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퇴고하는 모범적 사례 하나, 신철규「술래는 등을 돌리고」
이숭원 신철규의 시집은, 21세기에 들어와 파격과 전복으로 이어져온 젊은 시단의 기류에 시의 정도를 보여줌으로써 신생의 변곡점을 제시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작업입니다. 그는 시집의 자서에서 첫 시집을 내는 젊은 시인답지 안게 늙수그레한 윤리적인 말을 합니다. “절벽 끝에 서 있는 사람들”이 반걸음이라도 뒤로 물러서게 하는 것, “숨을 곳도 없이 길바닥에서 울고 있는 사람들”이 더 생겨나지 않는 세상이 와야 한다는 믿음이 그의 시와 연결되기를 희망한다는 내용입니다. 이 얼마나 오랜만에 대하는 공리적 담로입니까? 그의 시 대부분이 이 고민과 관련이 있습니다. 대표 시 한 편을 소개하라고 하니 분량을 생각해서 비교적 길이가 짧은 시 한 편을 소개합니다.
술래는 등을 돌리고
신철규
허공을 쓸며
손바닥 하나가 떨어진다
술래는 플라타너스 나무에 기대어 주문을 외운다
잡혀온 아이는 한 손은 술래에게 맡기고
소금 기둥이 된 아이들에게 손사래를 친다
술래가 고개를 돌릴 때 아이들은 숨을 멈춘다
자신이 만든 그림자 속으로 몸을 던지는 낙엽들
벼랑 끝에서는 아래를 보지 말 것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아이가 빠르게 주문을 외우고 있는 술래의 등 뒤에 다가간다
낙엽 하나가
술래의 머리 위에 내려앉는다
술래는 주문을 다 외우고도 뒤돌아보지 않는다
아이들이 술래의 등을 껴안는다
⸻시집 『지구만큼 슬펐다 한다』 (2017년 7월)
이상호 특히 신철규 시인의 「술래는 등을 돌리고」를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으로 전문을 인용해 주셨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작품이 《딩아돌하》(2011년 봄호)에 발표된 것인데 시인이 시집에 재수록하면서 많이 수정하여 정제했다는 것입니다.
술래는 등을 돌리고
신철규
허공을 쓸며 손바닥 하나가 떨어진다
술래는 플라타너스 나무에 기대어 주문을 외운다
흔들리는 아이들의 얼굴
잡혀온 아이들은 한 손은 술래에게 맡기고
한 손은 살아남은 자에게 구원의 손짓을 보낸다
술래가 고개를 돌릴 때 숨을 멈춘다
눈을 감으면 꾀꼬리 울음소리
자신이 만든 그림자 속으로 몸을 던지는 잎
벼랑 끝에서는 아래를 보지 말 것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아이가 빠르게 주문을 외우고 있는 술래의 등 뒤에 다가간다
낙엽이
술래의 머리 위에 내려앉는다
술래는 주문을 다 외우고도 뒤돌아보지 않는다
아이들이 술래의 등을 껴안는다
술래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발끝으로 나무의 둥치를 두드린다
웃음과 울음 사이에서
망설인다
나무에 매달린 플라타너스 잎들 손가락을 편다
모두들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파안대소
나무가 조금 가벼워진다
나무의 뿌리가 들릴까봐 낙엽들이 땅을 누른다
나무의 그림자 속에서 낙엽들이 뒹군다
⸻《딩아돌하》 2011년 봄호
수정이라기보다는 거의 개작 수준으로 볼 만큼 과감하게 곁가지를 삭제한 부분이 많습니다. 작품의 함축성과 완성도가 한층 높아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 시사에서 이렇게 수정을 통해 작품의 완성도를 최대한 끌어올린 대표적인 작품으로 저는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꼽고 싶습니다. 김소월 외에도 박목월, 전봉건 시인 등은 기회 있을 때마다 수정이나 개작을 통해 시집과 선집에 재발표함으로써 좋은 작품에 대한 강박증을 보여준 대표적인 시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즘 시인들 역시 예외일 수 없듯이 예술가라면 누구나 그런 강박증이나 좋은 작품을 남기고 싶은 치열하고도 뜨거운 소망을 갖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시인수첩》 2017년 겨울호, ‘권두 정담’에서 부분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