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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가해 9월14일 목요일 [(홍) 성 십자가 현양 축일]
[수도회] 십자가를 현양하는 삶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제1독서 민수 21,4ㄴ-9
† 복음 요한 3,13-17
◈ 오늘의 묵상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느님 사랑의 역설적인 표징이지만, 우리에게는
가끔 불평 가득한 삶의 무게로 느껴지기도 하고, 지혜롭지 못해
짊어진 어리석음이거나, 전능하신 하느님께 어울리지 않는 걸림돌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분명히 십자가는 우리 구원의 표징이지만,
현실에서는 짊어지고 싶지 않은 짐인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 민족에게 ‘십자가’에 담긴 종교적 의미를 가장 깊이 느끼게 해
주는 표현은 ‘한 맺힘’과 ‘한풀이’일 것입니다. 누구나 가슴에 맺힌
‘한’이 있어서 억울한 심정을 표현하지 못할 때 ‘한’이 맺힌다고
합니다. 맺힌 한은 어떤 형태로든 풀어야 하는데, 한풀이는 보통
한이 맺힌 이유를 찾아내어 현실 속에서 화해하는 과정을 필요로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불평하면서 종살이의 편안함을
그리워하느라 하느님께서 주신 해방과 구원의 기쁨을 누리지
못했기에 벌을 받지만, 그들이 죄를 뉘우침으로써 치유되는
한풀이를 체험합니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죄 때문에
상처받은 당신의 마음에 대해 인간에게 앙심이나 보복의 한 맺힘이
아니라,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는
역설적인 사랑을 통해 진정한 한풀이가 무엇인지 보여 주십니다.
십자가는 장식품이 아닙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십자가는 나의 삶의
모순과 불평의 한을 예수님께 떠넘겨 드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먼저
용서하고 화해하며, 인내하고 기도하는 수행의 삶을 통해 하느님의
지혜를 깨닫고 참된 한풀이로 초대하는 표징임을 기억합시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 매일 미사 -
◈ [인천] 주님의 뜻을 따라 내어주는 사랑을 실천
2017년 가해 9월14일 목요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
제1독서
<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 그 사람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
○ 민수기의 말씀입니다. 21,4ㄴ-9<또는 필리 2,6-11>
복음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13-17
인색함이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가전제품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유통회사가 있었습니다. 이 회사는 ‘싼 것이 최고’라는
광고 문구와 함께 가장 싼 상품만을 판매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돈을 소비하는데 인색하기에 분명히 싼 것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처음에는 반짝
판매량이 늘었습니다. 하지만 상품의 질이 떨어진다는 소문과 함께
사람들은 더 이상 이 유통회사를 찾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지갑을 여는데 인색하다는 판단 아래 인색함을
강조하는 전략을 내세웠지만, 실제로 사람들은 인색하지 않은
것입니다. 비싸다고 하더라도 정말로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자신의
지갑을 엽니다. 더군다나 가격을 내리기 위해서는 생산원가를 낮출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제품은 좋아질 수가 없겠지요. 그 피해는
누구에게 돌아갈까요? 바로 소비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이 유통회사는 결국 망했다고 합니다.
인색하면 이를 받아들이는 상대방 역시 인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나친 인색함으로 사람들과 나누지 않고, 더 많이 가지려는 욕심이
커질수록 사람들과의 관계는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 먼 관계로 변할
것입니다. 결국 나의 지나친 인색함이 오히려 내게 나쁜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엄청난 기부를 하는 미국의
대기업 회장 중의 한 명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기부는 결코 주머니를 비우는 게 아니다. 항상 더 많은 것이
되돌아온다.”
기부를 많이 해서 사람들 모두가 잘 살게 된다면, 사람들은 지출을
계속하게 될 것이고 그만큼 회사는 번성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어떠하셨을까요? 주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것을 다 내어주셨습니다. 조금의 인색함도 없었습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나약하고 부족한 인간의 육체를 취해서 이 땅에
오셨지요.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아무런 죄도
없으신 분이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십니다. 그만큼 우리 인간을
사랑하셨고, 사랑하시기에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이란 당신이 줄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주는
것이다.’라는 어떤 현자의 말처럼 진정한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우리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인 오늘,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속죄하시려고
지신 십자가를 묵상하고 경배합니다. 이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우리
역시 다짐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뜻을 따라 내어주는 사랑을
실천하겠다는 다짐을 말이지요.
모든 만남은 삶의 성숙과 진화를 가져온다. 다만 그 만남의 의미를
올바로 보지 못하는 자에게는 스치는 인연일 뿐이지만, 그 메시지를
보고 소중히 받아들이는 이에게 만남은 성숙의 과정이다(법상).
구원의 십자가.
마음의 변화
제가 생활하는 사제관 냉장고 안에는 많은 것들이 들어 있습니다.
곧바로 꺼내어 먹을 수 있는 김치를 비롯한 각종 반찬들이 있고, 또
맛있는 과일도 있습니다. 그리고 달달한 아이스크림 역시 냉장고
안에 있어 언제든지 곧바로 먹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냉장고
안에는 이렇게 곧바로 먹을 수 있는 것만 있지 않습니다. 냉동실
안에 꽁꽁 얼려 있는 국이나 밥이 있으며 음식의 맛을 돋우는 파나
마늘, 고추 등 역시 그냥 먹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곧바로 먹을
수 없는 것들을 필요 없다고 버릴까요? 아니지요. 데워서 먹거나
아니면 조리를 해서 먹으면 아주 맛있는 음식이 됩니다.
어쩌면 우리의 마음도 이 냉장고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곧바로 꺼내어 놓을 수 있는 행복이 있는 반면에, 본인의 노력과
정성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행복도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 바로
고통과 시련입니다. 솔직히 고통과 시련은 그냥 그 자체만으로는
나의 것으로 간직하기에 너무나 힘듭니다. 그 무게가 너무 크고,
어려움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그냥 고통과 시련을
무시하고 없는 것으로 생각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마치 음식을
요리하듯이 정상과 노력을 통해서 소중한 나의 행복한 삶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순간적인 만족과 편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순간도 피하지 않겠다는 굳은 마음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제 수업을 받는 신학생. 어제는 외부강사를 불러서 스피치특강을
했습니다.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 [수도회] 십자가를 현양하는 삶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017년 가해 9월14일 목요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 요한 3,13-17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요한 3,14)
십자가를 현양하는 삶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으로 가기 위해
광야를 걷고 있었습니다. 광야에는 먹을 것이 턱없이 부족했고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생활이 너무
힘들어 불만에 가득 차 하느님과 모세에게 대들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불 뱀들을 보내시어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물어
죽게 하십니다. 일종의 불신의 벌이 내린 것이지요. 그제야 정신이
든 그들은 모세에게 살려 달라고 간청합니다. 모세가 그들을 위해
하느님께 간청합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구리 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고 뱀에 물린 자는 그것을 보면 살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민수 21,8). 과연 구리 뱀을 쳐다보는 사람들은 죽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3,14-15)
예수님 친히 구리 뱀처럼 십자가에 달리게 될 것이라 하십니다.
그렇게 그분께서는 오직 사랑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실 것이고,
죽음을 넘어 부활하셨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길입니다.
어떻게 십자가를 현양할 수 있을까요? 십자가를 현양하려면
십자가의 의미를 분명히 깨닫고 그것을 받아들여야만 하겠지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오직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
때문이며,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3,16).
따라서 십자가는 하느님 사랑의 구체적인 표지 외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외아들을 주심으로써 드러났으며, 이
세상 그 무엇에도 비길 수 없는 가장 값진 선물입니다. 그러나 그
선물은 화려하게 꾸며진 것도 고통 없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지요.
십자가를 현양하려면 십자가의 무게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고통의 무게, 생명을 위한 죽음까지도 받아들일 때, 십자가를 통해
주님께 오를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무한한 사랑만이 끝없는
고통과 죽음을 감당할 수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사실 십자가 그
자체는 고통, 불의, 실패, 절망, 수치, 치욕, 파멸, 죽음 등 부정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극진한 사랑과 섬김, 희생과
겸손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십자가의
역설을 보여주셨지요.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십자가를 받아들이심으로써 절망을 넘어
희망을, 죽음을 넘어 영원한 생명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 또한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생명이요 사랑이신 하느님의 그 사랑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십자가를 현양하도록 해야겠습니다. 십자가를
현양하려면 저 낮은 곳으로 내려가고, 사랑으로 죽음을 삼켜야만 할
것입니다.
“십자가가 없었더라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으셨을
것이며, 생명께서 나무에 못박히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크레타의 주교 성 안드레아) 십자가는 인간을 위한 예수님의 속죄
제사, 죽음에 대한 승리입니다. 그것은 그분께서 갈망하셨던 생명의
잔이고 영광이며, 우리가 겪는 모든 고통의 마침표인 셈입니다.
따라서 십자가는 “하느님의 능력이요 지혜”(1코린 1,24)로서
하느님께 이르는 등불임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오늘도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만을 생각하며’(1코린 2,3),
사랑으로 십자가를 받아들여, 자신을 죽기까지 낮추고, 서로의
고통에 눈길을 돌리고 함께하며, 자신을 온전히 내어줌으로써
매순간 주님의 십자가를 현양하는 거룩한 날이었으면 합니다.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은 곧 우리의 연약함이며 매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는 일일 뿐임을 기억하며...
- 기경호 프란치스코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신부 -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
◈ [수도회] 십자가는 나의 교과서입니다!
2017년 가해 9월14일 목요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요한 3,13-17)
십자가는 나의 교과서입니다!
이제는 많이 연로해지신 선교사 신부님, 스페인 출신이라서 그런지
정통 가톨릭 신앙에 대한 신념이 얼마나 강렬하던지 마치 투사
돈키호테 같으셨습니다. 혈기왕성하던 시절, 혹시라도 누군가가
지하철역 에스켈레이터 끝에서, ‘예수천국불신지옥’이라는 피켓을
들고 있는 것을 발견하면, 벼락같이 화를 내시면서
뛰어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는 사정없이 피켓을 뺏들고는, 사람들에게 큰 목소리로
외치셨습니다. “여러분들, 두려워하지 마시고, 우리 천주교회로
나오십시오! 우리 하느님은 자비하십니다!” 신부님은 당시
피켓맨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ㅋㅋ
젊은 형제들의 정기적인 고백성사를 위해 승용차로 모시고 갈때면,
창밖을 바라보며 늘 같은 말씀을 반복하셨습니다. “보십시오! 여기도
십자가, 저기도 십자가, 십자가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 많은 교회 십자가 아래 예수 그리스도는 찾아볼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십자가 없는 교회에서 십자가 없는 영광, 십자가 없는 구원을
꿈꾸지만, 사실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고서는 천국이 없습니다.
십자가를 건너가지 않고는 영원한 안식도 없습니다. 십자가를
부정할 때 하느님 나라도 없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나 사회의 큰 문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십자가나
고통, 희생이나 헌신이 없는 달콤한 인생, 편안한 신앙만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매일 매일 한 걸음 한 걸음씩의 성장과
인내와, 일상적이고 지속적인 노력, 결국 십자가와 고통은
외면합니다.
돈보스코가 시작한 오라토리오 초창기 시절의 일입니다. 돈보스코와
동고동락하기 위해 찾아드는 아이들의 수효는 점점 늘어나고,
숙소며, 먹거리며, 입을거리 마련이며, 할일은 태산같았습니다.
할수없이 그는 연로한 어머니 맘마 마르가리타에게 도움의 손길를
건넵니다.
어머니 입장에서는 참으로 당혹스러웠습니다. 평생에 걸친 고생을
끝내고 이제는 손자손녀들 품에 안고 편한 여생을 계획했었는데,
갑작스런 아들 신부의 초대에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초대로 여기고 하루 온종일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일했습니다. 삼시새끼 식사며, 청소, 이불빨래, 옷빨래로 하루 해가
짧았습니다.
하루는 너무나 지친 맘마 마르가리타가 아들 돈보스코를 떠나기
위해 사무실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견딜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돈보스코는 아무 말없이 손을 들어 벽에
붙어있던 십가가를 가리켰습니다. 십자가를 한참동안 바라보던
어머니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사무실을 나갔습니다. 그리고는
돌아가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아들이 펼치는 위대한 사목의 가장 큰
협조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 죄인들에게 가장 기쁜 소식이며
구원의 열쇠라는 진리를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십자가에 감사하고, 기꺼이 지고가려는 사람은 드믑니다. 때로
피하고 싶어도, 때로 지긋지긋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또 다시
십자가를 선택하고, 십자가 안에 담긴 구원의 신비를 묵상해야만
합니다. 다시 한번 십자가를 우리 삶의 이정표요 지침으로 설정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 사람만의 십자가를 주십니다. 나는
내가 지고가는 이 십자가가 너무 작은 것 같아 늘 부끄럽습니다.”
(복자 샤를르 드 푸코)
“십자가는 나의 교과서입니다. 나는 거기에서 겸손과 양순함을
배웁니다. 또한 언제라도 십자가를 쳐다보면 즉시 내가 취할 길을
발견하고 가야 할 길에 용기를 줍니다.”(성 콘라도)
“십자가는 하느님이 당신의 사랑스런 자녀들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십자가는 하늘로 올라가는 사다리이며, 십자가는 천국 문을 여는
열쇠이기도 합니다.”(성 요한 비안네)
- 살레시오회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 [수도회]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7년 가해 9월14일 목요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예수님또한 들어 높여진 십자가로 당신을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고서는 결코 십자가를 알 수 없습니다.
사람을 단련시키는 것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를 통한 창조입니다.
십자가를 떠날 수 없듯이 하느님을 떠날 수 없습니다.
십자가를 봉헌합니다.
십자가를 통해 본래의 우리 모습을 회복하게 됩니다.
십자가가 우리의 노래가 되고 우리의 사랑이 되길 기도드립니다.
하느님께서는 십자가로 우리를 새로이 창조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들어 올려진
예수님같이 우리도 들어 올려지는 것입니다.
하느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은 들어 올려지는
십자가의 길 하나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흙으로 돌아갈 우리를 아름답게 하는 십자가에 감사드립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서울] 성 십자가 현양 축일
2017년 가해 9월14일 목요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 요한 3,13-17
교육방송에서 방영했던 ‘통찰’이라는 프로를 보고 있습니다.
인문학적인 소양을 넓힐 수 있는 프로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에 많은 보물을 남겨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가
사랑의 눈으로, 믿음의 눈으로, 희망의 눈으로 세상으로 보면
하느님께서 심어주신 보물들을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하듯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시간을 조금만 내서 찾아보면 세상 살아가는 맛과
멋을 느낄 수 있는 좋은 프로들도 많습니다. 시간이 되시는 분들은
‘통찰’이라는 프로그램을 보셨으면 합니다.
고대 이집트의 무덤에 이런 내용의 그림이 있었다고 합니다. ‘사람이
죽어서 저승에 가면 저승의 문지기가 질문을 한다고 합니다. 당신은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었습니까? 당신은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최선을
다했습니까?’ 얼마나 많은 업적을 쌓았는지, 재산은 얼마나 많이
벌었는지, 성공했는지를 묻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잘못과 과오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몰랐을 때, 알았지만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때라고 합니다.
4000년 전의 ‘통찰’이지만 현대인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주는 것
같습니다. 고대인들은 현대인들과는 다르다는 생각, 고대인들은
현대인들보다 부족하다는 생각은 어쩌면 현대인들의 오만과
착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고대인들은 문명과 역사의 씨를
뿌렸고, 우리는 그 열매를 거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서도 질문을 하십니다. ‘아담아 너 어디에 있느냐? 카인아
네 동생 아벨은 어디에 있느냐? 아담이 해야 할 일을 잘 몰랐고,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카인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고, 동생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도 떠날 것입니까? 나는 여러분을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습니다.’ 신앙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요청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습니까? 해야 할 그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해야 할 일을 잘 아셨고,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치욕과 모욕의 상징이었던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지고
가심으로써 속죄와 구원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해야
할 일을 외부에서 찾은 적이 많습니다. ‘성공, 명예, 업적, 능력’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얻기 위해서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나 정말 해야 할 일은 나의 깊은 내면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눔, 헌신, 십자가, 사랑’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면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이 세상에서 이미 시작하는
것입니다.
해야 할 일을 알았고, 최선을 다했던 윤동주 시인의 ‘십자가’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은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 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 [수원] 희생이 일치를 이룬다 /
전삼용 요셉 신부|오늘의 강론 묵상
2017년 가해 9월14일 목요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
제1독서 : 민수기 21,4ㄴ-9<또는 필리 2,6-11>
복 음 : 요한 3,13-17
저희 집은 오산 비행장 바로 옆이었기 때문에 항상 비행기의 굉음을
들으며 자라야했습니다. 다른 부모님들은 자녀들을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고 말하곤 하지만 저희 어머니는 저를 비행장 철책에
걸려있는 것을 가져왔다고 하셨습니다.
어렸을 때 물론 이런 말이 농담인 것을 알면서도 가끔 심하게 야단을
맞으면, ‘정말로 나는 주워온 아이인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아버지 또한 제 이름을 ‘삼용’이라고 붙여주신 것을 비롯하여 많은
아버지들이 그렇듯이 표현을 잘 안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정말로
우리를 사랑하시기는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가끔씩 들 때도
있었습니다.
이럴 때마다 저는 아버지, 어머니께서 저희를 위해 고생하신 것을
기억해 냈습니다.
어머니가 하루 종일 남의 밭에 나가 품을 팔 때, 우유와 빵을
간식으로 받으면 그것을 드시지 않으시고 잘 두셨다가 일 끝나고
돌아오셔서는 가게 하나 없어 군것질을 하지 못하던 우리들에게
주셨습니다. 저는 그 때 먹었던 우유와 단팥빵 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또 어머니는 생선 머리만 맛있다고 드셨습니다. 물론 생선의 머리가
가장 맛있기는 하지만 풍족하지 못한 양 때문에 몸통은 우리를
주시고 머리만 드신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떤 때는 삼겹살을 구워주셨는데 어머니는 배가 부르다며 우리가
드셔보라고 드리기 전까지는 입에도 대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때는
어머니의 그 맘도 모르고 우리가 다 먹어 버린 적도 있었습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골에 살 땐 저희 집이 비만 오면 잠기는
그런 동네에 있었는데 일에서 돌아오시던 아버지는 가족을 생각하며
사람들이 말리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생명을 무릅쓰고 불어난
냇가를 헤엄쳐 집에 돌아오셨습니다.
아버지는 지금도 다리를 저시는데 그 이유는 우리를 위해 겨울에도
일을 하시다가 사다리에서 떨어지셔서 허리를 다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몸으로도 우리를 위해 계속 일을 하셨습니다.
아무리 부모님께서 우리에게 싫은 소리를 하신다고 하더라도 이런
기억이 있기 때문에 부모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의심할
수 없습니다. 사랑의 희생이 바로 인간 사이에서도 갈라지지 않게
만드는 접착제 같은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누구도 태어날 때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부모님이 우리를 위해 해 주신 사랑의 희생들을 바라보며 부모님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희생은 사람을 갈라지지 않게
연결시켜주는 접착제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오늘 저를 찾아오신 한 형제님께서 미사시간에 특별한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외우는 ‘하느님의 어린양’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청하셨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세례를 받기 위해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저기
하느님의 어린양이 오신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때 구약을
이해한다면 즉각적으로 ‘아! 우리 죄를 위해 피를 흘리고 돌아가셔야
할 희생제물이 오시는구나!’라고 이해해야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어린양은 구체적으로 탈출기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그것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발랐기 때문에 죽음을 면할
수 있게 했던 희생양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전에서는
아침저녁으로 어린 양이 희생 제물로 바쳐졌습니다.
요한 계시록에서 하늘나라에 있는 사람들은 바로 하느님의 어린양의
피로 자신의 옷을 깨끗이 빨이 빛나는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베드로 1서 1장 19절엔 이스라엘 백성이 죄로부터
해방 된 것은 “어린양의 피” 덕분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미사 때,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저희를 위하여 빌으소서.”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어린양의 가장 명확한 의미는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흠도
티도 없는 “속죄 제물”을 의미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어린양은 세상
창조 이전에 이미 인류의 죄를 위하여 희생되기로 준비되어
계셨지만(1베드 1,20), 그 완성은 당신이 깨끗하게 만드신 인류와
혼인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아담이 옆구리에서 피를 흘려 하와가 탄생하였고 둘이 한 몸이
되었듯이, 그리스도의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나와 교회가
탄생하였고 그 교회와 한 몸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성경의 시작이
이 아담과 하와로 시작되지만 성경의 끝은 두 번째 아담과 하와인,
죽임을 당하신 하느님의 어린양과 교회, 즉 천상 예루살렘과의
혼인잔치로 끝맺게 됩니다. 이것이 세상 창조 때부터 계획된 커다란
창조와 구원의 계획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리셔야
함을 예고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이 영원한 생명이란 바로 우리가 나온 원천인 그리스도와 혼인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하느님만이 영원하시기에 사람이 되신
하느님과 한 몸이 되지 않고서는 누구도 영원한 생명에 참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과연 피를 흘리는 희생적 사랑은 갈라졌던 관계를 하나로 이어주는
힘이 있습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를 당신과 하나로
연결시켜 주시되 하느님만이 지닌 영원한 생명까지도 누리게 해
줍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부모님이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것을 믿어야
하듯이, 십자가도 나를 위한 그리스도의 희생임을 믿어야합니다.
많은 교회 간판에, “하느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고
씌어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글로 표현하지 않고 십자가로
보여줍니다. 우리를 위해 고생을 하신 부모님을 존경하고 사랑해야
한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고 우리는 무엇을 느껴야겠습니까?
- 수원 교구 영성관장 전삼용 요셉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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