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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 마크 빌츠 –베드로가 부인할 때 닭은
울지 않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l1WRfeTSASE
이 영상에 대해서는 여기에 올려졌을 때 당장 반박하고 싶었습니다만 저나 여기 많은 회원님들이 더 이상 올리신 분과 논쟁하고도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 영상에 대해서는 별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내용상으로 많은 한국인들이 미혹당하기 쉬운 영상이라 생각되고 반박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어 그것을 분석하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많은 분들에게 깨닫게 해주는 것이 옳다고 판단되어 그것들을 여기에 쓰게됩니다.
우선 저와 교제하고 있는 다수의 메시아닉 유대인들은 마크 빌츠에 대해서 매우 잘못된 사람으로 분별하고 있다는 것을 먼저 알려드립니다. 저는 1967년 중동전쟁과 1970년대 한국에서 한국정부가 석유를 얻기 위해 친 아랍정책을 펼치며, 이스라엘 대사관이 폐쇄되고 그들이 떠나기 이전부터, 고리 원자력 건설을 위해 들어왔던 아이젠버그 라는 유대인 회사때부터 이스라엘에 대해 주목해왔으며, 1984년부터 레비 지파 유대인 회장단이 운영하는 회사의 한국 법인 설립을 위해 일했고 근무했으며, 독일 회사내에서도 유대인들과 교제해왔었습니다. 그들은 항상 저에게 매우 친절하였으며 다른 기업보다 높은 대우를 해주었습니다. 지금도 이곳 캐나다에서 많은 메시아닉 유대인들과 교제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메시아닉 유대인들도 이 영상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음을 저에게 알려왔습니다.
한국인들은 매우 충격적인 설교들을 들을 때 우선 당장 분별할 겨를이 없고 또 마땅히 할말이 없어
침묵합니다.
이제 그 영상에 대해서 분별합니다.
1. 베드로가 3번 부인할때 닭은 울지 않았다.
- 예루살렘에는 거룩한 도시로서 닭똥싸는 닭이 없었다 -
이런 말들을 들으면 한국인들은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일단 할말을 잃을 것이며
어떻게 분별할 기준을 찾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스라엘에서는 코쉐르 닭, 치킨이 판매되며 조리법들이 잘 알려져 있음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로부터 나왔을때, 만나로 먹이시고, 메추라기들을 불러와서 먹이셨습니다. 메추라기, 닭, 칠면조, 오리, 등은 레위기 11장에서 금지한 금지 조류가 아닙니다. 레위기 11장에서 금지한 음식법에는 독수리, 솔개, 부엉이, 매, 당오새, 펠리칸, 올빼미, 박쥐 등의 맹금류와 그외 사체를 먹는 조류등의 조류이었습니다. 따라서 닭은 사육될 수 있었습니다.
느헤미야 5장 18절에는 닭이 식용으로 공급된 것을 볼수 있는데 이 구절에서 닭은 치포르의 번역으로서 그것은 조류들을 총칭하는 말입니다만, 만일 그것이 오리나 칠면조를 포함하고 있다면 당연히 닭도 포함하고 있을 것입니다. 또한 그것을 매일 식용으로 공급하였다면 매일 사냥해서 잡아다가 준것이 아니라, 사육한 것을 갖다 주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닭이 이스라엘이나 예루살렘에서 사육되지 않았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입니다.
다음으로 성전에서 닭이 울지 않았다는 주장은 예수님이 심문받은 곳이
성전이 아니라, 대제사장 가야바와 그의 장인 안나스의 집에서였다는 것을 혼동하는 말입니다. 성전에는 닭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 말은 맞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닭이 우는 소리를 들은 것은 가야바의 집에서였습니다( 요한 18:27, 마 26:57, 74) 따라서 가야바의 집은 민가에 둘러싸여 있었을 것이며, 닭이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수탉 제사장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섬기는 반열이 되어 집단으로 기숙하며 새벽에 깨워야 하는 경우에는 그렇게 깨우는 수탉 제사장 Cock Priest 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제사장들은 24개 반열들로 구성되어 자기들 반열이 당번이 되는 주간에는 그렇게 집단 기숙하거나 성전에서 깨워주는 사람이 있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민가들을 전부 돌아다니며, 제사장 지파들을 일일이 깨웠다고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제사장들은 다 큰 성인들이었으며 각자가 깨어나 준비하였을 것이지
예루살렘 민가들을 누가 일일이 찾아가 깨웠어야 했겠습니까?
오늘날 누가 당직 근무자일 때 일일이 서울시내 찾아다니면서 깨워주는 회사가 있습니까?
예수님이 자기를 배반하고 안믿으며 죽이려하는 수탉 제사장이 깨우는 것을 기준으로 예언하셨겠습니까? 예루살렘의 닭들은 울지 않고, 수탉제사장만 떠들었겠습니까? 베드로가 부인할 때 수탉제사장이 꼬끼오! 하고 돌아다녔겠습니까? 아니면 수탉제사장이 일어나라 일어나라, 하는 말을 닭이 울더라, 고 성경이 기록하였겠습니까?
이런 말을 처음 듣는 사람이 들으면, “ 야, 저 사람 대단하다! “ 하고 따를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은 <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는 사람 > ( 행 20:30) 의 미혹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차츰 냉철히 분별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닭이 울기 전이라 말씀하신 것은 자연현상의 일부인 동물 닭을 말씀하셨다고 믿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이제 다음의 여러 분별들이 또한 이런 의구심을 더욱 증폭시킬 것입니다.
2. 야곱의 우물은 요셉이 던져졌던 웅덩이였다.
요즈음 메시아닉 유대인들이 신약은 별로 안읽고 구약만 중시하는 경향들이 있습니다만, 이런 해석은 구약성경마저도 제대로 읽지 않은 해석이라 믿어집니다.
창세기 37장 24절에 보시면 다음과 같습니다.
24 그리고 그들이 그를 붙잡아 한 웅덩이에 던지니 그 웅덩이는 물이 그안에 없는 텅빈 것이었더라.
야곱 당시에는 물이 없었는데 그 웅덩이에 물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말입니까? 그것은 웅덩이였지 우물이 아니었습니다! 그후로 야곱이 우물을 그곳에 와서 팠다는 말입니까?
그 문맥을 잘 살펴보시면, 그곳은 높은 언덕이었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리하여 요셉의 형제들은 대규모 대상들인 이쉬마엘 상인들이 멀리서 오는 것을 볼수 있었습니다. 25절에 눈들을 들어 바라보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쉬마엘은 수백명 이상의 무장을 갖춘 대상들로서 마치 화물열차와 같았으며 지역 상인인 미디안 상인들은 그들에 비교가 못되었습니다. 그들을 내려다 보는 위치에 있었으며 그 웅덩이는 우물이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그 옛날 전쟁시의 방호 웅덩이였든지 카나안 족속이 어떤 목적으로 파놓았든지 자연호 였을 수 있습니다.
그곳은 도단이었습니다. 창 33장부터 보시면 야곱은 아람지역의 밧단 아람에서부터 와서 에서를 만난 이후, 숙곳을 거쳐, 세겜의 살렘에 잠시 거하다가 벧엘을 거쳐 헤브론에 정착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던져졌던 웅덩이는 도단에 있었으며 그곳은 바로 대상인 이쉬마엘인들이 지나가는 루트였습니다. 야곱이 그곳에 와서 우물을 팠으리라는 상상은 결코 하기 어렵습니다. 아마도 야곱은 그런 곳이나 지형 자체를 알지도 못하였을 것입니다.
이런 요셉의 웅덩이와 야곱의 우물을 동일시한다는 것은 극히 무식의 소치라 믿어집니다. 야곱의 우물은 차라리 살렘 부근이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그곳이 수가성에서 가까웠을 것입니다.
3. 사마리아 여인은 아기를 낳지 못해 이혼당했다.
요한 4장의 사마리아 여인이 남편을 다섯이나 가졌었고 현재 남편도 그녀의 남편이 아니라는 말씀의 해석에 대해서 우선 그럴 가능성도 배제하지는 않는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옳다는 해석에는 반대합니다. 물론 진실은 하나만 존재할 것입니다. 그러나 마크 빌츠는 자기 해석만 옳다고 주장하려면 직접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서 그것이 증명되었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여러 행적은 그다지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 문장에서 주는 영적 교훈과 의미들로 볼 때 중요 주제는 바로 그 사마리아 여인은
매우 기구한 삶을 살았으며 불쌍한 영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녀가 부도덕했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고대사회에서 여자들이 남자의 도움없이는 살수 없던 시대에 그녀는 첫번째 남편은 어떤 전쟁이나 사고로 사별했을 수 있습니다. 또 아이를 낳았어도 일찍 죽었고 다음에 재혼한 남편은 폭력을 행사하다가 자기를 놓고 떠났을 수 있고, 등등의 많은 기구한 삶을 살았을 가능성이 있으며 꼭 불임이 원인이 되었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현재 살고 있는 남편도 그녀의 남편이 아니라는 말에서는 아마도 그녀는 생활을 위해, 부인이 있는데도 별거중인 남자의 첩으로 살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것을 놓고 마치 자기들의 유대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성경을 해석할 수 없다는 전제를 걸어놓아 다른 사람들은 홀로서기 그만두고 자기를 따르라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럴만큼 성경의 중심주제를 제대로 다루고 있지도 않습니다. 다만 우리는 유대인들에게 성경이 맡겨져 있으며( 롬 3:2) 성경의 모든 기자들이 유대인들이었다는 것, 성경이 오직 유대인들에 의해서만 쓰여졌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히브리 관점이니, 유대인 관점에서 해석할 것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관점에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 루카 24장 44절의 교훈이라 믿어집니다.
이점에서도 마크 빌츠는 지나치게 비성경적이고 편협된 유대인 문화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4. 예수님의 탄생은 초막절 무렵이다.
우선 저는 예수님의 재림 시기는 나팔절이나 초막절 무렵일 가능성이 높다는데에 동의한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탄생시기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아마 그것이 중요하였다면 그것을 하나님은 성경에 명시하였을 것입니다. 그리했다면 인간들은 그 날을 매우 중시하여 날짜 섬기기를 행해왔을 것입니다.
마크 빌츠는 예수님의 탄생시기가 초막절이었을 것이라는 근거로 침례자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의 제사장직 봉사가 아비야의 반열로서 8번째 당번이었다는 것을 근거로 계산합니다. 우선 그는 제사장직의 시작이 4월이라고 말합니다만 그것은 틀렸습니다. 제사장직 반열로서 아비야 반열은 8번째 임이 맞습니다( 대상 24:10).
그런데 그것은 아빕월부터 시작합니다. 아빕월은 춘분 이전이며, 아빕월 14일이 춘분 이후가 되는때가 유월절입니다. 따라서 제사장직분은 3월중순경부터 시작함이 일반적입니다. 늦으면 3월말이나4월 초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보다 늦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사가랴의 당직은 5월 중순 이후 혹은 5월 말까지입니다. 만일 엘리자벳이 5월말에 임신하였다면 그녀는 11월 초중순에 임신 6개월이었을 것입니다. 그때에 마리아가 수태하였다면 예수님은 8월 초에 태어나셨다는 뜻이 됩니다. 이것은 9월말의 초막절과는 거리가 멉니다.
이것은 또한 다음의 가정들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 사가랴가 제사장직을 봉직하고 있을 때 즉시 요한을 잉태하였다.
- 루카 1장 26절의 제 6월을 임신한지 6개월째로 보았을 때입니다.
반대로 룩 1장 26절의 제 6월을 유대력의 6월 즉 엘룰월로 해석하면 8월이 되어 마리아는 8월에 수태하였으며, 그에 따라 그녀는 5월에 예수님을 낳은 것이 됩니다. 이것은 오순절설의 중요 근거이며, 루카 2장 7절에 카탈루마에 있을 곳이 없었다는 말은 바로 유대인 서민들 가정에서 보리와 밀을 추수한 다음에 사랑방에 곡식들을 저장하던 관습에 비추어볼 때 그 손님방이 곡식으로 가득차서 그곳에 머물수가 없었던 상황을 짐작하게 합니다.
따라서 마크 빌츠의 계산은 초막절에도 정확히 맞지 않고, 다른 해석에 비해 떨어진다 하겠습니다.
5. 주님의 만찬이 유월절 세데르다.
예수님은 유월절날 죽으셨습니다. 그날은 어린양들이 유월절 희생으로 피흘리고 죽던 날, 그 시각에 예수님은 피흘리고 죽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이후에 유대인들은 유월절 세데르를 가졌고 그 시각은 무교절 안식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을 가졌던 것은 헬라어로 프로테( 룩 22:7-14) 이었던 것입니다. 유월절 전야 때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을 갖고 최초의 주님의 만찬을 제정하셨던 것입니다. 세데르 때에는 양고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만찬에는 양이 있었다는 말이 없습니다. 따라서 만찬과 세데르는 구분되어야 합니다.
유월절 세데르는 일년에 한번이면 족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만찬은 자주 실행하라고 말씀하셨고 ( 고전 11:25-26) 제자들은 자주 실행했습니다(행 2:42, 46)
2천년전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과 죽으심으로 구약의 모든 제사들을 완벽하게 성취하신 진리를 믿는 오늘날에는 유월절 세데르를 위해 양을 잡을 필요도 없으며,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기억하고 기념하며 감사드리면 될 것입니다. 그날에 잔치를 갖는 것은 각자의 판단에 맡길 뿐입니다.
이런 유월절 세데르를 근거로 주님의 만찬을 폐기하는 사람들은 기독교의 핵심진리를 크게 오해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이외에도 마크 빌츠는 제임스 베이커라는 성폭행범, 횡령사기범과 초청에 응하여 동역하고 있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더욱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2015. 7. 23 하토브
메시아닉 유대인 클라크 형제의 메일을 추가합니다.
클라크 형제는 예수님의 주의 만찬이 유월절 세데르보다 2일 앞선것으로 해석합니다.
Yes, I know of Mark Biltz. He has gained some profile in the last few years as one of several apologists for the Old Covenant movement which marches under the euphemisms of "Hebrew Roots" and "Messianics". It's always done by tickling the ears with some tasty, well appreciated morsels of cultural insight that add some savour to various New Testament vignettes, such as the woman at the well in this video. These tidbits are never foundational and rarely even of consequence to the faith, but they do serve as a distractive intro to the speaker's real purpose. For example, whether the 'well' is the pit where Joseph was held is highly in doubt, but without consequence. Likewise, if Jesus' birth date had been of importance to us He would have recorded it for us.
The mixed wine always follows with its inevitable error that slips in through ears already primed for novelty. In this case he paints a totally false picture of the last supper as a Passover seder and then twists that into the lie that Jesus meant for us to keep on keeping the Passover when He said, "do this in remembrance of Me". It's obvious He could not be the Passover Lamb and still be alive on Passover night to eat the Passover lamb. In fact, the time line laid out in the harmony of the gospels shows that this supper was two nights before the seder. Moreover, there was no animal lamb at the meal, they ate leavened bread, they did no seder readings and our Lord, the Lamb of God, said explicitly then that His desire to eat the Passover with them that season was "forbidden". Rather this blessed meal was the illumination of the bread and wine as symbols of His body and the New Covenant He would begin when He finished the Passover Lamb sacrifice in Himself. Old Covenant promoters must be reject this as it exposes another critical error in their false theology.
Personally, I find his assertion that cock's crowing was a priest's calling to be quite ridiculous. Foul were commonplace in Israel and Jerusalem as people typically kept some free ranging birds around for eggs and meat, just as they do today. Is Biltz is implying that chickens were never in Jerusalem because it was not kosher? They certainly can't be excluded from Jerusalem due to chicken poop because all animals do and there were a great many animals in Jerusalem, all the more so during feast times. Chickens may not have been in Temple courts, although the Temple grounds had been turned into a marketplace and a den of thieves. But rooster calls carry some distance and they were not at the Temple anyway, they were at Annas' and Caiaphas' houses. Fortunately these kosher disputations are only a concern for those who have either rejected the new wine in favour of the old, or have been deceived by such Old Covenant apologists into a vain effort to force new wine into old wineskins.
Grace and Peace to you in Jesus the Chr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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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침에 출근하기 전에 급히 올리므로 교정을 보지 않았습니다. 교정을 본 후에 스크랩 금지를 풀것입니다.
동영상의 주소만 올렸는데 제가 동영상을 직접 올리려면 잘 안되네요.
스크랩을 풀었습니다. 메시아 유대인 클라크 형제의 메일을 추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