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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가해 2월5일 주일 [(녹) 연중 제5주일]
[수도회] 무엇으로 세상을 밝힐 수 있을까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제1독서 이사 58,7-10
○ 제2독서 1코린 2,1-5
† 복음 마태 5,13-16
◈ 오늘의 묵상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것. 어둠을 밝힐 수 있는 빛과 음식의 맛을
내는 소금, 이 둘은 살면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가치들을 대변해
주는 표징들입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적절합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은 어떤 제도나 이념, 권력과 폭력이 아님을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배웠습니다. 설령 그런 것들이 사람들을 통제와 규율 속에서
획일화하고, 왜곡된 가치 질서에 잠시 물들게 할 수는 있지만,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변화 없이 세상의 변화를 만날 수
없다는 진리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하고 명하십니다. 바오로 사도의 고백처럼, 복음 선포는
“지혜롭고 설득력 있는 언변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을
드러내는 것”이며, “믿음이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느님의 힘에
바탕을 두게 하려는 것”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요청하시는 신앙인의 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이상적인 자아를 꿈꿉니다. 현실에서 성공이 재산과
권력에 달려 있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참된 행복과 평화를 인생의
목표로 삼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자기 계발서가 난무하는 요즘
시대에도 성경은 한결같은 원칙을 고수합니다.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 “멍에와 삿대질과 나쁜 말을 치워 버린다면” “네 빛이 어둠
속에서 솟아오르고, 암흑이 너에게는 대낮처럼 되리라.”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길은 이사야 예언자가 여전히 우리에게 일깨워 주는
진리입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 매일 미사 -
◈ [인천] 주님을 세상에 알리는데 최선을 다해야
2017년 가해 2월5일 연중 제5주일
제1독서
"너의 빛이 새벽빛처럼 터져 나오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58,7-10
제2독서
"나는 여러분에게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신비를
선포하였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2,1-5
복음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13-16
미국의 한 대학에서 이러한 실험을 했습니다. 빠른 속도로 정면에서
마주 오는 두 대의 차가 서로 부딪히는 장면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에 차가 부딪히는 커다란 소리를
들려주면서 화면을 멈췄지요. 이제 사람들에게 차가 부딪힐 때의
장면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이야기해달라고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의 유리창이 심하게 깨졌으며, 운전석에 있었던 사람이
앞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어떤 이는 차가
심하게 찌그러지는 것도 보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실제의 영상에는
그런 장면이 없었습니다. 아주 느리게 다가오는 두 대의 차가 살짝
정면에서 부딪히는 장면을 빠른 속도로 재생했던 것이고, 여기에
부딪히는 커다란 소리를 입혔을 뿐이었습니다.
우리의 기억이 일어나지도 않은 것을 일어난 것처럼 만든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험이었습니다. 거짓된 기억을 진짜 기억인양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어렸을 때에 있었던 일들을 기억하고 있는데,
그 기억이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낸 가짜 기억일 때가 많다고 합니다.
누군가에 대한 미움과 부정적인 생각 역시 자신의 가짜 기억에
기초해서 생길 때가 많답니다. 그래서 심리학자 윌리엄 랠프 인지는
‘과거의 사건은 대략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사건과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건으로 나눌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 연연하는
삶이 아닌, 지금을 충실하게 사는데 집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어나지 않은 사건과 중요하지 않은 사건으로 지금을 제대로 살지
못하면 안 됩니다. 하느님의 창조물인 우리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기억하고 지금을 제대로 살면서, 하느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누릴 내 자신을 꿈 꿔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오늘 복음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먼 미래에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될 것이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세상의 소금과 빛임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음식의 맛을 결정짓는 소금처럼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가 바로
‘나’이며, 감추어진 것을 드러내게 하는 환한 빛과 같은 존재가 바로
‘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소금과 빛인 ‘나’의 모습을 통해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세상에 알릴 수 있다고 하십니다.
가짜 기억으로 지금의 내 모습을 형편없이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소금과 빛인 귀한 ‘나’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지금 이 순간
주님을 세상에 알리는데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그때 가짜 기억을
잊어버리고, 하느님과 하는 진짜 소중한 기억들을 간직하게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보내는 선물에 있지 않고 그 마음에 있다(러시아 속담).
우리는 세상의 빛입니다.
귀한 우리 몸
여러분 몸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의 숫자가 얼마나 되시는지 아십니까?
그 수는 무려 60조 개에 이른다고 합니다. 지금 현재 전 세계의 인구
숫자가 72억 정도 된다고 하지요. 전 세계 인구보다도 훨씬 많은 수의
세포가 내 몸 안에 있다고 하니 얼마나 엄청난 것입니까? 처음에는
한 개의 세포였지만 어머니 뱃속에서 계속 세포분열을 하여 60조 개의
세포를 안고서 이 땅에 태어난 것이지요.
그리고 또 한 가지 놀라운 것은 이 세포들을 연결해주는 동맥과 정맥
그리고 모세혈관들을 모두 이어 붙인 길이가 대략 10만 킬로미터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지구의 적도를 한 바퀴 돌면 4만 킬로미터라고
하니까, 2바퀴 반을 돌 수 있는 길이의 혈관이 우리 몸 속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 점만 봐도 우리 몸이 얼마나 귀하게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내 몸이 별 볼 일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세포와 혈관만 생각해도 하느님의 놀라운 기적들이 내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빛과 소금이라고 말씀하신 이유를 우리 몸을
자세히 따져보면 이해가 됩니다. 하느님께서 온 정성을 기울여서
귀하게 만든 몸이니까요.
혈관만 봐도 내가 귀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 [수도회] 무엇으로 세상을 밝힐 수 있을까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017년 가해 2월5일 연중 제5주일
이사 58,7-10; 1코린 2,1-5; 마태 5,13-16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6)
무엇으로 세상을 밝힐 수 있을까
과학과 물질문명은 끝을 모른 채 멈추지 않고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그만큼 더 행복해지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지구화와 신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돈이 인간을 도구화하고 존엄성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괴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온갖 것들이 소비를
부추기고 오감을 자극하며 유혹합니다.
또한 권력과 돈에 의한 지배구조가 점점 강화되면서 대부분의
사회질서와 경제생활이 불평등 독점 영역이 확장되어가고 있습니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이의 차별이 석고처럼 굳어져가고
출발점에서부터 공정한 경쟁이 허용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법 앞의 불평등이 일상화 하고 있는 현실이지요.
양심과 윤리의식이 실종되어가고, 거짓과 불의와 불평등이 독버섯처럼
자라나 어둠을 드리우는 이 세상에서 신앙의 자리는 어디일까요?
빛이신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의 소명은 무엇일까요? 오늘의 말씀들은
어떻게 빛의 자녀로 살아가야 할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세상을 밝히려면 무엇보다도 빛이신 하느님 안에 머무르면서 그분의
말씀을 실행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지혜롭고 설득력 있는 언변이
아니라, 성령의 힘을 드러냄으로써”(1코린 2,4) 어둠을 밝히도록 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세상을 밝히고 어둠을 이기는 것은 우리의 힘이
아니라 빛이신 하느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잊지 않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그리스도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음은 자비의 실행입니다.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처럼 “굶주린 이와
양식을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맞아들이며, 헐벗은 사람을
덮어 주고, 고생하는 이의 넋을 흡족하게 해 주어야 합니다.”
(이사 58,7.10) 사랑은 그 어떤 불의와 악도 이길 것입니다. 냉정함과
무관심과 차별은 더 큰 악을 초래할 뿐입니다.
나아가 “멍에와 삿대질과 나쁜 말을 치워 버린다면 빛이 어둠 속에서
솟아오를 것입니다.”(58,10) 인간다운 세상이 되도록 정의를 실행하고
온갖 속박에서 해방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악을 악과 폭력으로
물리치려 하지 말고, 선으로 이겨내야 합니다. 하느님의 빛을 품고
착한 행실을 할 때, 우리는 제 맛을 내는 소금이 되고 어둠을 밝힐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추악한 인간의 모습과 암울한 현실을
보면 극도의 절망감과 자괴감과 회의가 들기도 하지요. 그러나 빛의
자녀인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포기하거나 체념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것을 자비와 선으로 다스리시어 당신 뜻대로 이끄시는 빛이신
주님께서 친히 어둠의 저 깊은 곳까지 낱낱이 비춰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주님의 손길을 믿으며, 우리 또한 자비와 선과 정의를
실행함으로써 빛이신 주님의 빛을 반사하는 빛과 소금이
되어야겠습니다. 설령 그 길이 험하고 고통스럽다 하더라도 하느님을
버리고 세상에 속아 어둠 속에서 헤매는 가련한 사람이 되지는
말아야겠지요.
오늘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관대하게
내어줌으로써 빛을 발하는 아름답고 행복한 날이길 희망합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
◈ [수도회] 우리 교회가 지녀야 할 가장 근본적인 속성
2017년 가해 2월5일 연중 제5주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 마태 5,13-16
우리 교회가 지녀야 할 가장 근본적인 속성
공원을 산책하던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날씨도 추운 날, 그것도 늦은
밤에 수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얼굴을
가만히 살펴보니 다들 청춘남녀에 청소년들이었습니다. ‘무슨 행사가
있나?’ 싶어서 한참을 두리번거리던 끝에 겨우 분위기 파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젊은이들은 하나같이 스마트 폰을 코앞에 들이대고 요즘
대세 게임인 ‘포켓몬 GO’를 하고 있었습니다.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니는 사람은 저를 비롯해서 어르신 몇 분 밖에 없었습니다.
게임에 완전 매료·몰입되어 있는 그들을 바라보며 게임 개발자의
탁월한 재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얼마나 신선하게, 그리고
흥미진진하게 게임을 구성했으면 저리도 많은 젊은이들이 저리도
포켓몬 잡는데 혈안이 되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힘겹고
팍팍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젊은이들이 포켓몬GO 게임을 통해서
잠시나마 고통을 잊는구나 하는 생각에 고마운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교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포켓몬GO는 우리
젊은이들에게 저리도 큰 매력을 발산하고 있고, 수많은 젊은이들을
불러 모으고 있고, 큰 기쁨을 선사하고 있는데, 우리 교회는, 우리
가톨릭 신앙은, 우리 그리스도 신자들은 어떠한가? 이 야심한 밤 넓은
공원이 젊은이들로 바글바글한데, 우리 성당에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젊은이들을 발견하기 힘든 이 현실이 참으로 서글펐습니다.
이런 현실 앞에 예수님께서 던지시는 말씀 한 마디가 더욱 가슴을
찌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해 놓는다. 그렇게 하여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마태오복음 5장 13~14절)
오늘 우리 교회를 바라보면 제 맛을 잃어버린 소금 같은 분위기가
역력합니다. 됫박으로 덮어버린 등경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저만 그런
건가요?
많은 사람들이 우리 교회의 지나친 폐쇄성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지녀야 할 가장 근본적인 속성은 순례성, 개방성,
유연성, 연대성...이런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어떤 성당은 세상과의 경계가 되는 담을 너무 높게
쌓아올렸습니다. 어떤 성당은 마치 대단한 성채, 단단한 철옹성 같아서
감히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어떤 성당은 그 구성원들이 다들
뭐가 그리도 바쁜지 찾아온 나그네를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한마디로
교회의 문턱이 너무 높습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서 묵상해봅니다. 지상의 나그네를
환대하는 집이 교회가 아닐까요? 목말라하는 나그네에게 시원한 물
한잔과 쉼터를 제공하는 곳이 교회가 아닐까요? 세상과의 전투에서
상처 입은 부상병들을 기꺼이 맞아들이는 야전병원이나 응급실이
교회가 아닐까요? 사회적 약자들과 날개가 부러진 사람들과 기가 꺾인
사람들이 원 없이 에너지를 충전시킬 수 있는 기쁨과 희망의 에너지
충전소가 교회가 아닐까요?
우리 모두 고립되고 폐쇄된 교회에서 빨리 걸어 나와야겠습니다. 더
이상 우리만의 교회, 끼리끼리 교회를 고집해서도 안 되겠습니다.
세상의 현실에 무관심했던 지난날을 가슴 쳐야겠습니다. 지역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는 교회, 그 누구든 스스럼없이 찾아올 수 있는 열린 교회,
‘산위의 등불’같은 우리 교회가 되어야겠습니다.
우리 교회가 좀 더 매력적인 교회로 탈바꿈하기 위한 고민과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젊은이들의 발걸음을
교회로 돌아오게 할 수 있겠는지 각고의 노력을 다해야겠습니다.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 [서울] 연중 제5주일
2017년 가해 2월5일 연중 제5주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 마태 5,13-16
눈사람을 만들어 본 경험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눈 뭉치를 굴리게
됩니다. 눈사람이 조금씩 커지면서 주변의 눈들을 더욱 많이 얻을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말의 어감에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말은 부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미국은 ‘군사, 경제, 문화, 과학’의 분야에서 세계 최강입니다.
미국의 움직임은 당연히 세계의 많은 나라와 경제에 커다란 영향을
주기 마련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반이민 법’을 실행하겠다고 합니다. 멕시코 인들의
돈으로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에 장벽을 쌓겠다고 합니다. 미국이라는
눈덩어리가 굴러가면서 미국인들은 물론, 다른 많은 나라 사람들에게
우려와 걱정을 주고 있습니다. 가난 때문에, 민족의 분쟁 때문에,
정치적인 신념 때문에 ‘난민’이 된 사람들을 받아 주는 것은 국제적인
관례입니다. 이웃의 아픔과 슬픔을 보듬어 주는 것은 인간이 지닌
고귀한 품성이기 때문입니다. 종교적인 이유로 특정한 국가의 사람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판단하는 것은 폭력입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국가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아프리카에서 많은
노예들을 데려왔습니다. 노예들의 땀과 피가 미국 경제의 축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노예를 데려왔던 미국이 적은 수의 난민을 받아
주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일 수 있습니다. 깨어있는 미국의 지성과
시민들이 있기를 바랍니다. 잘못된 진단은 잘못된 처방을 내릴 수
있고, 몸의 병을 더욱 키울 수 있습니다. 반이민 법과 장벽의 설치는
잘못된 인식에 의한 잘못된 처방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몸은 많은 지체들이 있습니다. 지체들은 서로 협력하고, 서로의
자리를 인정하기 때문에 균형 잡힌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눈의 도움
없이 발이 얼마나 걸을 수 있을까요? 손의 도움 없이 입은 음식을
어떻게 먹을 수 있을까요? 귀의 도움이 없다면 우리는 아름다운
음악을, 흐르는 시냇물의 소리를, 사랑하는 연인의 속삭임을 들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완벽하게 서로 소통을 하고, 협조를 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의 몸이
소통이 되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심장질환, 당뇨, 고혈압, 암’은
소통이 되지 않아서 생기는 질환입니다.
오늘의 성서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반이민 법과 장벽의 설치는 분명 잘못된 처방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너희의 빛이
새벽빛처럼 터져 나오고, 너의 상처가 곧바로 아물리라.” 이것이
올바른 처방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말입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좀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해주고 있습니다.
‘초는 자신의 것을 다 태워서 빛을 비추어 줍니다. 소금은 모든 것을
주고 녹아야 맛을 냅니다.’ 빛과 소금처럼 모든 것을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어리석어 보이는 십자가의 삶이
바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길이라고 말해 주고 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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