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가해 11월7일 화요일 [(녹) 연중 제31주간 화요일]
[수도회] 자기 일을 핑계로 행복을 거부하는 어리석음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제1독서 로마 12,5-16ㄴ
† 복음 루카 14,15-24
◈ 오늘의 묵상
예수님 당대 유다인들의 관습에 따르면, 큰 잔치를 치를 때는 미리
초대합니다. 이때 사람들은 참석 여부를 밝히지요. 그러다 잔칫날이
가까워지면 손님들을 다시 초청합니다. 예를 갖추는 것이지요. 따라서
처음에 참석하겠다고 약속한 사람이 막상 잔치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알리면 주인에게는 큰 모욕이었습니다.
오늘 잔치에 초대받고도 막상 잔치에 오지 않은 이들은 유다인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하느님 백성으로 이미 간택되었으면서도, 정작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배척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초대를 거절한
것이지요.
오늘날, 우리도 세례를 받음으로써 하느님 잔치에 이미 초대받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 잔치에 참석하여 기쁨을 나누느냐 여부는 전적으로
우리의 행동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역시 이런저런 핑계를 대서는 안
됩니다.
복음을 보면, 초대받은 사람들이 잔치에 참석하지 못하겠다고 둘러댄
핑계는 다양합니다. 밭을 샀기에, 소를 샀기에, 방금 장가를 들었기에
갈 수가 없다는 핑계입니다. 밭은 소유물을 뜻합니다. 소는 생활을
꾸려 나가기 위한 기술이나 직장을 뜻하지요. 장가를 든다는 것은 가정
중심의 생활을 뜻합니다. 물론 이 세 가지 모두,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이 세 가지가 중요하더라도 하느님을 따르는 것보다 결코
앞설 수 없다는 것이 오늘 복음의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잔치에
참여하여 기쁨을 나누는 것을 우리 삶에서 가장 우선시해야
하겠습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 매일 미사 -
◈ [인천] 주님의 잔치에 기쁜 마음으로 응할 수 있는 우리
2017년 가해 11월7일 연중 제31주간 화요일
제1독서
<우리는 서로서로 지체가 됩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12,5-16ㄴ
복음
"큰길과 울타리 쪽으로 나가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여, 내 집이 가득
차게 하여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15-24
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기억 때문에 성인이 되어서도 힘든 삶을
살고 있다는 어떤 형제님의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너무나 컸습니다. 저는 이 형제님께 “어린 시절의
그 치명적인 상처가 없다면 지금 튼튼한 자아를 가지고 있겠습니까?”
라는 질문을 던졌지요. 그러자 어렸을 때의 버려진 상처가 없었다면
분명히 지금보다는 나을 것이`라면서 눈물을 흘리시더군요.
상처 하나 없이 성장한 사람이 세상에 과연 있을까요?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크고 작은 상처를 받으면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순탄한
성장과정을 겪었다고 해도 무의식적으로 부모나 형제들에게 받은
상처가 분명히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상처 자체가
지금의 삶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끔찍한 유년
생활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더 크게 성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미국의 토크쇼 여왕 오프라 윈프리이지요. 그녀는
어린 시절에 가난, 인종차별, 성폭행 등을 통해 큰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타임지 선정 3년 연속 21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뽑힐
정도로 어린 시절의 아픔에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했던 말
몇 가지만 옮겨 봅니다.
“삶을 이끄는 것은 당신 자신이다.”, “나는 실패를 믿지 않는다. 과정을
즐겼다면 그것은 실패가 아니다.”, “설사 과거가 불행했더라도 그것에
사로잡히지 말고 최선의 인생을 살아가세요.”
자신이 지금 행복해질 수 없는 이유를 찾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행복할 수 없는 이유, 즉 핑계를 댈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찾고 이를 실행하는 것이 행복해지는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잔치의 비유 말씀을
전해주십니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초대했지만,
하나같이 양해를 구하면서 참석하지 못한다고 하지요. 각종 이유를
대면서 말입니다. 결국 이 잔치에 초대되어 즐겼던 사람은 처음에
불리움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 등이었습니다.
바로 주인의 특별한 사랑이 보이는 부분입니다. 초대를 받았음에도
잔치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 주인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바로 자기
자신으로, 이 잔치에 갈 수 없는 이유와 핑계를 대고 있기 때문이었지요.
우리 역시 주님의 잔치에 초대받았습니다. 사랑의 잔치에 들어가야지만
행복해질 수 있는 삶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세상 것들에 대한
욕심과 이기심을 담긴 이유와 핑계를 대면서 갈 수 없다며 초대에
응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행복하지 못한 것을 다른 것에서 두고
있습니다. 가족 때문에, 이웃 때문에, 심지어 주님 때문에...
주님의 잔치에 기쁜 마음으로 응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잔치에 응하는 방법은 바로 주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사랑의 실천이었습니다.
때로는 사랑하다가 균형을 잃지만 그래야 더 큰 균형을 찾아가는 거야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중에서)
동창신부 아버님의 장례미사 후 동창신부들과 점심식사.
내가 먼저 변화하면...
어떤 문제의 해결을 볼 수 있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쉬운 길, 또 하나는 어려운 길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길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당연히 쉬운 길을 선택하겠지요. 그런데 우리들은
알면서도 어려운 길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갈등 관계에 처했을 경우, 대부분 상대가 변화해야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그리고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상대방을
변화시키려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되지요. 그런데 그 노력의
결실을 맺게 됩니까? 실제로 여러분들 스스로가 한두 번은 그런 경험을
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나의 노력으로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운 일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이 갈등 관계를 풀 수 있는 쉬운 길은 내가 변화하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변화하면 의외로 쉽게 갈등도 해결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상대도 바뀌는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정말로 그렇지요. 남을
변화시키기는 정말로 어렵지만, 내 몸이니 나를 변화시키는 것은 남을
변화시키는 것보다는 훨씬 쉬운 일입니다. 문제는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내가 손해보고 있다는 생각 등으로 인해서 우리는 쉬운
길이 아닌 어려운 길을 선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찾아오고 있는 많은 갈등들... 과연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쉬운 방법으로? 아니면 어려운 방법으로? 그 선택은
여러분 각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어제 장례미사가 있었던 서울 논현2동성당.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 [수도회] 자기 일을 핑계로 행복을 거부하는 어리석음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017년 가해 11월7일 연중 제31주간 화요일 루카 14,15-24
“어떻게 해서라도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여, 내 집이 가득 차게 하여라.”
(루카 14,23)
자기 일을 핑계로 행복을 거부하는 어리석음
유대인들은 주님께 선택받은 백성이기에 메시아가 오실 때에
하느님께서 자신들을 위해 큰 잔치를 베풀어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만이 그 잔치에 초대받았다고 믿었고, 죄인들과 사회적
약자들은 잔치에 함께 할 수 없으며 구원받을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안일함과 자만에 젖어 있었습니다.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은 이미 참석하겠다고 약속을 해놓고 ‘자기 일을
핑계로’ 약속을 어겨버립니다. 첫째 사람은 밭을 샀으니 그것을 보아야
한다고 핑계를 댑니다(14,18). 그러나 대리인을 통해 밭을 샀다면
사전에 살필 법적 의무가 있고, 거래 후에 살피기로 했다 하더라도
잔치에 못간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알리는 것은 초대한 사람을 모욕하는
처사였지요.
다른 사람은 겨릿소 다섯 쌍을 샀는데 그것을 부려 보려고 가는 길이니
양해해 달라고 합니다(14,19). 그러나 겨릿소를 다섯 쌍만 소유했다
쳐도 토지를 많이 소유했을 터이므로, 분명 부자였을 것이고 일할
사람들을 거느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 또한 말도 되지 않은
핑계입니다.
또 다른 사람은 방금 장가를 들었으니 갈 수 없다고 합니다(14,20).
결혼한 첫해에 전쟁에 나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유가 됩니다
(신명 20,7). 그러나 자신의 혼인과 이미 오래 전에 초대받은 잔치에
참여하는 두 가지 일이 겹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쯤은 알았을 터이니
그 또한 핑계거리가 되지 않는 셈이지요.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처음에 초대를 받았던 그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아무도 내 잔치 음식을 맛보지 못할 것이다.”
(루카 14,24). 유대인들은 하느님의 뜻을 적극적으로 따르지
않으면서도 당연히 구원받으리라 여기며, 자기 일에만 몰두했기
때문이지요. 결국 그들 대신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과, 눈먼 이들과
다리저는 이들과 다른 이들이 초대받습니다(14,21-23).
매순간 우리는 하느님의 잔치에 초대받은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는 어디에서나 하늘나라의 잔치를 벌이시고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 초대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주님의 복된 자녀임을 잊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취해 주님께서 주시는 고귀한 선물들을 놓쳐버리지 않아야겠습니다.
세례의 축성은 엄청난 축복이지만, 그것을 살아내는 것은 더 큰 은총인
까닭입니다.
우리 모두 당연히 구원의 선물이 주어지리라는 안일함과 자만의 잠에서
깨어나야겠습니다. 희생과 투신, 헌신과 능동적 사랑 없이 구원의
음식을 맛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자기 일을 핑계로 하느님의 자비와
정의를 실행하는 일을 뒷전으로 미루거나 허투루 여기지
말아야겠습니다.
나아가 우리 사회와 교회, 내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와 직장, 가정과
만남의 자리가 하느님의 뜻이 드러나는 잔치가 되도록 힘써야겠습니다.
온 마음으로 하느님을 믿고, 보이지 않게 선을 행하며, 늘 자신을
돌보기보다 ‘더’ 가난하고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 곁에 머물도록
해야겠지요. 그렇게 모두가 행복해지는 곳이 바로 하늘나라입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신부 -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
◈ [수도회] ”내 집이 가득차게 하여라.”(루카 14, 23)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7년 가해 11월7일 연중 제31주간 화요일
”내 집이 가득차게 하여라.”(루카 14, 23)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묻게됩니다.
끝내 돌아가야 할 우리의 집은 분명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은 우리 삶의 출발지이며 목적지이고 본적이며
본향이 되십니다.
우리의 삶안에 가장 가까워야 할 관계가 실은 가장 멀리 있습니다.
마음을 나누지 않기 때문입니다.
순간순간이 우리를 향한 가득한 하느님의 사랑이었습니다.
당신의 집을 우리들에게 친히 내어주시려는
하느님의 사랑을 오늘 복음에서 만나게됩니다.
아직까지 본 적이 없는 넉넉한 사랑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기다려주시고 초대하여 주십니다.
끝내 하느님 집으로 돌아가야 할 우리의 삶입니다.
우리의 그 시간이 잔치의 초대이며 잔치의 기쁨이길 기도드립니다.
우리를 가득차게 하시는 하느님 자비를 만나십시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서울] 연중 제31주간 화요일
2017년 가해 11월7일 연중 제31주간 화요일
"큰길과 울타리 쪽으로 나가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여, 내 집이 가득
차게 하여라."
† 루카 14,15-24
한강 다리를 걸어서 건너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처음 한강 다리를
건넌 것은 초등학생 때입니다. 어린이날이었습니다. 남산에 가면
기념품을 준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한강 다리를 건넜습니다. 본당에
있을 때 도보 성지순례를 갔었습니다. 신자분들과 함께 절두산
성지까지 걸으면서 한강 다리를 건넜습니다. 지난 토요일입니다.
서초동 본당에서 혼배미사를 했습니다. 날씨도 좋고, 마음의 여유도
있어서 한강 다리를 걸었습니다. 차로 다닐 때는 몰랐던 것들을 느끼고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예전보다 훨씬 빠르게 다니고, 많은 것들이
풍요로워졌지만 따뜻한 감성과 여유는 예전만 못한 것 같습니다.
어릴 때, 방학 숙제로 ‘일기 쓰기’가 있었습니다. 일기는 매일 쓰는
것인데, 나중에 몰아서 썼던 기억도 있습니다. 주부들은 매년
‘가계부’를 쓰려고 합니다. 물론 처음 며칠은 잘 쓰지만 대부분은
귀찮기도 하고, 늘 같은 내용이라서 쓰지 않곤 합니다. 일기와 가계부는
잘 쓰면 생활을 짜임새 있게 할 수 있고, 몇 년이 지나면 훌륭한 개인의
역사가 됩니다. 저도 가계부를 쓰고 있습니다. 가계부를 쓰는 것도
귀찮은 면이 있지만 한 달이 지나면 제가 주로 지출하는 용도를 알 수
있게 됩니다. 기록은 중요한 것이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기록을 하지는
않습니다.
‘스티븐 코비’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이라는 책에서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고 했습니다. 중요한 것과 소중한 것은 차이가
있다고 말을 합니다. 인생을 행복하고 기쁘게 살기 위해서는 소중한
것을 먼저 해야 한다고 합니다.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요? 가족들의
생일을 기억하는 것, 아픈 사람에게 전화를 하고 방문하는 것, 건강을
위해서 적당히 운동을 하는 것, 영적인 성숙을 위해서 성서를 읽거나
책을 읽는 것,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가는 것, 봉사하고 자선을 베푸는
것들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는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서 소중한 일들을 잊어버리곤 합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명예를 얻기 위해서,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투자합니다. 돈을 버는 것도, 명예를 얻는 것도, 좋은 직장을
얻는 것도 결국은 소중한 사람과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돈 때문에, 명예 때문에, 좋은 직장 때문에 지금 옆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잊어버리곤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소중한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가장 소중한 일이라고 하십니다.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초대에 응답해야 하고, 하느님의 부르심에
따라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서 하느님의 초대에 응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을 하십니다. “‘첫째 사람은 ‘내가 밭을 샀는데 나가서 그것을
보아야 하오. 부디 양해해 주시오.’ 하고 그에게 말하였다. 다른 사람은
‘내가 겨릿소 다섯 쌍을 샀는데 그것들을 부려 보려고 가는 길이오.
부디 양해해 주시오.’ 하였다. 또 다른 사람은 ‘나는 방금 장가를
들었소. 그러니 갈 수가 없다오.’ 하였다.”
강원도 산간에는 얼음이 얼었다고 합니다. 나뭇잎도 다 떨어지는
겨울이 곧 다가옵니다. 자연은 이렇게 시작과 끝이 있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의 가을이 올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얼마나 중요한 일을 했는가를 가지고 판단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소중한 일들을 얼마나 많이
했는가를 보시고 판단하실 것입니다. 오늘 하루 감사를 드리고, 소중한
일들을 생각하며, 주님의 뜻에 따라 살아간다면 인생의 가을이 온다고
해도 두려울 것이 없을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청주] 이리로 데려오너라 |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7년 가해 11월7일 연중 제31주간 화요일(루카14,15-24)
이리로 데려오너라.
살아가면서 닥치는 일에 우선순위를 정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누구의 초대를 받았는데 사정이 생기면 양해를 구하고 정중히 거절하는
것이 맞습니다. 밭을 샀으면 밭에 나가보는 것이 당연하고 겨릿소를
샀다면 그 소를 잘 샀는지 부려보는 것도 자연스런 일입니다. 더군다나
방금 결혼을 했다면 신혼여행을 떠나는 것은 인정해 줘야 합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서라도 가야 할 잔치집이 생겼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이 준비 되었습니다. 그 잔치에 초대 받은 것이
영광이요, 기쁨입니다. 그 앞에서 무슨 핑계가 필요합니까? 더 좋은
것, 지금까지 갈망하던 하느님나라가 눈앞에 주어졌는데 왜 망설여야
합니까? 결국 지금까지 기다리고 희망하던 것은 헛된 환상이었습니다.
지금 누리고 있는 세상 것이 더 좋은데 그것을 어떻게 놓고 가라
하십니까?
그러나 “나 없이 나를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도 나 없이 나를 구원하실
수 없으십니다.” 구원의 문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지만 결코 모든
사람이 구원 받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저러한 핑계를 갖는 한, 구원의
잔치에 함께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 우선인지를 잘 분별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을 먼저 선택하면 나머지는 다 채워지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사사로운 정 때문에 인간적인 것을 택하면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에 초대를
받았던 그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아무도 내 잔치 음식을 맛보지 못할
것이다”(루카14,24). 결국 처음 초대 받았던 사람들은 재산과 사업상의
관계, 결혼이라는 핑계거리로 말미암아 구원의 문에서 멀어졌습니다.
가진 것이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초대를 외면하였습니다. 오히려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좋아했습니다. 그야말로
배가 부르면 산해진미가 귀찮고 배고프면 보리죽이 꿀맛입니다. 그런데
헛배가 불러서 스스로 배부르다는 착각에 빠진 사람들이 있어서
걱정입니다. 스스로 배부른 착각에 빠져 죽어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데려 오너라"는 주님의 말씀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초대에
응답해야 할 사람입니다.
뿌려진 씨앗의 비유(마태13,1-9)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씨앗이 어떤
것은 길바닥에, 어떤 것은 돌 밭에, 그리고 가시덤불에, 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은 것은 당연히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밭을 준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길바닥 같은 딱딱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무관심한 사람이지요, 그리고 돌 밭은 흙이 얼마 없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해 시련 어려움이 오면 금방 신앙이
죽어버리는 사람입니다. 가시덤불은 말씀을 받아들이기는 하나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 때문에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핑계를 대던 사람들입니다.
이런 저런 핑계대지 말고 매순간 하느님 앞에 단호한 결단을
내려야하겠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안녕을 열망하며 그것을 너무 많이
고려하다가 그만 중요한 것을 놓치고 맙니다. 어떤 분이 그러더군요.
‘돌다리를 두드려보다가 오히려 돌을 깨뜨리고 만다고’. 잔머리 굴려
계산하지 말고 하느님을 꼭 잡으시기 바랍니다. 함께 모여야 할 자리를
기억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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