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빙크 개혁교의학 4권 51장 462절,174쪽
하지만 이 모든 개념들이 나중에 더 명확하게 정의되었을 때, 어떤 학자들은 옛사람의 죽임과 새사람의 살림, 즉 수동적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가 부활하는 것이 중생의 실재적인 측면들이라고 지적했다. “중생의 두 끝은 두 개의 성향으로서, 즉 선천적 부패와 새로 도입된 거룩이다.” 하지만 “회개의 두 끝은 두 가지 행위로서, 저지른 죄와 시행되어야 할 선이다.”
그래서 중생은 ‘악을 떠나 선으로 돌아가는 것’으로서 ‘죄에 대한 혐오와 정의에 대한 사랑’으로 정의되거나, 또는 “하나님을 진노하게 한 죄를 범한 후의 슬픔, 그리고 이 슬픔에서 비롯된, 악에서 선으로의 영혼의 전적인 변화”로서 더 자세하게 정의되었다.
하지만 만일 옛사람의 죽임과 새사람의 살림을 여전히 실재적 회심의 측면에서 생각한다면, 중생의 측면에서 생각할 때와는 다른 의미가 여기에 부여된다. 중생의 경우, 옛사람의 죽임과 새사람의 살림은 하나님의 독자적인 행위이며, 인간은 수동적일 뿐이다.
하지만 실재적 회심(또는 회개)의 경우, 옛사람의 죽임과 새사람의 살림은 하나님의 영에 의해 거듭나고 믿음과 사랑의 미덕을 은사로 받은 인간의 활동이다[But even if one continues to view the putting-to-death and the bringing-to-life as aspects of actual conversion, one always ascribes to them a different meaning than when they occur as aspects of regeneration. In the latter case they are exclusively acts of God in which a human is passive; but if the putting-to-death and the bringing-to-life are aspects of actual conversion(respiscentia), they are activities of the person who has been regenerated by the Spirit of God and endowed with the virtues of faith and love.]
첫댓글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함께 못박는 사건이 없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하는 사도바울의 선언(갈5:24)은 구원의 서정에 있어서 결정적인 순간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못박는 것(갈5:24)과 못박히는 것(갈2:20)이 동일한 순간의 사건이면서도 각각 다르게 묘사되는 것이 중생이요 회심이라는 것. 이것이 바빙크의 말입니다. 넓은 의미의 중생 이후에 회심의 과정이 시작된다면 이런 바빙크의 말은 너무나도 엉뚱한 말이 되는 셈입니다. 개혁신학의 중생론을 엉뚱하게 적용해서 넓은 의미의 중생 이후에나 회심의 과정이 시작되는 것처럼 생각하게 하는 개혁신학이라면 과연 그것을 개혁신학의 중생론이라고 할 수 있는지.....
곰곰히 살펴볼 의무가 있습니다. 자신이 진정으로 개혁신학의 길을 따르고자 한다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