔) 어릴 때 도망가 살았던 세달사(世達寺)는 흥교사(興敎寺)로, 섬서성 장안현(長安縣) 남쪽 50리
※삼국사기 열전 제 10편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궁예는 본래 신라 사람이다. 어느 해에 태어났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음력 5월 5일에 태어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궁예가 외가에서 태어날 때 집 위로 흰빛이 무지개처럼 길게 하늘로 향한 것을 본 관리가 말하기를, 이 말을 들은 왕은 중사(中使)라는 관리를 시켜 궁예를 죽이라고 명하였다. 이때 유모가 궁예를 밑에서 받다가 잘못하여 손가락으로 궁예의 한 눈을 찔렀는데, 궁예는 이때부터 한 눈을 실명한 채 10여 세가 되었는데, 노는 것이 지나칠 정도로 위험스러워, 유모가 나라에서 버린 자식임을 실토하자, 궁예는 참지 못했다.
★ 세달사(世達寺)인 흥교사(興敎寺)는 중국고금지명대사전 1236쪽에 의하면,
※ 궁예의 출생한 연도는 밝혀져 있지 않으나, 필자가 조사해 보니, 연대를 추적하여 고증해본 결과 후당(後唐) 대순(大順)의 연대가 AD.890년이며, 간지(干支)로 따져보면 기유년(己酉年) 음력 5월 5일 생으로 밝혀지는 셈이다.
④ 견훤(甄萱) 상주(尙州)는 하북성과 산서성의 북쪽 경계이며,열하파림(熱河巴林)의 동북 140리 ※ 견훤(甄萱)은 상주 가은현(尙州加恩縣)에서 출생한 것으로, 삼국사기 열전에는 기록되어 있다. 상주(尙州)가 어디인지 살펴보기로 한다. 중국고금지명대사전에 의하면, 상주(尙州)는 하북성과 산서성의 북쪽 경계이며,
견훤의 성은 이씨(李氏)로서,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힘은 장사였다고 되어있다. 견훤은 당나라 소종(昭宗) 때 경복(景福) 원년(元年)은 기원후 892년이며, 견훤은 진(晋)나라 천복(天福) 원년인 45세 때 멸했는데, 진나라 천복원년은 AD.936년이다.
※ 견훤이 활동한 지역을 살펴보면, 경서남주현(京西南州縣), 진주(珍州), 무주(武州), 공주(公州), 전주(全州), 등주(登州), 성산진(星山陳), 미리사(美理寺), 평양(平壤), 패강지수(浿江之水)란 부산(負山), 금성(金城), 갑여산(甲如山), 조어성(造於城), 연산군(燕山郡), 마리성(馬利城),
※ 견훤이 태어나서 활동한 지명이 많이 있는데,
高 麗 年 代 表
(一名 後高句麗) (건국 A.D.935년, 亡 A.D.1395년 : 475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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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04월 26일 23시 13분 조회:20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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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동북공정 내용이 포함...고구려 고씨는 황제의 후손 고신씨....ㅋㅋ... 무개념 글 삭제 바람...
왜?..초록불이 그렇게 하라던가요?
또 가져 올께...
ㅉㅉ .... 황제의 후손 고신씨와 고구려 고씨가 연관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바로 짱궈 사회과학원의 동북공정 왜곡 내용 중 대표적인 것인데...그딴걸 옹호하는 쓰레기 환빠글...게재 그만 하시지ㅣ....
식민사학의 주구가 길길이 날뛰는것을보니 이게 맞는가 보군.
왕건의 혈통과 가계에 대해서는 車(柳?)씨 족보에 또다른 설화(?)가 실려있지요. 하나라때 백민장 왕조명으로부터 시작해서 은나라때의 태행산선인 왕수긍으로 이어지고...왕수긍에서 다시....??..블라블라....박혁거세때 왕몽일(차무일)로 이어지고...암튼....기억이 잘 안나지만....장대한 계보설화가 전해오지요....날조된 설화로만 치부하기엔 뭔가 예사롭지 않은 내용과 명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