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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가해 7월27일 목요일[(녹) 연중 제16주간 목요일]
[수도회] 하느님을 더 많이 차지하는 행복한 사람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제1독서 탈출 19,1-2.9-11.16-20ㄴ
† 복음 마태 13,10-17
◈ 오늘의 묵상
오늘 제1독서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은 드디어 시나이 광야에
다다릅니다. 그동안 겪은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지요. 그들에게
주님께서 다가오십니다. 곧 주님께서 먼저 시나이 산 위로, 그
산봉우리로 내려오신 다음, 모세를 그리로 부르신 것입니다. 모세는
오늘 산봉우리로 부르심을 받기까지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이끌었으며, 그동안 얼마나 많은 오해와 모략을 받았습니까?
또한, 우리가 생각할 점은 항상 주님께서 인간을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느님을 먼저 찾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인간을 찾아오시는 것이지요. 그러기에 우리는 늘 그분의 도구가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이 말씀은 인간은 자신의 능력에 만족하지 말고, 그 능력을 더욱
개발해야 한다는 뜻이지요. 또한, 세상은 점점 빠르게 변화되어
가는데 이에 적응하지 않고 과거의 모습에만 연연한다면, 이 역시
올바른 자세는 아닐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이지요.
자신의 앞에 주어지는 시련을 하나둘 극복해 나가면, 마침내 튼튼한
신앙인이 되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영광을 얻게 되지만, 눈앞의
시련에 좌절하고 만다면 그 결과는 어떠하겠습니까? 따라서 우리는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미래를 향해 실천적인 행동을 해야만 합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 매일 미사 -
◈ [인천] 쉽게 깨달을 수 있도록 비유로 말씀
2017년 가해 7월27일 연중 제16주간 목요일
제1독서
<온 백성이 보는 앞에서 주님이 시나이 산에 내릴 것이다.>
○ 탈출기의 말씀입니다. 19,1-2.9-11.16-20ㄴ
복음
"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10-17
언젠가 아주 어린 아이가 젓가락 사용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참 신기했습니다. 저렇게 어린데도 불구하고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서 젓가락질을 하고 있으니까요. 더군다나 저는 저만한 나이
때 그렇게 젓가락질을 잘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젓가락을 주먹 쥐듯이 잡았습니다. 그렇게 능숙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밥과 반찬을 집어 먹을 수는 있었지요. 하지만 이
상태로는 제 위의 형 누나들을 따라 잡을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형제가 많은 우리 집에서 조금이라도 더 많이 먹기 위해서는
젓가락질을 바꿔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바뀐 모습이 젓가락질을
엑스자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전보다 정확도와 속도가 붙었지만 이
역시 형제들을 따라잡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했습니다.
이러한 시행착오를 거쳐서 지금의 정상적인 젓가락질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의 젓가락질을 할 때에 편했을까요? 아닙니다.
불편했습니다. 머릿속에서 계속 생각을 하면서 젓가락질을
했습니다. 이쪽 손가락과 이쪽 손가락 위에 올려놓고 어느 부분에
힘을 주고, 음식을 많이 잡을 때에는 어떻게 하고.... 등등 계속
생각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지금, 계속해서 생각을 하면서 젓가락질을
하고 있을까요? 아닙니다. 지금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 역시 이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젓가락질을
한 번에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처음에는 계속 생각하면서
행동하는 것처럼, 주님 앞에 한 번에 제대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에
처음에는 계속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이 과정을 건너뛰려고 합니다.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이 그대로 이루어지길 바라고 있지요.
제자들이 예수님께 “왜 비유로 말씀하십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저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해주시지요. 처음부터
주님 앞에 제대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깨달을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주님께서는
쉽게 깨달을 수 있도록 비유로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이러한 단계가 필요함을 잘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그러한 과정은 모두 생략한 채 모든 것을 다
얻으려고만 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사실 기도와 묵상 등을
통해 주님을 알아가는 사람들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의연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계속해서 주님을 생각하면서 점점 주님과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은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은 늘
불평불만으로 가득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얻으려고 할 뿐입니다.
지금 내 모습은 과연 어떠할까요? 당신께 쉽게 다가올 수 있도록
비유로 말씀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좀 더 주님을 알 수
있도록 또 함께 할 수 있도록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내가 변하지 않기 때문에 그 사람들도 변하지 않는 것이다(이석원).
이런 젖가락이 있어서 쉽게 배우더군요.
홈런
요즘에 프로야구가 한창입니다.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순위경쟁이 이루어지고 있지요. 그러다보니 더욱 더 흥미진진하게
보게 됩니다. 이 프로야구에서 참으로 재미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물론 터질 듯 말 듯 한 투수전도 있지만, 결정적인 한 방인 홈런이
야구의 재미를 더하는 것 같습니다. 이 홈런으로 거의 지게 된
경기도 뒤집어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기사를 하나 보았습니다. 글쎄 홈런은 직구보다는
변화구에서 많이 나온다는 것이었지요. 공이 휘어지는 변화구가 더
홈런을 치기가 힘들 것 같지만, 일단 치기만 하면 회전이 많이 담겨
있어서 큰 타구가 된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요? 어렵고 힘들어 보이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회전 많은 변화구처럼 도저히 견디어 내기 힘들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변화구가 홈런 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은
것처럼, 내게 다가오는 고통과 시련이 나를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가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지금 내 앞에 힘들고 어려운 변화구가 많이 날아오고 있습니까?
축하합니다. 당신은 홈런 칠 수 있는 기회를 누구보다도 더 많이
얻은 것입니다.
동창신부와 함께 야구했습니다.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 [수도회] 하느님을 더 많이 차지하는 행복한 사람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017년 가해 7월27일 연중 제16주간 목요일 마태 13,10-17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마태 13,12)
하느님을 더 많이 차지하는 행복한 사람
오늘 복음은 다음과 같은 배경에서 알아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서기
40년 유다인들이 로마의 압제에 반발하여 민족 독립 전쟁을
일으킵니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예수님을 추종하던 많은
사람들은 해외로 도피해버렸습니다. 이 유다 전쟁은 처참한 패배로
끝났고, 예루살렘 성전은 파괴되고 맙니다.
마태오복음이 쓰일 무렵에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유다교 회당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갑니다. 그 당시에는 예수님을 받아들인
‘제자들’과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은 유다 지도층 인사들과 가난한
군중들로 나뉩니다. 이런 상황을 두고 마태오 복음사가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전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13,12) 이 말씀은
자본주의의 경제논리에 따라 더 부자가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여기서 ‘가진 사람’이란 물질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보고 알아 지닌 사람을 말합니다.
하느님께 눈길을 두고 집중하여 그분의 지혜의 신비를 깨달은
사람이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더 깊은 지혜를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사랑이신 하느님의 사랑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여 다른 이들과 나누는 사람은, 하느님의 더 큰 사랑을
받는다는 말씀이지요. 생명이신 하느님을 갈망하는 사람에게는
생명을 넘어선 생명이 주어진다는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목말라 하며 온 마음을 다해 되새기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음식이 더 많이 주어진다는 뜻이지요. 정의이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정의를 실행하는 사람은 더 의로운 주님의 자녀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런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고 자기만의 왕국에
살며, 물질을 더 많이 소유하려고 하는 사람은 주님께서 주신
것마저 빼앗기게 될 것이라 하십니다.
주님께서 주신 것마저 잃게 되면 그 결과는 영혼의 비참함만이 남게
되겠지요. 하느님으로부터 와서 하느님의 사랑을 먹고, 그 사랑을
위해 살아가는 인간이 하느님을 잃어버릴 때 만나는 것은
죽음뿐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신비는 우리 계획과 뜻만으로는 알
수도 얻어질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주님께서 주신 것만 붙들고 있다면
가진 것마저 잃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느님의 선물을
갈수록 더 많이 받는 하느님의 사람이 되도록 힘써야겠습니다.
하느님과 더 일치할 수 있도록 말씀과 사랑 실천에 대한 열정을
더욱 더 키우며 항구히 헌신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신비는 그렇게 열정과 헌신의 정신으로 철저히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사랑의 표지입니다. 이런
하느님의 신비 안에 머물려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보려는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 또한 완고한 마음을 버리고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들에 집중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삶의 중심을 자신과 물질과 권력에 두지 않도록
깨어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을 갈망하는 사람만이 하느님을
차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도 하느님을 갈망하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며,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더 많이 받는
행복한 날이길 기도합니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가졌습니까?
- 기경호 프란치스코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신부 -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
◈ [수도회]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마태 13, 12)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7년 가해 7월27일 연중 제16주간 목요일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마태 13, 12)
내 것이 아니기에 빼앗기고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 무엇도 소유할 수 없는 우리의 삶입니다.
빼앗겨야 삶의 방향을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내 것이란 없습니다.
우리 목숨이 신비입니다.
오늘 이 시간이 신비입니다.
생명의 기쁨을 맛보는 봉헌의 시간되시길 기도드립니다.
가장 소중한 것이 무언지를 다시 묵상하게 됩니다.
무엇이 더 귀한지를 알게됩니다.
모든 신비는 하느님의 것입니다.
우리 안에 일어나는 모든 것 또한 하느님의 것입니다.
가장 빛나는 순간은 하느님과 함께하는 지금 이 순간입니다.
부족한 우리가 하느님을 갈망하는 것이 신비입니다.
신앙의 신비는 간절한 것입니다.
신비는 우리를 변하게 하며 삶의 기쁨을 깨닫게합니다.
살아있는 신비는 하느님을 필요로합니다.
이 세상을 아름답게 빛나게 하는 것은 가진 것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나누며 함께 하는 것입니다.
아픔이 깊을수록 신비도 간절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시간이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비로소 예수님을 선탁하게 됩니다.
생명의 주체는 주님이십니다.
우리의 부족함과 죄악까지도 빼앗아
풍요롭게 하시는 하느님 구원을 믿습니다.
새롭게 하시는 하느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봉헌하는은총의 시간되십시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서울] 연중 제16주간 목요일
2017년 가해 7월27일 연중 제16주간 목요일
"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 마태 13,10-17
기타의 줄을 맞출 때가 있습니다. 기본음을 잘 아는 사람은 쉽게
줄을 맞출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음에 대한 감각이 부족한 사람은
줄을 맞추는 것이 어렵습니다. 음을 들어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림을 감상 할 때도 그렇습니다. ‘원근, 명암, 선,
구도, 여백’에 대한 감각이 있어야 그림을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좋은 그림은 ‘묘와 신’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런 그림은 사람들에게
진한 감동을 주기 마련입니다. 기타의 줄을 맞추기 위해서는 자주
음을 들어야 합니다. 그림을 잘 감상하기 위해서도 자주 그림을
접해야 합니다. 그래서 안목을 높여야 합니다.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가 있습니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분들의
이야기입니다. 초밥을 오랫동안 만들었던 분은 손에 잡힌 밥알의
숫자를 거의 정확하게 맞추기도 합니다. 호떡, 떡볶이, 김밥과 같은
주변의 친숙한 먹거리에도 자신만의 맛과 향으로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분들이 있습니다. 많은 실패를 경험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최고가 될 수 있었던 분들의 이야기입니다.
신앙인들은 감사의 달인, 나눔의 달인, 겸손의 달인, 봉사의 달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그래야
주님께서 보여주신 길을 충실하게 따라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제는 강론의 달인, 듣기의 달인, 성사의 달인, 실천의 달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교우 분들이 사제를 존중하고, 사랑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주님께 사랑받는 제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돌아보면 감사할 일들이 참 많습니다. 이른 아침에 눈을 뜰 수 있는
것 그리고 하느님께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내가 부족하기에 나를 도와 줄 수 있는 은인들을 보내
주시는 하느님이 계시니 얼마나 든든한 일입니까? 많은 결점과
잘못이 있음에도 나를 믿고 기다려 주시는 하느님이 계시니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작은 힘이지만 내가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눈으로 보면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믿음의
귀로 들으면 예수님 말씀의 의미를 이해 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산에서 하느님을 만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또한 모세는 시나이 산에서 삶의
기준이 되는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미사를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음을 선포하라고 명령을
하셨으며,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매일 미사에 참례한다면
우리는 신앙의 ‘시나이 산’으로 매일 오르는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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