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마지막 시묘살이(待基살이)

충남 서산시 성연면 일람리 야산. 좁다란 길을 쫓아 올라 자그마한 움막과 묘지가 보인다.
3년 전 작고한 어머니 묘소에서 시묘살이를 하고 있는 유범수 씨(53·인천 부평구)가 기거하는 곳이다.
시묘살이!
성리학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던 조선시대에 부모가 아이가 태어나 제대로 걷는 3년까지 먹여주고 닦아주고 입혀준 공을 갚는다 하여, 부모가 돌아가시면 자식이 묘소옆에서 움막을 짓고 살았다는 풍속.
이른바 효의 정점.
율곡 이이선생도 어머니인 신사임당의 묘소에서 3년 시묘살이를 했다고 전해온다.

유씨가 3년 동안 시묘살이를 시작한 것은 2002년 6월 모친이 돌아가신 후부터다.
잠은 묘옆에 움막을 짓고 그곳에서 산다.

인천에 가족이 있다.
가족의 생계는 어머니 살아계실 때부터 시묘살이를 위해 비축해 둔 준비금으로 이어간다.
유씨는 가끔 벌초도 하며 어머니와 이야기도 나눈다.
"머리가 길어셨네요. 제가 깍아드릴께요"

부친과 모친을 함께 모셔놓고 조석으로 따뜻헌 밥을 손수 지어 올리며 묘소곁을 떠나지 않는다.
하루 세끼 한번도 빠뜨리지 않고 식사전후 문후까지 여쭙는다.



진지를 차려 올리고 한 시간 정도 옆에 서서 기다린다. 다 드실때까지.
그리고 그가 식사를 한다.
밥을 지어 올리려면 아래 부엌까지 걸어내려 가야 한다.
이 일을 하루 세번, 3년을 유씨는 해왔다.
스스로, 오직 부모님을 위해.

유씨가 기거하는 움막 안.
겨우 한 사람이 누울 정도로 좁다.
아버님과 어머님의 영정이 보인다.

지난 6일에는 당진고교 학생 30여 명이 어버이날을 앞두고 유씨를 찾아왔다.
시묘살이를 직접 본 학생들은 유씨를 보며 놀라워하기도 하고 효행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깨닫는 시간을 가졌다.
학생들은 부모님을 한번 더 생각하게 해 준 계기가 됐다고 효의 중요성에 입을 모았다.
한 학생은 1년 정도는 자기도 할 수 있겠다고 했단다.

유씨는 오는 22일 시묘살이를 끝내고 생업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그가 이 시대 마지막 시묘살이가 될지라도 그의 정신은 이어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시묘살이(待基살이)
1. 시묘 살이의 뜻
부모가 죽으면 아들이 3년간 부모의 묘를 돌보고 불효를 반성하는 것
2. 시묘살이의 강제성
우선 시묘살이는 강제사항이 아니었습니다. 엄격한 유교국가인 조선이었지만 3년 시묘살이
하는 것은 보통이 인내력으로 힘든 것이기 때문에 보통은 3달을 시묘살이 했으며 3년까지 하는 것은 드문 경우라고 볼수 있습니다.
3. 시묘살이를 할 때 식량 문제
밥은 자기가 직접 해 먹었고 식량은 식구가 조달했다고 합니다.
4.시묘살이하는 3년간 하는 일
공부할 수도 있고 주로 선비들이 시묘살이를 했으니까 글을 읽었을 겁니다. 하지만 주로 무덤을 돌봤습니다. 그리고 가끔 집에 가서 옷가지나 식량을 얻어올 수는 있었습니다.
5. 시묘살이 하는 동안 하루 일과
아침, 점심, 저녁으로 부모님 묘에 공양을 올리고 인사들 드리고 무덤을 관리합니다. 시간나면 글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주로 하는 것은 부모님 묘를 돌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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