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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대사어록(達磨大師語錄)-관심론(觀心論)
第一 觀心(마음을 觀하다.)
達磨答惠可曰(달마답혜가왈) 觀心一法(관심일법)이 摠攝諸行(총섭제행)이니 名爲省要(명위성요)니라 (摠 모두총, 攝 당길섭)
//달마선사께서 혜가대사의 물음에 답하여 말씀하시기를, "마음을 관하는 한 가지 법이 모든 수행을 포함하고 있으니 이름 하여 성요(省略簡要의 뜻, 개념적 사고로 불교를 이리저리 논하는 사려분별의 헛수고를 깨닫고, 곧바로 궁극의 진리를 지시하는 것)라 한다." (簡 대쪽간)
又答曰 心者(우답왈심자)는 萬法之本(만법지본)이라
//다시 말씀하시기를, "마음이라는 것은 모든 법의 근본이니라.
一切諸法(일체제법)이 唯心所生(유심소생)이니 若能了心(약능요심)하면 萬行(만행)이 具備(구비)하리라
//일체의 법이 오직 마음에서 생기므로, 만약 마음을 깨달으면 모든 수행을 다 갖춘 것이 되느니라.
譬如大樹(비여대수)에 所有枝條(소유지조)와 及諸華果(급제화과)가 皆悉因根(개실인근)이어든 裁樹者(재수자)는 存根而始生(존근이시생)하고 伐樹者(벌수자)는 去根而必死(거근이필사)니 若能了心修道(약능요심수도)하면 則省功而易成(즉성공이이성)이요 若不了心而修道(약불요심이수도)하면 乃費功而無益(내비공이무익)이니라.
//비유하자면 큰 나무의 가지와 꽃과 열매가 모두 뿌리로 인하여 있으므로 나무를 키우려는 사람은 뿌리를 두어야 살릴 수 있고 나무를 베어버리려는 사람은 뿌리를 없애야 반드시 죽일 수 있듯이 마음을 깨닫고 도를 닦으면 공을 적게 들여도 쉽게 이룰 것이고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도를 닦으면 헛수고만 할 뿐 이익이 없으리라.
故知(고지)하라 一切善惡(일체선악)이 皆由自心(개유자심)이니 心外別求(심외별구)하면 終無是處(종무시처)니라
//그러므로 알라. 일체의 선과 악은 모두가 자기의 마음으로 생겨나니 마음 밖에서 달리 구하는 것은 결국 옳지 못한 것이니라."
第二 心具染淨緣起(마음에는 깨끗한 마음과 더러운 마음이 있다.)
又答曰(우답왈) 了四大五蘊(요사대오온)이 本空無我(본공무아)하며 了見自心起用(요견자심기용)이 有二種別(유이종별)이니 蘊 쌓을온
//또 대답하시기를, "네 가지 원소(地·水·火·風)와 오온(色·受·想·行·識)이 본래 공하여 '나'가 아님을 알아야 하며 자기의 마음에 일어나는 작용이 두 가지가 있음을 알아야 하느니라.
云何爲二(운하위이)오 一者(일자)는 淨心(정심)이요 二者(이자)는 染心(염심)이라 染 물들일염
//무엇을 두 가지라 하는가 하면, 하나는 청정한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더러운 마음이다.
其淨心者(기정심자)는 卽是無漏眞如之心(즉시무루진여지심)이요
//그 청정한 마음이라는 것은 번뇌가 없는 진여의 마음이고, 漏 샐 루
其染心者(기염심자)는 卽是有漏無明之心(즉시유루무명지심)이니
//그 더러운 마음이라는 것은 번뇌가 있는 어리석은 마음이니라.
此二種心(이차종심)이 自然本來俱有(자연본래구유)하야 雖假緣合(수가연합)이나 互不相生(호불상생)이니라 雖 비록수
//이 두 가지 마음은 본래부터 저절로 함께 존재하는 것이며, 비록 어떤 인연으로 어울릴 수 있다하더라도 서로를 생겨나게 하지는 못하느니라.
淨心(정심)은 常樂善因(상락선인)하고 染心(염심)은 常思惡業(상사악업)하나니
//청정한 마음은 항상 善因을 좋아하고, 더러운 마음은 항상 악업을 생각하느니라.
若眞如自覺(약진여자각)하야 覺不受所染則稱之爲聖(각불수소염즉칭지위성)이라 遂能遠離諸苦(수능원리제고)하고 證涅槃樂(증열반락)이요
//만약 진여를 스스로 깨달아 깨달음이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면 성인이라 하는데, 마침내는 모든 괴로움이 멀리 떠나고 열반의 즐거움을 받을 것이고,
若隨染造惡(약수염조악)하야 受其纏覆則名之爲凡(수기전복즉명위범)이라 於是(어시)에 沈淪三界(침륜삼계)하야 受種種苦(수종종고)하나니 隨 따를 수 纏 얽힐 전
//만일 더러움에 빠져서 악을 지어 그것에 묶이고 덮이면 凡人이라 하는데 삼계에 빠져 갖가지 고통을 받을 것이니라.
何以故(하이고)오 由彼染心(유피염심)이 障眞如體故(장진여체고)니라
//왜냐하면, 마음이 더러움에 덮여 진여의 본체를 가렸기 때문이니라.
第三 眞心因妄不現(진실한 마음은 無明때문에 나타나지 않는다.)
十地經(십지경)에 云(운)하되 衆生身中(중생신중)에 有金剛佛性(유금강불성)흠이 猶如日輪(유여일륜)이 體明圓滿(체명원만)하야 廣大無邊(광대무변)컨만
//십지경에 이르시길, '중생의 몸 안에 금강 같은 불성이 있는데, 해와 같이 밝고, 원만하고, 크고, 끝이 없는데
只爲五陰黑雲(지위오음흑운)의 所覆(소복)흠이 猶如甁內燈光(유여병내등광)이 不能顯現(불능현현)이라 하시고
//오음(오온)의 먹구름에 덮여 있으므로 병 속의 등불 빛이 드러나지 못하는 것과 같다.'하셨고
又涅槃經(우열반경)에 云(운)하되 一切衆生(일체중생)이 皆有佛性(개유불성)이언만 無明(무명)이 覆故(복고)로 不得解脫(부득해탈)이라 하시니라
//또 열반경에서 이르시길, '모든 중생이 모두 불성을 갖고 있는데 무명에 덮여있기 때문에 해탈하지 못한다.'하셨느니라.
第四 善法以覺爲根者(좋은 법은 깨달음으로써 그 근본을 삼는다.)
佛性者(불성자)는 覺也(각야)라
//불성이라는 것은 깨달음이다.
但能自覺(단능자각)하여 覺智明了(각지명료)하야
//단, 스스로 깨달아 깨달은 지혜가 분명하여
離其所覆(이기소복)하면 則名解脫(즉명해탈)이니
//덮여있던 것을 벗어나면 곧 해탈이라 (이름)하느니라.
故知一切諸善(고지일체제선)이 以覺(이각)으로 爲根(위근)이로다.
//그러므로 일체의 선은 깨달음으로써 근본을 삼는 것을 알 수 있느니라.
因其覺根(인기각근)하야 遂能顯現諸功德樹(수능현현제공덕수)어든
//깨달음의 뿌리에 의하여 마침내 모든 공덕의 나무가 드러날 수 있으며
究竟之果 由此而成(구경지과 유차이성)하나니
//구경(열반)의 열매가 (이것(깨달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나니
如是觀心(여시관심)은 名之爲了(명지위료)니라
//이와 같이 관심(마음을 관하는 것)은 깨닫는 것을 (이름)하느니라.
第五 惡法以三毒爲根(나쁜 법은 삼독(三毒)이 뿌리이다.)
惠可問曰 未審(혜가문왈 미심)커라 無明之心(무명지심)과 一切諸惡(일체제악)은 以何爲根(이하위근)이니꼬
//혜가대사가 여쭙기를, "어떤 것이 무명의 마음과 모든 악의 뿌리가 되는지를 모르겠습니다."하니
答曰(답왈) 無明之心(무명지심)이 雖有八萬四千煩惱情欲(수유팔만사천번뇌정욕)하야 恒沙衆惡(항사중악)이 無量無邊(무량무변)이나 取要言之(취요언지)컨대 皆因三毒(개인삼독)하야 以爲根本(이위근본)이니라.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무명의 마음이, 비록 팔만사천의 번뇌와 정욕(여러 가지의 욕망)이 있어서 항하의 모래수 같이 온갖 악이 한량없고 끝이 없다 할지라도 요점만을 말한다면, 모두다 삼독(탐, 진, 치)이 그 근본이 되느니라.
其三毒者(기삼독자)는 卽貪瞋癡也(즉탐진치야)라
//이 삼독이라는 것은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것이니라.
此三毒心(차삼독심)이 自然本來具有一切諸惡(자연본래구유일체제악)흠이 猶如大樹根雖是一(유여대수근수시일)이나 所生枝葉(소생지엽)이 其數無邊(기수무변)인달하야
//이 세 가지 나쁜 마음이 본래부터 일체의 악을 갖추고 있는데, 그것은 마치 큰 나무가 뿌리는 하나이지만, 생겨나는 가지와 잎은 그 수가 끝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彼三毒根(피삼독근)이 一一根中(일일근중)에 生諸惡業(생제악업)흠이 百千萬億倍(백천만억배)나 過於前(과어전)하야 不可爲喩(불가위유)니라.
//그 삼독의 뿌리에서 하나 하나의 뿌리마다 온갖 악업을 생겨나게 하는 것은 앞서 말한 것보다 백천만억 배 이므로 비유를 할 수가 없느니라.
第六 正明六賊(육적을 분명히 밝힌다.)
如是三毒(여시삼독)이 於一本體(어일본체)에 自爲三毒(자위삼독)이어니와 若應現六根(약응현육근)하면 亦名六賊(역명육적)이니
//이와 같이 삼독이 하나의 본체에서 삼독으로 있다가 육근에 응하여 나타나면 또한 육적이라 (이름)하느니라.
六賊者(육적자)는 卽六識也(즉육식야)라
//육적이란 곧 육식이니라.
由此六識(유차육식)이 出入諸根(출입제근)하야 貪着萬境(탐착만경)하야 然成惡業(연성악업)하야 障眞如體故(장진여체고)로 名六賊(명육적)이니라
//육식(眼·耳·鼻·舌·身·意의 六根이 色·聲·香·味·觸·法의 六境에 대하여 알음알이를 냄)이 여러 기관을 드나들므로 인하여 온갖 경계에 빠져 자연히 나쁜 업을 만들며 진여의 바탕을 가리우기 때문에 육적이라 (이름)하느니라.
一切衆生(일체중생)이 由此三毒(유차삼독)과 及以六賊(급이육적)이 惑亂身心(혹난신심)하야 沈淪生死(침륜생사)하야 輪廻六趣(윤회육취)할새 受諸苦惱(수제고뇌)흠이
//모든 중생이 이 삼독과 육적으로 말미암아 몸과 마음이 산란하게 흐트러져 생사에 빠져들어 육취(六道)를 윤회하며 온갖 고통을 받는데,
猶如江河(유여강하) 因小泉源(인소천원)이 涓流不絶(연류부절)하야 乃能彌滿(내능미만)하야 波濤萬里(파도만리)하나니라.
//마치 큰 강이 작은 샘을 근원으로 하여 끊이지 않고 흐르다가 마침내 가득히 차면 만리에 파도가 출렁이는 것과 같으니라.
第七 斷三毒根(삼독의 뿌리를 끊어라)
若復有人(약부유인)이 斷其根源(단기근원)하면 則衆流皆息(즉중류개식)하나니라
//만일 사람이 그 근원을 끊게 되면, 곧 온갖 흐름이 모두 쉬게 되느니라.
求解脫者(구해탈자)가 能轉三毒(능전삼독)하야 爲三聚淨戒(위삼취정계)하고 能轉六賊(능전육적)하야 爲六波羅蜜(위육바라밀)하면 自然永離一切諸苦(자연영리일체제고)하나니라.
//해탈을 구하는 자가 삼독을 돌려 삼취정계(일체의 악을 끊어버리고 적극적으로 모든 선을 실행하며 널리 중생에게 이익을 베푸는 것)로 만들고 육적을 돌려 육바라밀로 만들 수 있다면 자연히 모든 고통에서 영원히 벗어나게 되느니라.
※三聚淨戒(삼취정계) :
①攝律儀戒(섭률의계)-부처님이 만든 계율을 지키고 악을 방지하는 것이며, 살생 음욕 거짓말 등을 하지 않는 것, 술을 만드는 것, 타인의 죄나 잘못을 폭로하는 것, 자신을 칭찬하고 타인을 욕하는 것, 재물이나 법을 베푸는 것을 아까워 하는 것, 화가 나서 상대가 사과해도 용서하지 않는 것, 불·법·승을 비방하는 것 등을 금지하는 10종류의 무거운 금제와 48종류의 계율을 비롯하여 모든 과오를 벗어나는 戒를 受持하는 것임.
②攝善法戒(섭선법계)-적극적으로 모든 선을 실행하는 것.
③攝衆生戒(섭중생계)-자비심을 바탕으로 중생을 위해 진력하는 모든 利他行.
①과 ②는 악을 파하고 선을 행하는 自利이고, ③은 利他임. 모든 戒法은 모두 이 3가지 속에 거두어지므로 攝이라하고 그 戒法은 모두 청정하므로 淨戒라 함.
第八 了出三界(깨달으면 삼계를 벗어나리라.)
又答曰(우답왈) 三界業報(삼계업보)가 唯心所生(유심소생)이니
//또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삼계의 업보는 오직 마음에서 생긴 것이니
若能了心(약능요심)하면 於三界中(어삼계중)에 則出三界(즉출삼계)하리라
//만약 마음을 깨달을 수 있다면, 삼계 속에 있으면서도 삼계를 벗어나리라.
※三界(삼계) : 불교의 세계관으로 중생이 왕래하고 거주하는 세 가지 세계의 뜻.
생사유전하는 미혹의 세계를 세 단계로 나눈 것으로,
欲界·色界·無色界이다. (욕계, 색계, 무색계)
미혹한 세계, 미혹의 경계.
第九 三界原因(삼계의 원인)
其三界者(기삼계자)는 則三毒也(즉삼독야)니
//그 삼계라는 것은 곧 삼독이니,
貪爲欲界(탐위욕계)요 嗔爲色界(진위색계)요 痴爲無色界(치위무색계)라
//탐욕은 욕계요, 성냄은 색계요, 어리석음은 무색계이니라.
由此三毒(유차삼독)하야 結集諸惡(결집제악)할새 業報成就(업보성취)하야
//이 삼독으로 말미암아 모든 악이 생겨나고 업보가 이루어져
輪廻六趣故(윤회육취고)로 名爲三界(명위삼계)니라
//육도를 윤회하므로 삼계라 하느니라.
※六趣(육취) : 중생이 업에 의해 生死를 반복하는 여섯 가지 세계(六道와 동일).
지옥·아귀·축생·수라·인간·천상
第十 迷現六趣(미혹하면 육취가 나타난다.)
又答曰 若有衆生(약유중생)이 不了正因(불료정인)하고 迷心修善(미심수선)하면 未免三界(미면삼계)하야 生於三輕趣(생어삼경취)하나니
//또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만약 중생이 정인(佛印心, 自性淸淨心)을 깨닫지 못하고 미혹한 마음으로 선을 닦으면 삼계를 벗어나지 못하여 삼경(세 가지 가벼운 갈래)에 태어나느니라.
云何三輕(운하삼경)고 所謂迷修十善(소위미수십선)하야 妄求快樂(망구쾌락)하면 未免貪界(미면탐계)하야 生於天趣(생어천취)하고,
//무엇을 세 가지 가벼운 갈래라 하는가 하면, 이를테면, 미혹한 마음으로 十善을 닦으며 망령되이 쾌락을 구하면 탐욕의 경지를 벗어나지 못하여 하늘 갈래에 태어나는 것과,
迷持五戒(미지오계)하야 妄起憎愛(망기증애)하며 未免瞋界(미면진계)하야 生於人趣(생어인취)하고
//미혹한 마음으로 5계를 지키되 미워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을 헛되이 일으키면 성내는 경지를 벗어나지 못하여 인간의 갈래에 태어나는 것과,
迷執有爲(미집유위)하야 信邪求福(신사구복)하면 米免痴界(미면치계)하야 生於修羅趣(생어수라취)하나니
//미혹한 마음으로 有爲에 집착하여 삿된 것을 믿고 복을 구하면 어리석음의 경지를 벗어나지 못하여 아수라의 갈래에 태어나는 것 등을 말하며,
如是三類(여시삼류)를 通名三輕趣(통명삼경취)니라
//이와 같은 세 가지를 다 이름 하여, 삼경(세 가지 가벼운 갈래)에 난다고 하느니라.
云何三重(운하삼중)고, 所謂縱三毒心(소위종삼독심)하야 唯造惡業(유조악업)이니
//무엇을 삼중(세 가지 무거운 갈래)이라 하는가 하면, 이를테면, 삼독의 마음에 따라 오로지 나쁜 업만 짓는 것이니라.
若貪業(약탐업)이 重者(중자)는 墮餓鬼趣(타아귀취)하고
//만약 탐욕의 업이 무거운 자는 아귀의 갈래에 떨어지고,
瞋業(진업)이 重者(중자)는 墮地獄趣(타지옥취)하고
//성내고 원망한 업이 무거운 자는 지옥의 갈래에 떨어지고,
痴業(치업)이 重者(중자)는 墮畜生趣(타축생취)하나니
//어리석음의 업이 무거운 자는 축생의 갈래에 떨어지느니라.
如是三重(여시삼중)을 通前三輕(통전삼경)하면 遂成六趣(수성육취)니라.
//이와 같은 삼중과 앞의 삼경을 합치면, 드디어 육취가 되느니라.
※十善(십선) : 열 가지 선한 행위
有爲(유위) : 인연에 의해 만들어진 생멸변화 하는 것. 덧없이 변천하는 것. 번뇌, 인과관계에 있어서 생멸하는 여러 현상의 모습.
第十一 攝心解脫(마음을 거두면 해탈이다.)
故知 惡業(고지악업)이 由心所生(유심소생)이니
//그러므로 알아라. 악업은 마음 때문에 생겨나므로
但能攝心(단능섭심)하야 離諸邪惡(이제사악)하면
//단지 마음만 잘 거두어 모든 삿된 것과 악한 것에서 벗어날 수 있으면
三界輪廻(삼계윤회)가 自然消滅(자연소멸)하야
//삼계의 윤회가 저절로 없어져
能盡諸苦(능진제고)하리니 卽名解脫(즉명해탈)이니라
//모든 고통이 다하게 되므로 곧 해탈이라 이름 하느니라.
第十二 卽三毒現阿僧祗(삼독에 의하여 아승지로 나타난다.)
又答阿僧祗問曰(우답아승지문왈) 此(차)는 則三毒心也(즉삼독심야)니
//또 아승지가 무엇인지 여쭙는 것에 대하여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삼독의 마음이니라.
胡名(호명)에 阿僧祗(아승지)라 하거든 漢言(한언)에는 不可數(불가수)라
//오랑캐에서는 아승지라 (이름)하지만, 한자로는 수를 셀 수가 없다는 말이니라.
此心中(차심중)에 有恒沙惡念(유항사악념)이어든 一一念中(일일념중)에 皆有一劫(개유일겁)이니라
//이 마음속에 항하의 모래 수 같이 많은 나쁜 생각이 있는데, 하나 하나의 생각마다 모두 일 겁씩이 있느니라.
恒沙者(항사자)는 不可數也(불가수야)니 以三毒惡念(이삼독악념)이 如恒沙故(여항사고)로 言不可數也(언불가수야)니라
//항하의 모래라는 것은, 수를 셀 수가 없다는 것인데, 삼독으로써 생기는 나쁜 생각이 마치 항하의 모래와 같으므로,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니라.
眞如之性(진여지성)이 旣被三毒之所覆(기피삼독지소복)할새 若不超彼恒沙惡念(약불초피항사악념)하면 云何名解脫(운하명해탈)이리요
//진여의 성품이 이미 삼독에 덮였으니, 만약 저 항하의 모래 수 같은 나쁜 생각을 벗어나지 못하면 어찌 해탈이라 말하겠느냐.
今者(금자)에 能除貪嗔痴(능제탐진치)하면 卽超過三大阿僧祗劫(즉초과삼대아승지겁)이어늘
//지금 탐·진·치의 마음을 없앨 수 있으면 바로 삼대 아승지겁을 뛰어넘는 것이 된다.
末世衆生(말세중생)이 鈍根(둔근)하야 不解如來甚深妙意三阿僧祗秘密之說(불해여래심심묘의삼아승지비밀지설)하고
//말세의 중생들은 우둔하여 여래의 깊고도 묘한 뜻인 세 아승지겁의 비밀스런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遂言歷此塵劫(수언력차진겁)하야사 方得成佛(방득성불)이라 하나니
//끝내 그렇게 무한히 긴 세월을 보내어야 비로소 성불할 수 있다고 말하는데,
末劫(말겁)에 豈不疑誤修行之人(기불의오수행지인)하야 退菩提之道也(퇴보리지도야)리요
//말세에 수행인을 의심하게 하고 잘못 알게 하여 보리의 도에서 물러나게 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第十三 明三聚六波羅密(삼취와 육바라밀을 밝히다.)
又問曰 持三聚淨戒(우문왈 지삼취정계)하며 行六波羅密(행육바라밀)하야사 方成佛道(방성불도)어늘
//또 여쭙기를, "삼취정계를 지니고 육바라밀을 행해야 비로소 불도를 이룰 수 있는데,
今令學者(금령학자)로 唯持觀心(유지관심)하고 不修戒行(불수계행)이면 云何成佛(운하성불)이리요
//지금 학자(불교의 수행자, 제자)들로 하여금 '오직 마음을 관하는 법만 지니라' 하시니, 계행을 닦지 않고 어떻게 성불할 수 있겠습니까?"
答曰 三聚淨戒者(답왈 삼취정계자)는 則制三毒心也(즉제삼독심야)니,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삼취정계라는 것은 곧 삼독의 마음을 누르는 것이니라.
制一毒(제일독)하면 成無量善聚(성무량선취)하나니라.
//하나의 독을 누르면 무량한 선의 무더기를 이룰 수 있느니라.
聚者(취자)는 會也(회야)니 能制三毒心(능제삼독심)하면 三無量善(삼무량선)이 普會於心(보회어심)일새 名三聚淨戒(명삼취정계)니라
//취라는 것은 모인다는 뜻이니, 삼독의 마음을 누를 수 있다면 세 가지 한량없는 선이 모두 마음에 모이므로 삼취정계라 하느니라.
六波羅密者(육바라밀자)는 則淨六根(즉정육근)이니 胡名(호명)은 波羅密(바라밀)이요 漢言(한언)에 到彼岸(도피안)이어든
//육바라밀이라는 것은 곧 육근을 깨끗이 한다는 것이니라. 오랑캐에서는 바라밀이라고 이름하며, 한자로는 도피안(저 언덕에 이른다)이니라.
以六根淸淨(이육근청정)하여 不染世塵(불염세진)이면 卽是出煩惱(즉시출전뇌)하야 便至彼岸(변지피안)일새 故名六波羅密(고명육바라밀)이니라
//육근이 청정하므로써 세상의 먼지에 더러워지지 않는다면, 곧 이는 번뇌에서 벗어나 문득 저 언덕에 이르는 것이므로 육바라밀이라 이름 하느니라."
※六根(육근) : 여섯 가지 감각기관, 인식능력 眼·耳·鼻·舌·身·意가 그 대상에 대하여 감각·인식 작용을 하는 경우, 그 의지처가 되는 작용을 하는 것.
六波羅密(육바라밀) : 보살이 열반에 이르기 위해 실천해야 할 여섯 가지 덕목을 말한다.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등이다.
又問曰 三聚淨戒者(우문왈 삼취정계자)는 誓斷一切惡(서단일체악)하며 誓修一切善(서수일체선)하여 誓度一切衆生(서도일체중생)이어늘
//또 여쭙기를 "삼취정계라는 것은 온갖 악을 끊어야겠다고 맹세하는 것과 일체의 선을 닦아야겠다고 서원하는 것과 일체의 중생을 제도하여야겠다고 서원하는 것인데,
今者(금자)에 唯言制三毒心(유언제삼독심)이라 하시니 豈不文義(기불문의)에 有所乖也(유소괴야)리요
//지금 오직 삼독의 마음만 눌러라 말씀하시니 어찌 글과 뜻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答曰 佛所說經(답왈 불소설경)이 眞實(진실)하야 應無謬也(응무류야)시니라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부처님이 말씀하신 경전은 진실하여 마땅히 그릇됨이 없느니라.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이 於過去因中 修菩薩行時(어과거인중 수보살행시)에 爲對三毒(위대삼독)하야 發三誓願(발삼서원)할새 持三聚淨戒(지삼취정계)하시니
//보살마하살이 과거에 (보살이 되기 위하여) 보살행을 닦을 때 삼독을 상대하기 위하여 세 가지 서원을 내어 삼취정계를 지니셨느니라.
常修戒(상수계)는 對貪毒(대탐독)이라 誓斷一切惡故(서단일체악고)요
//항상 계를 닦는 것은 탐욕의 독을 상대하여 온갖 악을 끊어야겠다고 맹세하는 것이고,
常修定(상수정)는 對嗔毒(대진독)이라 誓修一切善故(서수일체선고)요
//항상 선정을 닦는 것은 성내는 마음을 상대하여 온갖 선을 닦아야겠다고 맹세하는 것이고,
常修慧(상수혜)는 對痴毒(대치독)이라 誓度一切衆生故(서도일체중생고)니라
//항상 지혜를 닦는 것은 어리석음을 상대하여 일체중생을 제도하여야겠다고 맹세하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由持如是戒定慧三種等法故(유지여시계정혜삼종등법고)로 超彼三毒惡業(초피삼독악업)하야 成佛道也(성불도야)니
//이와 같이 계·정·혜 등의 세 가지 법을 지키므로 말미암아 그 삼독의 악업을 벗어나 불도를 이룰 수 있으니
能制三毒(능제삼독)하면 諸惡(제악)이 消滅故(소멸고)로 名之爲斷(명지위단)이요
//삼독을 누를 수 있으면, 모든 악이 소멸되므로 '끊는다.'라고 이름하고,
能持三聚淨戒(능지삼취정계)하면 諸善(제선)이 具足故(구족고) 名之爲修(명지위수)요
//삼취정계를 지닐 수 있다면, 모든 선이 두루 갖추어지므로 '닦는다.'고 이름하며,
能斷惡修善(능단악수선)하면 萬行(만행)이 成就(성취)하며 自他俱利(자타구리)하야 普濟群生故(보제군생고)로 名之爲度(명지위도)니
//악을 끊고 선을 닦을 수 있다면 온갖 수행이 이루어져 자기와 남을 모두 이롭게 하여 널리 중생을 구제하므로 '건넌다.'고 이름 하느니라.
故知所修戒行(고지소수계행)이 不離於心(불리어심)이로다
//그러므로 알라. 계행을 닦는 것도 마음을 떠나서 있는 것이 아니니라.
第十四 心淨則佛土淨(마음이 깨끗해지면 불국토도 깨끗해진다.)
若自心(약자심)이 淨(정)하면 一切衆生(일체중생)이 悉皆淸淨(실개청정)이니라
//자신의 마음이 깨끗해지면, 모든 중생의 마음이 진실로 다 깨끗해지느니라.
故(고)로 云(운)하사대 心垢則衆生垢(심구즉중생구)요 心淨則衆生淨(심정중생정)이라 하시고
//그러므로 (경전에서) 말씀하시기를, '마음이 더러우면 중생이 더러워지고, 마음이 깨끗하면 중생이 깨끗해진다.'하셨으며.
又云(우운)하사대 欲淨佛土(욕정불토)인댄 先淨其心(선정기심)이니 隨其心淨(수기심정)하야 則佛土淨(즉불토정)이라 하시니
//또 말씀하시기를, '불국토를 깨끗이 하고자 하면 먼저 그 마음을 깨끗이 하여라. 마음이 깨끗하여 지면 곧바로 불국토가 깨끗하여진다.'하신 것이니라.
若能制得三種毒心(약능제득삼종독심)하면 三聚淨戒(삼취정계)를 自能成就(자능성취)하리라
//만약 삼독의 마음을 누를 수 있으면, 삼취정계를 자연히 성취하리라."
第十五 重明六度(육도를 거듭 밝힌다.)
問曰 六度者(문왈 육도자)는 所謂布施持戒忍辱精進禪定智慧(소위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어늘
//또 묻기를, "육도자라는 것은 이를테면, 보시 · 지계 · 인욕 · 정진 · 선정 · 지혜입니다.
今言六根淸淨(금언육근청정)을 名爲六波羅密(명위육바라밀)이라 하시니 其義云何(기의운하)니꼬
//그런데 방금 말씀하시기를 육근을 청정하게 하는 것을 육바라밀이라 하셨습니다. 그 뜻이 무엇입니까?"
答曰 欲修六度(답왈 욕수육도)인댄 當淨六根(당정육근)이요 欲淨六根(욕정육근)인댄 先降六賊(선항육적)이니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육도를 닦고자하면 당연히 육근을 깨끗이 하여야 하고, 육근을 깨끗이 하려면 먼저 육적을 항복시켜야 한다.
能捨眼賊(능사안적)하면 離諸色境(이제색경)하야 心無慳悋(심무간린)일새 名爲布施(명위보시)요
//눈으로 봄으로 인해 생기는 번뇌를 버릴 수 있으면 눈으로 보는 모든 대상을 떠나 마음에 인색함이 없어지므로 보시라 이름하고,
能禁耳賊(능금이적)이면 於彼聲塵(어피성진)에 不令縱逸(불령종일)일새 名爲持戒(명위지계)요
//귀로 들음으로 인해 생기는 번뇌를 금할 수 있으면, 소리의 경계에 끌려 다니지 않으므로 지계라 이름하며,
能伏鼻賊(능복비적)하면 等諸香臭(등제향취)하야 自在調柔(자재조유)할새 名爲忍辱(명위인욕)이요
//코로 냄새를 맡으므로 인해 생기는 번뇌를 항복시킬 수 있으면 모든 향기나 악취 등에 유연하고 자유로우므로 인욕이라 이름하며,
能制舌賊(능제설적)하면 不貪邪味(불탐사미)하며 讚詠講說(찬영강설)호대 心無厭心(심무염심)일새 名爲精進(명위정진)이요
//혀로 맛봄으로 인해 생기는 번뇌를 누를 수 있으면, 삿된 맛을 탐내지 않으며 칭송하고 설법하되 게을리 하는 마음이 없으므로 정진이라 이름하며,
能伏身賊(능복신적)하면 於諸觸欲(어제촉욕)에 湛然不動(잠연부동)일새 名爲禪定(명위선정)이요
//몸으로 인해 생기는 번뇌를 항복시킬 수 있으면 모든 촉욕(부드러운 의복이나 상대의 피부에 접촉하고 싶은 욕망)에 대하여 잠잠하고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으므로 선정이라 이름하며,
能調意賊(능조의적)하면 不順無明(불순무명)하고 常修佛慧(상수불혜)하야 樂諸功德(낙제공덕)일새 名爲智慧(명위지혜)니라
//생각으로 일어나는 번뇌를 조복시킬 수 있으면 무명을 따르지 않고 항상 부처님의 지혜를 닦아 여러 공덕을 즐기므로 지혜라 이름 하느니라.
又度者(우도자)는 運也(운야)니
//또 도라는 것은 운반한다는 뜻이니라.
六波羅密(육바라밀)은 喩若船筏(유약선벌)이어든 能運衆生(능운중생)하야 達彼岸故(달피안고)로 云六度(운육도)니라
//육바라밀은 또한 배나 뗏목 같은 것이라 중생을 운반하여 저 언덕에 이르게 하므로 육도라 하느니라."
第十六 明法乳(법유를 밝히다.)
又問曰(우문왈) 曾飮三斗六升乳塵(증음삼두육승유진)하시고 方成佛道(방성불도)라하시니 豈唯觀心(기유관심)하야 而得解脫(이득해탈)이리까
//또 여쭙기를, "부처님께서 서말 여섯 되의 우유를 마시고서야 불도를 이루셨다 하였는데, 어찌하여 마음을 觀하기만 하면 해탈할 수 있다 하십니까?"하니
答曰(답왈) 佛所說食乳者(불소설식유자)는 非是世間不淨之乳(비시세간부정지유)라 乃是眞如之淸淨法乳(내시진여지청정법유)니라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부처님께서 마셨다고 하는 것은 세상의 부정한 젖이 아니라, 진여의 청정한 법유(어머니의 젖으로 아기가 성장하듯이 스승의 가르침으로 제자가 진보하므로 그 가르침을 법유라 함)이니라.
三斗者(삼두자)는 三聚淨戒(삼취정계)요 六升者(육승자)는 六波羅密(육바라밀)이니
//서말이라 하는 것은 삼취정계이고, 여섯 되라는 것은 육바라밀이니라.
佛(불)이 成道時(성도시)에 由食此淸淨法乳(유식차청정법유)하야 方證佛果(방증불과)어늘
//부처님이 도를 이루실 때에 이 청정한 법의 젖을 마신 까닭에 佛果를 깨달으셨는데,
若言如來食於世間(약언여래식어세간)의 飮欲和合不淨전腥之乳者(음욕화합부정전성지유자)라하면 豈不成謗之甚乎(기불성방지심호)아
//만약 여래께서 세상의 육욕으로 이루어진 더럽고 비리며 누린내 나는 젖을 마셨다 하면 어찌 비방이 지나치지 않겠느냐.
如來者(여래자)는 自是金剛不壞無漏之眞身(자시금강불괴무루지진신)이라 永離世間苦(영리세간고)어니
//여래라는 것은 금강과 같이 부수어지지 않으며 번뇌가 없는 진실한 몸이라 세간의 괴로움을 영원히 여의었는데,
豈須如是不淨之乳(기수여시부정지유)하야 以免飢渴也(이면기갈야)리요
//어찌 이같이 깨끗하지 못한 우유가 필요하겠으며, 이것으로 배고픔과 목마름을 면하였겠느냐.
如經所說(여경소설)하야 此牛(차우)는 不在高原(부재고원)하며 不在下濕(부재하습)하며
//경전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 소는 높은 곳에 있는 것도 아니고, 낮은 습지에 있는 것도 아니며,
不食粟麥糠부(불식속맥강부)하며 不與特牛(불여특우)로 同群(동군)이라 身作紫磨金色(신작자마금색)이라 하시니라
//좁쌀이나 보리나 겨나 밀기울을 먹는 것도 아니며 무리와 같지 않은 특별한 소로 그 몸은 자색을 띈 황금색이니라.
言此牛者(언차우자)는 則光明遍照佛也(즉광명편조불야)시니
//이 소라는 것은 곧 광명을 두루 비추시는 부처님이시니,
以大慈悲(이대자비)로 憐愍一切(연민일체)하사 於淸淨法體中(어청정법체중)에 流出如是三聚淨戒(류출여시삼취정계)와 六波羅密微妙法乳(육바라밀미묘법유)하사
//대자대비로써 일체를 가엾게 여기시어 청정한 법의 육체에서 이와 같은 삼취정계와 육바라밀의 미묘한 젖을 내어
乳養一切求解脫者(유양일체구해탈자)하시니 非獨如來飮之成道(비독여래음지성도)라
//해탈을 구하는 모든 이를 먹여 기르시니 여래만이 마셔서 도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一切衆生(일체중생)이 若能飮者(약능음자)면 皆得無上正眞之道(개득무상정진지도)리라
//모든 중생이 마시기만 하면 모두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얻는 것이니라."
第十七 修造聖殿(성전을 바르게 지어라)
又問曰 經中(우문왈 경중)에 修造聖殿(수조성전)하며 鑄寫聖像(주사성상)하며 燒香散花(소향산화)하며 燃長明燈(연장명등)하며
//또 여쭙기를, "경전 가운데에 성전을 짓거나, 부처님의 모습을 만들거나, 향을 사르거나, 꽃을 흩거나, 장명등을 켜거나,
日夜六時(일야육시)로 行道禮拜持齋(행도예배지재)하야 修種種功德(수종종공덕)하면 皆成佛道(개성불도)라 하야시늘
//밤낮 여섯 차례 예불을 하거나, 재계를 지키는 등 온갖 공덕을 닦으면 모두 불도를 이룬다 하셨는데,
唯觀心一法(유관심일법)이 總攝諸行云者(총섭제행운자)는 必虛妄也(필허망야)니라
//오로지 마음을 관하는 한 가지 법이 모든 수행을 다 닦는 것과 같다고 하신 말씀은 반드시 허망한 말씀일 것입니다."
答曰 一切衆生(답왈 일체중생)이 鈍根狹劣(둔근협렬)하야 不悟深深妙理(불오심심묘리)할새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모든 중생이 우둔하여 지혜가 좁고 용렬하며 깊고도 깊은 묘한 이치를 깨닫지 못하므로
無數方便(무수방편)으로 引導衆生(인도중생)하사대 假有爲事(가유위사)하야 現無爲理(현무위리)하시니 汝知之否(여지지부)아
//수도 없는 방편으로 중생들을 인도하시려고 유위의 일을 빌려 무위의 이치를 나타내신 것인데, 그대가 어찌 알 수 있겠느냐?"
不修內行(불수내행)하고 唯只外求(유지외구)하며 希生福報(희생복보)가 無有是處(무유시처)니라
//안으로 수행하지 않고 오직 밖으로만 구하며 복을 바라는 것은 옳지 못한 것이니라.
言伽藍者(언가람자)는 梵語(범어)어든 此言(차언)에 淸淨處也(청정처야)니
//가람이라는 말은 범어인데, 이 말은 청정한 곳이라는 뜻이니라.
若永除三毒(약영제삼독)하야 常淨六根(상정육근)하며 身心(신심)이 湛然(담연)하야 內外淸淨(내외청정)하면 是則修伽藍也(시즉수가람야)니라
//만약 삼독을 영원히 없앤다면, 육근을 항상 깨끗이 하며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하여 안과 밖을 청정하면 이것이 곧 가람을 짓는 것이니라.
第十八 鑄寫佛像(불상을 조성하는 법)
又鑄寫佛像者(우주사불상자)는 卽一切衆生(즉일체중생)이 求佛道也(구불도야)니
// 또 부처님의 모습을 만들거나, 그린다는 것은 모든 중생들이 불도를 구하는 것으로,
所謂修諸覺行(소위수제각행)호대 假像如來眞容妙相(가상여래진용묘상)이라 豈道鑄金銅之所作也(기도주금동지소작야)리요
//이를테면, 온갖 각행(스스로 깨닫고 다른 이를 깨닫게 하는 보살의 불도 수행)을 닦으며 여래의 참모습과 묘한 모습을 빌리는 것이지, 어찌 금이나 구리를 부어 만든 것을 말하겠느냐?
是故(시고)로 求解脫者(구해탈자)는 以身(이신)으로 爲爐(위로)하고 以法(이법)으로 爲火(위화)하고 以智慧(이지혜)로 爲工匠(위공장)하고 以三聚淨戒(이삼취정계)와 六波羅密(육바라밀)로 爲模樣(위모양)하야
//그러므로 해탈을 구하는 자는 자신의 몸으로써 화로가 되고, 법으로써 불이 되고, 지혜로써 공장(물건을 만드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 되고, 삼취정계와 육바라밀로써 형태가 되어
鎔鍊身中眞如佛性(용련신중진여불성)하야 遍入一切戒律模中(편입일체계율모중)하야 如敎奉行(여교봉행)호대 一無缺漏(일무결루)하면 自然成就眞容之相(자연성취진용지상)하나니
//몸 속에 있는 진여불성을 녹이고 다스려 온갖 계율의 틀 속으로 들어가 가르침대로 받들어 행하되 하나도 빠짐없이 하면 저절로 참된 모습을 이룰 수 있으리라.
所謂究竟常住微妙法(소위구경상주미묘법)이라 非是有爲敗壞之法(비시유위패괴지법)이니라
//이른바 궁극의 경지이며 항상 머무르는 미묘한 법신인지라 언젠가는 무너지는 유위의 모습이 아니니라.
若人(약인)이 求道(구도)호대 不解鑄寫眞容(불해주사진용)하면 憑何輒言成功德也(빙하첩언성공덕야)리요
//만약 사람들이 도를 구하면서 참모습을 만들거나 그릴 줄 모르면 무엇으로 공덕을 이룬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眞如 : 우리의 사상개념으로 미칠 수 없는 진실한 경계. 거짓이 아닌 진실이라는 뜻과 변천하지 않는 如常하다는 뜻으로 진여라 한다. 그와 같이 있는 것. 그대로의 모습. 있는 그대로 인 것. 法性과 같은 뜻.
第十九 五分香(오분 법신을 향에 비유하다)
燒香者(소향자)는 亦非世間有相之香(역비세간유상지향)이라 乃是無爲正法之香(내시무위정법지향)이니
//향을 피운다는 것도 역시 세상에 있는 향이 아니라, 이내 무위(생멸변화를 넘은 상주절대의 진실)정법의 향이니라.
董諸臭穢(동제취예)하며 斷無明惡業(단무명악업)하야 悉令消滅(실령소멸)이니라
//온갖 더러운 냄새를 물리치고 무명과 악업을 끊어 다 없어지게 하는 것이니라.
其正法香者(기정법향자)는 有五種(유오종)하니
//그 정법의 향이라는 것은 다섯 가지가 있느니라.
一者(일자)는 戒香(계향)이니 所謂能斷諸惡(소위능단제악)하고 能修諸善(능수제선)이요
//첫째는 계향인데, 말하자면, 모든 악을 끊고 모든 선을 닦는 것이니라.
二者(이자)는 定香(정향)이니 所謂深信大機(소위심신대기)하야 心無退轉(심무퇴전)이요
//둘째는 정향인데, 대기(선의 깊은 경지에 이끌어 들어가게 하는 커다란 움직임)를 깊이 믿어 마음이 물러남이 없는 것을 말하느니라.
三者(삼자)는 慧香(혜향)이니 所謂常於身心(소위상어신심)에 內外觀察(내외관찰)이요
//셋째는 혜향인데, 항상 몸과 마음을 안팎에서 관찰하는 것을 말하며,
四者(사자)는 解脫香(해탈향)이니 所謂能斷一切無明結縛(소위능단일체무명결박)이요
//넷째는 해탈향인데, 소위 온갖 무명의 결박을 끊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五者(오자)는 解脫知見香(해탈지견향)이니 所謂覺察(소위각찰)이 常明(상명)하야 通達無碍(통달무애)니라
//다섯째는 해탈지견향인데, 느끼고 살피는 것이 항상 분명하며 걸림 없이 통달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라.
如是五香(여시오향)이 名最上香(명최상향)이라 世間(세간)에 無比(무비)니
//이와 같은 다섯 가지 향은 가장 높은 향이라 이름하며 세상에 견줄 것이 없느니라.
佛(불)이 在世日(재세일)에 令諸弟子(영제제자)로 燒如是無價寶香(소여시무가보향)하야 進供十方一切如來(진공시방일체여래)어늘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셨을 때 여러 제자로 하여금 이와 같이 값진 향을 사루어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라 하셨는데,
今時衆生(금시중생)이 愚痴鈍根(우치둔근)하야 不解如來眞實之義(불해여래진실지의)하고
//요즘의 중생들은 어리석고 둔하여 여래의 진실한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唯將外火(유장외화)하야 燒於世間沈檀薰陸質碍之香(소어세간침단훈륙질애지향)하야 希望福報(희망복보)하니 云何可得(운하가득)이리요
//오직 밖의 불로 세간의 침단이나 훈륙 등 형체가 있는 향을 사르며 복을 바라니 어찌 얻을 수 있겠느냐!
※침단(沈檀) : 침향과 전단향을 말함.
훈륙(薰陸) : 송진과 비슷한 수지로 황색을 띠고 불속에 넣으면 향기가 나기 때문에 소향(燒香)이라 하여 귀하게 여김.
第二十 散花(꽃을 뿌리는 것)
又散花者(우산화자)도 義亦如是(의역여시)하니
//꽃을 뿌린다는 것도 그 이치가 이와 같느니라.
所謂演說正法諸功德花(소위연설정법제공덕화)하야 饒益有情(요익유정)하며 散治一切眞如之性(산치일체진여지성)하야 普施莊嚴(보시장엄)이니
//이른 바 정법의 공덕 꽃을 널리 설하여 유정(생명을 가지고 있는 것)들을 이롭게 하고 온갖 진여의 성품을 다스려서 훌륭한 것을 두루 베푸는 것이니라.
此諸功德花(차제공덕화)는 佛所稱嘆(불소칭탄)이라 無凋落期(무조락기)하니라
//이 공덕의 꽃은 부처님께서 찬탄하신 것이라 시들거나 떨어지지 않느니라.
若復有人(약부유인)이 散如是花(산여시화)하면 獲福無量(획복무량)이어니와
//만약에 어떤 사람이 이와 같은 꽃을 뿌리면 한량없는 복을 얻을 것이니라.
若言如來令諸弟子(약언여래영제제자)와 及衆生等(급중생등)으로 剪截艶綠(전절염록)하며 傷損草木(상손초목)하야 以爲散花(이위산화)라하면 無有是處(무유시처)니라
//만일 여래께서 여러 제자 및 중생들로 하여금 곱고 파릇파릇한 것을 가위로 잘라 초목을 상하게 하면서까지 꽃을 뿌리게 하셨다고 말한다면 옳지 못한 것이니라.
所以者何(소이자하)오 持淨戒者(지정계자)는 於諸天地森羅萬象(어제천지삼라만상)에 不令觸死(불령촉사)니
//왜냐하면, 계율을 바르게 지키는 자는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일체의 모든 물건을 범하거나 죽이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誤損者(오손자)도 猶獲大罪(유획대죄)온 況復今者(황부금자)에 加毁淨戒(가훼정계)하며 損傷萬物(손상만물)하야 求於福報(구어복보)리오
//잘못하여 상하게 하는 것도 큰 죄를 받는데 하물며 요즘 사람들처럼 청정한 계율을 무너뜨리고, 만물을 손상시키며 복을 구하는 것이야 말할 것이 있겠느냐.
欲益反損(욕익반손)이라 豈有是乎(기유시호)아
//이익을 바라지만 오히려 손해가 되는지라 어찌 옳은 일이라 하겠느냐? (豈 어찌기)
第二十一 明燈(등불을 밝히다)
又長明燈者(우장명등자)는 正覺心也(정각심야)니 覺之明了(각지명료)를 喩之爲燈(유지위등)이니라
//또 장명등(밤낮으로 항상 밝히는 등불)이라는 것은 바르게 깨닫는 마음이니, 확실히 깨달음을 등에 비유한 것이니라.
是故(시고)로 一切求解脫者(일체구해탈자)는 常以身(상이신)으로 爲燈臺(위등대)하고 以心(이심)으로 爲燈盞(위등잔)하고 以信(이신)으로 爲燈炷(위등주)하고 以戒香(이계향)으로 爲燈油(위등유)하고 以智慧明達(이지혜명달)로 爲燈光(위등광)하나니
//그러므로 해탈을 구하는 사람들은 항상 몸을 등 받침으로 삼고, 마음을 등잔으로 삼고, 믿음을 심지로 삼고, 계향(계율을 지키는 것과 그 공덕이 사방으로 퍼지는 것을 향에 비유한 말)을 기름으로 삼고, 지혜가 밝아지는 것을 등불로 삼아야 하느니라.
常燃如是覺燈(상연여시각등)하야 炤破一切無明痴暗(조파일체무명치암)이니라
//항상 이와 같은 깨달음의 등을 켜서 온갖 무명과 어리석음과 어두움을 없애버려야 하느니라.
能以此法(능이차법)으로 轉相開悟(전상개오)하면 卽是一燈(즉시일등) 燃百千燈(연백천등)호대 燈燈續明(등등속명)하야 終無盡故(종무진고)로 號(호)를 長明燈(장명등)이니라
//이 법으로써 차례대로 깨달으면 곧 하나의 등으로 백천등을 켜되 등과 등이 차례대로 밝아져 끊어짐이 없으므로 장명등이라 하느니라.
過去(과거)에 有佛(유불)호대 名曰煙燈(명왈연등)이시니
//과거에 부처님이 계셨는데 명호가 연등이셨느니라.
義亦如是(의역여시)어늘 愚痴衆生(우치중생)이 不會如來(불회여래)의 方便之說(방편지설)하고 專行虛妄(전행허망)하며 執着有爲(집착유위)할새
//이치가 이러하거늘 어리석은 중생들은 여래가 방편으로 말씀하신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로지 허망한 짓만 하고 유위에 집착하므로
遂然世間蘇油之燈(수연세간소유지등)하야 以照空室(이조공실)하고 乃稱依敎(내칭의교)라하나니 豈不謬乎(기불류호)아
//세간의 소유등을 켜서 빈 방을 비추는 것으로 가르침대로 행한다하니 어찌 잘못이 아니겠느냐.
所以者何(소이자하)오 佛(불)이 放眉間一毫之光(방미간일호지광)하야도 尙照十萬八千世界(상조십만팔천세계)하며 若身光(약신광)이 盡現則普照十方(진현즉보조시방)하나니 豈假如是世俗之燈(기가여시세속지등)하야 以爲利益(이위이익)이리오
//왜냐하면 부처님이 눈썹사이의 한 터럭으로 광명을 놓으셔도 일만팔천 세계를 두루 다 비추시니 어찌 이 같은 세속의 등으로 이익이 되겠느냐.
審察斯理(심찰사리)하면 應不然乎(응불연호)아
//이런 이치를 자세히 살피면 당연히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으리라.
第二十二 行道(불도를 수행하는 것)
又六時行道者(우육시행도자)는 所謂六根之中(소위육근지중)에 常行佛道(상행불도)니
//또 하루 여섯 차례 불도를 수행한다 하는 것은 이른바, 육근 안에서 항상 불도를 수행한다는 것이다.
修諸覺行(수제각행)하야 調伏六根(조복육근)하야 長時不捨(장시불사)를 名爲六時行道(명위육시행도)니라
//온갖 각행(스스로 깨닫고 다른 이를 깨닫게 하는 보살의 불도 수행, 보리행)을 닦아, 육근을 편안하게 다스려서(그 편안하게 다스려진 것을) 영원히 버리지 않는 것을 여섯 차례 도를 행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塔者(탑자)는 身心也(신심야)니 常令覺慧(상령각혜)로 巡遶身心(순요신심)을 名爲遶塔(명위요탑)이니라
//탑이라는 것은 몸과 마음이니 각혜(사고하고 분별하는 지혜의 힘)로 하여금 몸과 마음을 두루 돌게 하는 것을 탑돌이라고 이름 하느니라.
過去諸聖(과거제성)이 曾行此道(증행차도)하야 得涅槃(득열반)이어늘 世人(세인)이 不會斯理(불회사리)하니 何名行道(하명행도)리요
// 과거의 부처님들도 이 도를 행하여 열반을 얻으셨는데, 세상 사람들이 이 이치를 알지 못하니 어찌 도를 행한다 하리요.
鈍根之輩(둔근지배)는 不曾內行(부증내행)하고 唯報外求(유보외구)하야 요世間塔(요세간탑)호대 日夜走驟(일야주취)하나니
//우둔한 무리들은 안으로의 수행은 하지 않고 오직 밖으로만 구하느라 세간의 탑을 밤낮으로 쉬지 않고 분주히 돌기만 하니
徒自疲勞(도자피로)라 而於眞性(이어진성)에 一無利益(일무리익)이니 甚可憐愍(심가연민)이로다
//공연히 피곤하기만 하지 진실한 본성에는 하나도 이익이 되지 않으니 매우 가엾은 일이로다.
第二十三 齋戒(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
又持齋(우지재)의 齋者(재자)는 濟也(제야)니 所謂勤治身心(소위근치신심)하야 不令散亂(불령산난)이요
//또 재(齋 : 身·口·意의 3가지 행위를 삼가 몸을 깨끗이 하는 것)를 지닌다는 것에서 '재'라는 것은 이룬다는 것으로, 이를테면 몸과 마음을 부지런히 다스려 어지럽지 않게 한다는 것이요,
持者(지자)는 護也(호야)니 所謂於諸戒行(소위어제계행)에 如法護持(여법호지)호대 必須禁六情而制三毒(필수금육정이제삼독)하며 勤修覺察而淨其心(근수각찰이정기심)이니
//'지닌다.'는 것은 보호한다는 것으로, 소위 모든 계행을 법과 같이 지키되 반드시 육정을 붙들어 매고 삼독을 눌러, 깨닫고 살피는 행을 부지런히 닦아서 그 마음을 깨끗이 하여야 한다는 것이니라.
了如是義者(요여시의자)라사 可名爲齋(가명위재)니라
//이러한 뜻을 이해해야 '재'라고 부를 수 있느니라.
第二十四 齋食(공양하는 것)
又齋食者(우재식자)는 食有五種(식유오종)하니
//또 공양이라는 것에는 다섯 가지가 있느니라.
一者(일자)는 法喜食(법희식)이니 依如來政法(의여래정법)하야 歡喜奉行(환희봉행)이요
//첫째는, (가르침을 맛보고 기뻐하는) 법희식인데, 여래의 정법에 의지하여 기쁜 마음으로 받들어 행하는 것이고,
二者(이자)는 禪悅食(선열식)이니 內外澄寂(내외징적)하야 身心悅樂(신심열락)이요
//둘째는, 선열식인데, 안팎으로 맑고 고요하여 몸과 마음으로 받들어 행하는 것이고,
三者(삼자)는 念食(염식)이니 常念諸佛(상염제불)하야 心口相應(심구상응)이요
//셋째는 염식인데, 항상 부처님들을 생각하여 마음과 입이 상응하는 것이고,
四者(사자)는 願食(원식)이니 行住坐臥(행주좌와)에 常行善願(상행선원)이요
//넷째는, 원식인데 (언제 어디서나 무엇을 할 때라도) 가거나, 머물거나, 앉거나, 눕거나 항상 선한 일을 서원하는 것이고,
五者(오자)는 解脫食(해탈식)이니 心常淸淨(심상청정)하야 不染世塵(불염세진)일새 名爲齋食(명위재식)이니라
//다섯째는, 해탈식인데, 마음을 항상 깨끗이 하여 세상의 번뇌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이니, 이것들을 이름 하여 재식이라 하느니라.
第二十五 斷食(식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
又斷食者(우단식자)는 斷無明惡業之食(단무명악업지식)이어늘
//또 단식을 한다는 것은 무명과 악업의 음식을 끊는다는 것인데
迷人(미인)이 不悟斯理(불오사리)하고 身心放逸(신심방일)하야 造諸惡業(조제악업)하여 貪恣情慾(탐자정욕)하야 不生慙愧(불생참괴)하고 唯斷外食(유단외식)하야 自然持齋(자연지재)라 하나니
//어리석은 사람이 이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심신을 함부로 하여 온갖 악업을 지으며, 여러 가지 욕망에 깊이 빠져 부끄러워 할 줄 모르면서 음식만 먹지 않으면 자연히 계율을 지키는 것이라 하니,
何異痴兒(하이치아)가 見爛壞死屍(견란괴사시)하고 稱言有命(칭언유명)이리요
//철이 없는 아이가 썩어 문드러진 시체를 보고 생명이 있다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必無是處(필무시처)니라
//반드시 옳지 못한 일이니라.
第二十六 禮拜(예법하는 법)
禮拜者(예배자)는 常如法也(상여법야)니 理體(이체)는 內明(내명)하고 事相(사상)은 外變(외변)이어든 理不可捨(이불가사)어니와 事有行藏(사유행장)하나니
//예배라는 것은 항상 법과 같으니 이체(만유위 본체)는 안으로 밝지만, 작용의 모습은 밖으로 변하므로 이치는 버릴 수 없거니와 현상에는 드러나는 것과 감추는 것이 있느니라.
會如是義(회여시의)하야사 乃名依法(내명의법)이니라
//이와 같은 도리를 알아야 비로소 법에 의지한다고 (이름)할 수 있느니라.
夫禮者(부예자)는 敬也(경야)요 拜者(배자)는 伏也(복야)니 恭敬眞性(공경진성)하고 屈伏無明(굴복무명)이라야 名爲禮拜(명위예배)니라
//무릇 '예'라는 것은 공경한다는 것이고, '배'라는 것은 복종한다는 것이니, 진실한 본성을 공경하고 무명을 굴복시키는 것을 예배라고 이름 하느니라.
以恭敬故(이공경고)로 不敢毁傷(불감훼상)하고 以屈伏故(이굴복고)로 無令縱逸(무령종일)하나니
//공경하기 때문에 감히 헐뜯지 못하고 굴복하기 때문에 제멋대로 못하게 하는 것이니라.
若能惡情(약능악정)이 永滅(영멸)하고 善念(선념)이 恒存(항존)하면 雖不現相(수불현상)이나 常爲禮拜(상위예배)니라
//만약 나쁜 마음을 영원히 없애고 착한 생각을 항상 지닐 수 있으면 비록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항상 예배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用之則現(용지즉현)하고 捨之則藏(사지즉장)이라 擧外明內(거외명내)는 唯性相(유성상)이 相應也(상응야)일새니라
//수용하면 곧 나타나고 버리면 곧 감추어지는 것이라 밖의 행동(예배)으로 안이 밝아지는 것은 오직 성품과 모양이 상응하기 때문이니라.
若復唯執外相禮拜(약부유집외상예배)하면 內則縱於貪嗔(내즉종어탐진)하야 常行惡念(상행악염)하고 外則空顯身相(외즉공현신상)하야 假作敬禮(가작경예)하나니 何名禮拜(하명예배)리요
//만약 바깥 모습의 예배에만 집착한다면 안으로 곧 탐·진의 마음을 쫓게 되므로 항상 나쁜 생각을 행하고 겉으로만 절하는 모습을 보일 뿐이고 거짓으로 공경하는 것이 되니 어찌 예배라고 이름 할 수 있겠느냐.
欺賢誑聖(기현광성)이라 必不免於輪廻(필불면어윤회)니라
//현명한 사람을 속이는 것이고 성인을 속이는 것이므로 반드시 윤회를 면치 못할 것이니라.
第二十七 洗浴(목욕하는 법)
又問曰 溫室經(우문왈 온실경)에 云(운)하되 洗浴衆僧(세욕중승)이면 得福無量(득복무량)이라하시니 若有觀心(약유관심)이면 何相應不(하상응부)이까
//또 여쭙기를 "{온실경}에 말씀하시길, '스님들을 목욕시켜 드리면 한량없는 복을 얻는다.'하였는데 마음을 관하는 것으로 상응이 되겠습니까?"
答曰洗浴衆僧者(답왈세욕중승자)는 非說世間有爲之事也(비설세간유위지사야)라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스님들을 목욕시켜 드린다는 것은 세간의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此(차)는 假諸事(가제사)하사 譬喩眞宗(비유진종)하시니 隱說七事(은설칠사)하리라
//이는 세상의 일을 빌어 진실하고 위없는 가르침을 비유하신 것이며 은밀하게 일곱 가지 사물을 말씀하신 것이니라.
其七事者(기칠사자)는 一者(일자)는 淨水(정수)요 二者(이자)는 燃火(연화)요 三者(삼자)는 조豆(조두)요 四者(사자)는 楊枝(양지)요 五者(오자)는 淨灰(정회)요 六者(육자)는 소膏(소고)요 七者(칠자)는 內衣(내의)니라
//그 일곱 가지는, 첫째는 깨끗한 물이고, 둘째는 불을 피우는 것이고, 셋째는 비누이며, 넷째는 양지(치아를 닦는 도구)고, 다섯째는 깨끗한 재이며, 여섯째는 우유로 만든 기름이고, 일곱째는 속옷이니라.
用此七法(용차칠법)하야 沐浴莊嚴(목욕장엄)하면 能除三毒無明垢穢(능제삼독무명구예)하니라
//이 일곱 가지를 써서 목욕하고 단장하면 삼독과 무명과 때와 더러움을 없앨 수 있으니라.
其七法者(기칠법자)는 一者(일자)는 法戒(법계)니 洗溫愆非(세온건비)호미 猶如淨水 去諸塵垢(유여정수 거제진구)요
//그 일곱 가지 법이라는 것은 첫째는 법과 계율이니라. 거짓과 허물을 부드럽게 씻어내는 것이 마치 깨끗한 물로 모든 때와 먼지를 씻어 내는 것과 같음이요,
二者(이자)는 智慧(지혜)니 觀察內外(관찰내외)호며 猶如燃火 能溫淨水(유여연화 능온정수)요
//둘째는 지혜이니, 안과 밖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 마치 불을 피워 물을 따뜻하게 하는 것과 같음이요,
三者(삼자)는 分別(분별)이니 揀棄諸惡(간기제악)호며 猶如조豆 能淨垢니(유여조두 능정구니)요
//섯째는 분별인데, 나쁜 마음을 가려내어 버려버리는 것이 마치 비누로 끈적거리는 더러움을 씻어내 깨끗하게 하는 것과 같음이요,
四者(사자)는 眞實(진실)이니 斷諸妄語(단제망어)호며 猶如楊枝(유여양지)하야 能消口氣(능소구기)요
//넷째는 진실인데 온갖 거짓말을 끊어버리는 것이 마치 양치질을 하는 나무로 입안의 냄새를 없애는 것과 같음이요,
五者(오자)는 正信(정신)이니 決意無慮(결의무려)가 猶如淨灰(유여정회)로 摩身(마신)하야 能壁諸風(능벽제풍)이요
//다섯째는 올바른 믿음인데, 선을 행하고 악을 끊겠다는 결의를 하면 다시는 걱정이 없는 것이 마치 깨끗한 재로 문지르면 풍병을 피할 수 있는 것과 같음이요,
六者(육자)는 調息(조식)이니 伏諸剛强(복제강강)이 猶如소膏(유여소고)하야 通潤皮膚(통윤피부)요
//여섯째는 호흡을 조절하는 것인데, 억센 마음을 누르는 것이 마치 우유로 만든 기름으로 피부를 윤택하게 하는 것과 같음이요,
七者(칠자)는 慙愧(참괴)니 悔諸惡業(회제악업)이 猶如內衣(유여내의)하야 遮蔽醜形(차폐추형)이니
//일곱째는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인데, 나쁜 짓을 뉘우치는 것이 마치 속옷이 추한 알몸을 감추어주는 것과 같음이니,
以上七事(이상칠사)가 幷是經中秘密之藏(병시경중비밀지장)이어늘 今人(금인)이 無能悟解(무능오해)로다
//이상 일곱 가지가 모두 경전 속에 감춰진 비밀스러운 가르침인데, 오늘날의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는 것이니라.
其溫室者(기온실자)는 則身(즉신)이 是也(시야)니
//그 온실이라는 것은 곧 몸이니라.
以智慧火(이지혜화)로 溫淨戒湯(온정계탕)하야 沐浴身中眞如佛性(목욕신중진여불성)호대 受持七法(수지칠법)하야 以自莊嚴(이자장엄)이니라
//지혜의 불로써 계율의 탕을 데워서 몸 속의 진여불성을 목욕시키되, 일곱 가지 법으로 스스로를 단장하라는 것이니라.
當時比丘(당시비구)는 聰明利智(총명이지)일새 皆悟聖意(개오성의)하야 如說修行(여설수행)하고 功德成就(공덕성취)하야 俱登聖果(구등성과)어니와
//당시의 비구들은 총명하고 지혜가 뛰어나서 모두 부처님의 뜻을 깨달아 설하신 것과 같이 수행하고 공덕을 성취하여 다 성인의 지위에 올랐는데,
今時衆生(금시중생)은 愚痴鈍根(우치둔근)이라 莫測斯事(막측사사)하고 將世間水(장세간수)하야 洗質碍身(세질애신)으로 自言依敎(자언의교)라하니 豈非誤也(기비오야)리요
//지금의 중생들은 어리석고 우둔하여 이 일을 알지 못하고 세간의 물로 육신을 씻는 것으로 가르침대로 하는 것이라 하니 그 어찌 잘못이 아니겠는가.
且眞如佛性(차진여불성)은 非是凡形(비시범형)이라 煩惱塵垢(번뇌진구)가 本來無相(본래무상)이어니 豈將碍水(기장애수)하야 洗無明身(세무명신)이리요 事不相應(사불상응)이어니 云何悟道(운하오도)리요
//또 진여불성은 세속의 모습이 아니고, 번뇌와 (마음을) 더럽히는 먼지는 본래 모습이 없는데, 어찌 형체가 있는 물로써 무명의 몸을 씻을 수 있겠으며, 사리에 맞지 않으니 어떻게 도를 깨달을 수 있겠느냐?
常觀此身(상관차신)이 本因貪慾(본인탐욕)하야 不淨所生(부정소생)이라 臭穢騈전(취예병전)하야 內外充塞(내외충색)이니라
//항상 이 육신은 본래 탐욕으로 인하여 부정하게 생겨난 것이라 냄새나고 더러운 것이 뒤섞여 안팎에 가득한 것이라고 관할지니라.
若洗此身(약세차신)하야 求於淨者(구어정자)는 猶如洗泥(유여세니)에 終無得淨(종무득정)이니
//만약 이 몸을 씻어 깨끗하기를 바란다면 마치 진흙을 씻어봐야 깨끗해 질 수 없는 것과 같으니라.
如此驗之(여차험지)컨대 明知外洗(명지외세)가 非佛說也(비불설야)니라
//이것으로 알 수 있듯이 껍데기를 씻는 것은 부처님의 말씀이 아님을 분명히 알지니라
第二十八 明念佛(염불의 의미를 밝히다.)
達磨答念佛問曰 夫念佛者(달마답염불문왈 부염불자)는 當修正念(당수정념)이니 了義(요의)로 爲正(위정)이요 不了義(불요의)오 爲邪(위사)니라 正念(정념)은 必得眞樂(필득진락)이어니와 邪念(사념)은 云何達彼(운하달피)리요
//달마대사께서 염불에 대한 물음에 대답하시기를, "염불이라는 것은 바른 생각을 닦는 것이니라. 지극한 대승의 도리를 바르다 하고 그렇지 못한 것을 삿되다 하는데 바른 생각은 반드시 참된 즐거움을 얻겠지만, 삿된 생각이 어찌 그것을 통달하리요.
佛者(불자)는 覺察身心(각찰신심)하야 勿令起惡(물령기악)이요 念者(염자)는 憶也(억야)니 憶持戒行(억지계행)하야 不忘精勤(불망정근)이라
//'불'이라는 것은 몸과 마음을 깨우치고 살펴서 악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고 '념'이라는 것은 기억한다는 것이니라.
憶持戒行(억지계행)하야 不忘精勤(불망정근)이라 了如是義(요여시의)하야사 名爲正念(명위정념)이니
//계행을 기억해 지니며 잊지 않고 부지런히 노력하는 것이니라.이런 이치를 알아야 정념(바른 생각)이라 이름하느니라.
故知念在於心(조지념재어심)이요 不在於言也(부재어언야)니라
//그러므로 생각은 마음에 있는 것이지 말에 있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지니라.
因筌求魚(인전구어)에 得魚忘筌(득어망전)이요 因言得意(인언득의)에 得意忘言(득의망언)이니 旣稱念佛之名(기칭염불지명)인댄 須行念佛之體(수행염불지체)니라
//통발로 고기를 잡는데, 고기를 잡으면 통발을 잊어버리고, 말로 뜻을 얻는데 뜻을 얻으면 말을 잊어버리듯이 이미 염불이라는 이름을 붙였으면, 마땅히 염불의 실체를 행해야 하느니라.
若念無實體(약념무실체)하고 口誦空名(구송공명)이면 徒自虛空(도자허공)이라 有何成益(유하성익)이리요
//만약 생각의 실체가 없이 입으로 헛된 명호만 부른다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니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
且如誦之與念(차여송지여념)이 名義懸殊(명의현수)하니 在口曰誦(재구왈송)이요 在心曰念(재심왈념)이니라
//또 외운다는 것과 생각한다는 것은 이름이나 뜻이 천지차이 이듯이 입에 있으면 외운다하고 마음에 있으면 생각한다하는 것이니라.
故知念從心起(고지념종심기)라 名爲覺行之門(명위각행지문)이요 誦在口中(송재구중)이라 卽是音聲之相(즉시음성지상)이니
//그러므로 생각은 마음을 따라 일어나는지라 각행의 문이라 이름 하는 것이요, 외우는 것은 입속에 있는지라 곧 이것은 음성일 뿐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지니라.
執相求福(집상구복)이 終無是乎(종무시호)인저
//상에 집착하여 복을 구하는 것은 끝내 옳지 못한 것이니라.
第二十九 會相歸心(형상은 마음으로 돌아감을 알아라)
故(고)로 經(경)에 云(운)하사대 凡所有相(범소유상)이 皆是虛妄(개시허망)이라 하시고
//그러므로 경에 말씀하시기를 "범소유상 개시허망(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모두 다 허망하다)"라 하셨고,
又云(우운)하사대 若以色見我(약이색견아)커나 以音聲求我(이음성구아)하면 是人行邪道(시인행사도)라 不能見如來(불능견여래)라하시니
//또 말씀하시기를,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만약 형상으로써 나를 보려거나, 음성으로써 나를 찾으려 한다면, 이런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하는 것이니 여래를 볼 수 없으리라." 하셨으니
以此觀之(이차관지)컨대 乃知事相(내지사상)은 非眞正也(비진정야)로다
//이것으로써 그것을 보건대 나타나있는 현상들은 진실하거나 바른 것이 아님을 알지니라.
故知(고지)하라 過去諸聖(과거제성)의 所修功得(소수공득)은 皆非外說(개비외설)이라 唯只論心(유지논심)이니라
//그러므로 알아라. 과거에 여러 성인들이 닦으신 바의 공덕은 모두 다른 말씀이 아니라 오직 마음을 논하신 것이니라.
心是衆聖之源(심시중성지원)이요 心爲萬惡之主(심위만악지주)라
//마음은 성인들의 근원이기도 하며 마음은 온갖 죄악의 주인이기도 하느니라.
無上眞樂(무상진락)이 由自心生(유자심생)이요 三界輪廻(삼계윤회)가 亦從心起(역종심기)니라
//위없는 참된 즐거움이 자기의 마음으로 말미암아 생겨나며, 삼계를 윤회하는 것도 역시 마음에 따라 일어나느니라.
心爲出世之門戶(심위출세지문호)요 心是解脫之關津(심시해탈지관진)이니 知門戶者(지문호자)는 豈慮難成(기려난성)이며 識關津者(식관진자)는 何憂不達(하우부달)이리요
//마음이 세간을 벗어나는 문턱이고 마음이 해탈의 나루터이니 출입구를 아는 사람이 어찌 이루지 못할 것을 염려하며, 나루터를 아는 사람이 어찌 도달치 못할까 근심하겠느냐.
第三十 妄營佛像塔廟(망령되이 불상이나 절을 조성하지 말아라)
竊見今時淺識(절견금시천식)호니 唯知立相爲功(유지입상위공)하야 廣費財寶(광비재보)하며 多傷水陸(다상수육)하야 妄營像塔(망영상탑)하며
//요즘 천박한 사람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오직 형상 세우는 것을 공덕으로 삼아 재물을 많이 허비하며 물이나 육지의 중생을 많이 상하게 하며 망령되이 불상과 탑을 세우느라
虛役人功(허역인공)하야 積木壘泥(적목루니)하며 塗靑畵綵(도청화채)호대 傾心盡力(경심진력)하야
//사람들을 부려 공을 헛되게 하고 나무나 진흙을 쌓아 올리고 울긋불긋 단청을 하는데 마음을 기울이고 힘을 다하여
損己迷他(손기미타)하나니 未解慙傀(미해참괴)라 何曾覺悟(하증각오)리요
//자기를 손해나게 하고 남도 미혹하게 하니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니 어찌 곧 깨닫겠느냐
見有爲則勤勤愛着(견유위즉근근애착)하고 說無相則兀兀如迷(설무상즉올올여미)로다
//유위법을 보면 끈질기게 집착을 하는데 무상을 말해주면 멍청하여지니 바보 같구나.
且貧世上之小樂(차빈세상지소락)하야 不覺當來之大苦(불각당래지대고)로다
//또 세상의 조그마한 즐거움을 욕심내느라고 다가오는 큰 괴로움을 깨닫지 못하는구나.
此之修學(차지수학)은 徒自疲勞(도자피로)라 背正歸邪(배정귀사)어늘 (속일광:誑) 誑言獲福(광언획복)이로다
//이렇게 닦고 배우는 것은 스스로를 피곤하게 하는 것이며, 올바른 것을 등지고 삿된 것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복을 얻는다는 것은 거짓말이니라.
第 三十一 結歸觀心(마음을 관하는 것으로 돌아와 맺는다.)
但能攝心內照(단능섭심내조)하야 覺觀常明(각관상명)이어다
//단지 마음을 거두어 안으로 비출 수만 있다면 각관(마음의 조악한 작용과 자세한 작용)이 항상 밝으리라.
絶三毒心(절삼독심)하야 永使消亡(영사소망)하며 閉六賊門(폐육적문)하야 不令侵擾(불령침요)하면
//삼독의 마음을 끊어서 영원히 없어지게 하고 육적의 문을 굳게 닫아서 번뇌가 침입하여 방해하거나 어지럽히지 못하게 하면
洹沙功德(원사공덕)과 種種莊嚴(종종장엄)과 無量法門(무량법문)을 一一成就(일일성취)하리라
//항하의 모래 수 같은 공덕과 온갖 장엄과 한량없는 법문을 낱낱이 성취 할 것이니라.
超凡證聖(초범증성)이 目擊非遙(목격비요)라 悟在須臾(오재수유)어니 何煩皓首(하번호수)리요
//범부를 벗어나 성인의 지위에 오르는 것이 눈 깜짝할 사이만큼이나 가까운 것이니 깨달음은 잠깐 사이에 있는데 어찌하여 흰머리가 되도록 수고하리요.
眞門(진문)이 幽秘(유비)하니 寧可具陳(영가구진)이리요
//진실한 법문이 깊숙이 숨겨져 있는데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겠느냐.
略說觀心(약설관심)하야 詳其少分(상기소분)하노라
//간단하게나마 마음을 관하는 것으로 그 일부분을 말하노라."
첫댓글 감사합니다.일체경계는 본래일심이니,일심으로부터 일체경계가 일어나는것이며,그본성은 자체가 맑고 밝은 광명의 지혜를 발하고 있다는데 분명히 알지 못하고 있으니 마음의 작용과 관하는법을 잘 배워가야 하겠습니다.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말을 따르지 말고 뜻을 따르라는 말씀이 생각 났습니다.
"향을 피운다는 것도 역시 세상에 있는 향이 아니라, 이내 무위(생멸변화를 넘은 상주절대의 진실)정법의 향이니라"
유식무경도 부처님의 경계라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염불이라는 것은 바른생각을 닦는 것이니라
지극한 대승의 도리를 바르다 하고
바른생각은 반드시 참된 즐거움을 얻는다
일체경계 본래일심
일체가 아미타불의 화신이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어렵지 않아서 매우 마음에 와 닿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_()()()_
일심.광명.화신.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 아미타
감사합니다.
공부하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미워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을 헛되이 일으키며.....
' 건 너 다 '
일체경계 본래일심.
아미타 아미타 아미타..()()()
"입에 있으면 외운다하고 마음에 있으면 생각한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 아미타파
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청련님께서는 공부를 너무 많이하셨네요 그러나 나의 개인적인 생각을 가지고 선종의 초조 달마대사님과 2조 혜가대사님과 논하신 관심론을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됩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