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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가해 8월1일 화요일
[(백)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 학자 기념일]
[수도회] 회개하며 좋은 씨앗으로 살아가는 하느님의 자녀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제1독서 탈출 33,7-11; 34,5ㄴ-9.28
† 복음 마태 13,36-43
◈ 오늘의 묵상
우리는 악인이 없는 세상, 선한 사람만 존재하는 세상을 원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는 가라지와 같은 악이 존재합니다. 이 세상에서
선과 악의 구별은 밀과 가라지의 구별처럼 어렵습니다. ‘악’은
‘선’을 가장하므로 우리에게 언제나 혼란과 오류를 일으킵니다.
인간이 거짓과 진실을 구별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악은 밀과
비슷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가라지와 같습니다. 악은 선의
결핍입니다.
세상 종말에 이루어질 하느님의 심판과 이 세상에서 내리는 인간의
심판은 다릅니다. 오직 하느님께서만 올바른 판단을 내리실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세상 종말에 밀처럼 좋은 열매로
심판받기를 원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 눈에 가라지로 보이는
사람들이 하느님 앞에서 밀처럼 좋은 열매로 심판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남을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열매를 맺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가라지와
같은 사람들을 밀로 성장시키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하늘
나라의 알곡이 되도록 하느님 안에 머무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알폰소 성인은 병상에 눕자 자신의 주교직이 아무 의미 없는 것으로
생각하여 클레멘스 7세 교황에게 사임을 청하였습니다. 교황은
성인에게 “침상에서 하느님께 드리는 주교님의 기도는 백 번의 사목
방문보다 훨씬 가치가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우리 눈에
하찮게 보이는 것들도 하느님께 바쳐질 때 좋은 열매를 맺는 일이
됩니다.
- 매일 미사 -
◈ [인천] 지금이 중요합니다.
2017년 가해 8월1일 화요일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 학자 기념일
제1독서
<주님께서는 모세와 얼굴을 마주하여 말씀하시곤 하였다.>
○ 탈출기의 말씀입니다. 33,7-11; 34,5ㄴ-9.28
복음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태우듯이,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36-43
약속이 있어서 차를 몰고 인천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차가
막하지 않아서 예상했던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것입니다. 약속
시간까지 거의 1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책이라도 가져올 걸이라는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꺼낸 것이 무엇일까요?
아마 많은 분들이 특별히 할 일 없으면 꺼내는 것, 맞습니다.
스마트폰을 꺼내들었습니다.
솔직히 별로 보고 싶은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시간이 남아서
라는 이유로 뉴스도 보고, 관심이 별로 없는 날씨도 살펴봅니다.
그래도 시간이 남아서 제가 운영하는 카페와 SNS 계정도 봤습니다.
별로 중요하지도 또 관심도 없는 행동들을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렇게 해도 시간이 아직도 15분 남았습니다.
바로 이 순간 제게 주어진 시간 중에서 꽤 많은 부분을 쓸데없이
보냈던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종종 시간이 없어서
신앙생활을 못하고 있다는 분들을 만납니다. 그런데 정말로 시간이
없는 것일까요? 어쩌면 바쁘다는 이유를 통해 어쩔 수 없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이 아닐까요? 시간이 남을 때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보는 것처럼 주님께 짧은 기도라도 한다면 어떨까요?
스스로를 반성하면서, 약속장소에 놓여 있는 의자에 앉아서 눈을
감고 묵상을 합니다. 반드시 성당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니까요.
어디에나 계신 주님이기에 어수선한 약속장소에서도 주님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잠시 뒤 누가 “신부님!”라고 부르면서 제 어깨를
툭 칩니다. 잠깐 눈을 감고 기도를 한 것 같은데, 남아 있었던
15분이 훌쩍 지났습니다.
습관적으로 주님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래야
주님께서 주신 시간을 충실하게 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뜻을 성실히 수행하는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가라지의 비유 말씀을 설명해주십니다. 세상
종말이라는 수확 때에 악한 자의 자녀들인 가라지는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라고 하시지요. 그러나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것이라고 하십니다.
지금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경고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를
기다려주시는 분이시지만 끝까지 기다리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즉, 세상 종말 때에는 밀과 가라지가 가려지듯이, 지금
이 세상에서 살아온 모습을 통해서 분리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문제는 그 마지막 때가 언제인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쓸데없는 곳에 시간을 소비하기보다는 지금 더욱 더 주님과 함께
하고, 주님의 뜻을 따르는데 힘을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시험 날짜가 정확히 잡혀 있어도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면서
어영무영하시는 분들이 있지요. 이러한 분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나중에 ‘좀 일찍부터 잘 준비할걸.’이라는 후회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설 때의 후회를 줄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지금이 중요합니다.
자신을 너무 오래 들여다 보지 말 것. 지나간 일은 모두 잊어버리되
엎질러진 물도 잘 추슬러 훔치고 네 자신을 용서하듯 다른 이를
기꺼이 용서할 것(최영미, ‘행복론’ 중).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
천재
학창시절에 보면, 정말로 부러운 친구가 있었습니다. 이 친구는
뭐든 한 번 보면 거의 다 외웁니다. 기억력이 누구보다도
뛰어났지요. 그래서 평소에는 펑펑 놉니다. 그러다가 시험 전날에
공부를 시작합니다. 저는 며칠 전부터 열심히 공부를 했지만, 시험
결과는 이 친구가 더 높습니다. 천재적인 머리를 가지고 있는 이
친구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지금 현재도 이 친구를 부러워하고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평범하게 태어난 저이지만 저 역시 천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천재일까요?
바로 노력의 천재가 되면 됩니다.
서울 신학교 입학식 기념사진입니다.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 [수도회] 회개하며 좋은 씨앗으로 살아가는 하느님의 자녀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017년 가해 8월1일 화요일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 학자 기념일 마태 13,36-43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태우듯이,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마태 13,40)
회개하며 좋은 씨앗으로 살아가는 하느님의 자녀
오늘 복음에 나오는 가라지의 비유 풀이는 하늘 나라의 완성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사람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세상이라는 밭에
좋은 씨를 뿌리십니다. 곧 하늘 나라의 자녀들을 세상에 파견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하느님의 사랑으로 창조되어 하느님의 생명을
품은 우리는 뿌려지는 ‘좋은 씨앗’입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좋은 씨앗’뿐 아니라 악마가 뿌린 가라지도
있습니다. 악한 자의 자녀는 “남을 죄짓게 하고 불의를 저지릅니다.”
(13,41) 가라지는 자신의 죄도 모자라 남까지 죄짓게 합니다.
가라지는 남의 사랑과 선을 짓누르고 빼앗아버려 하느님과의
관계를 파괴합니다. 가라지는 정의이신 하느님을 거슬러 공정한
도리를 그르칩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으로 우리의 회개를 기다려주시지만 세상
종말에는 가라지를 뽑아 버리실 것입니다. 그렇게 성실한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나는”(13,38) 영광을 입어 아버지의
나라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나 남을 죄짓게 하고 불의를 저지르는
이들은 불구덩이에 던져질 것입니다(13,41-42).
그렇다면 누가 좋은 씨앗이고 누가 가라지일까요? 이런 질문 앞에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당연히 나는 좋은 씨앗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가족이나 친지, 공동체 구성원 가운데 가라지 같은 사람이 먼저
떠오르지요. 사회를 부패와 불평등으로 내몰고 인간의 존엄을
짓밟는 암적인 존재들을 더 빨리 떠올립니다.
그러나 나 또한 가라지의 모습을 드러낼 때가 있지요. 따라서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을 살피고 회개하여 하느님의 좋은 씨앗이
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좋은 씨가 된다는 것은 말뿐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으로 하느님의 좋음과 자비를 실천하는 것을
말합니다. 말뿐인 신앙, 마음과 머릿속에서 맴도는 신앙은
거짓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세상 종말’이 저 먼 훗날이겠습니까?
아닙니다. 한 시간 뒤, 5분 뒤, 아니 지금 바로 이 순간이 바로 그
종말의 때일 수 있음을 명심해야겠지요. 지금 이루어지지 않는
주님의 심판은 나의 회개를 기다려주시는 주님의 자비인 셈입니다.
그러니 회개하여 지금 여기서 사랑과 온유, 정의와 평화, 배려와
관대함의 씨앗으로 살아가야겠습니다.
그러나 심판이 두려워 좋은 씨가 되려고 몸부림친다면 그 또한
비참한 일입니다. 가라지의 비유는 공포감을 조장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뜻을 품고 행동하는 신앙인이 되어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오라는 초대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사랑의 초대에
더 큰 사랑으로 응답하도록 해야겠지요.
다른 한편 가라지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도록 힘쓸 필요가
있습니다. 나도 가라지일 수 있을 뿐 아니라, 가라지를 판별하고
심판하시는 분은 내가 아니라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악인들을 판단하고 단죄하려 들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좋은
씨앗이 되어 그저 묵묵히 주님의 선과 정의와 사랑을 추구하면
그만입니다. 남을 죄짓게 하지 않는데서 더 나아가 모든 이가
주님의 좋은 씨가 되도록 사랑의 연대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는 의인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먼저 자신을 살필 줄 아는 속깊은 사람이었으면 합니다. 남을 탓하고
사회를 탓하기보다 의인들에게 영광을 주시는 주님을 굳게 믿으며,
더 큰 열정으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씨앗을 키워가야겠지요.
어둠은 빛을 이긴 적이 없고, 선과 사랑만이 악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신부 -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
◈ [수도회]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것이다."
(마태 13, 43)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7년 가해 8월1일 화.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 학자 기념일.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것이다."(마태 13, 43)
구부러지고 비탈진 길을 기쁘게 오르는 알폰소 성인이 있습니다.
알폰소 성인의 참기쁨은 가장 가난하고 가장 소외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기쁨에 최고의 역점을 두었습니다.
교회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난한 이들을 통해 만나게됩니다.
알폰소 성인의 육화란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하고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가장 소외된 이들과 함께 하는 교회를 꿈꾸었습니다.
찾아가는 발길이 기쁨과 설레임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사랑받아야 할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의 실패와 나약함또한 해처럼 빛날 수 있음을
알폰소 성인의 삶에서 만나게됩니다.
하느님께서 가난한 우리를 받아주셨듯이 우리또한 서로를
받아주는 축복의 날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알폰소 성인이 간절히 바랐던 것은
우리가 건강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께 다 걸었던 알폰소
성인의 삶에서 투신과 봉헌이 무엇인지를 배웁니다.
우리의 삶 모두 하느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통해 당신의 일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무엇입니까?"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수도회] 하느님의 보다 큰 영광을 위하여
2017년 가해 8월1일 화요일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 학자 기념일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의 희망 한 스푼
<하느님의 보다 큰 영광을 위하여>
오늘은 저희 수도자들이나 주님을 뜻을 추구하는 신앙인들이
백번.고개 숙여 감사드려야할 분, 이냐시오 데 로욜라 성인의
축일입니다. 그분은 언제 어디서나 주님의 뜻을 찾았고, 모든 것을
하느님의 보다 큰 영광을 위해 일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분은 우리에게 제대로 된 피정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명확한
지침을 주셨고, 구체적인 방법까지 친절하게 가르쳐주셨습니다.
이냐시오 영성의 깊이나 교회 안에 끼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
것인가 하는 것은 현재 재임 중이신 프란치스코 교황님 역시
그분께서 설립하신 예수회 소속 수도자라는 것만으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예수회는 회원 숫자나 전 세계 진출
분포도를 고려했을 때, 작은 형제회, 살레시오회와 함께 선두
그룹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이냐시오의 영성은 보편적인
영성이며 지극히 교회적인 영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냐시오 영성 안에서 두드러지는 화두 하나는 식별입니다. 그는
자신의 내면 안에 떠오르는 수많은 생각들과 마음들, 그리고 자신의
결정과 행동들이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했고
묵상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선의
근원이신 하느님으로 부터 오는 것과 하느님을 거스르는 악의
세력으로 부터 온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런데 악의 깃발, 악의 세력이 지닌 특징은 다분히 매혹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지극히 일시적이고 유한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시작은 감미롭고 거창하지만 언제나 끝이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최종적으로 남는 것은 더 큰 갈증과 유혹, 그리고
씁쓸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하신 하느님 쪽의 깃발의 특징은 언제나 한결같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안전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를 영원한 기쁨
더할 나위 없는 충족감에로 인도한다는 것입니다.
이냐시오는 틈만 나면 주님께 질문을 던졌습니다. 주님 제가 어떻게
할까요? 주님 제가 어디로 향해 걸어갈까요? 주님 당신 뜻은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도 끊임없이 주님께 질문을 드려야겠습니다. 주님 당신
뜻은 무엇입니까? 지금 제가 하려는 이 결정이 올바른 것인가요?
지금 제가 걷고 있는 이 길의 방향이 주님을 향한 길인가요? 사탄을
향한 길인가요?
교회 역사를 돌아보면 이냐시오가 던졌던 진지한 질문이 생략,
혹은 결핍되었기에 숱한 오류들을 범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럴듯할
선택 같았으나 결국 지나서 보니 그릇된 선택이었고, 악의 세력에
의한 패착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역시 그릇된 식별을 통해 하느님을 힘들게 해드릴
가능성이 많습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주님의 뜻이라는 미명하에
그릇된 오류를 진리인양 포장해서 밀어붙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많은 경우 교회의 사람이란 탈을 쓰고 하느님 반대편에 서서
백성들을 궁지로 몰아넣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영원한 식별의 기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읽고 또 읽어야겠습니다. 제2의 성령강림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을 연구하고
되새김질해야겠습니다. 제2의 복음이라고 할 수 있는 각수도회
수녀회의 회헌·회칙을 손에서 놓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이신 교황님과 지역교회 주교님들의 가르침을
귀여겨들어야 하겠습니다.
“나는 30년 동안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기 위해 세운 계획을 실행하는
일에 있어 단 한 번도 미룬 적이 없습니다.”
- 살레시오회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 [청주] 인생의 끝에서면 |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7년 가해 8월1일 화요일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 학자 기념일(마태13,36-43)
인생의 끝에 서면
인생의 끝에서면 하루라도 더 세상에 머물고 싶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명의를 찾고 장수를 위한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기도합니다.
이러한 행동을 욕심이라고 하기에는 모두가 가진 기대요,
바람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1요한2,17). 바오로 사도는 선언합니다.
“자기의 육에 뿌리는 사람은 육에서 멸망을 거두고, 성령에 뿌리는
사람은 성령에게서 영원한 생명을 거둘 것입니다. 낙심하지 말고
계속 좋은 일을 합시다. 포기하지 않으면 제때에 수확을 하게 될
것입니다”(갈라6,8-9).
오늘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가라지의 비유를 설명해 주시는데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사람의 아들이고, 밭은 세상이다. 그리고
좋은 씨는 하늘나라의 자녀들이고 가라지들은 악한 자의
자녀들이며,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악이다. 그리고 수확 때는 세상
종말이고 일꾼들은 천사들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세상의 종말은 개인적으로 볼 때는 죽음의 순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생여정의 수확 때인 죽음의 순간에 남을
죄짓게 하고 불의를 저지르는 가라지의 상태로 있다면 불구덩이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의인의 상태였다면 아버지의 나라에
들어가게 되고 그 삶은 해처럼 빛나게 됩니다. 너무도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쉽게 알아들은 만큼 삶의 모습도 맑고 밝아졌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안타깝게도 마지막 날에 좋은 씨앗인
하늘나라의 자녀가운데에서도 내적으로는 악한자의 자녀로
밝혀질까 두렵습니다.
얼마나 오래 살아 왔는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살았느냐의 문제가
더 소중함을 생각하는 오늘이기를 바랍니다. 내가 가라지가
되어서도 안 되겠지만 가라지를 보고서 흔들려서도 안 됩니다.
세상에 담을 쌓고 세상을 향해 손가락질 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영혼이 피폐해 집니다. 그러니 결코 악에 굴복당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날에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의인들은 이 세상의 삶을
살면서 하느님과 멀리 떨어지는 것보다 죽음을 간절히 청했습니다.
그야말로 “의인은 희생의 제물이고 그의 생애는 끊임없는
제사입니다”(성녀 벨라뎃다). 먼 훗날 하느님의 나라를 갈망하지
않고 지금 여기서 참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알곡을 만드는
것은 오늘 여기서 이미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의인의 삶이 빛나듯
우리의 삶이 해처럼 빛났으면 좋겠습니다. '미루지 않는 사랑을
희망하며' 사랑합니다.
@@@이건숙씨의 “꼴찌의 간증”에 보니 이런 글이 있습니다.
장수비결
“인생은 육십에 시작하는 것이니
칠십에 저승사자가 오면
잠깐 밖에 나갔다고 전해다오.
팔십에 저승사자가 오면
아직 이르다고 말해다오.
구십에 와서 가자고 하면
뭘 그리 서두르냐고 달래다오.
백살에 와서 가자고 하면
이제 서서히 좋은 시기 봐서
가겠다고 전해다오.”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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