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배구가 4개월의 휴식 끝에 팬들 곁으로 돌아왔다. 지난 8월 28일부터 9월 7일까지 경남 양산에 있는 양산체육관에서 열린 2008 IBK 기업은행배 프로배구 KOVO(한국배구연맹)컵 대회가 그 무대였다.
지난 시즌까지 아마추어 자격으로 V리그에 참가했던 남자부 한국전력은 프로화 이후 이번 컵대회에 처음 참가했지만 기존 프로팀들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정규시즌을 앞둔 준비 단계죠.” 컵대회 개회식이 열린 8월 30일 오후 양산체육관에서 만난 한 구단 관계자는 이렇게 얘기했다.
그의 말대로 컵대회는 정규시즌을 앞두고 각 팀들이 치르는 전초전 성격이 강하다. 100% 전력을 쏟아 부어 경기를 치를 필요는 없다.
새로 영입한 외국인선수들은 이때 첫 공식경기를 갖는다. 지난해 마산에서 열린 컵대회때는 남자부에서 두 명의 외국인선수가 함량미달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천안 현대캐피탈의 커트 토펠(28,206cm,미국)과 대전 삼성화재의 안젤코 추크(25,200cm,크로아티아)가 주인공이었다. 김호철(53) 감독의 마음에 들지 못했던 토펠은 컵대회가 끝나자 곧바로 보따리를 싸 미국으로 돌아갔다.
신치용(53) 감독도 “(안젤코가)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새 외국인선수를 알아봐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배구에 적응한 안젤코는 삼성화재의 정규시즌 1위와 챔피언결정전 우승에 가장 많은 도움을 주면서 미운오리에서 백조로 거듭났다.
반면 구미 LIG 손해보험의 박기원(57) 감독이 야심차게 영입한 특급 공격수 길레르모 팔라스카(31,201cm,스페인)는 컵대회에서 만큼은 이름값에 걸맞은 활약을 보여줬지만 정작 정규시즌에서 동료들과 호흡이 맞지 않는 등 여러 문제점을 내보이다 결국 계약기간 2년을 못 채우고 한국을 떠났다.
외국인선수, 팀 성적의 변수
개회식이 끝나고 경기가 있는 남자부 현대캐피탈과 인천 대한항공 선수들이 코트에 나와 몸을 풀기 시작했다.
현대캐피탈이 제2의 숀 루니로 키우려는 계획을 가지고 영입한 맷 앤더슨(21,208cm,미국)도 동료들과 함께 나와 토스와 스파이크 연습을 했다.
반면 오프시즌동안 문용관(47) 감독에서 진준택(59) 감독으로 사령탑을 교체한 대한항공은 외국인선수가 없었다.
지난 시즌까지 2년 동안 함께 뛰었던 보비(29,208cm)가 브라질로 돌아갔기 때문에 새 외국인선수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영입 문제가 잘 풀리지 않고 있다.
진감독은 “KOVO가 규정한 몸값(최대 28만 달러)에 맞춰 데려올 선수가 없다. 보비를 대신할 선수를 찾아야 하는데 걱정”이라고 말했다.
현대캐피탈의 앤더슨은 경기가 시작되자 코트 뒤쪽으로 가 몸을 풀었다. 선발 출전은 아니었고 어쩌면 이날 경기에 안 뛸 수도 있었다.
두 팀은 지난해 플레이오프에서 명승부를 펼쳤다. 정규시즌 2위를 차지한 대한항공은 홈구장인 인천 도원체육관에서 열린 1차전에서 3-0(27-25, 30-28, 25-23)으로 이겨 기선을 제압하면서 챔피언결정전 진출의 꿈을 키웠다.
그러나 1승1패로 동률을 이룬 뒤 치른 3차전에서 대한항공은 다 잡은 경기를 현대캐피탈에게 1-3(25-17, 19-25, 23-25, 19-25)으로 내주면서 챔피언결정전 진출에 실패했다.
그래서 이날 두 팀의 경기는 많은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흐름은 현대캐피탈 쪽으로 기울었다.
현대캐피탈은 주전 세터 권영민(28,190cm) 대신 장신 세터 송병일(25,196cm)을 기용했다. 그리고 지난 시즌 제 컨디션이 아니었던 박철우(23,199cm)가 라이트로 선발 출전했다.
송병일은 장신을 이용해 단독 블로킹을 떴고 연타로 넘어온 공을 직접 때리는 등 공격형 세터로 맡은 임무를 잘 소화했다.
박철우도 지난해 월드리그에서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활약할 당시와 같은 몸상태는 아니었지만 3세트 내내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줬다.
오늘만 같아라
현대캐피탈은 대한항공을 3-0(25-21, 25-13, 25-20)으로 이겼다. 특히 송인석(30,197cm)이 펄펄 날았다. 그는 이날 두 팀 합쳐 최다인 19득점을 올렸다. 공격 성공률은 80.95%를 나타냈다.
2006-07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삼성화재를 상대로 신나게 스파이크를 때리던 장면이 떠오를 정도였다.
현대캐피탈 구단 관계자도 “(송)인석이가 늘 저렇게만 뛰어준다면 걱정이 없겠다”면서 “공격 성공률이 80%가 넘는 경우를 잘 보기 힘든데 오늘 그 장면을 봤다”고 놀라워했다.
김감독도 경기가 끝난 뒤 “인석이가 오늘 정말 잘해줬다”고 칭찬했다. 반면 8월 28일 한국전력을 상대로 3-1(22-25, 25-20, 25-17, 25-18)로 이겨 대한항공 사령탑 부임이후 공식경기 첫 승을 따낸 진감독의 표정은 어두웠다. 현대캐피탈을 상대로 제대로 혼쭐이 났다.
대한항공은 이날 공격과 수비에서 24개의 범실로 저질러 스스로 무너졌다. 진감독은 “(벤치에서)아무리 주문을 해도 안되더라”며 “선수들이 평소 연습할 때 반 정도만 해줬어도 내용이 괜찮았을 텐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대한항공은 두 번째 프로시즌을 맞는 한선수(23,189cm)가 주전 세터로 나왔다. 진감독은 “(한)선수가 긴장했는지 실수가 잦았다”면서 “경기를 치르면서 점차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감독은 승부가 기울었지만 끝까지 철저했다. 2세트 21-10으로 크게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김감독은 박철우를 잠시 쉬게 하고 앤더슨을 내보냈다. 앤더슨의 공식 경기 첫 데뷔 무대였다.
앤더슨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현대캐피탈이 올린 2세트 마지막 두 차례 점수를 자신의 손으로 기록했다. 그는 큰 키에서 나오는 높은 타점으로 오픈 공격을 성공해 24점째를 올렸고 마지막 득점을 블록아웃으로 연결해 뽑아냈다.
김감독은 앤더슨의 공격이 성공하자 만족한 듯 웃음을 지었다. 김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가진 인터뷰에서 “2005-06시즌 팀에 처음 합류한 루니와 현재 앤더슨을 비교하면 앤더슨이 더 낫다”며 “미국 대학배구 결승 경기를 비디오를 통해 보고 앤더슨과 계약하기로 결정했다”고 영입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이날 경기에서 권영민 대신 송병일을 기용한 이유에 대해서도 “(권)영민이는 대표팀에 뽑혀 올림픽 세계예선전과 월드리그에 참가하느라 팀을 오랫동안 떠나 있었다”면서 “그래서 기존 선수들과 호흡을 계속 맞췄던 (송)병일이를 출전시켰다”고 말했다.
현대캐피탈과 대한항공의 경기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지난 시즌까지 팀을 지휘했던 문 전 감독이다. 그는 대한항공 사령탑에서 물러난 뒤 에서 배구 해설을 맡고 있다.
문 전 감독은 “오늘 경기는 내용이 안 좋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선수들이 진감독의 의도대로 잘 따라 줄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지난 시즌 우승팀 삼성화재는 이형두가 복귀하면서 전력이 더욱 강해졌다.
사진 김동하
구관이 명관
삼성화재와 LIG의 경기가 다음날 열렸다. 삼성화재 신감독은 “LIG가 뽑은 외국인선수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고 얘기했다. 그는 지난해 컵대회때 LIG의 팔라스카에 대해 같은 말을 했었다.
LIG가 데려온 선수는 카이 반 다이크(24,215cm,네덜란드)였다. 역대 최장신 외국인선수로 라이트를 맡는다.
박감독은 “높이는 있지만 스피드가 느린 게 단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다른 선수들이 지난 시즌과 달리 좀 더 빠른 배구를 한다면 카이 영입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감독은 크로아티아에서 돌아와 팀에 합류한 안젤코에 대해 “살이 좀 쪘다”며 “V리그에서 연봉이 150% 정도 올라간 선수가 안젤코다. ‘운동을 열심히 안 하면 크로아티아로 돌려 보내겠다’고 엄포를 놨다”고 농담을 했다.
두 팀의 경기가 시작되자 안젤코는 여전히 강력한 공격력을 보여줬다. 그는 LIG 선수들이 때린 강력한 스파이크도 여러 차례 받아냈다. 단 한경기였지만 안젤코가 수비까지 된다면 다른 팀들에게 골칫거리가 하나 더 는 셈이다.
카이는 높은 타점을 이용해 스파이크를 성공시켰지만 삼성화재의 센터 신선호(30,196cm), 고희진(28,200cm) 등이 여러 번 블로킹에 성공했다.
LIG는 이날 경기에서 카이보다 엄창섭(25,189cm)의 성장 가능성을 발견한 게 소득이었다. 엄창섭은 허리를 다쳐 컵대회에 못나오는 이경수(29,200cm)의 빈자리를 잘 메웠다. 엄창섭은 13득점을 기록했다.
지난 시즌 현대캐피탈 임시형(23,190cm)에게 밀려 신인왕을 놓쳤던 LIG 김요한(23,198cm)은 팀 내 최다인 14득점을 올렸다. 박감독은 “카이를 라이트로 활용하고 (김)요한이는 레프트로 주로 기용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날 경기는 삼성화재가 LIG를 3-0(25-18, 25-19, 26-24)으로 이겼다. 삼성화재는 안젤코가 28득점으로 공격을 이끌었는데 특히 1년 5개월여 만에 공식 경기에 다시 출전한 이형두(28,189cm)는 10득점으로 안젤코의 뒤를 잘 받쳤다.
신감독은 경기가 시작되기 전 취재진을 만나 “부상에서 회복한 (이)형두가 잘 해줘야 한다”며 “공격이 되면 수비가 안되고, 수비가 되면 공격이 안되서 불안하지만 안젤코와 함께 팀에서 공격을 주로 맡아야 할 선수”라고 말했다. 이형두는 LIG와 경기에서 신감독의 바람대로 좋은 활약을 보여줬다.
그는 “오랜만에 뛰는 공식 경기라 처음에는 조금 긴장했다”면서 “그동안 팀이 우승하는 동안 내가 도움을 준 일이 없어 마음고생을 좀 했다. 올 시즌에는 팀에 필요한 선수가 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삼성화재에서 신진식(33,188cm)의 뒤를 이을 선수로 꼽혔던 이형두는 지난 2006년 교통사고를 당해 목을 크게 다쳐 선수생활이 불투명했다.
재활을 거쳐 간간히 코트에 나와 뛰었지만 기대에 모자랐다. 이형두는 2007년 한·일 V리그 챔피언전을 끝으로 사실상 코트를 떠났다.
지난 시즌에는 선수등록을 하지 않아 벤치에도 앉지 못해 기록원 옆 자리에서 동료들의 경기를 지켜봤다.
신중함
신감독은 “컵대회 성적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며 “다른 팀들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대한항공이 현대캐피탈과 경기에서 실망스러운 경기를 했지만 외국인선수를 데려오면 그리고 그 선수가 지난 시즌 보비 정도의 선수라면 전혀 다른 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신감독은 “카이가 한국 배구에 적응을 하면 굉장한 선수가 될 것이다. 올 시즌 LIG와 경기가 무척 신경쓰인다”고 조심스러운 반응을 나타냈다.
신감독은 지난해 컵대회때도 비슷한 말을 했다. 그러나 정규시즌에서 LIG는 15승20패로 4위를 차지하면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신감독은 “(삼성화재는)지난 시즌과 똑같다. 전력에 큰 변화 없이 그대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발목 수술로 컵대회에 못나온 라이트 장병철(32,194cm)과 역시 발목을 다쳐 지난 시즌을 통째로 건너 뛴 세터 유광우(23,185cm)에 대한 걱정을 털어놨다.
그는 “(장)병철이는 시즌이 시작되면 팀에 복귀할 수 있다. 그런데 (유)광우가 문제”라며 “병원에서는 상태가 괜찮다고 하는데 선수 본인이 아프다면서 못 뛰겠다고 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삼성화재는 주전 세터 최태웅(32,186cm)의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유광우의 코트 복귀가 필요하다.
한 배구 관계자는 “팬들이 볼 때 흥미가 떨어질 수 도 있겠지만 컵대회를 놓고 보면 정규시즌에서도 삼성화재, 현대캐피탈의 양강 구도가 계속 이어질 것 같다. 대한항공과 LIG 그리고 한국전력이 시즌 초반 순위 경쟁에서 밀려나지 않아야 재미가 더 있을 것 같은데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2008-09시즌은 지난 시즌(12월 1일 개막)보다 이른 11월 중순 시작된다. 아직 정확한 날짜는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았다. 팀당 7라운드씩 경기를 치러 내년 4월 중순까지 정규리그 경기를 가질 예정이다.
첫댓글 정말 결승전 경기 잼있게 봤었는데 안젤코보다 앤더슨이 더 좋던데요 잘생겨서 그런가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