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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오는 비를 어쩌겠냐마는
바짝 말라가는 논밭,
발 동동 굴리며 바가지로 물주는 할매들 보며
혼자 씩씩해지지는 않아.
미야자와 겐지가 쓴 시
'비에도 지지 않고'에 있는 한 구절,
'가뭄에는 울먹울먹 걸으면서'
그래 사는 거지, 뭐.
밀양 녹색평론 독자모임 방에서 읽은 소 이야기이야.
이 글 읽으면 왜 그리 마음이 위안이 되는지.
몇 번을 읽고 또 읽게 되더라고.
몇 장면만 옮겨볼게.
이런 이야기 읽고 마음 아련해지는 시간 잠시 가져보는 것도 괜찮겠지?
소가 있는 풍경 23 - 겨울 준비
박성대/밀양 녹색평론 독자모임 자칭 바지사장
가을이 깊어 아침저녁으로 방바닥에서 냉기가 올라오면 소죽솥 아궁이를 돌봅니다. 황토 반죽에 짚을 섞어 아궁이 무너진 데도 바르고, 헌 신발 달아 맨 긴 대나무 장대로 방고래도 후벼 파고, 작두날도 숫돌에 갈고, 녹슨 무쇠 소죽솥도 닦아내는 거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소 주식인 볏짚을 많이 준비해 둡니다. 낟알은 사람에게 바치고, 훌훌 몸이 가벼워진 볏단은 짚동을 이뤄 공터에 쌓이거나 소가 자는 소우리 천장 시렁으로 빼곡히 올라가 있다가, 겨우내 맛있는 소죽으로 변합니다.
소 부식도 좀 넉넉히 준비해야 합니다. 주로 마른 풀과 보리등겨, 고구마 줄기, 여린 수숫대, 서리 맞은 호박 넝쿨, 콩깍지 같은 것들입니다.
또 초여름 보릿짚도 잘 간수해 두어야 하지요. 오뉴월 타작마당에서 도리깨한테 흠씬 두들겨 맞아 노근노근해진 보릿짚은 그러모아 수북이 쌓아둡니다. 겨울이 오면 한 사나흘에 한번씩 소우리에 들어가 소 이불 노릇을 해야 하니까요. 소가 눈 똥오줌으로 질척해진 보릿짚은 네 발 쇠스랑으로 떠내 두엄더미로 던져 버리는데, 흔히‘소마구 친다’고 하지요.
마지막으로 소와 함께 긴 겨울을 무사히 나려면 뒤란 처마 밑에 혹은 헛간에 장작을 많이많이 쌓아 두어야 합니다. 잘 쪼개 가지런히 쌓아둔 소나무장작은 보기도 좋을 뿐만 아니라 향긋한 송진 냄새가 나서 참 좋습니다.
여기에다 사람 먹을 김칫독과 쌀뒤주까지 그득하면 겨울 추위쯤은 하나도 두렵지 않습니다. 집집마다 연기 퐁퐁퐁 피워올리는 행복한 한 계절이 또 오는 거지요.
소가 있는 풍경 24 - 소죽솥 부근
해가 설핏하면 두 사람이 짝을 지어 작두질을 합니다. 어른 한 사람은 앉아서 짚단을 먹이고 힘이 좋은 장정은 천장에 매달린 손잡이를 잡고 발로 작두날을 디뎌서, 써걱써걱 어른 손가락 한 마디쯤의 길이로 여물을 써는 거지요. 마른 날에는 먼지가 많이 나고 습기 찬 날에는 짚단이 눅눅해 작두질은 늘 만만찮습니다.
그 다음에는 큰 무쇠소죽솥에다 물을 반쯤 채웁니다. 주로 부엌에서 나오는 구정물을 갖다 붓지요. 구정물 속에는 사람 먹다 남긴 온갖 것들이 다 섞여 있습니다. 그래도 육고기나 생선뼈다귀 같은 것은 절대 넣는 법이 없습니다.
등겨 푼 구정물에다 짚여물을 안치고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진짜 소죽 끓이기가 시작됩니다. 불은 한참을 때야 합니다. 솥전에 몇 줄기 물기가 주르륵 타고 내리면 소죽솥이 ‘눈물 흘린다’고 하는데, 그건 물이 이제 끓을 징조를 보이는 것이지요. 좀 더 불을 때면 흰 김이 모락모락 나오다가 더 세게 쉭쉭 나옵니다. 물이 끓는 겁니다. 우르릉 무겁고 큰 솥뚜껑을 열어젖히고 나무갈쿠리로 여물 위 아래가 바뀌게 뒤집습니다.‘소죽을 디비는’거지요. 다시 솥뚜껑을 닫기 전에 집집마다 농사 지어 자루에 담아 놓은 통밀을 한 됫박 섞어 넣기도 하고, 서리 맞아 썩어드는 끝물 호박 같은 것도 좀 쓱쓱 삐져 넣기도 하지요. 진득하게 불을 좀 더 땝니다. 김발은 솟전에서 쇡쇡 소리를 내고, 구수한 소죽 냄새가 온 집안에 진동을 하면 마침내 소죽 끓이기는 끝이 납니다.
햇짚과 순한 풀로 잘 끓여낸 소죽에서는 항상 된장 푼 시래깃국 냄새가 납니다.
소죽 끓이기가 끝나고 벌건 숯불도 좀 잦아들면 우리는 종종 어른들 눈을 피해 군것질을 즐깁니다. 달걀 빈껍데기에 불린 쌀을 넣고 해먹는 달걀밥, 잿불에 묻어두었다가 꺼내 먹는 노란 군밤과 군고구마 살. 고구마는 절대 성질 급한 사람은 잘 구워 내지를 못합니다. 갸름하고 좀 작은 고구마를 잿불에 은근히 묻어 오래오래 구워야 껍데기가 타지 않고 훌렁훌렁 잘 벗겨지는 아주 맛있는 군고마가 됩니다. 밤 구울 때는 밤 한 개 한 개마다 껍질을 이빨로 물어뜯어주어야 합니다. 그걸 깜박하면 불 속에서 밤이 반드시 크게 화를 내지요.
어른들 일 나가고 없는 한낮엔 짚둥우리를 뒤져 달걀을 찾아냅니다. 이상타, 요새 와 우리 달, 알 안 놓노? 어른들이 물어도 우리는 시치미를 뚝 떼고 있다가, 김나는 소죽솥에 몰래 익혀 먹으면 약간 비릿하고 폭폭한 게 맛이 아주 그만이지요. 설 무렵 마른 떡국도 노릇노릇 부풀어 오르도록 구워먹으면 별밉니다.
어스름 저녁 길, 아무 집이라도 대문 환히 열린 마당가, 늙은 두 내외가 소죽솥 앞에 앉아 도란도란 얘기하며 불을 때고 있는 나란한 뒷등을 바라보면,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이 더 훈훈해집니다.
소가 있는 풍경 25 - 겨울밤
소죽이 끓고 마당 구석에 어둑어둑한 어둠이 고이기 시작하면 마구로 가‘소 삼정을 입힙니다.’삼정을 등에 걸친 소는 비로소 안심이라는 듯이 푸우 큰 숨을 내쉬며 푹신한 보릿짚 속에 배를 대고 눕습니다.
저녁상을 물린 후엔 소죽 끓인 방으로 모여듭니다. 고샅길에 인적은 뜸하고 먼데 개 짖는 소리만 간간히 들리는데, 쩔쩔 끓는 방구들에 등이며 발목을 지지는 거지요. 얼마나 뜨거운지 누릇누릇 이불이 타기도 하지요. 말 많이 해도 배 고푸다, 인자 자자. 밤이 이슥해지면 대문 빗장을 지르고, 소죽솥 아궁이를 막고, 대청마루에 불을 끄고, 제각기 이 방 저 방으로 흩어져 갑니다. 자리에 누워 잠을 청해 봐도 꼬르륵 꼬르륵 정말 뱃속이 허전해 마음은 자꾸 건넌방 고구마 둥우리로, 마당가 무 구덩이로 달려가는 겨울밤입니다.
밤바람 소리 부엉이 소리가 울타리를 몇 번이나 흔들고 지나갔을까, 오줌이 마려워 눈을 뜨면 벌써 창호지 밖 마당엔 희부염한 새벽이 서성이고 있지요. 어느덧 뜨겁던 방구들도 식어 이불 귀퉁이를 서로 힘껏 잡아당겨야 할 시간입니다. 더 자그라. 이불을 가슴팍까지 다독여주는 부드러운 음성에 이어, 탁탁 타닥 탁, 마른 솔가지 부러지는 소리, 아궁이 불길 속에서 옹이 터지는 소리가 들리고, 스며드는 매캐한 연기와 함께 이내 아랫목은 다시 따뜻해집니다.
뒤이어 희미한 새벽잠결에 들려오는 쓱쓱 왕거시리로 마당 쓰는 소리, 땅땅땅 부엌에서 들리는 칼도마 소리, 우르릉 솥뚜껑 여는 소리, 텅텅 뒤란에서 도끼질하는 소리, 안 봐도 무슨 소린지 훤히 다 아는 우리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아늑한 방에 누워 아침을 맞습니다.
소가 있는 풍경 26 - 그 방
아침 불 땐 아궁이에서 이글이글 불땀 좋은 숯불을 한 부삽 화로에 떠다 넣으면 불씨는 아주 오래 갑니다. 손을 싹싹 부비며 은근하게 화롯불을 쬐기도 하고, 장죽에 담뱃불을 붙이기도 하고, 마른 찰떡 부스러기라도 생기면 화롯전에 녹여 먹기도 하니, 화로가 있어 겨울 한낮 방안엔 온기가 돌지요.
낮이면 늘 우리 집 소죽 끓이는 방 댓돌에는 마실 나온 동네 할매들 하얀 고무신이나 털신이 몇 켤레씩 가지런히 놓입니다. 그냥 놀러오기 미안해 군것질거리를 뭐라도 하나 갖고 와 저에게 권하는 할매들이지요.
쌍지팡이를 짚고 와 아랫배 속곳 부근 안주머니에서 좀 일그러진 물고구마를 뽀시락뽀시락 꺼내주던 아흔이 넘은 명대할매. 그러나 저는 고구마를 넣어 온 데가 좀 그런 데라서 얼른 받아먹지를 않는데, 그래도 명대할매는 야야, 와 안 묵노? 괘안타, 무바라 엉? 하며 도리질치는 제 입에다 자꾸 넣어주곤 합니다. 울할매는 그냥 빙긋이 웃고만 있고요.
제 친구 영보네 할매는 앞을 보지 못합니다. 영보나 영보 누나 영선이가 할매 손을 잡고 우리 집까지 늘 따라 와야 하지요. 다른 할매들은 영보할매를 곧잘 ‘봉사할마시’라고 부릅니다만, 영보할매 있는 데서는 절대 그런 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보할매는 귀 하나는 아주 밝지요. 귀가 어두운 울할매와 나란히 앉아 있으면 비로소 눈과 귀가 다 갖추어집니다. 먼저 영보할매가 누고? 밖에 누가 왔는갑다! 하면 울할매가 방문에 붙여 놓은 작은 거울창을 통해 밖을 살펴보고, 핀지 왔는가, 우체부가 대청에 멀 훌쩍 던지고 가네. 하면 영보할매는 응, 그키. 누가 오는 것더라. 하면서 서로서로 보고 듣지요. 앞이 안 보인다 뿐이지 영보할매는 피부가 뽀얗고 얼굴이 갸름해 참 고운 할매였습니다.
할매들은 모였다하면 늘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가끔씩 장죽에다 담배를 쟁여 피우거나 뭘 오물오물 씹어 먹을 때도 있지만, 항상 하하호호 웃음소리 왁자하게 얘기를 이어가고 맞장구를 치고 그러지요. 얘기하는 사람은 주로 울할맵니다. 하이고, 단산댁이요 우째 그래 입담이 좋은교, 총기도 있고! 다른 할매들은 눈빛을 반짝이며 울할매 턱밑으로 바싹 다가앉습니다. 제가 듣기엔 두 번 세 번째 하는 얘긴데도 다른 할매들은 매번 처음인 듯 손뼉을 치며 신기해합니다. 그 이 다 빠진 잇몸을 드러내며 활짝 웃던 얼굴들, 담뱃대를 빨 때마다 볼우물이 옴팍옴팍 패이던 얼굴들, 가끔 이야기가 서러운 대목에 이르면 손수건을 꺼내 마른 눈가를 훔치곤 하던 그 얼굴, 얼굴들.
이야기기판이 달아올라 자칫 일어서야 할 때를 놓치면, 세 번 네 번 사양하다가 겨우 군내 나는 김장김치와 삶은 고구마 한 소쿠리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끼니를 때우던 동네 할매들, 곁에 가면 쌉사름한 무슨 한약 냄새 같은 것을 풍기던 그 할매들의 이야기를 한 자루 두 자루 듣다보면 긴긴 겨울도 그렇게 지루하지만은 않습니다.
먹을 것이 궁해 돌덩이 같은 메주 귀퉁이를 다 떼어 먹던 그 방, 그래도 이야기가 있어 배불렀던 그 방, 그 때 그 겨울 우리 집 소죽 끓이던 방.
첫댓글 아아, 이 글 쓴 분 보고 잡다.
나도 보고잡다! 지난번에 옮겨온 글 보고도 아아 밀얄 비얄 사람 맞네 싶더니만. 진짜로 이 사람 (내 보다는 쪼께이 어릴 것 같아서) 도 밀양 놈 맞네. 한번 보고 잡다. 내 자라던 그 집을 들여다 보고 있는 것 같아. 우리 앞집에 안장실 할매가 사셨는데, 앞이 안 보여서 맨날 내가 손잡고 우리집에 모시고 왔는데. 우리 할매는 중풍 때문에 문밖 출입을 못했거든. 그래 우리 할매하고 말동무 하라고 아침 먹고 모시고 와서 저녁 때 즘에 모셔ㅏ 드리고 그랬지. 우예 그것도 그래 똑같노?
읽다 보이 나도 할말이 태산이네 바이트제한되는 댓글로는 안되겠다. 휘영청 보름달을 보며 둘째 오빠랑 짝을 지어 소여물 치다가 노래를 부른다. "하늘에는 달도 밝고.." 갑자기 오빠의 비명,지금도 오빠손에 깊은훙터를 볼때마다 여물치던때가 생각난다. 여물치는 것은 작두 밟는 사람보다 여물 미기기가 더 요령이 있어야 되거등. 아이고 아찔해라. 나는 소죽끓이면서 라디오를 들었는데 그때 들었던 태권동자 마루치아라치 노래는 지금도 끝까지 불러지네. 씨익 웃음이 나온다. 그림이 떠오르네
소죽솥에 불을 다 때고 나서 남은 불을 헤집어 고구마 꿉을라마 우리아부지는 "또 호작질하제? 그라이 방이 식어서 새북되마 춥단말이다." 하신다. 땔감을 아껴야 되이 굼불 지펴넣기도 만만한 일이 아이었을끼다. 또 울 아부지가 엄마한테 뭔가를 잘 못한 일이 있을때에는 언제나 꼭두새벽에 일어나 소죽을 끓여 놨더래요(화투치고 밤샘하고 온날)
역시 밀양 촌놈들 반응이 격렬하네. 밀양중학교 국어선생인데 아마 야야보다 나이가 몇 살 많을 거요. 참고로 글쓴이가 소이야기를 마치면서 써놓은 후기 한 부분을 옮겨봅니다.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제가 만난 가장 큰 행운은, 담벼락 구멍에 사라져 가는 뱀꼬리 조금 구경하듯 수만 년 동안 이어져온 장구한 농경시대 그 마지막 삶의 모습을 언뜻 지켜보았다는 것입니다. 논밭이 있고, 마을마다 백로떼같은 사람들이 있고, 사람과 함께 뒤섞여 일하고 노는 소와 강아지와 닭이 있고, 고운 흙이 깔린 골목길이 있고, 깊고 찬 두레박 우물이 있던 그 시골 마을에서 말입니다. 그때는 궁벽한 우리 집과 동네가 무척 부끄러웠지만, 되돌아보니 저에게는 엄청난 축복이고 행운이었습니다.
이 세상을 마저 살아내지 못한 제가 지금껏 만난 가장 큰 불행은, 사람이든 물건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모조리 등짝에 바코드를 붙여 버리는 이 고약한 물신의 시대와 맞닥뜨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더 애틋하게 지난 이야기를 기억하게 됩니다. 어쩌면 그것은 한바탕 꿈이었을지도 모르지요. 희미한 꿈 이야기가 잊혀지기 전에 엇비슷한 꿈을 꾼 사람들 앞에서 넋두리라도 늘어놓고 싶었습니다. 함께 하다보면 이 비정한 시절도 결국은 뛰어넘을 수 있겠지요. 그 때 그 지독하던 가난도 다함께 어루만지고 보듬으면서 이겨냈듯이요
두바이 사람 누군가가 "내 아버지는 낙타를 타고 다녔고 나는 자동차를, 아들은 비행기를 그러나 이제 내 손자의 손자들은 다시 낙타를 타고 다닐것이라."고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랑랑별처럼 우리의 미래가 과거처럼 살아야할 날이 다시오기를 차라리 기다립니다.
저는 태어나서 한 번도 보지 못한 풍경들이 이렇게도 그립다니 참 신기합니다.
'영보네 할매는 앞을 보지 못합니다. 귀가 어두운 울할매와 나란히 앉아 있으면 비로소 눈과 귀가 다 갖추어집니다.' 이 대목에서 아아 소리가 절로 나온다. 들은 이야기 또 듣고 같은 대목에서 손뼉치고 웃어주고 눈물 훔쳐주는 따뜻한 사람이 따뜻한 방에 둘러 앉아 컴퓨터를 너머 우리까지 따뜻하게 해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