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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가해 6월30일 금요일 [(녹) 연중 제12주간 금요일]
[수도회] 상처를 떠안으심으로써 치유해 주시는 주님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제1독서 창세 17,1.9-10.15-22
† 복음 마태 8,1-4
◈ 오늘의 묵상
어떤 나병 환자가 자신의 병을 낫게 해 달라고 예수님께 다가옵니다.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나병 환자에게 대시며 그의 병을 치유해
주십니다. 이처럼 손은 우리의 신체 가운데 가장 많은 역할을 하는
지체이면서, 우리의 마음을 잘 전달하는 소중한 지체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가장 가난한 이들을 소중하게 생각하셨는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교회도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인
선택”이라는 명제 아래, 예수님의 뜻을 더 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선택이 학문적이거나 상징적인 것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고, 실제로 가난한 이들 곁에 다가가, 그들과 함께 머물러야 한다는
것을 오늘 예수님의 손이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나병 환자는 가난한 이들 가운데서도 가장 소외된 이들입니다. 그러나
가난한 이들을 구분하고 소외시키는 것은 바로 우리의 잣대입니다.
우리가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으로, 잘못된 정보로, 그리고
누군가를 무시하는 마음으로 잣대를 만들어 구분하고, 이러한 구분이
단절과 소외를 만들어 냅니다.
우리가 가난한 이들을 멀리서 바라보거나 텔레비전이나 잡지, 영화를
통해서 만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구분과 장벽을 깨고 그들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마치 우리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 주시고, 우리를 만져 주시기를
바라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
- 매일 미사 -
◈ [인천] 주님의 배려하는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2017년 가해 6월30일 연중 제12주간 금요일
제1독서
"계약의 표지로 남자들은 모두 할례를 받아라. 사라가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것이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17,1.9-10.15-22
복음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1-4
언젠가 신부들과 함께 정통 양식 레스토랑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자리를 안내 받고서 메뉴판을 받았지요. 저는 메뉴판을 보지도 않고
곧바로 말했습니다.
“저는 비후까스요.”
어렸을 때 먹었던 돈까스, 비후까스의 기억 때문일까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비후까스’를 주문했습니다. 그러자 함께 갔던 신부들이
요즘에 비후까스 있는 레스토랑이 어디에 있냐면서 핀잔을 줍니다.
그런데 한 선배 신부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메뉴판을 여유 있게 보는 것도 매너야.”
이 신부님께서는 양식 먹을 때의 매너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신 것
같았습니다. 솔직히 이러한 레스토랑에 잘 가지 않는 저로써는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이었지요. 그래서 어떤 매너가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전채요리는 식욕 촉진제이므로 많이 먹지 말아야 하는 것, 수프는
마시는 것이 아니라 떠서 먹어야 한다는 것, 빵은 수프를 먹고 나서
먹어야 한다는 것, 고기 요리는 왼쪽부터 세트로 잘라 먹어야 한다는
것, 로스트 치킨은 손으로 뜯어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 샐러드 접시의
위치는 마음대로 바꿔서는 안 된다는 것 등등 지켜야 할 매너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드디어 요리가 나옵니다. 그런데 매너를 따지면서 행동을 하다 보니
식사 시간 내내 불편하기만 합니다. 특히 식사 매너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한 마디 하시는 신부님 눈치 보느라 더욱 더 불편함이
가득했습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과연 음식 맛을 느꼈을까요?
아무렇게나 먹어도 상관없는 설렁탕집이 갑자기 떠올려지더군요. 바로
그때 한 신부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매너나 에티켓은 상대방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 있는 거잖아.
우리끼리인데 편하게 좀 먹자.”
상대방을 향한 배려가 진짜 매너나 에티켓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이 단지 알려져 있는 매너나 에티켓만
강조하면 그것은 가짜라고밖에 할 수 없지 않을까요?
오늘 예수님께 한 나병 환자가 다가와서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말을 합니다. 이 말에 대한 뜻은
무엇일까요? 충분히 깨끗하게 하실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으로, 곧
자신의 병을 치유해달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당연히 이제까지 보여주신
많은 행적을 보면 치유해줄 힘이 분명히 있으시지요. 문제는 주님께서
하고자 하실까 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러한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나병 환자의 바람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언어로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주님의 배려하는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사랑을 바라보면서 내
자신은 얼마나 나의 이웃들을 배려하는 사랑으로 다가섰는지를
반성하게 됩니다. 사랑받기만을 바라고, 사랑을 나누는 데는 인색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가장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도 때로 남보다도 서로를 이해 못하는,
사랑하고 사랑받는 걸 당연하게 여기면서도 누구보다 상처 주고
상처받는, 구원이자 상처이며 나를 꼭 닮은 타인이 바로 ‘가족’이다
(김별아).
엊그제 먹은 쫄면.
강화의 조그만 분식점인데 이런 쫄면의 맛은 처음이었어요.
더 숙이세요.
어느 책에서 읽은 주례사의 내용입니다.
“신랑 신부는 잘 들으세요. 상견례 순서가 되는데 지금 하는 이 맞절은
부부가 살아생전에 하는 절로는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에는 두 사람이 평생 쏟아야 할 공경, 사랑, 아낌, 베풂, 더 나아가
상대방 부모님께 드리는 효심까지 다 담아야 합니다. 때문에 이 주례가
그만할 때까지 고개를 계속 숙이고 계시기 바랍니다. 자, 신랑신부
경례... 신랑은 고개를 더 숙여요. 신부도 마찬가집니다. 더, 더, 더,
아직 멀었습니다. 더 숙이세요.”
사랑은 고개를 숙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뻣뻣하게 고개를
들고서는 입으로만 ‘사랑’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 안에서 사랑은
공허한 메아리처럼만 울릴 뿐이고, 미움과 다툼이 커집니다. 진정한
사랑,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셨던 배려하는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럴려면 고개를 숙일 수 있어야 합니다.
강화의 또 다릇 맛집. 김밥 하나라도 맛집이 될 수 있네요.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 [수도회] 상처를 떠안으심으로써 치유해 주시는 주님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017년 가해 6월30일 연중 제12주간 금요일 마태 8,1-4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마태 8,2)
상처를 떠안으심으로써 치유해 주시는 주님
어떤 나병 환자가 산상설교를 마치고 내려오시는 예수님께 다가와
엎드려 절하며 고쳐주시라 청합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8,2) 그러자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어 그의 병을 고쳐주십니다(8,3). 이로써 하느님 나라가
이미 우리에게 와 있음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나병 환자의 태도에서 우리 신앙의 길을 찾아봅니다.
예수님께 다가와 엎드려 간곡하게 치유를 청한 그의 태도는
놀라웠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살아있는 송장’ 취급을 받았고, 부정한
사람으로 여겨져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도 없었으며, 성곽 도시에
들어갈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11세기까지 나병환자들은 전염의 위험 때문에 사회로부터 강제로
격리되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대 그레고리오 교종의 가르침에 따라
그들을 돌볼 중대한 의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3차 라테라노
공의회(1179년)는 나병을 죄스런 생활 때문에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벌로 여겼습니다. 따라서 신자들이 죄에 물들지 않도록 그들을
격리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종교의식과 사회생활에서 철저히
배제되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보면 나병환자는 결코 예수님께 다가가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는 예수님께 다가갔으며 엎드려 절하며
치유를 청했을까요? 그에게는 모든 사람이 자신을 죄인으로 여겨
무시하고 배척해도, 예수님만은 자신을 받아주시고 고쳐주시리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병환자의 믿음은 세상의 냉소와 멸시를 뛰어넘고도 남을 정도로
강력했을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보고
믿었을 뿐 아니라, 치유를 통한 자유와 해방으로 자신을
이끌어주시리라는 희망을 품었습니다. 그렇게 인간은 희망을 품을 때
인간성을 회복하게 되지요. 예수님께서는 그의 믿음과 치유 받고자
하는 간절한 갈망, 영혼의 상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거룩한
정직함’에 손을 내미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냉소와 멸시와 배척을 안고 자신에게 다가온
나병환자의 상처를 ‘떠안으심으로써’ 그의 상처를 치유해주신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나병환자의 처지로 내려가시어 그를
치유해주십니다. 그분께서는 나환자를 배척하고 격리한 이들과
나병환자 사이의 비인간적 빈터를 사랑으로 채워주신 것입니다.
생명이신 분께서 나병환자의 손을 잡아주심으로서 그의 훼손된
인간성을 회복시켜주신 것이지요.
하느님께는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기도와 찬미가 필요치 않으나,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주님의 사랑이지요.
오늘도 주님께서는 천지창조 때 몸소 사람을 빚어내신 바로 그 사랑의
손길로, 매순간 나에게 다가오시어 우리 손을 잡아주십니다. 이것이
모든 피조물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의 의지입니다.
우리 모두 나병환자처럼 나의 부족함과 고통과 영혼의 어둠을 주님께
보여드리며 그분께 다가가야겠습니다. 그럴 때마다 주님께서는 온화한
목소리로,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8,3) 하고 말씀해주실
것입니다. 나병환자처럼 상처입으신 치유자 주님께 사회적 편견과
냉소의 성벽을 허물어주시라 간청해야겠습니다. 오늘도 겸손한
마음으로 사랑의 주님께 다가가는 인생의 자유여행을 시작했으면
합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신부 -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
◈ [수도회]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마태 8, 3)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7년 가해 6월30일 연중 제12주간 금요일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마태 8, 3)
우리모두는 주님의 것입니다.
치유와 정화는 오직 주님의 사랑에 맞물려있습니다.
나병환자처럼 치유되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를
우리또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끝내 우리를 되살리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자녀들입니다.
주님을 만나는 순간이 치유의 순간입니다.
찾아야 할 분이 먼저 누군지를 아는 우리들의 시간이길 기도드립니다.
마비되어가는 우리의 아픔에 당신 손을 내미시어
깨끗하게 하시는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깨끗하게 되어라."(마태 8, 3)
생명을 깨끗하게 하시는 주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서울] 신앙고백은 사랑과 귀여움 받는 길
2017년 가해 6월30일 연중 제12주간 금요일
신앙고백은 사랑과 귀여움 받는 길
“그때에 어떤 나병 환자가 다가와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이렇게 말
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
니다.‘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
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곧 그의 나병이 깨끗이 나았다.
(마태오 8,2~3)”
내가 하고 싶어서가 아니고 예수님이 하시고 싶어지게 하도록 해야죠.
내가 하고 싶어서 예수님에게 해달라는 생떼는 신인관계 미숙합니다.
예수님이 해 주시고 싶어지도록 하는 자세는 신앙고백이 우선입니다.
자식 키울 때 애교재롱으로 사랑표현 잘하면 뭐든 해주고 싶어집니다.
떼쓰고 고집부리며 해 달라 보채면 미워 야단치며 해주기 싫어집니다.
신앙고백은 재롱이고 애교며 사랑과 귀여움 받는 길인 점 명심합시다.
하고자 하시면 하실 수 있습니다 하는 신앙고백으로 나병이 나았습니다.
의심 사심 욕심 말고 사랑의 믿음고백하면 하느님은 아버지 되어주셔요.
가톨릭 인터넷예비신자교리 http://3217b.kr
- 서울 대교구 이기정 사도요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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