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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다해 10월18일 화요일 [(홍)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수도회] 모두를 바쳐 충실히 선포하는 복음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제1독서 2티모 4,10-17ㄴ
† 복음 루카 10,1-9
◈ 오늘의 묵상
제자들을 파견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는 걱정과 격려, 희망이 뒤섞여
있습니다.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 같다는 예수님의
표현에는 복음의 가치를 모르는 사악한 세상에 아직 덜 익은 제자들을
보내는 예수님의 걱정 어린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는 말씀은, 행여 선교의 여정에서 내가 지닌 여유로움이나, 내 인맥의
편안함으로 인해 복음 선포의 간절함이나 절박함을 잃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기쁘게 맞이하는 이들에게 평화를
약속해 주시고, 제자들이 일에 대한 품삯을 정당하게 받도록
격려하십니다. 그들에게 병자의 치유와 복음의 기쁨이 선포될 것이라는
희망의 격려도 잊지 않으십니다.
복음 선포의 열정을 끝까지 잃지 않은 바오로 사도의 편지에도 이런
예수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인간적인 부탁과 더불어,
선교를 방해하고 음해한 이들에 대한 인간적인 속상함도 없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
나를 통하여 복음 선포가 완수되고 모든 민족들이 그것을 듣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라는 고백은, 그 모든 인간적인 실망과
좌절에도 복음을 전하는 기쁨이 주님께서 함께 계심에 대한 믿음과
자신의 고통이 복음 선포를 완수하는 희생의 산 제물이 된다는 확신에
있음을 담대히 고백하는 것입니다.
과연 나는 복음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용감하게 전하고 있습니까?
내 작은 희생과 자선, 이웃을 향한 미소와 손길까지도 신앙인의
향기를 내고 있는지 되돌아볼 일입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 매일 미사 -
◈ [인천] 일꾼들이 많이 필요합니다.
2016년 다해 10월18일 화요일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제1독서
<루카만 나와 함께 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 2서 말씀입니다. 4,10-17ㄴ
복음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9
언젠가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은행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번호표를
뽑았더니 그 종이에 현재 대기자 숫자가 자그마치 20명인 것입니다.
앉아서 기다리는데 줄이 좀처럼 줄지가 않습니다. 더군다나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세 개의 창구에서만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고,
그래서 제 차례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만 같았습니다. 다른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과연 약속 시간을 맞출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한 창구는 한국말이 너무나 서툰 외국인이 있었고, 다른
창구는 긴 시간 동안 상담을 받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창구
역시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이 자리를 잡고 있어서 도무지 빨리 끝날
것 같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시계와 창구만 바라보면서 제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잠시 뒤에 다른 직원들이 와서 비어 있었던 창구들을 여는
것입니다. 그 뒤에 어떻게 되었을까요? 도저히 약속 시간을 맞출 수
없어서 포기하고 돌아가려고 했는데, 많은 창구가 열려 있으니 금세
제 차례가 돌아왔고 은행 업무를 마치고 약속 장소로 갈 수 있었습니다.
직원들이 많으니 더 많은 손님을 맞이할 수가 있었고, 일처리도 빠르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직원들이 많으면 그만큼 혜택은 누구에게
돌아가는 것일까요? 바로 손님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직원이 없다면 손님의 일처리를 빠르게 할 수 없어서 모든 불편을
손님이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문득 주님의 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주님의 일을 하는
일꾼들이 많아지면 그만큼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혜택이
주어집니다. 물론 여기에는 전제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그 일꾼이
열심히 일할 때라는 것이지요.
재작년까지 교구 성소국장으로 있으면서 성소자 문제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었습니다. 정말로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는 주님의
말씀처럼 성소자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면담을 하던 중에 “제가 특별히 능력이 없어서 그냥 신부나
되려고요.”라고 말했던 학생이 있었습니다. 사제를 많은 직업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태로는
주님의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지요. 아무나 뽑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일꾼을 뽑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점점 다가오고 있는데 일꾼들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요? 점점 줄어드는 성소자의 숫자를 보면서 우리들의 기도가
더욱 더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 말씀처럼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을 보내 주십사고 계속해서 청해야 합니다.
일꾼이 많아질수록 그 혜택은 바로 우리에게 돌아온다는 점을
기억하면서 말이지요.
멈추지 않는 이상, 얼마나 천천히 가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공자).
성 루카 복음사가.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남의
것에 대한 욕심이나 관심이 많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비교하면서 우리는 정작 자신의 소중함을 잊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불만만 커져 가기만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다 창조하시고 나서는 흡족하게 바라보시면서
좋아하셨습니다. 바로 그때 새들이 뒤뚱뒤뚱 걸어서 하느님 앞에
서서는 불평을 해대기 시작합니다.
“하느님! 왜 다른 짐승들에게는 무거운 짐을 주지 않았는데,
우리에게만 짐을 주어 이렇게 걷기도 힘들게 하신 것입니까?”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무겁다고 불평하지만 말고, 그 무거운 것을
움직여 보렴.”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새들은 계속해서 무거운
것을 떼어버려서 다른 짐승들과 똑같이 만들어 달라고 이야기할
뿐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용기 있는 독수리가 어깨에 붙은 그 무거운
것을 움직여 보았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무거운 짐으로 여기기만
했던 것을 움직이니 온몸이 가벼워지고 몸이 공중으로 붕 뜨는
것입니다.
이 무거운 것은 무엇일까요? 맞습니다. 바로 날개입니다. 새를 새답게
하는 것, 그래서 푸른 하늘을 훨훨 날 수 있게 하는 날개입니다. 그런데
날지 않고 지상에서 걸어만 다니니 짐으로만 생각되는 날개가 되는
것이지요.
남과 비교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보다는 내가 가진
것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늘을 훨훨 나는 것과 같은 자유로움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날개를 움직이지 않으면 무거운 짐만 들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 [수도회] 모두를 바쳐 충실히 선포하는 복음 - 기 프란치스코 신부
2016년 다해 10월18일 화요일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루카 10,1-9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루카 10,2)
모두를 바쳐 충실히 선포하는 복음
루카는 안티오키아에서 태어난 그리스인 의사였습니다(콜로4,14).
그는 스승인 사도 바오로의 전교여행에 동행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바오로가 감옥에 갇혔을 때는 물론 데마스가 현세를 사랑하여
바오로에게서 떠나가고, 알렉산드로스가 바오로에게 해를 입히고,
첫 변론 때에 모두가 바오로를 저버렸음에도 끝까지 그의 곁을
지켰습니다(2티모 4,11).
루카는 이렇듯 복음을 선포하는 사도 바오로를 수행하였고, 어려움을
겪는 바오로 곁에 머물렀습니다. 복음이 선포되도록 어떤 상황에서든
복음을 선포하는 바오로 사도와 함께한 것입니다. 이처럼 복음은 한
개인의 힘만으로 선포되는 것이 아닙니다. 임마누엘이신 하느님의
사랑은 삶과 고통을 ‘함께함으로써’ 전해지는 것이지요.
루카는 사도 바오로를 동행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사도 바오로의
제2차 전교여행에 수행하였다가 57년까지 필리피에 머물면서 그곳의
공동체를 지도하였습니다. 67년 바오로가 순교하자 그리스로 건너가서
아카이아에서 전교합니다. 그렇게 그는 “복음을 선포하는 일로 모든
교회에서 칭송을 받던”(2코린 8,18) 인물이었습니다.
우리도 성 루카 복음사가처럼 나 자신이나 내가 지닌 재물과 지위나
능력으로 남에게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선포하고, 하느님의
정의와 선을 드러내는 것을 통해 칭송받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복음은 나를 선전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전하는 것이고
주님의 평화와 선을 나누는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복음선포란 예수님의 말씀처럼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말며, 평화를 빌어주는”
(루카 10,4-5) 것입니다. 따라서 아무것도 지니지 않는 절대 가난의
상태, 곧 ‘소유 없이’(sine proprio) 오직 하느님만을 소유할 때 주시는
주님의 평화와 기쁨을 선포하는데 집중해야 합니다.
루카는 언제 어디서든 말과 행동, 기록 등 모든 방법을 통해 복음을
선포하고 주님을 전하려고 고난을 감수했습니다. 파견된 이는
“이리떼 가운데 보내지는 양들처럼”(10,3) 주님의 일을 위해 불안정과
불확실한 미래에 보내집니다. 복음선포의 길은 그런 가운데서 고통과
박해와 위협을 뚫고 가는 십자가의 길입니다.
한편 루카 복음사가는 자신이 보고, 듣고, 체험했던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기록으로 전해주었습니다. 구원의 역사, 사랑의 역사의 체험을
생생하게 전해줌으로써 하느님의 사랑을 영원히 기억하고, 기억한
것을 현재화하며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것입니다.
또한 루카는 복음서를 통해 순례하는 예수그리스도, 가난한 이를 특히
사랑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적을 전해줌으로써 그런 길을
가도록 촉구합니다. 우리도 루카 복음사가를 본받아 주님께 철저히
의지하며, 주님의 일에 집중하여 어떤 고통과 박해가 닥쳐온다 하여도
헌신적으로 가난한 이를 섬기고 복음을 선포하는 주님 포도밭의
일꾼이 되도록 힘써야겠습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
◈ [수도회] 알타반의 말씀사랑
2016년 다해 10월18일 화요일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루카 10,2)
오늘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나라 교회에도 절실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제가 이 말씀에 응답하여 수도원에 들어올 떠도 그랬습니다.
70년대말부터 90년대말까지 약 20년간
한국교회는 그야말로 새로운 영세자들도 넘쳐나고
그에 따른 성직자 수도자들의 응답도 넘치고 넘쳤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냉담자들은 급증하고 신자들의 열정도 식어갑니다.
사제성소도 많이 줄었고 수도성소도 급감하고 있습니다.
이제 어장도 고기가 몰리지 않고
어부들은 숫자만 많지 빈 그물만 끌어올리고 있는 듯합니다.
."추수할 것도 없는데 일꾼들은 어영부영 놀고 있구나!"
어찌해야 할까요?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낙심하여 갈릴래아로 가서 힘없이 그물을 던지며
밤새 물고기 한마리 못 잡았던 제자들이 떠오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물을 오른쪽에 던져보라 하시며 다가오시고
그대로 따랐더니만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물고기가 걸렸었지요.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 낙심하지 말고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그분과 함께 하기만 한다면
언제나 우리는 많은 결실을 거둘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일수록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그분께서 하라는 대로 하는 것 뿐입니다.
오늘 그분의 음성을 들어봅시다.
그리고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해 봅시다.
- 프란치스코회 성심원 원장 오상선 바오로 신부 -
◈ [수도회] 루카만 나와 함께 있습니다!
2016년 다해 10월18일 화요일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 루카 10,1-9
루카만 나와 함께 있습니다!
오지중의 오지 도착하려면 비행기를 몇 번이나 갈아타야 하고, 언제나
수하물이 제대로 인수되기를 간절히 기도해야하는 나라로 선교를
떠났던 한 형제가 휴가차 귀국했었습니다. 공항 입국장을 걸어 나오는
그의 모습을 보고 다들 깜짝 놀랐습니다. 불과 일 년 반전의 그
당당하다 못해 풍성했던 풍채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바짝 마르고
노쇠한 중늙은이가 한명 꾸부정하게 걸어 나오는 것입니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일 년 반 만에 체중이 30킬로나 빠졌답니다.
그러면서 장난삼아 돈 안들이고 자연 다이어트에 성공했으니 꽤 돈
번거라며 자랑합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 과도비만으로 고생하시는
분들 선교지로 초대하겠답니다. 너무 갑작스레 왜소해지고 노쇠해져
적응이 잘 안 되는 형제를 바라보면서 든 생각입니다. ‘그래
해외선교사들이야말로 이 시대 순교자들이로구나!’
그와 함께 여기저기 같이 다니면서 전해들은 더위와의 싸움은 정말이지
눈물겨운 것이었습니다. 낮이고 밤이고 항상 더우니 잠자는 것이
그렇게 힘들더랍니다. 그나마 쪽잠이라도 자기 위해서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서둘러야 된답니다. 한낮의 뜨거운 열기로 잔뜩 뜨거워진
매트리스에 미리 물을 한 사발 부어놓는답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열기가 사라져 머리를 눕힐 만 하다네요. 자다가 몇 번이고 일어나
미지근한 물로 샤워를 해야만 잠깐이라도 눈을 붙일 수 있답니다.
철저하게도 문명세계와 단절된 곳, 흙바닥에 스레트 지붕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는 곳, 정부군과 반군 사이의 국지전이 끊이지 않는
곳으로 다시 떠나는 형제의 환한 얼굴이 참으로 고맙고
대견스러웠습니다.
초대 교회 선교사였던 바오로 사도와 루카 복음사가의 삶도 별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티모테오 2서에 그들이 복음 선포 과정에서 겪은
고통이 얼마나 극심했었는지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굳게
믿었던 동료들로부터의 배신과 따돌림으로 인한 상처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그 와중에 주님, 그리고 루카 복음사가만이 끝까지 등을
돌리지 않고 큰 힘이 되어주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데마스는 현세를 사랑한 나머지 나를 버리고 테살로니카로 가고,
크레스켄스는 갈라티아로, 티토는 달마티아로 갔습니다. 루카만 나와
함께 있습니다. 구리 세공장이 알렉산드로스가 나에게 해를 많이
입혔습니다. 나의 첫 변론 때에 아무도 나를 거들어 주지 않고, 모두
나를 저버렸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티모테오 2서 4장 10~17절 참조)
루카복음사가는 이방계 그리스도인이었으며 상당한 학식을 갖추고
있었던 인물로 추정됩니다.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예수 그리스도
육화 사건을 다양하고 풍성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특히 시각적
효과를 활용하는데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난 그는 여러 상황들을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묘사함을 통해 독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에
가까이 갈 수 있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51년경에 있었던 바오로 사도의 제2차 전도여행 때
그를 수행하였으며, 57년까지 필리피 교회 공동체에 머물면서
사목활동을 수행했고, 바오로 사도의 제3차 전도여행 때에도
수행했습니다. 그는 바오로 사도가 투옥 중이던 61~63년까지 로마에
머물면서 큰 의지요 힘이 되어 드렸습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세 번째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저자로 추정됩니다.
그는 사도행전을 통해 초대교회 공동체 생활상과 복음전파 과정을
상세히 기록했습니다. 그가 집필한 루카 복음은 사랑과 자비의
복음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가난하고 소외된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한없는 자비를 따뜻한 시선으로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복음서를 통해 예수님께서 가난하고 고통당하는 인간을
우선적으로 선택하시는 사랑의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대표적인 에피소드가 죄 많은 여인
이야기, 돌아온 탕자의 비유, 우도 직천당 사건 등입니다.
고통 받는 환우들과 마귀 들린 사람들,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던
사람들을 향한 연민의 마음으로 가득했던 루카 복음사가의 복음서는
2천년 세월이 지나온 오늘 우리에게도 한없는 하느님의 자비를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가 지녔던 고통 받는 한 인간을 향한
한없는 측은지심과 따뜻한 동료애가 오늘 이 시대 다시 한 번
메아리쳐지길 바랍니다.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 [서울]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2016년 다해 10월18일 화요일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 루카 10,1-9
지난 토요일에는 어머니에게 다녀왔습니다. 어머니의 세례명은
데레사입니다. 어머니는 제가 좋아하는 과일을 시장에서 구해
놓으셨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어머니의 사랑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저는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음식이 무엇인지, 잘 드시는
과일은 무엇인지, 요즘 즐겨 보시는 드라마는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생각이 미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관심이 적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축일을 지내는 루카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야기를 아름답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마리아의 노래,
즈카리야의 노래’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희망과 용기를
담담하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권세 있는 자를 자리에서 내치시고,
미천한 이를 끌어 올리시는 분이 하느님이심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들을 지키시는 하느님을 찬미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묶인
이들을 풀어주고, 갇힌 이들에게 해방을 알리는 것이 나의 사명이다.’
라는 주님의 선포는 진한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하느님 나라는 이미
시작되고 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야기 합니다.
‘누가 나의 이웃입니까?’라는 질문에 ‘당신이 그의 이웃이 되어
주십시오.’라는 대답을 하십니다.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 나의 편이
되어 줄 사람, 나와 비슷한 사람이 이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지금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이들의 이웃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무관심으로 외면하지 말고, 위선과 가식으로 양심을 속이지 말고,
조건 없이 사랑을 베풀라고 하십니다.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는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이야기 합니다.
우리의 죄가 진홍같이 붉어도 눈과 같이 희게 해 주시는 분, 우리의
죄가 다홍같이 붉어도 양털처럼 희게 해 주시는 분이 하느님이심을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큰 아들처럼 돌아온 동생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느님께서 자비하시니, 우리들도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고 이야기 하십니다. 우리가 죄를 지어서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회개하지 않아서 구원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처럼 회개의 눈물을 흘리면,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면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받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엠마오’ 이야기를 전해 줍니다. 엠마오는 어느 시간과 장소가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이 엠마오입니다.
주님의 성체를 모시고, 주님께서 걸어가신 길을 따라가는 것이
엠마오입니다. 구원은 어느 곳을 향한 여정과 목적지가 아닙니다.
구원은 지금 바로 이곳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주님의
말씀을 충실히 따르고, 주님과 함께 삶을 살아가면 그것이 바로
순례이고, 그것이 바로 구원의 시작입니다.
루가 복음에서 나오는 ‘마리아의 노래, 즈카리야의 노래, 예수님의
사명, 착한 사마리아 사람, 돌아온 탕자, 자캐오, 엠마오로 가는
제자’의 이야기는 모두 십자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 십자가를
받아들이면 축복과 은총, 사랑과 기쁨이 온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길의
끝은 부활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오늘 나의 삶에 주어지는 ‘십자가’
그것은 바로 은총의 길, 구원의 길입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뜻을
충실히 따르겠다고 다짐했던 자캐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너와 너의 가족은 구원을 받았다.’ 오늘 우리가 자캐오처럼
충실하게 산다면, 우리들도 같은 말씀을 들을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 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청주] 한 눈 팔지마라 |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6년 다해 10월18일 화요일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 루카 10,1-9
한 눈 팔지마라.
고등학교를 다닐 때 자취생활을 하였습니다. 신부가 된 후에도
특수사목에 종사하다 보니 자취 아닌 자취생활을 할 때가 많았습니다.
안타까웠는지 많은 분들이 맛있는 반찬도 해 주시고, 곰국도 끓여
주셨고 좋아하는 미역국도 준비해 주셨습니다. 참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가끔 냉장고에 있는 국을 꺼내보면 국물에 기름이
엉겨있었습니다. 따뜻하게 데우면 기름이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사랑도 마찬가지 입니다. 사랑이 뜨거울 땐 상대방의 단점이 보이지
않습니다. 콩깍지가 씌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식으면 상대편의
단점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때부터 잔소리가 시작됩니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열정도 그렇습니다. 뜨거운 열정이 있을 땐 미사참례를
자주하고 기도시간도 많이 챙기며 성경도 읽고 활동도 적극적입니다.
열정이 식으면 내 것 먼저 챙기고, 하느님의 몫을 뒤로 밀치게 됩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다하고 그 다음에 하느님의 것을 챙기려 하니까
찜찜하기도 합니다. 사랑의 열정을 다시 일으켜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일흔두 명의 제자를 뽑아 파견하시면서 분부한 말씀을
기억합니다.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돈 주머니도 여행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루가10,3).
이 말씀은 온전한 투신을 위해서는 한 눈 팔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선교사명을 받았으면 그것에 충실해야지 돈 주머니나 식량자루,
다른 어떤 것에도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장황하고
의례적인 인사에 허비할 틈도 주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리떼
가운데’ 보내는 것처럼 안쓰러운 마음이 있지만 내 사랑이 그 안에
함께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으면 엉뚱한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언제나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있듯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게 될 것이다”
(요한15,9-10).
일상 안에서도 내 본업이 무엇이고 그것에 충실하고 있는가? 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혹 다른 부업에 마음을 더 쏟는 것은
아닌지……. 아버지는 아버지로서, 어머니는 어머니로서 그리고
자녀는 자녀로서의 본분이 있고 윗사람은 윗사람으로서 아랫사람은
아랫사람으로서의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직장에서도 각기
자기의 위치가 있습니다. 사실 근본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은
것입니다. 한 눈 팔지 말고 각자의 본분에 충실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나 혼자만의 구원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웃을 구원해야
할 소명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루카10,2).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 일꾼이 바로 우리
자신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사실 온 세상이 우리의 활동 무대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주저하지 말고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의 부르짖음이 우리 안에 숨겨지지 않도록 우리는 능력에 따라
하느님 나라를 이웃에게 전해야 합니다. 선교의 사명은 우리 모두의
의무입니다.
기왕이면 돈 주머니도 여행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않은 채 더욱이
길에서 인사하느라 지체함도 없이 오로지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또 그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일꾼이 나오길 희망합니다. 말씀을 전하는
자가 있어야 말씀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한, 잘난 사람에게나 못난 사람에게나 가난한
이에게나 부자에게나 모든 계층과 연령의 모든 사람에게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하느님의 온갖 뜻을 꾸준히 전파하도록 합시다!”
(성 그레고리오). 미루지 않는 사랑을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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