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나해 4월30일 [(백) 부활 제5주간 월요일]
제1독서
"우리는 복음을 전하여 여러분이 헛된 것들을 버리고 살아 계신
하느님께로 돌아서게 하려는 것입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4,5-18
복음
"아버지께서 보내실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21-26
◈ [수원] 비밀은 선물이다 |오늘의 강론 묵상
2018년 나해 4월30일 부활 제5주간 월요일
"아버지께서 보내실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 복음: 요한 14,21-26
비밀은 선물이다.
세간에 화제가 됐던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2010년 아내 엘린
노르데그렌과 이혼할 당시 우즈의 외도에 의한 이혼으로
이혼합의금으로 5억 달러(5200억원)을 받았습니다. 이런 천문학적인
위자료를 준 이유는 외도와 불륜에 대한 책임 때문이 아닙니다.
자신의 외도에 대해 침묵해준다는 대가라고 합니다. 노르데그렌은
이 돈을 받는 대가로 우즈와 관계된 외도에 대해 어떤 인터뷰는 물론
책도 쓸 수 없고, TV 출연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죤 드리아든은 “하인에게 비밀을 얘기하는 사람은 그 하인을 자기의
상전으로 만드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남의 비밀을
잡아 그것으로 상대의 재물을 뜯어내기도 합니다. 이렇게 비밀은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할 수도 있는 것이기에 아무에게나 말해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것을 받기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에게 주는 것이 현명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유다도 예수님께 “주님, 저희에게는 주님 자신을 드러내시고 세상에는
드러내지 않으시겠다니 무슨 까닭입니까?”라고 물어봅니다.
예수님은 당신 계명을 지키는 사람만이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니 그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당신을 드러내시겠다고 하십니다. 당신을
드러내시는 방법은 진리의 성령님을 통해서인데 그것을 받을만한
그릇이 되지 않는 사람에게는 당신을 드러내 보이시는 것이 곧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관계를 가져가면서 그 관계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서로의
비밀을 나누게 됩니다. 그만큼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였다는 증거이고
믿게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만나자마자 가장 소중한 비밀을
말해버리는 사람은 조심해야합니다. 애정결핍이거나 그 비밀을
이용해 애정을 얻으려는 속내도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우리들은 어떤 사람이 마음에 들 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고는
합니다. 그리고 그 비밀을 알게 된 사람은 원하던 원하지 않던 상대의
비밀을 지켜주어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됩니다. 그만큼 깊은 관계가
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도 당신 자신을 누구에게나 드러내 보이시지 않고 당신 계명을
지켜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당신 비밀을
함부로 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번이라도 내가 믿고 말한 것은 다른 이에게 발설했던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다시는 자신의 비밀을 말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둘의 관계는 더 이상 가까워질 수 없게 되어버립니다.
그리스도의 계명을 어기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아
그 비밀을 지켜줄 수 없는 믿지 못할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사이비나 이단은 그리스도의 진리를 아주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신흥종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한 번 이상은 기성종교를 거친 사람들입니다. 어쩌면
기성종교에서 그릇이 합당하지도 않은데 많은 진리들을 가르쳐주어서
그것을 이용해 이단을 만들게 만든 책임도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을 만나면 왠지 믿음이 가서 자신의 속내를 다 털어놓게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도 그리스도 앞에서 그렇게 믿을만한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선물은 주고 싶은 사람에게만 줍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도 믿을만한지 그렇지 않은지 지켜보시다가
믿을만한 사람에게만 당신 소중한 비밀을 선물하십니다.
-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
◈ [서울] 부활 제5주간 월요일
2018년 나해 4월30일 부활 제5주간 월요일 요한 14,21-26
지난 성소주일이었습니다. 일주일 전의 예보는 비가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추기경님께서는 성소국장이 열심히 기도하면 비가
오지 않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저의 기도 때문은 아니겠지만 3일전
예보를 확인하니 오전에는 흐리고 오후 3시부터 비가 올 거라고
하였습니다. 당일 날의 예보를 확인하니 오전에는 흐리고 오후부터
비가 올 거라는 예보가 있었습니다. 추기경님께서는 하느님께서
기도를 들어 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소주일 아침에 명동에서
혜화동까지 걸어가는데 종로 5가 쯤에서 비가 조금 내렸습니다. 순간
저는 주머니에 있던 묵주를 꺼내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감사하게도
성소주일은 아주 시원한 날씨 속에 잘 보낼 수 있었습니다. 걱정보다는
기도가 더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새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날 미사를 주례해 주신 주교님께서는 우리가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나의 내면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고, 가장 좋은 것은 매일 일기를 쓰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주교님께서는 1960년 초등학교 4학년 때 쓰셨던 일기장을 보여
주셨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일기를 쓰셨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고, 58년 동안 일기장을 간직하고 있었다는 것은 더욱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주교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보내는 사람은 일상의 삶에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언제까지 일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매일 복음 묵상을 하려고 합니다.
작은 일이지만 저도 묵상을 통해서 하느님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성소주일에 두바이에서 잠시 휴가를 왔다는 형제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두바이에서 일을 합니다. 신부님의 묵상 글이
제게는 영적인 양식이 되고 있습니다.” 형제님의 말씀이 제게는 힘이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어쩌면 각자의 자리에서 하느님의 집을
이루는 벽돌 한 장이 되는 것 같습니다. 한 장의 벽돌이 모여서
아름다운 집이 되는 것입니다.
교구청 마당에는 물이 오른 나무들이 있습니다. 나무들은 모두 많은
잎을 가지고 있습니다. 잎 하나는 작지만 그 잎들이 모이니 교구청은
아름다운 정원이 되었습니다. 한 가지만 조심하면 됩니다. 나뭇잎이
자기가 나무라고 생각한다면, 나무가 자기가 숲이라고 생각한다면
조화를 이루기 어려울 것입니다. 오늘 바오로와 바르나바 사도는
자신들이 교회의 벽돌 한 장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이야기 하였습니다.
자신들은 교회라는 숲에 있는 작은 잎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은 언제 어디서나 기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하느님의 은총과 성령의
친교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한 가지 원칙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바로 그 원칙을 지키면서 살아야 합니다.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벗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는 것,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
사람들의 발을 씻겨 주는 것,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알려주고,
묶인 이를 풀어 주는 것, 갇힌 이들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 바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수도회] 두 발로 똑바로 일어서시오!
2018년 나해 4월30일 부활 제5주간 월요일
두 발로 똑바로 일어서시오!
제자단을 떠나 승천하신 예수님의 모습은 마치도 자녀들을 두고 먼길
떠나야 하는 부모의 모습과 비슷했습니다. 안타깝고, 안쓰럽고,
걱정되고, 눈에 밟히고...그러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당신을 대신해서 제자들을 동반하고 안내하고
가르쳐주실 또 다른 스승을 당신 대리자로 즉시 보내주셨는데, 바로
성령이십니다.
승천 사건을 통해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눈 앞에서 사라지셨지만
초대교회 사도들은 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거듭났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했기에 더 이상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매순간 성령의
인도를 받는 관계로 그들의 발걸음은 거침없이 당당했습니다.
의기양양, 위풍당당했습니다.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은 전에 지니고 있었던 인간적 미성숙도
떨쳐버렸습니다. 성령께서 도와주시니 약한 믿음은 굳센 믿음으로
탈바꿈되었습니다. 금상첨화격으로 인간적 야심이자
자기중심주의에서 벗어났으며 지극한 겸손의 덕까지 겸비했습니다.
사도행전은 확연히 변화된 사도단이 모습을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바오로와 바르나바 사도가 심한 박해를 받는 중에도 여러 지방을
두루다니며 거침없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였습니다.
박해를 피해 리스트라라는 지방으로 피해갔을 때, 거기에는 두 발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머리털나고 지금까지 단 한번도
스스로 일어서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마침 설교 도중 그의 존재가 바오로 사도의 눈에 띄었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말씀에 몰입해있었고, 그의 눈동자는 새 삶에 대한
강한 열망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를 향해 큰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두 발로 똑바로 일어서시오.”(사도행전 14장 10절)
놀랍게도 바오로 사도의 그 한 마디 말에 그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걷기 시작했습니다. 보십시오. 바오로 사도의 모습은 공생활
기간 동안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모습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놀라운 광경을 자신들의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한 유다인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웅성거리기 시작하더니, 뭔가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황소 몇 마리를 잡아서 왔으며, 커다란 화환을 들고
왔습니다. 이게 뭐냐고 묻는 사도들에게 유다인들은 말했습니다.
“저희가 볼 때, 두 분은 신(神)입니다. 그래서 제물을 바치는
것입니다.”
깜짝 놀란 바오로와 바르나바 두 사도는 어불설성, 신성모독이라는
표시로 자신들이 입고 있는 옷을 찢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여러분, 왜 이런 짓을 하십니까? 우리도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치유는 우리의 힘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두 사도의 깊은 신앙과 놀라운 겸손의 덕이
돋보입니다.
틈만 나면, 치유, 종말, 기적, 신비스런 현상들을 내세우며 사람들을
현혹시키며, 스스로를 우상화시키면서, 신앙의 본질을 흐리게 만드는
사이비 지도자들이 눈여겨 볼 대목입니다. 교만한 그들에게 결핍된
점은 겸손의 덕입니다.
가끔 아주 작은 우리의 일을 향한 세상 사람들의 찬사와 박수갈채
앞에 우리가 어떤 자세,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바오로와
바르나바 사도는 잘 가르쳐주셨습니다.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 [수도회]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해 주실 것이다.
(요한 14, 26)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8년 나해 4월30일 부활 제5주간 요일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해 주실 것이다.(요한 14, 26)
어김없이 예수님의 모든 말씀을 기억하게 해 주시는
성령님이 우리에게 오십니다.
가장 좋은 기억은 주님 말씀이기에 예수님 말씀에 머물게합니다.
머무르는 기쁨이 바로 말씀의 시간이며
말씀을 붙잡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성령께서는 예수님 말씀으로 불안한 삶의 중심을 바로잡아 주십니다.
삶의 중심이 예수님의 사랑임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십니다.
사랑의 일치된 관계를 맺게하시는 성령께서는 우리의
부족함을 말씀으로 채워주십니다.
우리 사람의 마음을 채워주시는 분또한 성령님이십니다.
말씀이 계신 곳에 성령님또한 계십니다.
우리가 있는 삶의 자리가 말씀의 자리이길 기도드립니다.
내딛는 걸음마다 말씀으로 성장하길 기도드립니다.
성령께서는 알고 있는 것을 지키고 실천하도록 가르쳐주십니다.
이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기억하게 해주시는
성령님이 우리에게 오십니다.
우리에게 말씀하신 모든 것이 참된 사랑이며
참된 용서임을 기억합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기타] 하나님이니까 가능합니다 : 오늘의 능력말씀
2018년 나해 4월30일 부활 제5주간 월요일
하나님이니까 가능합니다
오늘은 “하나님이니까 가능합니다”라는 내용으로 은혜의 시간이
되겠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8절 말씀에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암수술을 6번이나 받은 성도님이 계십니다. 처음에는 직장암 4기
다시 2년 후 난소암, 이후에는 간과 폐로 전이되어 거듭된 수술로 온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임파선까지 전이되면서 폐와 심장사이까지 암이 새까맣게
자리 잡고 있어 수술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왕 죽을 바에 기도하면서 죽겠다는 심정으로 기도원을
찾았습니다. 그렇게 이 성도님은 말씀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종에게
안수기도도 받고 계속 믿음으로 기도했는데, 어느 한 순간 숨만
쉬어도 찾아왔던 심한 통증이 완전히 사라지고 잠도 잘 자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CT촬영을 해보니 암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고쳐주셨습니다. 의사에게 말하니까 그 의사도 “정말
하나님이니까 가능하시네요.”라며 놀라워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니까 가능한 것입니다. 최첨단 의술로도 고칠
수 없는 불가능한 병일지라도 전능하신 하나님만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할렐루야!
- 인천 부평 사랑밭 교회 권태일 목사 -
◈ [청주] 사랑은 들음으로써 완성됩니다|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8년 나해 4월30일 부활 제5주간 월요일(요한14,21-26)
사랑은 들음으로써 완성됩니다.
살아가면서 사랑이라는 말을 달고 삽니다. 구지 내가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사랑이라는 말은 언제나 기대되고 가슴 설레게
합니다. 그러나 그 사랑이 내 방식의 사랑이기에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기대하는 만큼 받지 못해서 애달프고, 준다고 주는데 있는
그대로 받아주지 않으니 속이 상하고 그야말로 미워집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도 미워하는 사람도 만들지 마십시오. 사랑하는
사람은 못 봐서 애타고 미워하는 사람은 봐서 애타기 때문입니다”
(법구경).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
(요한14,23-24). 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계명을 구체적 행동으로 지키지
않는다면 주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사실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의 결속관계를 지속시켜주는 힘은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가운데에서 또한 주님의 말씀대로 실천하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그 사람은 말을 참 잘 듣는다’ 했을 때 그것은 귀로 듣고 행동으로
옮겼을 때 하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의 구체적인 표현은 여러
가지로 나타나지만 먼저 상대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사랑은
들음으로써 완성됩니다. 상대의 원의를 듣고 그에 상응하는 행동을
취함으로써 증거 됩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서로의 말을 들어주지
않고 있다면 아직 참사랑의 관계를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끼리 서로 닮아가서
상대방의 모습으로 바뀌기까지는 결코 완전한 것일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하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먼저 그분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그리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십시오! 여러분의 배우자를
사랑하십니까? 먼저 배우자의 소리를 들으십시오. 자녀를
사랑하십니까? 그들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부모를 사랑하십니까?
그분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이웃을 사랑하십니까? 그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십시오. 나의 소리를 시끄럽게 들려주지 말고 먼저 듣고
행하십시오. 사실 듣는다는 것은 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야고1,23). 하고 말하였습니다.
수다를 떨기보다 사랑하는 이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오늘이기를
희망합니다. “사랑은 커다란 맛을 느끼는데 있지 않고 매사에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 결단을 내리는 데 있습니다. 하느님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데 있으며 교회의 성장과 하느님의 영광과 명예가
항상 먼저이기를 기도하는데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바로 사랑의
표징들입니다.”
사랑한다면서 행하는 행동들 안에서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일이
허다합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스타일에 맞추거나 소유하려는
욕망들에 의한 상처입니다. 가끔은 지나치게 일방적인 사랑 때문에
받는 쪽에서 부담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자유를 주는 것입니다. 떠나보낼 수 있는 내적 자유와 떠날 수 있는
자유로움이 공존해야 합니다. “사랑에 불타는 영혼은 조금도
피로하지 않고, 또 남을 피로하게 만들지도 않습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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