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쳐]
감쪽같이 속았다!
2500년 만에 밝히는 황금비 진실
사람은 누구나 예뻐 보이고 싶습니다. 이왕이면 잘 나온 사진으로, 이왕이면 날씬하게 보이는 사진으로 SNS 프로필을 채웁니다. 새로 나온 신상 애플리케이션(이하 어플) 정보를 공유하며, 시시때때로 ‘인생 사진(한 사람의 인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굉장히 잘 찍힌 사진)’을 갈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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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프로필 앞에 당당한가? 언제나 인생 사진으로 도배! - 염지현(이미지 소스: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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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쉬운 사진도 몇 가지 어플만 있으면 문제없습니다. 사진을 불러와 버튼 몇 개만 누르면 나인 듯 나 아닌 나 같은 사진이 완성됩니다. 그리고는 마치 사진 속 내가 나인 듯 흐믓한 미소를 짓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황금비’도 SNS 속 사진처럼 보이는 대로 믿어서는 안 됩니다. 잘못된 정보가 넘쳐나니까요. 지금까지 너무나도 당연하게, 의심 없이 황금비라고 알려졌던 많은 고대 건축물과 과거 예술작품이 수학자들에 의해서 황금비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요?
3줄 요약
1. 황금비의 원래 이름은 황금비가 아니다. 2. 파르테논 신전, 모나리자, 앵무조개, 밀로의 비너스 그 어디에도 황금비는 없다.
3.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버젓이 잘못된 황금비 예시가 진짜 인 것처럼 등장하고 있다.
《FACT》
1) 황금비의 원래 이름은 황금비가 아니다.
기원전 300년경 활동한 고대 그리스 수학자 유클리드가 쓴 책 ‘원론’에 오늘날 황금비라고 불리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이는 황금비와 관련된 가장 오래된 기록입니다.
유클리드는 아래 그림처럼 한 선분(a+b)을 서로 다른 길이의 두 선분으로 나눌 때, 전체 선분(a+b)과 나눈 선분 중 긴 선분(a)의 길이의 비와 나눈 선분 중 긴 선분(a)과 짧은 선분(b)의 길이의 비가 같도록 나누는 문제를 떠올렸습니다. a+b/a=a/b라는 비례식을 세우고 문제를 푸니 그 비의 값이 1.61803…으로 이어지는 무리수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구한 비(약 1:1.618)를 ‘극대와 극대가 아닌 비(extreme and mean ratio)’라고 소개했습니다. 당시 황금비라는 이름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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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a=a:b를 만족하는 비가 바로 황금비다. - (주)동아사이언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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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비(Golden ratio)라는 이름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유래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습니다. 다만 1835년 독일 수학자 마틴 옴이 쓴 글에서 최초로 황금비라는 단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2) 파르테논 신전에는 황금비가 없다.
19세기 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1호인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아름다움에 기하학적인 해석을 덧붙이려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이때 누군가 파르테논 신전과 황금비를 연관 짓기 시작했는데, 이게 사실인 것처럼 일파만파 퍼졌습니다. 이후 세계 각지에서 파르테논 신전이 아름다운 이유가 황금비 때문이라고 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 수학 교과서에서도 버젓이 황금비의 대표적인 예로 파르테논 신전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1992년 조지 마코스키 미국 메인대 정보과학대학원 교수는 자신의 논문 ‘황금비에 대한 오해’에서 “파르테논 신전에는 황금비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마코스키 교수는 파르테논 신전의 일부가 황금비라고 설명한 책마다 가로의 기준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어떤 책에서는 황금비를 계산할 때 기단을 가로 길이로 하고, 다른 책에서는 건축물 꼭대기의 돌출된 부분을 기준으로 하는 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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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테논 신전 복원팀은 이미 여러 인터뷰를 통해 파르테논 신전의 가로 세로 비는 황금비가 아닌 9:4를 따른다고 밝혔다. - (주)동아사이언스(수학동아 2017년 2월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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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코스키 교수는 이 분야 전문가인 미국 뉴욕대 미술사학과의 마빈 트라첸버그 교수와 이자벨라 하이만 교수가 파르테논 신전을 실측한 결과를 이용해 파르테논 신전은 황금비와 멀다고 설명했습니다. 뉴욕대 교수팀이 측정한 길이를 기준으로 하면, 오히려 파르테논 신전의 가로 세로 비는 정수 비인 9:4를 따릅니다.
3) 모나리자에도 황금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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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걸작 ‘모나리자’의 얼굴을 둘러싸는 직사각형을 그리면 가로 세로 비가 1:1.6이 된다. 이는 황금비가 아니라 회화에서 자주 사용하는 단비다. - (주)동아사이언스(수학동아 2017년 2월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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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황금비를 염두하고 걸작 ‘모나리자’를 그렸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후대에 사람들이 모나리자 작품을 이리저리 황금사각형(가로 세로비가 황금비를 따르는 사각형)으로 나누다, 우연히 모나리자의 얼굴을 감싸는 직사각형에서 비슷한 값을 찾아냈습니다. 자로 직접 길이를 재보면, 모나리자의 얼굴의 가로 세로 비가 1:1.6인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1.6은 8:5라는 정수비로 나타낼 수 있는데, 이 비는 황금비가 아닌 예술가들이 회화에서 자주 사용하는 ‘단비’입니다.
4) 앵무조개에도, 밀로의 비너스에도 황금비는 없다.
주로 중학교 3학년 수학 교과서 이차방정식 단원에 황금비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황금비는 이차방정식을 그림과 사진으로 보여주며 설명할 수 있는 만만한 소재이기 때문이죠. 다음은 과거 어떤 수학 교과서의 실제 페이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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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황금비는 중학교 3학년 ‘문자와 식’ 단원에 생활 속에서 수학을 찾는 예시로 등장한다. 여기 보이는 모나리자, 밀로의 비너스, 파르테논 신전 모두 잘못된 예시다. - 조가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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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중학교 수학 교과서는 여러 출판사가 만들고, 학교마다 서로 다른 책을 선택해 사용하기 때문에 교과 과정이 같아도 서로 다른 책으로 공부합니다. 올해 중학교 3학년인 학생들이 사용하는 2015년 개정판 교과서에는 ‘황금비 논란’을 의식해 일부 교과서에서는 내용이 삭제 됐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교실 현장에서 황금비에 대해 의심 없이 잘못된 정보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앵무조개는 자라면서 껍데기에 붙는 방이 점점 커져 나선 모양을 이루는데, 이 나선이 황금비를 따르는 황금나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 수학자 클레멘트 팔보는 2005년 자신의 논문 ‘황금비-반대 관점’에서 앵무조개의 나선은 1.24와 1.43 사이의 비율로 만든 직사각형에서 생긴 나선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자연에서 만들어져 일부 오차가 발생할 수 있다고 감안해도, 황금비와는 거리가 멉니다
황금비 단골손님 고대 그리스의 대표 조각상인 밀로의 비너스도 배꼽을 기준으로, 머리에서 배꼽까지의 길이와, 배꼽에서 발까지의 길이의 비가 약 1:1.618을 따른다는 주장이 있었는데 실제 측정한 결과를 이용하니 해당 비는 약 1:1.555를 따릅니다. 밀로의 비너스에도 황금비는 없습니다.
《VIEW》
다음 중 황금비(약 1:1.618)를 따르는 사각형은 몇 번 사각형일까요? 잘 모르겠다면 황금비는 신경 쓰지 말고 가장 마음에 드는 사각형을 골라보세요. 몇 번을 골랐나요? 그 사각형을 고른 이유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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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마음에 드는 사각형을 골라 보세요! - (주)동아사이언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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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사람마다 저마다의 이유가 있겠지만, 각자 사각형을 선택한 이유로 대부분 ‘안정적이어서’ ‘비율이 적당해서’라고 생각할 겁니다. 실제로 1860년 경 독일의 심리학자 구스타프 페히너는 여러 종류의 사각형 가운데 가장 보기 좋은 사각형을 찾는 실험을 했습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선택한 사각형의 가로 세로 비는 13:21, 짧은 변의 길이를 1로 바꾸면 약 1:1.615였습니다.
페히너는 여기서 황금사각형이라는 결과물을 얻었지만, 뒤에 이어진 실험에서 사각형의 긴 변을 어디에 두는지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타나 결론적으로는 신빙성을 얻지 못한 실험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이어 1980년 영국의 심리학자 크리스 맥마너스는 서로 다른 48개의 직사각형(위 그림 참고)을 그려놓고, 두 개씩 짝을 지어 더 마음에 드는 사각형을 골라 후보를 줄여가며 가장 마음에 드는 사각형을 고르는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가로 세로 비율이 1.5 또는 1.6, 1.75인 사각형 세 개가 최종 후보로 뽑혔지요. 하지만 셋 중에 어떤 하나로 좁혀지진 않았어요. 이처럼 여러 방법으로 ‘가장 아름다운 비율’을 찾는 실험이 계속 됐지만, 수학으로 명쾌하게 증명할 수 있는 결과는 얻지 못했습니다.
아차! 답이 궁금하셨죠? 정확한 황금비를 따르는 사각형은 29번 사각형입니다. 고른 사각형과 일치하나요? 다르다고요? 뭐 몇 번을 골랐어도 상관없습니다. 사람마다 보는 눈이 다르고 아름다움의 기준이 다르니까요. 눈에 보이지도 않고 주관적인 ‘아름다운’ 개념을 수학으로 증명하려는 시도 자체가 모순일 수도 있지요.
황금비가 황금비라고 불리게 된 유래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신이 내린 아름다운 비율’이라고 극찬한 이탈리아 수학자 루카 파촐리와 얽힌 이야기입니다.
1) 황금비 열풍의 범인은 파촐리?
파촐리의 친구 르네상스시대 예술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는 평소 수학에 관심이 많아 다양한 수학책을 즐겨 읽었습니다. 그중에는 황금비 개념이 언급된 유클리드의 ‘원론’도 있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프란체스카와 파촐리는 그림을 그리는 데 도움이 되는 몇 가지 수학에 대해 대화를 나누게 되고, 그 내용에 흥미를 느낀 파촐리는 수학 지식을 보태 ‘신성한 비례(De divina proportione)’라는 책을 완성합니다.
파촐리는 이 책에서 “황금비야 말로 예술적인 균형과 조화를 갖춘 완벽한 비”라고 언급하며, 예술가가 이 비를 작품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좋겠다고 소개했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었는데, 후대의 많은 예술평론가들이 완성도 높은 예술작품은 황금비를 기초로 해야 한다고 오해하기 시작하고 과거의 유명한 작품에서도 황금비를 억지로 찾기 시작합니다. 그때부터 황금비 사기극이 시작된 것이지요. 사소한 오해에서 출발한 일입니다. 아무래도 ‘수학적’ ‘기하학적’이라는 해석이 붙으면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증명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니까요.
2) 진짜 황금비를 알고 만든 사람은 누구?
사실 파르테논 신전의 길이를 제대로 재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2500년 전에 지어져 이곳저곳이 부서진 데다, 전쟁으로 신전의 절반 이상이 파괴됐지요. 게다가 최첨단 정밀 측정 도구를 들고 지금 당장 그리스로 날아가 신전 앞에 선다고 해도, 개인이 건축물의 정확한 길이를 잴 수 없습니다. 일단 규모가 엄청나 부서진 곳을 상상하며 실측하기도 어렵고, 사람이 왜곡 없이 한 장에 사진에 담는 것도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황금비 얘기만 나오면 단골손님처럼 등장하는 과거 건축물이나 예술 작품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아무 기록도 남아있지 않는 2000년 전 작품은 말할 것도 없고, 15~18세기 작품도 명쾌한 기록이 없다면 작가가 황금비를 알고 작품을 완성했다고 쉽게 단정 지을 수 없습니다. 진상 규명을 위해서라면 직접 눈으로 작품을 살펴보고 ‘황금비가 있다’고 주장해야 맞지만, 대부분의 평론가들은 인터넷에 떠도는 그럴싸한 사진 위에 자를 대고 진짜 황금비가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물론 일반사람들은 비율 1.618과 1.6의 차이를 눈으로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아주 미세한 차이입니다. 그래서 SNS 프로필 사진처럼 진실을 살짝 왜곡해도 거의 티가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수학은 자명하고 엄밀한 학문이어서, 수학에서 약 1:1.618로 나타나는 황금비와 정수비인 1:1.6은 엄청 다릅니다. 1:1.6처럼 정수로 딱 떨어지는 정수비를 두고, 굳이 무리수의 비를 찾아 자신의 작품 곳곳에 일일이 계산을 해 작품을 완성할 예술가가 몇이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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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코르뷔지에의 라 투레트 수도원은 세 부분으로 이뤄지는데 서쪽에서 동쪽 방향으로 길이의 비가 113:70:43이다. 113을 70으로 나누거나, 70을 43으로 나누면 그 비율이 약 1.6이다. 촘촘히 붙어 있는 창문의 세로 가로 비도 황금비를 따른다. - (주)동아사이언스(수학동아 2017년 2월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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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물론 오직 자신의 작품을 위해 불편을 감수하고 작품에 황금비를 녹여 놓은 작가도 있습니다. 자신의 입으로 직접 황금비를 이용했다고 밝혀 논란의 여지도 없지요.
근대 건축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프랑스의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는 1927년까지 황금비에 대해 매우 부정적으로 생각했지만, 어느 날 루마니아 태생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마틸라 기카가 쓴 ‘자연과 미술에서의 비의 미학’이라는 책을 읽고 생각을 바꿉니다. 황금비가 자연 현상을 기초로 했다는 대목에서 매력을 느끼고, 결국 라 투레트 수도원을 지을 때 건물 곳곳이 황금비를 따르도록 설계해 완성했습니다.
찾아보니 이렇게 명쾌하고 논란이 없는 황금비 예시도 많았습니다. 이에 박제남 인하대 수학교육과 교수는 “황금비를 적용한 예술작품도 많은데, 굳이 황금비인지 아닌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작품을 황금비 작품이라고 소개할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하루 빨리 학생들의 교과서에서 ‘올바른 황금비 예시’를 찾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부터라도 황금비를 제대로 알고, 오해하는 일 없기를 바라며 기사를 마칩니다.
염지현 기자 / 조가현 기자
추억의 영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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