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론/순중론 토론을 오해하지 않기 위해서 알아둬야 할
너무나도 중요한 개념정리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이 토론을 지켜보는 이들은 이 토론의 근원이 단순치 않다는 것을 아시게 되었을 것이고, 커다란 신학적 패러다임과 연관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저는 그 신학적 패러다임간의 충돌을 정통주의신학과 신정통주의신학간의 갈등이라는 여기고 있습니다. 개혁주의신학계에서 침투되어 있는 신정통주의신학적 입장이 역사적 종교개혁과 그 후예들인 청교도들이 주장해 왔던 견해를 뒤집어 놓고는 자신들이 원래의 주인인양 강조하는 셈이라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토론을 통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자신들을 스스로 돌아보는 것입니다. 자신의 영적 상태를 돌아보는 것 뿐만 아니라, 내가 알고 있고 내가 지지하고 있다는 신학적 입장이 과연 어떤 역사적 근원에서 나온 것인가? 내가 기존에 생각하고 있은 이런 이해가 과연 그러한가 하고 살펴볼 때라는 것입니다.
이런 태도를 가지고 있는 분이라면, 아마도 리챠드 멀러교수의 다음과 같은 글은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신정통주의자들이 소위 ‘정통주의’ 내지는 ‘스콜라티시즘’이라는 것 자체에 얼마나 혐오감을 갖고 있는가를 알고 있겠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리챠드 멀러교수의 견해은 멀러 교수 혼자만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함께 공유하고 있다는 것만 밝혀놓고 그의 글을 소개합니다.
“많은 학자들이 ‘스콜라적 개혁 정통주의’개념에 대해 가지는 문제의식은 아마도 해당 용어들에 대해 심각하게 고착된 오해와 오용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문제는 단순히 그 용어들에 대한 ‘대중적인’ 오해나 오용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학적인 고려가 역사적인 분석작업 안에 개입하고 결국 ‘스콜라주의’라는 중립적인 서술어와 ‘정통주의’라는 긍정적인 뉘앙스를 가진 용어를 혐오스러운 것으로 규정하는 더 심각한 학술적 성격을 가진 문헌들 속에서도 발견된다. ‘스콜라주의’를 방법론이 아니라, 지나치게 사색적인 형태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으로 간주하는 과도한 억측과 더불어 ‘스콜라주의’를 멸시적인 것으로 규정하는 냉담한 비판은 사실 역사를 소급하여 루터나 칼빈과 같은 종교개혁자들 문헌에 나타난 변증 속에서도 발견된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의 고전적인 변증에 대해서도 성급한 평가 이전에 많은 예비적 논의가 선행되지 않으면 안된다. 적어도 스콜라신학에 대한 그들의 공격은 결코 모든 중세적인 것에 대한 적개심, 스콜라적 방법의 모든 용례들에 대한 혐오감, 또는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에 대한 총체적인 거절로 해석될 수 없다. 최근 연구는 종교개혁의 긍정적인 스콜라적 배경과 스콜라적 요소들이 종교개혁자들의 사상에 배태되어 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사실 기존의 연구가 마치 스콜라적 방법이나 내용이 400년간 아무런 변화나 발전이 없었던 것처럼 17세기 개신교의 ‘스콜라주의’와 중세의 ‘스콜라주의’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한 것은 기존 연구의 치명적인 방법론적 오류들 중의 하나다.”
신정통주의신학에 물든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청교도신학을 무시합니다. 노골적으로는 아니라도 은근히 그렇게 합니다. 제가 신학교 다니면서 공부할때에도 그런 느낌을 많이 가져서 저도 청교도들에 대해서 그런 편견을 지니고 있던 사람입니다. ‘정통주의’신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편견이 바로 칼 바르트의 신정통주의에 의한 것임을 알게 된 것은, 저의 개인의 신앙생활에 큰 도움을 얻었습니다. 신정통주의신학에 물들면 전도하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전도를 하여도 막연하고 애매하게 할뿐입니다. 소위 ‘말씀의 신학’이라고 하면서도 그렇게 합니다. 은혜와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면서 그것을 극단적으로 몰아가면서, 실제로는 은혜를 모독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곡해시키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그것을 우리는 앞으로 신정통주의신학의 분석을 통해서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이 카페가 남아있는 한, 한국교회내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거짓된 복음과 저항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먼저 이 ‘스콜라주의’라는 용어에 대해서 우리가 얼마나 오해된 입장을 지니고 있는지부터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이것은 솔직히 이전부터 제가 강조해 오던 바인데....리챠드 멀러교수의 책이 번역된 것을 보면서 함께 소개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서 간단히 옮겨 놓습니다.
오늘도 주님의 빛이 우리들에게 비춰지기를...
첫댓글 물론 청교도들이 완벽한 인간들이 아니었고, 그들의 신학이 흠도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조엘비키의 책을 소개하면서도 지적되겠습니다만, 예비교리를 지나치게 몰아쳤던 인물들도 소개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 청교도들과 정통주의자들에 대한 전반적인 인상이 부정적으로 혐오스러운 것으로 여겨진 것은 바로 칼바르트의 신정퉁주의신학의 영향이라는 것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스콜라주의에 대해서 공부하라 하시는군요..그래도 감사 하렵니다..철학과 신학을 배우게 해주셔서,...
토마스 아퀴나스가 스콜라주의의 대가라고 알고 있는데,.이래서 목회자 되시는 분은,.철학을 공부하고 신학을 공부하라고 하는군요..그러나 신앙만은 끝까지 지키시고 신학이나 철학 하시기 바랍니다...신학 하다가 신앙을 잃어 버리는 일이 더러 있다고 합니다..
바로 그런 문제점을 알고 청교도들은 신학도 하고 신앙도 지키기 위해서 경건과 학문을 강조하였고 그 강조한 학문이 바로 청교도적 스콜라티시즘, 혹은 정통주의 스콜라티시즘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항상 감사를 드립니다. ^^
@holyjoy <정통주의 스콜라티시즘> 단어가 넘 고상 합니다...
신앙과 신학..이 두개를 모토로 삼았는데 철학도 쫌 알아야 하겠습니다..
바라옵기는 이 새로운 패러다임에 뛰어드는 젊은이들이 많아 졌으면 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제가 이 양무리마을에 있는한은 늘 그렇게 하도록 노력 할것입니다...
역사를 바꾸는데는 많은 사람이 필요치 않습니다..
한사람의 끝없는 희망과 노력이 모든 이들을 감동 시켰지요!..
그러한 날이 꼭 오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