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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죠이도 그 모든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많은 개혁주의선조들이 그것을 믿어왔습니다. 하지만,
그것에 머물지 않았음을 강조하고 있는 조엘 비키박사의 다음의 글들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Prepared by Grace에서 제공되는 수많은 사례들 중의 몇 가지입니다. 다음의 글들을
읽으시면서 조심하실 것은, 조엘 비키박사나 홀리죠이는 애당초부터 로마카톨릭식, 곧 세미-
펠라기안적이거나 세미-어거스틴적인 의미의 예비개념을 비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알미니안적
예비개념도 또한 비판하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용하는 글들에서
도 이 점은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소개해 드리고자 하는 자료는 영미청교도들에 대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대륙의 화란쪽
개혁파들에 대한 것입니다. 청교도들은 이미 상당히 넓은 개념의 중생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기 때문입니다. 좁은 의미의 중생을 강조하는 화란쪽 개혁파신학자들이 그 중생의
강조와 더불어 어떤 점들을 동시에 강조하고 있는지에 주목하기를 바랍니다.
다음의 글은 바로 조엘 비키의 Prepared by Grace의 13장, "Continental Reformed
Perspectives"의 결론부분입니다.
Coclusion
A survey of continental Reformed theologians of the sixteenth and seventeenth
centuries demonstrates signifcant unity between them and the Puritans across
the English Channel in the matter of preparation. Reformed confessions in
Switzwerland, Bohemia, Hungary, as well as theologians such as Zwingli,
Bullinger, and Beza, acknowledged the role of the law in convicting sinners
and driving them to seek salvation in Christ. Dutch theologian Peter van Mastricht
could not object to the model of preparation set forth by William Ames.
16~17세기의 대륙의 개혁파 신학자들을 살펴보면 그들과 영국해협을 넘어서 청교도들
사이에 이 예비개념문제에 있어서 아주 중요하게 일치되는 점들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스위스, 보헤미아,헝가리의 개혁신앙의 신앙고백서들 뿐만 아니라 쯔빙글리,불링거,
그리고 베자 같은 대륙의 신학자들은 죄인들에게 죄인들임을 확신시키기 위해서 율법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잘 알아서 그들을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을 추구할 수 있도록
몰아대었습니다(driving ...to seek). 화란 신학자 피터 판 마스트리트는 영국의 청교도
윌리엄 에임스가 제시한 예비개념의 모델을 반대할 수 없었습니다(공감하였기 때문에)
The Heidelberg Catechism and the commentary on it by one of its
authors, Ursinus,present misery as the first and foundational thing that
we must know to gain the comfort of deliverance and live in gratitude for
that deliverance. This sense of misery over our sins is a necessary pre-
parative for a right understanding and estimation of the gospel.
하이델베르고 문답서와 그 작성한 이들 중의 한 명인 우르시누스에 의한 그 해설서는
불행을 구원의 위로를 얻어서 감사 가운데 살아갈 수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알아야
첫번째 사실이요 근본적인 사실로서 제시합니다. 우리들의 죄로 인한 이러한 불행의
인식(sense)는 복음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평가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있어야 할 예비조항
이었습니다.
The Canons of Dort rejected semi-Pelagian and Arminian preparation
but affirmed the role of the law in convicting sinners. They also taught
that no man can please God with broken-hearted desires for salvation
unless God has already given him saving grace. This can be understood
in a manner consistent with the preparation doctrine of Perkins, but may
also favor the view that humiliation is the result of regeneration, not a
preparation for it. The Annotations on the Scriptures that Dort commisioned
clearly state that preachers should use the law to convince and humble
sinners so they would seek after salvation.
도르트신조는 세미 펠라기우스주의와 알미니안적 예비개념을 배척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인을 죄인으로 확신시키는데 있어서 율법의 기능을 확증
하였습니다. 그 작성자들은 또한 하나님께서 이미 어떤 죄인에게 구원에 이르게
하는 은혜를 주시지 않았다면 그가 구원을 구하는 상한 심령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가르쳤습니다. 이것은 영국 청교도
퍼킨스가 제시한 예비교리와 일치된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만, 낮아짐의 겸양이
중생의 결과이지 그것을 예비하는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 수 있다는 견해로 해석될 수도
있겠습니다. 도르트신경이 인정한 성경주석들은 명백하게 설교자들이 죄인들을
깨우쳐서 겸비하게 하여서 구원을 추구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율법을 사용해야 함을
가르쳤습니다.
Francis Turretin, the great champion of late Reformed orthodoxy in
Geneva, simultaneously denied any active role to man in receiving the
first act of regenerating grace, while affirming means and operations by
which spiritually dead sinners are prepared by the grace of God, consisting
of such things as conviction of sin, fear, and a desire for salvation.He
explicitly denied that conversion by sovereign grace requires a violent
seizure of the soul.
프란시스 튜레틴은 제네바에서 활동한 개혁주의정통신학의 후기신학자인데,
중생시키는 은혜의 첫번째 사건을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인간에게 그 어떠한
능동적 역할을 부여하는 것을 반대하면서 동시적으로 또한 영적으로 죽은
죄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예비되어지는 수단들과 작동하는 것을 확증하였습
니다. 그것들은 바로 죄인됨을 확신시켜서 두려워하고 그래서 구원을 열망하게
되는 것들입니다. 그는 분명하게 주권적인 은혜에 의한 회심은 급작스러운 영혼
의 사로잡힘임을 부정하였습니다(회심은 점진적이라는 뜻)
William a Brakel asserted that sinners are dead before regeneration, and
there is no intermediate state between spiritual death and life.
Yet he also recognized that the experience of conversion can take time
and will manifest itself in various ways. He gave much attention to the
way God most commonly uses to prepare sinners for conversion: cycles
of guilt and self-effort leading to increasing self-despair until the sinner
rests upon Christ alone. Brakel believed in a pious agnosticism regarding
the first moment of regeneration, saying that it falls somewhere between
the first conviction of sin and the first conscious act of faith in Christ.
윌리엄 아 브라켈은 죄인들이 중생전에 죽어있음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리고
영적인 죽음과 살아남 사이에 어떤 중간상태도 있다는 것을 부인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또한 회심의 경험이 시간이 걸릴 수 있고 또한 여러가지
방식으로 표출될 것임을 인식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회심에
이르도록 하나님께 준비하시는데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하시는는 방식에 관심을
크게 기울였습니다: 그것은 죄인들이 그리스도만을 전적으로 의존하기 전에
죄책과 자기노력사이를 수없이 반복적으로 오고가면서 자기자신에 대해서
결국 점차적으로 절망하게 되는 방식입니다.브라켈은 중생의 첫순간이 언제인가에
대하여는 경건한 불가지론을 따랐습니다. 말하기를, 그 순간은 죄인됨을 첫 번째로
확신하게 된 것과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첫 번째로 의식적으로 행사하게 된
그 사이의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번역누락되었다가 첨가된 부분).
Herman Witsius presented a view similar to Brakel's, but located
regeneration even earlier in the conversion process. In his perspective,
the first convictions and fears arising from a sense of God's glory are the
fruits of regeneration. A conscious resting of faith upon the Saviour follows.
He knew that his view differed somewhat from that of the English Purtitans,
but believed it was mostly a matter of semantics.
헤르만 윗치우슨 브라켈과 유사한 견해를 제시하였는데, 하지만, 중생을 회심과정
에 있어서 상당히 이른 시기에 위치시켰습니다. 그의 관점에서 보자면, 하나님의
영광을 느끼는 것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죄인됨의 첫번째 확신과 두려움이라는 것은
중생의 열매들입니다. 그 뒤에 구주에 대해서 의식적인 신앙으로 의존하는 것이
뒤따릅니다. 그는 자신의 견해가 영국의 청교도들의 견해와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것은 대부분의 용어상의 문제일 뿐이라고 믿었습니다(그 의미하는
바는 양쪽 모두 일치한다고 보았다는 뜻).
The threefold structure of misery, deliverance, and gratitude bound together
Reformed theologians from Britain to the European continent.
Though we have observed some differences among these writers,most
of them strikinly agree that, first, before a sinner rests peacefully upon
Christ he ordinarily is convicted of sin and guilt;and second, there is a
mystery concerning the exact point of regeneration in the process of
conversion, broadly understood.
불행, 구원,그리고 감사의 삼중구조는, 영국에서부터 유럽의 대륙에 이르는 개혁
신학자들을 하나로 묶어줍니다. 이러한 작가들 사이에 있는 얼마간의 차이점들을
살펴보았지만, 그들 대부분은 놀라울 정도로 상호간 일치됩니다. 그것은 첫째,
죄인들이 그리스도에게 평화롭게 의존하기 전에 일반적으로 자신의 죄인됨과 죄책에
대해서 확신하며 , 둘째, 넓은 의미로서 이해되어진 회심의 과정에 있어서
정확하게 어느 싯점에서 중생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는 신비가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는 것입니다(홀리죠이사족: 연중론도 철저하게 이 신비를 인정합니다.
어떤 이들은 이 신비를 파헤치는 것으로 연중론을 왜곡시키고 있는데, 참으로
연중론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비판하는 것입니다).
Puritan preparation is a theme that runs through Reformed theology,
particularly in its use of the law to assist the gospel by awakening sinners
to their terrible state. Far from being a betrayal of Reformed theology, the
Puritan doctrine of preparation underscores the central truth of
conversion, which is that God saves guilty sinners by Christ alone.
청교도들의 예비개념은 개혁신학을 꿰뚫고 있는 주제들 중의 하나입니다.
특별히 죄인들을 흔들어 깨어나게 하여 그들의 비참한 상태를 깨닫게 하여서
복음이 효과적으로 들리도록 율법을 사용하는 문제에 있어서 그렇습니다.
개혁신학과는 영 딴판이라고 하는 견해와는 전혀 다르게, 청교도들의 예비교리는
회심의 중심된 진리를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로만
죄책을 느끼고 있는 죄인들을 구원하신다는 그 진리 말입니다.
첫댓글 네..... 순간 중생을 주장하시는 분들도 조금은 마음을 열고 보셨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이 곧 인간의 수동성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성경적 사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지만 인간을 당신의 언약 상대방으로 세우셨지요
관심을 보이신 무송정님과 갭투유님에게 감사를 드리면서 아무래도 내일 주일이기도 하거니와 아무래도 월요일쯤에나 올려야 하겠습니다. 나누고 싶은 자료들이 솔직히 너무 많습니다. 진리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
기독론이나 삼위일체 처럼...중생론이라는 하나의 교리가 정착 하려면,.많은 세월과 노력이 경주되리라 봅니다..
홀리조이님의 마음은 빨리 전하고 싶지만,.이를 못 이해하는 마음도 헤아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친구가 오는 바람에 컴터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적었네요!!...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넘 재미 있습니다..
잠언 이었나요...송이꿀 보다 달다고 하였지요...양무리 여러분들...예수안에서 사랑 합니데이~~~~
배워가시는 즐거움, 천국에서도 있을 것입니다~ ㅎㅎ
이런 표현을 하시면 ,순중론을 지지하는 분들이 무서바서 오겠습니까??..
다른 영에 사로잡혀 있다구 할까봐서,.저는 그것이 더 무섭답니다.....
@정야베스 무슨 말씀인지 정확하게 이해되지 않는데...혹시 제가 잘못 표현한 것이라도 있는지....천국에서도 여전히 배우게 될 것이 저의 신학적 소견입니다. 배우는 즐거움이 없으면 즐거움들 중에 소중한 즐거움이 사라질 것이라고 여겨져서.....무한한 신비 앞에 오늘도 배우고 내일도 배우고 영원속에서까지 배우고 싶은 학동의 마음. 저의 마음입니다. ^
@정야베스 무슨 말씀인지 정확하게 이해되지 않는데...혹시 제가 잘못 표현한 것이라도 있는지....천국에서도 여전히 배우게 될 것이 저의 신학적 소견입니다. 배우는 즐거움이 없으면 즐거움들 중에 소중한 즐거움이 사라질 것이라고 여겨져서.....무한한 신비 앞에 오늘도 배우고 내일도 배우고 영원속에서까지 배우고 싶은 학동의 마음. 저의 마음입니다. ^
홀리조이님은 다 좋으신데,.
우리의 즐거움(?)을 그렇게 만천하에 드러내시면,..적군(?)들이 얼마나 배가 아프겠습니까?...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분이 우리를 보고 <공교한 말로 속이는 자를 조심하라>..아마도 바울이 했던 말씀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말씀을 빗대어서 우리를 보고 지칭 할때에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이단으로 판정난것도 아니고 , 누가 성경적이냐고 토론 중인데,.그딴 소리를 해대는 사람을 보면,
그야말로 그의 신앙마저 의심케 되더군요..
목회자 일수록 자신안에 숨겨진 의로움을 볼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해대는 소리는 정의의 칼인양 휘두르는 것을 보면 정말 안스럽습니다..
@holyjoy 계속 써야 하는데,.밖에 볼일이 있어서 잠깐만,...
@holyjoy 저는 이 연중론 보급이 만만치 않으리라 봅니다..순중론에 젖어 온지가 50년 이라면서요..
그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은 저항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그래서 보수와 진보가 신물나게 싸우잖아요..
그동안 기득권을 지닌 분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사람의 마음구석에는 그넘의 속알딱지가 붙어 있어서 잘 안 떨어 집니다..
웬 정치판 같은 소리 하냐구 그러시겠지요..세상 정치판 못지않게..
교회 정치판도 만만치 않다는것을 제가 실감 했던 사람 입니다..
제가 넘 예민하게 반응하는것 같아 송구스럽습니다,,
지금도 뭔가 걸구 넘어지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제 요지는 조금은 신중하게 나가자는 의미 입니다,,
일단 영어원본만 올려둡니다. 다른 일을 하고서 곧 번역해보겠습니다. 금년은 넘기지 않을 생각입니다만...유종의 미를 거두시는 모든 분들 되시길^^
약속을 지켜서 다행입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오.이 글을 보시는 모든 분들에게.
제가 생각하기는 내년에 정식으로 어떤 모임을 결성 했으면 합니다..
오프라인으로 얼굴이라도 한번 봐야 할것 같습니다....
올해는 파란만장 했습니다..좋은 일도 있었고요..안 좋은일도 있었지요..
곤고한 날과 형통한 날이 옷감처럼 짜여져 ,.우리 인생을 입혀 가는것이 아닌가 합니다..
@정야베스 옳은 말씀입니다. 저의 일정상 2월초에는 아마도 정야베스님을 꼭 뵐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 양무리마을 전체 오프라인모임을 금년에는 꼭 성취시켰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holyjoy 잠언에 있나요??
경영은 모사가 많아야 이루어 진다고 합니다...
한두명의 헌신된 사람만이 큰일을 해내리라 봅니다...
저는 깃발론을 좋아 합니다..
누가 깃발을 세우거든 그일을 위하여 죽기살기로 일한다는 것이 얼마나 멋있는 일이지요..
물론 모든것이 예수안에서 하는 일이지요..
어두운 밤하늘에 마지막 불꽃이 스러지면,.
그 여운이 오래 가듯이,.
우리 모두 예수안에서,.
그렇게 불꽃처럼 살다가 갔으면 좋곘습니다..
성령이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일어서기를 원하나이다...
@정야베스 불꽃처럼....그렇습니다. 그러다가 밤하늘에 사라져버린다고 하더라도....영원의 밤하늘에서 잠시 주님 영광 위하여 살다가 사라지는 우리들이지요. 감사합니다. ^^ 꼭 만나게 될 것입니다.
영미청교도와 화란개혁파..이런 용어들이 저에게 익숙해졌으면 합니다..
아직은 이 개념들이 친근하게 닥아오지 않는군요..그냥 쉽게 현 한국교회의 영향은 화란개혁파의 영향으로 회심이 강조되지 않은 중생개념으로 발전되었으며..원래 개혁주의가 추구하는 노선은 영미청교도 로서,.여기에는 회심을 중생개념으로 넣었는데,,이것이 한국에서는 잘 전파되지 않았다..이렇게 이해 하렵니다..
우리 인생도, 이론이 강한 사람이 있고요..실제가 강한 사람이 있습니다..이 두개가 쉽게 조화롭지 못한것이 현실 이지요..
청교도는 실제가 강한 성향으로 저에게는 비쳐 집니다..
제가 보건데,.저는 한국교회의 현실을 어렵게 봅니다..
인류의 문화가 발전하면 발전 할수록 하나님을 떠난다고 보는 것이지요..
그러나 신자다운 알맹이는 많아지리라 봅니다..왜냐하면 마지막이 닥아올수록 골라내야 하기 때문에,.
엉뚱한 이야기 썻네요,,,연중론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모이면 모일수록 그 영향력이나 파급력은 크리라 봅니다..
한국교회 신자는 많은데,
신자다운 신자들이 없는것은 제대로된 신자를 교회가 배출해 내지 못환다고 보는 것이지요..
혹시 예비개념(청교도)에 대한 짧은 글이 있다면,.소개시켜 주셨으면 합니다..
@정야베스 저 생각에는 조엘 비키의 책에 대한 게시판을 연중론과 관계해서 별도로 하나 만들어야겠따고 생각됩니다. 참으로 귀한 책입니다. 제가 게시판을 만들어서는 그 장의 주제들을 간략하게라도 소개해 가겠습니다. 청교도들의 예비개념이 잘 설명되어 있고 그 오해에 근원들도 추적 가능하게 자료들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
@holyjoy 그렇군요..기대 하겠습니다...
@holyjoy 참으로 지기님의 수고가 큰 결실로 이어지기를 간구합니다. 새 해에도 주님 안에서 건승하시기를 바랍니다.
아.. 결정타네요... 감사합니다.
로빈스크로소님, 좀 적극적으로 도와주십시오 ㅎㅎ....제가 예상하기로는 아마도 한국교회의 후학들이나 후손들을 위해서 아마도 기억에 남는 헌신이 될 것입니다^^ 이젠 무인도에서 나오심이 어떠실지...ㅎㅎ 그럴 의향이 있으시다면 2014년도에는 진정으로 전열을 새롭게 가다듬고 출발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2월경 가까이 올라갑니다. 이번에는 만나 뵐 기회가 꼭 있었으면 합니다.
제 좁은 지식으로 얼마나 도움이 될련지 모르겠지만.. (목회에 지장이 없는 한도내에서) 저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올라오시기 전 미리 알려주세요.
@로빈슨크로소 당연합니다. 목회활동이 지장이 되는 카페활동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 오히려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