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나해 3월8일 [(자) 사순 제3주간 목요일]
[수도회] 완고함을 버리고 온유하게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제1독서 예레 7,23-28
† 복음 루카 11,14-23
◈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시자 놀란 군중들은 그분을 시험하려
하고 그분의 정체성을 의심합니다. 급기야 그들은 예수님을 베엘제불의
하수인으로 격하시킵니다. 예레미야 예언자의 말대로 ‘그들의 입술에서
진실이 사라지고 끊기게’ 된 것입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명백합니다.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사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악의 세력이
추출되고 있으니 명확한 선택을 하라.’고 요구하십니다.
이냐시오 데 로욜라 성인은 이러한 선택을 ‘두 개의 깃발’로 표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당신의 백성으로 부르시며 하늘 나라의
깃발 아래 모이도록 하십니다. 반면에 루치펠은 어둠의 나라의 깃발
아래 모이도록 교묘한 속임수로 사람들을 현혹시킵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은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 모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권능으로 악의 세력을 쫓아내는 주님의 일꾼입니다. 우리는
사탄 편에 서지 않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의 일을 하려고 날마다
결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구원 사업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가끔은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하느님의 일인가?’ 하는 의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의 기준은 선한 지향과 그 열매입니다. 우리가 위선과
허영의 마음이 앞선 채 좋지 않은 열매를 거둔다면 하느님의 일을 하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반대로 희생과 봉헌의 마음으로 평화롭고 선한
열매를 맺는다면 우리는 그리스도 편에 선 사람들입니다.
(류한영 베드로 신부)
- 매일 미사 -
◈ [인천] 슬퍼할 수는 있지만 분노해서는 안 된다.
2018년 나해 3월8일 사순 제3주간 목요일
제1독서
<이 민족은 주 그들의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민족이다.>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 7,23-28
복음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4-23
인간관계에 대한 심도 깊은 연구를 하고 있던 미국의 심리학자이며
감정 코치인 존 가트맨은 다음과 같은 발표를 했습니다.
“부부간의 긍정적인 소통과 부정적인 소통이 5:1일 때 결혼 생활이
순탄할 확률이 높고, 이 비율이 1:1일 때는 이혼하게 될 확률이 높다.
직장에서도 긍정과 부정의 소통 비율이 3:1을 웃도는 팀이 못 미치는
팀보다 월등히 높은 생산성을 발휘한다. 부정적인 소통이 잦은 팀은
성장이 멈추었고, 생산성도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긍정적인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는 발표입니다. 분명히
긍정적인 마음이 삶을 좀 더 나은 쪽으로 변화시킬 가능성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판단하고 행동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실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대부분은 삶 안에서 활력을
보입니다. 이 활력을 보고서 사람들이 모여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곧 새로운 기회와 생각 그리고 놀라운 정보가 유입될 가능성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늘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 곁에
오랫동안 있기가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들 곁에 사람들이
모여들지 않습니다.
이러한 긍정적 심리학이 요즘에 큰 두각을 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회 안에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게도 여러 면에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이득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도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말과 행동을
하는데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신 예수님을 향해서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라고 말합니다. 사실 말도
안 되는 것이었지요. 예수님께서도 직접 말씀하셨듯이, 마귀들이
인간들을 유혹하기 위해서 자기편을 없애버려는 어리석인 행동은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말을 해서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일까요? 마귀를 없애는 모습을 보면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주님을 향한 부정적인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긍정적으로
바라보려는 마음 자체를 갖지 않으려고 하고, 무조건 부정적인
시선으로만 주님의 모습을 바라보니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직접 오신
주님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어떤 형제님께서 갑작스러운 사고로 동생을 잃은 것입니다. 이 과정이
너무 억울했기에 분노가 가득했습니다. 바로 그때 그의 어머니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슬퍼할 수는 있지만 분노해서는 안 된다.”
어머니의 큰 지혜가 보이는 말씀입니다. 분노할수록 제대로 된 판단과
행동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바라본다면 분명히 주님을 제대로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주님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십니까? 내가 바라보는 시각을 제대로 세워야 합니다.
머리가 아닌 마음에서 나오는 사랑은 모두 진실하고 아름답다
(비사리온 벨린스키).
존 가트맨.
마음을 담는 것(‘좋은생각’ 중에서)
‘2017년 가장 깨끗한 공항’으로 뽑힌 일본 하네다 공항에는 숨은 일등
공신이 있다. 바로 청소부 니이츠 하루코.
그녀가 갓 일을 시작했을 땐 청소 기술을 익히는 데 최선을 다했다.
상사는 칭찬 대신 “마음을 더 담으세요.”라고 말했다.
어느 날 상사의 추천으로 전국 빌딩 클리닝 기능 경기 대회에 나간
그녀는 예선 2위를 했다. 전국 대회에 나갈 수 있는 출전권을 얻었으나
1위를 하지 못해 실망했다.
그 무렵 공항 로비에서 부모님의 품을 빠져나와 바닥을 엉금엉금 기는
아기를 발견했다. 그녀는 불현 듯 깨달았다. ‘아기가 기어 다니는
바닥을 지저분한 걸레로 닦아도 될까?’ 줄곧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일했던 그녀는 이용자들의 마음으로 청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전국 대회에서 최연소 우승을 했다.
마음을 고쳐먹자 태도도 바뀌었다. 아이들이 비행기를 쳐다보느라
유리벽에 손자국을 내는 일에 더 이상 스트레스 받지 않았다 아이들
손길이 닿는 아랫부분까지 꼼꼼히 닦고, 부모가 아이들을 그냥 두는
것도 공항의 청결을 믿기 때문이라 여겼다.
“저에게 일이란 마음을 담는 거예요. 어떤 것이든 마음을 담아야만
진정으로 깨끗하게 청소할 수 있어요. 다양한 아이디어도 떠오르고요.
프로답게 청소한 덕에 저 스스로 평온해지면 행복한 기운이 퍼져 다른
사람에게도 전달된다고 믿어요.”
니이츠 하루코
◈ [수도회] 완고함을 버리고 온유하게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018년 나해 3월8일 사순 제3주간 목, 루카 11,14-23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다.”(루카 11,23)
완고함을 버리고 온유하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 하느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길만 온전히 걸어라.”(예레 7,23)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순종하지도 귀를 기울이지도 않고,
제멋대로 사악한 마음을 따라 고집스럽게 걸었고”(7,24), “오히려 목을
뻣뻣이 세우고 자기네 조상들보다 더 고약하게 굴었습니다.”(7,26)
하느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주님을 차지하고 그분 안에 머무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아, 결국 그들의 입술에서 진실이 사라지고 끊겨
버렸습니다(7,28). 그들은 완고하여 하느님의 의지의 표현이자 행동
규범인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스스로를 단죄하고 만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능력, 곧 성령의 힘으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시자 말을 못하는 이가 말을 하게 됩니다(루카 11,14).
그분께서는 이 치유로 자신이 메시아이시며 하느님의 힘으로
활동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느님 나라가 ‘지금, 여기에’
이미 시작되었음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사탄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고
하거나, 그분을 시험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요구합니다
(11,15-16). 완고하여 예수님의 신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게 그들은 하느님과 자신들 사이에 가림막을 쳐버린 것입니다.
하느님보다 더 의지하고 신뢰하려는 생각과 행동이 바로 완고함입니다.
완고한 사람은 자기 힘과 뜻이 중심을 이루므로 유연하지 않습니다.
완고한 사람은 융통성이 없고 고집이 셉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의
생각과 말을 듣고 받아들일 여백이 적습니다. 그래서 온유하지도
너그럽지도 않습니다.
완고함은 나를 보호해 주거나 나를 더 나답게 만들어주는 고유함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하느님을 보지 못하게 하는
치명적인 독이 됨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완고함은 하느님을
밀어내고 자기 뜻을 내세우도록 부추기기 때문입니다. 결국 완고한
사람은 자신에 사로잡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주님과 단절된 감옥에 갇혀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 모두 완고함의 감옥에서 나와 온유의 옷을 입어야겠습니다.
온유함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아나브'는 '가난한', '비천한'이라는 뜻을
갖습니다. 곧 온유해진다는 것은 가난해지는 것을 뜻합니다. 오늘도
완고함과 고집의 가림막을 찢고 가난하고 온유한 자 되어,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주님의 자녀가 되도록 힘썼으면 합니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마태 5,5)
- 기경호 프란치스코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신부 -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
◈ [수도회]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버리는 자이다.”
(루카 11, 23)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8년 나해 3월8일 사순 제3주간 목요일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버리는 자이다.”(루카 11, 23)
두 손을 모아 기도하듯 모아들이는 삶은 기도에서 시작됩니다.
모아들이는 삶은 인내로이 기다려주고
사랑으로 가꾸는 구원의 실천입니다.
우리의 이기심으로 아프게 버려진
소중한 이웃들을 다시 모아들이십니다.
밀알이 되지 않고서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서는
결코 모아들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시작은 늘 모아들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떠난 우리들을 다시 모아들이시는 은총의 사순입니다.
아무 것도 건져 올리지 못한 까닭은
예수님과 함께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또한 모아들임의 새로운 역사에
기쁘게 참여하길 기도드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서로를 살리기위해 흩어진 우리들을 모아들이십니다.
모아들임은 영원한 하느님 나라의 핵심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모아들이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 구숙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서울] 사순 제3주간 목요일
2018년 나해 3월8일 사순 제3주간 목요일 루카 11,14-23
제 손으로 대통령을 선택한 것이 1987년이 처음입니다. 그전에는
체육관에서 통일주체 국민회의 의원들이 대통령을 뽑았습니다.
1970년대에는 투표할 나이가 되지 않아서 선택할 수 없었습니다. 6월
항쟁이 있었던 1987년 저는 군에서 투표를 하였습니다. 민주
정의당에서는 노태우 후보가 있었습니다. 아쉬운 점이 있었지만 당시
야당은 통일 민주당의 김영삼 후보와 평화 민주당의 김대중 후보가
있었습니다. 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두 후보가 단일화를 이루기를
바랐지만 단일화는 실패하였고, 더 많은 득표를 야당 쪽에서 하였지만
결과는 민주 정의당의 노태우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1992년에는
3당 합당을 이룩한 민주 자유당의 김영삼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습니다. 1997년에는 김종필 후보와 합당을 이룩한 새정치
국민회의의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저는 3번의 선거를
보면서 분열하면 실패하고, 단합하면 성공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서울대교구는 매년 사제 서품을 통해서 새 사제들이 사목을 시작합니다.
만일 새 사제들이 나오지 않는다면 서울대교구는 곧 늙은 사제들만
있는 교구가 될 것입니다. 유럽의 많은 교회가 지금 그런 어려움에
직면해 있습니다. 제가 있던 캐나다도 그런 상황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위해서 봉사할 새 사제들이 나올 수 있도록 기도하고, 성직자들의
가족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습니다. 추수할 일꾼을
청하도록 하십시오.’
사람의 몸에 있으면서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해 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심장에서 나와 온 몸을 돌아다닙니다. 신선한 공기와 영양분을
공급해주고 노폐물은 정화시켜서 몸 밖으로 배출하게 합니다. 이것은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피’입니다. 우리의 과학기술은 아직도 피를
만들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몸에 부족한 피는 다른 사람들의
헌혈을 통해서 채워집니다. 우리 몸에 다른 이들의 피를 받아들이는
것을 ‘수혈’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모든 피를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혈액형으로 피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A, B, AB, O’형의
혈액형이 있습니다. 그리고 드물게 RH라는 혈액형도 있습니다. 수혈을
하기 전에 우리는 꼭 혈액형 조사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수혈을
해도 소용이 없고, 잘못하면 오히려 생명이 위험해 지기도 합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좋은 예언자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아들까지 보내주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른 것을 선택하였습니다.
오히려 하느님께서 보내 주신 분들을 박해하였고,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너희 조상들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는 내 모든 종들, 곧 예언자들을 날마다 끊임없이
그들에게 보냈다. 그런데도 그들은 나에게 순종하거나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 민족은 주 그들의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은 민족이다. 그들의 입술에서 진실이 사라지고 말았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또 다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것은 진실,
역사의 왜곡입니다. 진실이 거짓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박종철 고문은
진실이 왜곡으로 바뀌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평범한 사람이 간첩이
되기도 했습니다. 방송과 언론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무엇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까요?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질문을
하십니다.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주님의 편에 서는 것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 그것이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수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억지 /
조욱현 토마스 신부|오늘의 강론 묵상
2018년 나해 3월8일 사순 제3주간 목요일
복음: 루카 11,14-23: 나는 하느님의 능력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있다.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구들을 쫓아낸다.”
(15절)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주님께서 하신 일에서 하느님의
능력을 벗겨내고, 마귀의 전능을 인정하며, 그리스도의 힘의 원천이
베엘제불이라고 우긴다. 그들은 질투의 가시에 찔려,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보이라고 그분께 요구하였다. 그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요구한 것은 그분에 대해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을
말한다.
나라가 서로 갈라지면 어떻게 설 수 있겠는가? 집안도 식구들이 서로
다투지 않고 뜻과 행실이 일치할 때 선다. 아마 베엘제불도 자기와
반대되는 것을 모두 끊으면 제 나라를 세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사탄이 사탄을 내쫓는가? 마귀는 마지못해 사람에게서 떠나는
것이다. 사탄이 저 자신과 싸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자기 시종들을
해치지 않는다. 그들은 주님께서 하느님의 능력으로 사탄을 짓부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20절) 아들과 성령은 아버지의
두 손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손가락은 바로
아들과 함께 일하시는 성령이시다. 주님께서는 인간으로서 하느님의
영 안에서 마귀를 쫓아내신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인간 본성은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도달한 것이다. 인간 본성이 더러운 영들을
꾸짖음으로써 빛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와있다는 의미이다.
“힘센 자가 완전히 무장하고 자기 저택을 지키면 그의 재산은 안전하다.
그러나 더 힘센 자가 덤벼들어 그를 이기면, 그자는 그가 의지하던
무장을 빼앗고 저희끼리 전리품을 나눈다.”(21-22절) 그분께서는 이
세상의 지배자를 이기셨다. 그를 무릎 꿇리고 그의 힘을 빼앗은 다음,
당신을 따르는 이들이 마음대로 처리하도록 내주셨다. 주님께서는
그 주인보다 더 힘센 분이시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오시기 전에는 그자가 막강한 힘을 누리며 본래 하느님의
것인 양들을 멋대로 다루고 자기 외양간에 가두었다. 강도와 같은
자였다. 그러나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말씀이신 분이 사람이 되시어
맞서시자, 그는 전 재산을 빼앗기고 그의 재산은 전리품으로 분배
되었다. 그에게 넘어가 불경과 잘못을 저지르던 사람들은 진리를
알도록 부름을 받고 믿음을 통해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되었다.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버리는 자다.”(23절)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마귀의
손에서 구해 내고 그에게 속아 넘어간 이들을 그의 거짓에서 건져
내러 오셨기 때문이다. 사탄은 주님께서 구원하고 모으신 이들을
흩어버리려는 자이다. 그분께 대항하고 사악한 뜻으로 그분의 목적을
훼방하려는 그자가 어떻게 주님을 도와 자신을 무너뜨릴 수 있는가?
우리는 언제나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 수원 교구 상하 성모세 성당 조욱현 토마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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