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밑인 지난 9월 말-
곧장 남도(南道)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여러가지 사정으로 이번 추석 명절의 집안 행사를
스킵(Skip) 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어서,
이 기간을 이용하여 4박5일 일정의 가을 여행을 떠난거죠.
서울-대전(금산/인삼 약령시)-남해도/남해대교- ,
-하동--(청학동/삼성궁)-화개장터-최참판댁-,
쌍계사-구례-지리산 온천-전주 한옥마을/경기전-,
그리고 귀경...
약900Km가 넘는 4박5일의 旅程이였습니다.
여행기간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맑고 선선한 날씨- 명절밑이라 한산한 도로와 관광지-
그래서,
들르는 곳마다
손님대접 제대로 받으면서 보고,먹고 자고...ㅎㅎ
남이 생각하지 않고 있는 시간을 이용하여 감행했던, 이번 旅程은
정말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몸은 좀 피곤했지만,
추억을 만들고, 체험으로 얻은 소득은
무엇에도 비할 수는 없을 겝니다.
일정이 다소 길었던 만큼,
이번 여행 이야기는 2~3번에 나누어서
울님들에게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서울-금산-남해/노량까지의
이야기를 실어봅니다.
혹, 이 지방을 여행하실 기회가 있으시면,
여행 길잡이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Zillion 올림 -
경남하동군 노량(露梁)리(사진 우측)와 남해도를 이어주는 연륙교(連陸橋), 남해대교-
명절 밑이라 그런지 섬의 해안도로는 인적이 끊기고 한산하기만 하다.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결전장
노.량.해.전(露梁海戰)
지금은,
너무나 조용하고 평화로운 노량 해협 -
조류(潮流)는 조금 거칠지만,
그 맑고, 푸른 바다 위에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남해대교가
쉴새없이 오가는 자동차며,
행인들을 묵묵히 나르며
조용히 가로놓여있다.
400여년 전,
치열했던 전투와,
피로 물들었던 그 바다의
피비릿내와,
그리고
우리의 영웅, 충무공의
애절한 전쟁 이야기를 간직한채...
노량해전(露梁海戰)은
1598년 11월 19일 노량 앞바다에서
조선수군과 일본수군이 벌인
가장 치열했던 전쟁이었으며,
이 충무공이 올린 최후의 승전보이자
조선을 7년 동안이나 괴롭힌
임진왜란이 끝나는 마지막 해전(海戰)이도 하다.
1957년 조선을 침략하여 정유재란을 일으킨 후,
조선에 주둔해 있던 왜군은
그해 9월 명량해전에서 크게 패배하고,
지상에서도 조(朝).명(明) 연합군에게 고전하게 되자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는
명의 수장 "진린(陳璘)"에게 뇌물을 주고
무사히 후퇴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를 간청을 했다.
진린은 이를 받아들여
통신선 1척이 빠져나가도록 방조하고
이 사실을 이순신에게 통보했다.
이에 이순신은 적을 너무 쉽게 놓아주었음을 보고
크게 노하여 진린을 꾸짖었다.
그러나 "고니시"는 이 통신선을 이용하여
사천(泗川)등지에 있던 500여척의 수군을 모아
11월 18일 공격태세를 갖추어 퇴로를 확보하고
이 충무공을 포위하려 하자,
이 충무공은 명나라 진린과 연합하여
공격을 개시 함으로써, 전투가 시작되었으며,
총통과 화살, 조총이 난무하면서
순식간에 노량 앞바다는 불바다가 되었다.
왜군의 맹렬한 기세에
명(明)의 수장 "진린"이 탄배가 포위를 당해,
진린의 아들 "구경"이 왜군의 공격을 막다가 부상으로 쓰러지자,
곧 이순신 장군의 지원병이 일본군을 격퇴하여
진린을 구해내게 된다.
그런 혼전 속에서 명나라 장수 등자룡이 탄 배는
왜군에게 점령되어 불에 타고 그는 전사하고 말았다.
반대로 이순신 장군이 적에게 포위되었으나,
진린은 다시 총통을 쏘아 이순신 장군을 구해 내게된다.
400여척의 배를 잃고 전세가 불리해진 고니시(小西)는
남해 관음포 방면으로 후퇴(도주)를 시도 하게되는데,
충무공은 끝가지 이들을 추격하였다.
그러나 결국 이 추격전에서
충무공은 적의 유탄에 맞아 전사하게 된다.
충무공은 전사하는 순간까지
"전투가 급하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라는
최후의 말을 완(충무공의 조카)과 송희립 등에게 남기고
끝내 숨을 거두게 된다.
완은 이순신 장군 대신 북을 울리면서
전투를 독려하였고,
결국 왜군을 격파하고 대승을 거두게 된다.
바로 이 해전이 노량해전이고,
조선과 일본 간의 전쟁을 끝맺음한 마지막 해전이었다.
후에 명(明)의 수장 "진린"은
"나는 노야(이순신 장군)께서 생시에 오셔서
나를 구원한 줄 알았는데 어찌하여 돌아가셨습니까!"라며
통곡하였으며,
군사들도 왜선을 추격할 생각을 잃고 함께 통곡하였다고 한다.
<노량해전 再現모습>
▼ 가는길에 들른 錦山 藥令市場
▲ 錦山 人蔘藥令市場 - 탐스럽게 살오른 4-6년근 인삼이 가게마다 그득하다.
▲ 錦山 人蔘藥令市에는 인삼만 있는게 아니다. 가을철, 잔뜩 毒이 오른 말벌집과 말벌들이
망사자루에 잔뜩 붙어있다. 만약 자루에 구멍이라도 나는 날에는??? 생각만 해도 무섭고 끔찍하다.
▲ 다양한 품질과 예년에 비해 훨씬 착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주부의 선택은 쉽지 않은 듯...
▲ 올 인삼농사는 대 豊年, 쓸만한 4-6년근 한채(750g)에 2만여원 안팎이다.
▲ 83호 姜oo 아줌마 - 예쁘고, 친절하고 상냥하다. 인삼값을 받아들고, 상냥한 웃음과 Bye~까지...
올 인삼 시세는 평년의 반값 수준밖에 안된다고 귀띰해 주었다.
▼ 남해도(南海島)에서...
▲ 노량에서 남해도로 들어가는 길목, 남해대교 - 다리 가득히 태극기가 눈부시게 나부끼고 있다.
치열한 노량해전이 있었던 역사의 현장에서 다시한번 나라의 의미를 되새겨 주려는 듯...
▲ 남해대교를 건너면 바로 좌측 해변에 먹거리, 잠자리와 쇼핑을 할 수있는 건물들이 모여있고,
해변산책을 할 수있는 해안도로, 그리고 지척에는 이충무공 사당인 "충열사"가 위치해 있다.
모텔, 민박집이 여러곳에 있어서 특별한 기간이 아니면, 숙박에는 큰 문제가 없을 듯...
▲ 모듬회에는 상치/마늘.고추는 물론, 호박죽, 자연산소라회, 돌멍게, 문어, 밤게, 바닷장어, 무화과,
해물전, 대추정과, 춘권, 땅콩, 부루커리,삶은완두, 피망, 삶은밤, 심지어 찐고구마와 누룽지 튀김까지...
더 못줘서 안달이 난 사람처럼, 곁요리들이 한상 그득히 따라나온다. 가격은 서울보다 높은편.
▲ 해안도로를 조금 걸어올라 가면 멀리 사천시 서포를 조망 할 수 있다. 좁다란 노량 해협이
확 트이면서 드넓은 진주만- 500여척이 몰려왔다던 당시 왜군의 전함들이 저 바다를 메웠었으리라.
▲ 남해도 구두산 허리에서 조망한 사천과 진주만 -한폭 그림같은 한려수도가 점점이 펼쳐저있다.
▲ 남해읍 전통시장 - 해산물보다는 의외로 각종 가을 과일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 남해읍 시장 - 굵은 왕밤을 흥정하고 있는 밤아줌마 -흥정이 여의치 않은 듯, 표정이 밝지않네요.
▲ 남해대교 부근에 있는 이충무공 사당 "충열사" 안내판.
▲ 충열사 사당이 있는 동산 - 좌측 나무 숲속에 사당과 충무공 가묘가 있다.
▲ 충열사 사당으로 올라가는 입구
▲ 충열사 사당으로 들어가는 대문 - 문을 들어서면 바로 사당이 보인다.
▲ 이충무공 영정이 모셔져있는 사당-충열사(忠烈祠)
▲ 사당에 모셔져있는 이충무공 영정
▲ 사당 옆에 세워져 있는 이충무공 묘비(墓碑)
▲ 충열사 사당 뒤에 모셔져 있는 이충무공 가묘(假墓) - 현재 충무공의 진묘는
그의 출생지인 충남 아산에 모셔져 있다.
▲ 충열사 사당 나무사이로 바라본 남해대교와 거북선.- 역사란 무엇인지...?
▲ 충열사 입구에서 조망한 남해대교와 노량 해협에 떠있는 거북선.
▲ 이곳을 기점으로 아름다운 한려수도 국립공원을 다양하게 관광 할 수있다.
(좌상부 붉은 표시가 남해대교 남단 충열사가 있는 곳이다)
Prepared by Zill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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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가을 여행 정말 멋지내요. 저도 지난 여름에 다녀와도 다시보니 새롭네요.ㅎㅎ
아름다운 한려수도 국립공원을 다양하게 관광 하셧습니다 좋은 추억만들어 보기가 좋습니다.
좋은 여행이 추억 되시갰읍니다 즐감하고쉬여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