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2016년 다해 10월일 토요일
[(백)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선교의 수호자) 대축일]
[수도회] 주님 자비에 의탁하며 걸어가는 사랑의 길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제1독서 이사 66,10-14ㄷ
○ 제2독서 1코린 7,25-35
† 복음 마태 18,1-5
◈ 오늘의 묵상
“너희는 젖을 빨고 팔에 안겨 다니며, 무릎 위에서 귀염을
받으리라.” 가장 순수한 어린아이의 모습 속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누릴 영광을 선포합니다. 세상 걱정 없이 평화롭게
사랑받으며 사는 것이 우리가 꿈꾸는 하늘 나라일지도 모릅니다.
바오로 사도는 결혼한 이들이나, 독신을 선택한 이들이 하느님
나라를 향해 살고자 할 때 겪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모르지
않았습니다.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는 말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품위 있고 충실하게” 주님을 섬기기
위해 세상 걱정에 너무 깊이 빠지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수도원 안에서 하느님을 향한 오롯한 사랑으로 스물다섯이라는
짧은 생애를 불태운 ‘소화 데레사’ 성녀는 자신의 죽음 직전에
믿음의 확신 곁에 도사린 유혹을 다음과 같은 짧은 말로 표현했다고
합니다. “지금 유물론자들의 망령이 나를 엄습합니다.” 세상에
하느님이 없다는 유혹, 평생을 하느님 안에서 살았지만, 하느님
품안에 안길 그 순간에 오직 물질만 있을 뿐이라는 유혹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었던 것도 나약한 인간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성녀의 단순함 때문이었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하늘 나라의 신비를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셨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하느님을 만나는 길이 지극히
단순하고 오롯한 어린이의 마음이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십니다.
복잡한 세상에 단순함이 때로는 길이 되기도 합니다. 선교는 하느님
사랑에 뿌리를 두고 단순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애덕을 실천할 때
결실을 맺기 때문입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 매일 미사 -
◈ [인천] 어린이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2016년 10월1일 토요일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선교의 수호자) 대축일
제1독서
<보라, 내가 예루살렘에 평화를 강물처럼 끌어들이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66,10-14ㄷ
제2독서
<처녀는 주님의 일을 걱정합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7,25-35
복음
"너희가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1-5
제가 어렸을 때는 프로레슬링이 큰 인기였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김일 선수는 그 인기가 정말로 대단했지요. 상대방의 반칙으로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었어도 포기하지 않고 불사조처럼 일어나
상대방을 향해 박치기를 했고 결국 승리하는 모습은 진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박치기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분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살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되셨습니까?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에 이미 우리보다 먼저
하늘나라에 가셨습니다.
병에 걸리지 않을 강하고 건강한 육체가 있을까요? 그러한 바람만
가지고 있을 뿐, 인간은 누구나 다 병에 걸리고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건강만이 아닙니다.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재물이
있을까요? 또한 무너지지 않는 권력은 어떻습니까? 이런 것들은
사실 순간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모든 것이 무상하고
순식간에 지나간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지키겠다고 모든 노력을 기울이다가 얼마나 실망하고 절망에
빠집니까?
영원한 것은 영적인 것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혼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내 영혼에 평화와 기쁨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들에 열중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영혼이
아니라 세상의 물질적인 것들과 세속적인 것들에만 여전히 신경
쓰고 있을 뿐입니다.
나의 영혼에 집중하는 방법은 주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는 삶, 주님께서 가장 강조하셨던 사랑의
삶을 사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 어떻습니까? 그렇게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세상의
것들을 무시하고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다고 합니다. 처음에
가지고 있던 순수함이 사라져서 세상의 기준으로만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대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성녀는 25년이라는 짧은 삶을 사셨지만 일상의 단순하고
작은 일에 충실하면서 끊임없이 기도하면서 처음에 가지고 있었던
순수함을 잃지 않고 사셨습니다. 그 순수함이 바로 오늘 복음의
예수님 말씀처럼 어린이처럼 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즉,
자신을 낮추고 하느님 아버지께 철저하게 의지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여기에 한 가지 더 말씀하시지요.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힘없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거부하지 않고 함께 하는 사람이
바로 주님과 함께 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어린이처럼 단순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삶이 바로 내
영혼을 주님께로 향하게 합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소외된 이들과
함께 할 때 내 영혼은 언제나 주님과 함께 하게 될 것입니다.
순간의 만족을 위한 삶이 아니라, 영원한 삶을 지향하면서 지금을
기쁘게 살아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인생은 당신이 마음먹는 순간 결정된다(앤서니 로빈슨).
리지외의 소화데레사.
단 하나의 수(조훈현,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 중에서)
바둑에서 제한 시간은 어떤 의미일까? 제한 시간이 길면 그만큼
수읽기가 깊어진다. 바둑을 예술로 생각하는 일본은 긴 수읽기를
통해 보다 완벽하고 능률적인 수를 생각해 내는 걸 바둑의
‘도’이자 ‘미’라고 여겼다.
반대로 제한 시간이 짧은 속기 바둑은 깊은 수읽기보다 경험과
직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 역시 중요한 훈련이지만 아무래도
실수가 나올 확률이 높다. 속기 바둑과 장고 바둑 중 무엇이
옳으냐고 묻는다면 그저 웃을 수밖에,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형식일 뿐이다. 프로 기사라면 두 가지 다 배워야 한다.
우주류(바둑판 중앙에 집 짓는 것을 중요시하는 기풍)로 유명한
다케미야 마사키 9단은 단 하나의 수를 결정하기 위해 제한 시간
8시간 중 5시간 7분을 쓴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정말 5시간 7분 동안 바둑판만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바둑알
하나 놓는 것이 뭐 그렇게 중요하다고 5시간 넘게 고민한 것일까?
하지만 그 한 수의 차이는 실로 지대하다. 당장은 그저 돌 하나의
위치일 뿐이지만 넓은 관점에서 보면 그것이 승부에 결정적 차이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것은 어떤 바둑을 하겠다는
그의 선택이기도 했다. 바둑의 미학을 중시했던 그는 5시간 7분
동안 머릿속에서 수백 판의 바둑을 두고 허물기를 반복했을 것이다.
마침내 놓은 결정의 한 수, 그것은 세상을 향해 나는 이런 바둑을
펼쳐 보겠다. 이런 인생을 살아가겠다는 그의 선언이었다. 결국
그는 이 바둑에서 승리했다.
바둑에서 한 수는 매우 중요하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
안에서 때로는 결정적인 한 수가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어떻게 판단하고 결정하셨는지요? ‘장고 끝에 악수를 둔다.’는
말도 있지만,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가장 좋은 결정을 할 수
있는 신중함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테레사 성녀의 어렸을 때 모습.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 [수도회] 주님 자비에 의탁하며 걸어가는 사랑의 길
- 기 프란치스코 신부
2016년 다해 10월1일 토요일
아기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대축일 마태 18,1-5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마태 18,3)
주님 자비에 의탁하며 걸어가는 사랑의 길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마태 18,3-4) 곧 회개하여 새 사람이 되고, 자신을
낮추어 하느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함으로써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리지외의 성녀 데레사는 이런 예수님의 말씀을 철저히 살아냈던
분입니다. 짧은 생애를 사셨던(1873-1897) 이 성녀는 자신을 주님께
온전히 맡기고 단순하게 사랑한 예수님의 작은 꽃이었습니다. 그는
“나의 천국은 항상 주 앞에 머물러, 그분을 나의 아버지라고 부르며,
그분의 어린아이가 되는 것이니, 나의 천국은 내 안에 있나이다."
라고 고백합니다.
성녀는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어 하느님을 향한 작은 길을
걸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작은 길로 들어가라. 나는
나의 작음에도 불구하고 성덕을 그리워할 수 있습니다. 나를 크게
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나의 모든 불완전과 함께 나인 그대로
견뎌내야 합니다.”
“성덕은 이런저런 실천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하느님의
품에 작고 겸손하게 하는 마음의 자세에 달렸습니다. 우리의 약점을
의식하고 아버지의 좋으심에 담대함까지 신뢰하는 데 달렸습니다.
예수님은 커다란 행동을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오로지 위탁과
감사만을 요구하십니다.”
이렇듯 성녀의 일생은 “나의 하느님, 저는 당신이 원하시는 것을
모두 다 선택합니다."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는 어린아이처럼
나약한 자신을 안아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알고 주님께 자신을
의탁하며 주님께서 바라시는 사랑을 위해 자신을 봉헌했습니다.
그는 “모든 황홀한 환시보다도 숨은 희생의 단조로움”이 한 영혼을
회개시킬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성녀는 말합니다. "사랑은 모든 성소를 다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들었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이요, 모든 시간과 장소를 끌어안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1897년 9월 30일 숨을 거두며
말합니다. "나의 하느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의 성소는 사랑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교회의 품 안에서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저의
어머니이신 교회의 심장 안에서 저는 ‘사랑’이 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주인으로 여기는 착각,
가치관의 혼돈, 자본의 우상화, 인간존엄성의 상실과 사회 전반에
걸쳐 드러나는 윤리의식의 실종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모두 성녀의 삶을 본받아 절망 대신 하느님께 대한 철저한
믿음과 의탁, 그리고 자기중심적이고 이해타산적인 논리를 내려놓고
단순하게 사랑을 실천하도록 해야겠습니다.
성녀처럼 하느님의 자비에 철저히 그리고 단순하게 자신을
내맡기며, 하느님께서 바라신 사랑의 성소를 온 마음과 정신과
행동으로 살아냄으로써 이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어야겠습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자신의 불완전하고 나약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함으로써 참 기쁨을 선포하는 우리였으면 좋겠습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
◈ [수도회] 알타반의 말씀사랑
2016년 다해 10월1일 토요일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선교의 수호자) 대축일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마태 18,1)
10월입니다.
가을의 절정을 맞이하는 소화 데레사 성녀 축일에
옛적에 굿뉴스에 올렸던 가을 시를 다시 꺼내어 나눕니다.
모두들 멋진 가을 꾸미소서.
<이 가을엔>
주님!
이 가을엔 더 사랑하게 하소서.
사랑받기 위해 사랑하지 않게 하소서.
되돌려 받기 위해 사랑을 베풀지 말게 하소서.
그냥 사랑하게 하소서
당신이 그렇게 나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그렇게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하는 게 좋아서 그냥 사랑하게 하소서.
주님!
이 가을엔 더 너그러워지게 하소서
내가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기보다
다른 사람이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람으로써 더 너그러워지게 하소서.
내 것에 집착함으로써 좁은 속이 더 좁아터지지 않게 돌보시고
남의 사정에 더 집착하고 배려함으로써
내 좁은 속이 조금이나마 더 넓어져
당신을 쬐끔이나마 닮아가게 하소서
주님!
이 가을엔 자연의 풍요로움을 보며 당신을 생각케 하소서.
나 자신의 초라함을 견주어보면서 우울해 하지 말게 하시고
오히려 당신을 생각함으로써 저 맑고 높은 하늘처럼
내 마음을 다스려 나가게 하소서
그리하여 받으려 하기보다 무조건 주게 하소서
줌으로써 행복한 당신과 줌으로써 행복한 자연을 닮아가게 하소서.
아! 주님
이 가을엔 더 사랑하게 하소서
형식적인 사랑 받으려는 사랑이 아니라
그냥 당신처럼 그렇게 댓가없이 사랑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진정 당신은 사랑일 수밖에 없음을 체험케 하소서
아멘!
- 프란치스코회 성심원 원장 오상선 바오로 신부 -
◈ [수도회] 불꽃처럼
2016년 10월1일 토요일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선교의 수호자) 대축일
"너희가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 마태오 18,1-5
불꽃처럼
돈 보스코가 한 걸음 한 걸음 성덕의 정상으로 올라갔던 토리노에
머물면서 느낀 한 가지 깨달음이 있습니다. 한 명의 성인(聖人)은
또 다른 성인들을 탄생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가운데
성덕의 길을 향해 올라가고 있는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큰
은총이요 선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명의 성인이 풍기는 성덕의
향기는 주변을 향해 강렬하게 퍼져나가기 때문입니다.
돈 보스코가 살았던 1800년대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 지방은
그야말로 성인의 시대였습니다. 돈 보스코 오라토리오 주변을
걸어 다니면서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바로 그 근처에서 여러
성인성녀들이 마치 경쟁하듯 서로 앞 다투어 성덕의 정상을 향해
걸어 올라갔습니다.
예를 들면 돈 보스코의 영적 지도자 성(聖) 요셉 카파소 신부님의
지도하에 돈 보스코는 성인의 길을 걸었습니다. 돈 보스코의 영적
동반을 받은 성(聖) 도미니코 사비오, 성녀(聖女) 마리아 도메니카
마자렐로는 그가 제시한 길을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걷다보니
금방 성성의 길에 접어들었습니다. 한때 돈 보스코 오라토리오에서
살았던 돈 보스코의 제자 루이지 오리오네 신부 역시 그 이름이
이미 하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돈 보스코의 오라토리오는 이렇게
성인들의 못자리였습니다.
오늘 우리 본당 공동체가 너무 삭막하고 위태롭습니까? 해결책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본당 공동체 구성원 가운데 많이도 말고 딱
한명만 성인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수도공동체가 존폐의
위기에 놓여있습니까? 그렇다고 너무 크게 실망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 공동체 안에 단 한명의 수도자라도 자신의 갈
길을 제대로 걷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첫걸음은 또 다른 사람들에게
분명히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모인다면 우리 교회의 미래는 낙관적일 것입니다.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의 삶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시각으로 바라볼 때 그녀의 삶은 참으로 보잘 것
없었습니다. 24세의 일기로 세상을 떴습니다. 그것도 늘 병약한
몸으로 말입니다. 그녀는 그야말로 아무도 눈길 주지 않는 산중에
핀 숨은 꽃과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누가 보건 말건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자리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서 자신의 꽃을
피웠습니다. 짧은 인생을 불꽃처럼 살았습니다. 그 결과가 성덕의
정상이었습니다.
소화 데레사 수녀님이 보여준 그 작은 몸부림이 점점 큰 바람이
되었고, 마침내 태풍이 되어 교회를 정화시키고 쇄신시키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성인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우리는 쉽게 생각합니다. 우리와는
완전 동떨어진 사람, 보통 사람들은 꿈도 꾸지 못할 엄청난 업적을
남긴 사람, 백 개의 팔을 가진 사람, 신비로운 인물...
그러나 소화 데레사 수녀님은 그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온 몸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작은 일상을 큰마음과 정성으로 살아가는 사람,
적당히, 미지근한 삶이 아니라 활활 자신을 불태우고 완전히
연소시킨 사람, 그가 곧 성인임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파노 신부 -
◈ [서울]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대축일
2016년 10월1일 토요일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선교의 수호자) 대축일
"너희가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 마태오 18,1-5
10월의 첫날입니다. 1999년 10월 1일을 생각합니다. 보좌신부를
마치고 처음 본당 신부가 된 날입니다. 17년 전입니다. 제가 있었던
적성 성당은 정겹고 아름다웠습니다. 성당 주변에 감악산이 있었고,
임진강이 있었습니다. 군부대가 가까이 있어서 주일에는 군인들이
미사에 오곤 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낚시를 배웠습니다. 낚시를
배웠던 이유는 제가 성격이 급하고 남을 생각하기보다는 먼저 저
자신을 생각하기 때문에 좀 차분해지고 여유를 갖고 싶어서입니다.
낚시터에서 한 마리의 물고기를 잡는 것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지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낚시터에 4번 갔었고 그 중에서 2번은 밤을 새워 낚시를 한 끝에
드디어 처음으로 작은 붕어를 한 마리 잡았습니다. 낚시를 몇 번
다니면서 느낀 점이 있습니다.
첫째로 떡밥은 같은 장소에 계속 던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둘째로 떡밥을 주는 것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셋째로 초보자가 못 잡는 것은 당연하다는 사실입니다.
넷째로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낚시터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길 잠깐 하고 싶습니다.
한번은 제 옆에 50대의 남자 분이 앉으셨습니다. 저는 밤을 새워
자리를 지켰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아마도
제가 초보자인 줄 알았나 봅니다. 제게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초보자 옆에는 잘 앉지 않는다. 초보자가 물고기를 다 쫓아낸다.
낚시 줄이 엉키기도 하고 아무튼 짜증이 난다." 저는 그분의 말씀을
듣고 주눅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조금 하다가 낚시 도구를 다 챙겨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분은
낚시 기술은 뛰어날지 몰라도 낚시의 도는 잘 모르는구나.’
그 뒤로 또 낚시를 갔습니다. 70대의 할아버지 옆에 앉게
되었습니다. 초보자가 낚시 대를 설치하고 또 이리저리 부산하게
준비하니 할아버지께서 조금은 신경이 쓰이셨을 것입니다. 할아버지
옆으로 낚시 줄이 던져지기도 하고, 지난번에 들은 이야기가 있어서
더욱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웃는 모습으로 저를
바라보셨고, 엉킨 줄을 풀어 주셨고, 가실 때는 잡으셨던 물고기를
나누어 주고 가셨습니다. 그분은 낚시의 기술도 좋으셨지만 낚시를
이제 막 배우는 사람에게 낚시하는 사람의 자세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문제들을 만나게 됩니다. 건강, 취직, 결혼,
자녀, 경제, 가족, 친구의 문제가 있습니다. 어느 것 하나 쉬운
문제가 없습니다. 산 너머 산이 있듯이 하나를 풀면 다른 것들이
또 문제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우리들의 인생을 고통의
바다라고 했나 봅니다. 모든 고통은 집착에서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그 집착을 버릴 때 인생은 잔잔한 바다처럼 깨달음을 얻고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을 합니다.
‘사람의 마음이 눈에 보인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누구나 사랑하고,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는 사람의
마음은 파란색. 행복하고, 기쁘게 사는 사람의 마음은 하늘색.
겸손하고, 나눌 줄 아는 사람의 마음은 초록색. 그러나 원망하고
미워하는 사람의 마음은 갈색. 욕심과 이기심이 가득한 사람의
마음은 회색. 시기와 질투가 가득 찬 사람의 마음은 검은색.”
처럼 보인다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꽃은 향기를 주고, 배설물은 악취를 주듯이 우리는 사람들의
행동을 보고 그 마음을 느낄 수는 있습니다. 누군가를 도와주고,
자신의 것을 나누고, 늘 겸손한 사람의 마음을 우리는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 분들의 마음은 파란색, 하늘색, 초록색일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을 헐뜯고, 늘 주변을 원망하고, 자신의 것만을 챙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의 마음은 갈색, 회색, 검은색 일
것입니다.
문득, 그동안 제가 걸어온 길을 뒤돌아봅니다. 정신없이 달려왔는데
뒤 돌아보니 발걸음이 아름답지 못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느님께
찬양을 드리고, 기도하는 시간이 별로 없었습니다. 누군가를
돕기보다는 나 자신을 위해서 살아온 시간이 많았습니다. 겉으로는
밝게 웃으면서도 속으로는 비난하고, 비웃은 적도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방법을 알려
주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하느님 나라는 직책과 재능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업적과 능력으로 들어가는 것도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 들어 갈 수 있다고
말을 하십니다. 결혼을 한 사람도, 혼자서 사는 사람도 겸손하게
자신을 낮춘다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반대로 결혼을
하였어도, 혼자서 살아도 겸손하지 못하다면 하느님나라에 들어가기
어려울 것입니다.
10월의 첫날입니다. 오늘 하루는 모든 문제들을 내려놓고
어린아이처럼 그렇게 순수한 마음으로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옳고
그름은 꼭 시비를 가려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을 모두
놓아 버릴 때 마음의 평화가 올 것입니다. 그것이 회개이고, 그것이
어린이와 같은 마음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 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