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2017년 가해 1월7일 토요일 [(백) 주님 공현 전 토요일]
[수도회] 삶이 축제로 바뀌는 길목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제1독서 1요한 5,14-21
† 복음 요한 2,1-11
◈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표시합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이러한 신뢰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에서 나옵니다. 그러므로 ‘카나의 혼인 잔치’
기적은 ‘믿음의 기적’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카나의 기적에서
신뢰와 믿음의 표징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이 표징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계시며 제자들의 모범이 되십니다.
요한 사도는 하느님께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라고 교우들에게
당부합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그분의 뜻에 따라 청하면 그분께서
우리의 청을 들어 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그분의 뜻을 아는 이해력도 주십니다. 우리가 청원 기도를
처음 시작할 때는 자신에게 이로운 청원이나 이기심 많은 요청을
합니다. 그러나 점점 더 기도할수록 우리는 하느님께 무엇을 청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분이 우리의 삶에 어떻게 개입하고 계시며
어떠한 선물을 준비하고 계신지 확신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모님의 요청을 모른 체하셨습니다. 아직 당신의 때가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모님의 믿음과 흔들리지 않는
확신은 그 때를 앞당기셨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청원할 때 성모님의
이러한 모습을 닮아야 합니다.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갖추어야
비로소 기적은 일어납니다. (류한영 베드로 신부)
- 매일 미사 -
◈ [인천] 성모님께서는 비어 있는 마음을 간직하고 계십니다.
2017년 가해 1월7일 주님 공현 전 토요일
제1독서
<우리가 무엇을 청하든지 그분께서 들어 주신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5,14-21
복음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1
어렸을 때, 저희 집에는 피아노가 있었습니다. 피아노가 있었음에도
저는 피아노를 치지 못했지만, 형이나 누나가 종종 피아노로 연주를
하곤 했지요. 어느 날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피아노가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건반을 누를 때마다 소리가 나는데, 각
건반의 소리가 모두 다르다는 것이 저의 궁금증을 자극했지요. 그래서
피아노의 뚜껑을 여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피아노 안에 음악 소리를
내는 카세트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텅 비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모든 악기를 보면 비어있는 공간이 있었습니다. 제가
유일하게 다룰 줄 아는 악기인 기타 역시 울림통이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음악소리를 냅니다. 피리 나 섹스폰 역시 텅 비어 있는
공간이 있기 때문에 멋진 연주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텅 비어 있어야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악기를 생각해보십시오. 어쩌면
우리 역시 내 안에 비어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야
악기의 빈공간이 아름다운 소리를 전달하듯이, 우리의 빈 마음을 통해
아름다운 사랑을 이웃에게 전달할 수가 있습니다.
사실 가득 채워져 있으면 다른 것을 보기가 힘든 것 같습니다. 자신의
배가 지금 너무나 부릅니다. 그때 다른 이들의 배고픔을 알 수
있을까요? 경제적인 여유로 아무런 불편 없이 살고 있습니다. 그때 돈
문제로 하루하루를 걱정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내 안에
비어 있는 공간이 있을 때 다른 사람을 향해 시선을 둘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 안에 비워야 할 것들을 떠올려봅니다. 욕심, 이기심,
미움, 질투……. 정말로 없어져야 할 것들이 내 마음의 자리를 가득
매우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오늘 복음은 갈릴래아 카나에서 있었던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기적이 일어날 수 있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분은
누구실까요? 바로 성모님이십니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구나.”라고 말씀하셨고, 일꾼들에게는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라고 말해주면서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주십니다. 사실 성모님께서는 손님의 위치였기 때문에,
굳이 이 집안일에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손님의 입장에서
포도주 떨어진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겠습니까? 관심을 가지고
보았기 때문에 어려움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비어 있는 마음을 간직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다른 이의
어려움과 아픔을 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빈 마음을
통해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쓸데없는 것들이 채워져 있다면 이제는 과감하게 버려서 빈 마음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성모님처럼 아름다운 사랑을 이웃에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것은 누군가와, 무언가와 연결돼 있다는
느낌입니다(허은실).
어제 서품식은 잘 끝났습니다.
인내력 부족?
어느 어머니께서 자신의 자녀를 두고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신부님, 우리 아이가 머리는 좋은데 인내력이 부족해서 노력을 하지
않아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런 말씀들을 많이 이야기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인내력이 부족한 것일까요? 솔직히 여러분들은 잘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우리 모두는 지루하고 답답한 시간을 견디었던 경험이
분명히 있습니다. 언제일까요? 맞습니다. 바로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였습니다. 일반적으로 10개월을 어머니 뱃속에 있었지요. 그
조그마한 공간에서 지루하고 답답한 시간을 잘 견디고 세상에
나왔다는 것입니다.
원래가 인내력이 부족한 것일까요? 어쩌면 그냥 안 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면서 이유를 만들기 위해 ‘인내력’이 부족하다는
핑계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 누구도 인내력은 부족하지 않았음을 기억하면서, 다시 한 번
마음을 돌려 보면 어떨까요? 분명히 할 수 있습니다.
제 동창신부인 신동환 신부 14주기 미사가 있는 날입니다.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 [수도회] 삶이 축제로 바뀌는 길목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017년 가해 1월7일 주님 공현 전 토요일 요한 2,1-11
“우리가 무엇을 청하든지 그분께서 들어 주신다.”(1요한 5,15)
삶이 축제로 바뀌는 길목
우리는 희망을 품고 새해를 시작했습니다. 올 한해는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좀 더 신명나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살다보면
늘 그렇게 기쁘기보다는 오늘이 내일 같고 또 다른 날이 밝아온다
해도 달라질 게 없이 그만그만한 날이 되풀이 될 때가 더 많지요.
인생은 그렇게 늘 쳇바퀴 돌 듯 돌아만 가는 걸까요?
삶을 축제로 바꾸는 비결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실 우리는
매순간이 ‘창조의 처음이자 마지막 날’임에도 그 새로움과 경이로움을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일까요? 오늘의 말씀들은 삶을 축제로
바꿔주는 결정적 열쇠가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제1독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하여 가지는
확신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그분의 뜻에 따라 청하면
그분께서 우리의 청을 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1요한 5,14) 우리가
청하는 것을 다 들어주시는 하느님이시라면 힘겨운 내 인생의 질곡을
영원한 순간의 꽃으로, 축제로 바꿔달라고 청하면 바꿔주실까요?
우리가 어떤 처지에 있든 우리의 삶을 축제로 바꿔주시는 분은 바로
주님이십니다. 그런데 오늘의 독서는 우리네 삶은 아무런 조건 없이
축제로 바뀌는 것이 아님을 알려줍니다. 삶이 축제로 바뀌려면 영원한
생명이신 분께 대한 믿음과 그분의 뜻에 따른 청원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만 한다는 것이지요.
삶의 뿌리를 주님께 두지 않은 채 필요할 때만 손을 내미는 염치없는
사람의 삶은 하느님을 등지고 살다가 필요할 때만 찾는 것이니 그
삶이 축제로 바뀔 턱이 없는 것입니다. 또 그분께 대한 믿음을 지녔다
해도 ‘그분의 뜻에 따라’(5,14) 청해야지 자기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청한다면 결코 삶이 축제로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마리아는 아들 예수님께
혼인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음을 알립니다(요한 2,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직 메시아로서 표징을 보여줄 때가 아니라며 청을
들어주지 않지요. 그럼에도 마리아가 사람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2,5) 하고 말하자 예수님께서는 “물독에 물을
채워라." 하시어 물을 포도주로 바꿔주십니다(2,7-9).
물이 포도주로 바뀌는 표징이 일어난 것은 마리아의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지요. 아직 예수님의 때가 오지 않았지만 마리아의 청은 모든
이가 축제를 이어가려는 ‘거룩한 뜻’이 있었기에 받아들여졌던
것입니다. 혼인잔치는 구원의 축제의 표지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새로운 생명의 터에 모두가 기쁨으로 함께하는
삶의 축제를 위해 오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평범한 일상을 경이롭고 새로운 축제로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초인의 괴력에 의한 기적에 의해서가 아님을
명심해야겠습니다. 삶이 축제로 바뀌고 나날이 새로워지는 것은
창조와 축제의 주인이신 주님께 대한 믿음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을 청하든 이기심과 탐욕을 버리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청함으로써 내 작은 가슴 속에 ‘하느님의 축제의 혼’이
꿈틀거리도록 해야겠지요.
오늘 하루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깨어 있고”(콜로 4,2),
주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 안에서 그분께서 원하시는 것을 갈망하고
청하는 ‘거룩한 축제의 호흡’을 이어갔으면 합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
◈ [서울] 주님 공현 전 토요일
2017년 가해 1월7일 주님 공현 전 토요일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셨다.>
† 요한 2,1-11
2017년 서품식은 기존의 올림픽 체조경기장이 아니고, 고척동에 있는
스카이 돔에서 진행됩니다. 체조경기장이 시설 보수를 하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장소를 바꾸어야 했습니다. 시설관리 공단 이사장님의
도움으로 별 무리 없이 서품식 장소를 대관할 수 있었고, 많은 분들이
원활한 서품식을 위해서 함께 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제단을 디자인
해 주시는 분, 무대를 제작해 주시는 분, 방송을 준비해 주시는 분,
교통 안내를 해 주시는 분, 서품식의 전례와 진행을 도와주시는
신학생들과 신부님들, 가장 수고가 많으신 성소 후원회 회원님들,
성소국의 가족들, 서품자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는 교우분들, 10년
동안 못자리에서 공부를 하신 서품자들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기에 가능한 일들입니다. 한문으로 ‘人間’은 서로 기대고
사는 존재를 의미합니다. 도움을 받는 것에 대해서 감사를 드리고,
도와 줄 수 있음에 감사를 드리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리가 몸담고 있는 세상은 ‘신분, 이념, 혈연,
계층, 학연, 지역, 국가’에 따른 불의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처럼, 우리들도
자비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러한 자비가
드러나는 모습을 ‘산상설교’에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
병든 이들, 소외된 이들, 굶주린 이들, 슬퍼하는 이들, 고난 중에 있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자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느님을
닮은 우리들은 하느님께서 요청하시는 대로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비유에서 ‘자비’를 역설하십니다.
‘돌아온 탕자, 잃어버린 양, 착한 사마리아 사람, 가난한 과부, 죄를
지은 여인’의 이야기에서 예수님께서는 징벌과 심판을 이야기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이야기 하셨고, 용서를 이야기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떠오르는 기억이 있습니다. 본당에 있을
때입니다. 수능을 마친 학생의 어머니가 추천서를 써달라고
하였습니다. 미사를 마치고 모임이 있었지만 한 학생의 앞날이 결정될
수 있기에 학생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학생이 추천서를 가지고 왔고,
기쁜 마음으로 추천서를 작성해서 주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새벽에
학생의 어머니가 전화를 하였습니다. 아이가 전공과목을 바꾸고 싶어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추천서를 새로 작성해 줄 수 없는지 부탁을
하였습니다. 역시 학생의 앞날에 중요한 일이기에 오시라고 해서
추천서를 다시 만들어 주었습니다. 어머니의 힘은 역시 강한 것
같습니다.
저의 어머니께서도 가끔 제게 부탁을 하시곤 합니다. 대녀의 친구의
딸이 혼인을 하는데 혼배 주례를 해 줄 수 없느냐는 전화를 하셨습니다.
아마 다른 분들의 부탁이라면 거절 했을 것입니다. 다른 분들은 차마
그런 부탁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용감(?)하신지,
저를 너무나 믿는 것인지 가끔 그런 부탁을 하시곤 합니다. 같은
레지오 단원이 다치셔서 의정부 성모병원에 입원했다고 하시면서
병자성사를 부탁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역시 어머니의 부탁인지라
거절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낳아주시고, 길러주시고, 어린 시절 모든
것들을 해결해 주신 어머니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어머니는 제게 누군가를 도와 줄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것 같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신부 -
◈ [수원] 가나의 혼인잔치: 첫 번째 기적/
조욱현 토마스 신부|오늘의 강론 묵상
2017년 가해 1월7일 주님 공현 전 토요일
복음: 요한 2,1-11: 가나의 혼인잔치: 첫 번째 기적
오늘 복음의 가나 혼인잔치의 기적은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이제는 새로운 구원의 장이 열리고 그것은 물이 포도주가 되듯이
신비스러운 ‘회개’의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다. 실제로 그리스도께서는
잔치에 온 모든 사람들이 좋아할 ‘새로운’, ‘더 좋은’ 포도주를 주신다.
그것은 새로운 구원의 은총을 의미한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여야 할 것은 바로 그 가나 혼인잔치에
마리아께서 함께 계셨다는 것이다. 마리아의 모습은 들러리의 모습이
아니라, 결정적이고 능동적이다. “포도주가 없구나.”(3절)는 말로
예수님께서 그 일에 개입하시도록 하셨다. 이 말이 어떻게 해석되든지
간에 우리가 잘 보아야 할 것은 마리아께서 다른 사람들의 문제와
어려움에 동참하는 사랑과 나아가 아드님까지도 그 일에 개입시키려는
그 노력이다. 즉 마리아의 깊은 사랑과 신뢰심의 태도이다. 이
신뢰심은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에서 온 것이다.
그런데 그 믿음은 구체적인 상황에서 완전히 드러나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4절)는 것은 거절의 의미로 알 수 있겠지만 그렇지가 않다.
그 ‘때’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완성하는 그 ‘때’이며, 당신이
그것으로 영광을 받으시는 ‘때’를 의미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또한
그리스도의 모든 삶이 아버지의 뜻에 따라 결정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당신이 끝까지 따르고 일치해야할 것은 바로 아버지의 뜻이다.
아버지의 뜻은 무엇인가? 모든 인간이 구원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 말씀은 거절의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분의 어머니는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고 일렀다.”(5절). 이 말은 시나이 산에서 백성들이 응답한 것과
같은 내용이다. “무엇이든지 야훼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는
하겠습니다.”(탈출 19,8), “무엇이든지 야훼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는
하겠습니다.”(탈출 24,37). 예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완전히
일치하고 있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분이 말씀하시는 대로 우리는
따라야 한다. 그 때에 우리는 구원의 혼인잔치에 참석할 수 있다. 그가
시키는 대로 하였을 때, 가나의 혼인잔치에서는 '메시아적
포도주'를 얻는다.
이 메시아적 포도주는 단순히 물질적인 차원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것만이 아니라, 당신이 누구신지를 밝히는 동시에 하느님
나라의 종말론적 차원에서의 기쁨의 의미를 포함하는 것이다. 이렇게
가나의 혼인잔치의 기적은 십자가 앞에서 우리의 어머니가 된
마리아와 함께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세상을 위해
봉헌되는 잔치가 벌어질 갈바리아에 오르도록 초대하고 있다. 이러한
깊은 신비가 오늘 복음에 내포되어 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11절)고 하였다. 이것은
물을 포도주로 만든 권능 때문이 아니라, 더 큰 기적 즉 아버지께서
정하신 때에 딱딱한 침대 위에서 혼인식을 치르게 되는 십자가의
기적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11절). 그 기적은 신앙을 불러 일으켰고, 그 기적을 더 큰
기적에 대한 ‘표징’으로 이해하게 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마리아의 신앙은 참된 신앙의 모범이라고 할 수 있다.
아드님 예수님의 모든 것을 신뢰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마리아의
이러한 신뢰심은 사랑에서 생기는 것이고 사랑으로 넘쳐흐른다.
우리가 만일 형제들로부터 우리 자신을 멀리하여 그들의 기쁨 또는
고통까지도 함께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의 신앙은 거짓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신앙을 우리도 살아야 할 것이다.
- 수원 교구 상하 성 모세 성당 주임 조욱현 토마스 신부 -
◈ [청주]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7년 가해 1월7일 주님 공현 전 토요일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셨다.>
† 요한 2,1-11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갈릴래아의 카나에 혼인 잔치가 있었는데 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
계셨습니다. 히브리 백성들은 혼인잔치를 아주 장엄하게 치렀습니다.
일반적으로 일주일간 계속됩니다. 그런데 마침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잔치 중에 필수품인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큰
망신입니다. 요즘 같으면 시장에서 금방 사서 대체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미리 예측하여 술을 담가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어머니께서 술이 떨어졌음을 눈치 채고 아들에게
“포도주가 없구나” 하고 알리셨습니다. 여기서 “포도주가
떨어졌구나” 하지 않고 “포도주가 없구나!” 한 것은 성모님의 시선은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사실보다 난감한 처지에 빠진 신혼부부에게
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려 깊고 섬세한 어머니이십니다. 문제가
발생 되었을 때 사랑이 있으면 해결 방법을 찾게 됩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누군가를 원망하고 핑계를 찾게 되는 법입니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문제만 더 커지고 시끄러워집니다. 정말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성모님처럼 접근해야 합니다. 사실 성모님께서는 오늘
우리의 처지도 알고 계시며 우리를 위해 예수님께 사정을
말씀드리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처지를 어머님께 있는 그대로 알려주십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2,5)하시며
아들 예수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를 보이며 주님의 뜻에 순명하도록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기적을 베풀어 달라고 청하지
않고 다만 처지를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떼를 쓰는 것도 필요하지만
억지를 부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주님께서 알아서 할
일입니다. 주도권은 언제나 예수님께 있습니다.
마침내 예수님께서는 “물독에 물을 채워라” 하시고 다시 “그것을
퍼서 과방장에게 날라다 주어라” 하시며 물을 포도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때가 되지 않으셨다고 하면서도 어머니의
말씀을 흘려보내지 않으시고 잔칫집의 곤란함을 해결하여
주셨습니다. 물은 생명이요. 정화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포도주는
충만한 삶과 번영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정화를 통해서 충만한
생명에로 갑니다. 어려운 상황의 처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수님께
말씀 드리는 어머니의 배려, 당신의 뜻을 고집하지 않고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시며 기다리시는 어머니의 사려 깊은
모습에서 우리가 기도해야 할 바가 무엇이며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어머니처럼 하면 목적을 이룹니다.
간절한 기도는 기적을 낳습니다. 사랑이 가득 차 있을수록 그만큼 더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는 나의 모든 것, 모든 움직임이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는 모든 사물, 모든 행위 속에 존재합니다.
예수님의 어머니께서 관심과 사랑이 없었더라면 포도주가 떨어진
것에 마음을 둘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사랑이 있기에 아들에게
청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적은 이루어졌습니다. 이렇게 어떤
기도든지 생명력이 있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기도가
온 삶이 되어야 하고, 삶이 또한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것을 함부로 쓰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어떤 일을 하시든지 당신
혼자서 하지 않으시고 인간의 협력을 바라시며 우리를 도구 삼아
이루십니다. 물을 포도주로 만들어 주시는 기적을 이루실 때 물독에
물을 채우고 그것을 퍼서 과방장에게 날라다 주는 것은 바로 우리의
몫입니다. 그것을 거부하면 우리를 위한 은총의 역사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은총의 협력자가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손과 발입니다.”
데레사 성녀의 기도를 상기합니다.
“그리스도는 손이 없다.
하지만 우리 손으로 그분이 하실 일을 한다.
그리스도는 발이 없다.
하지만 우리 발로 사람들을 그분이 계신 곳으로 인도한다.
그리스도는 목소리가 없다.
하지만 우리 목소리로
그분이 죽으신 까닭을 말한다.”
미룰 수 없는 사랑에 눈뜨기를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청주 성모 병원 부원장 반영억 라파엘 신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