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시대 최소한의 양심은 어디에
김경집/인문학자.작가
대학에서 영문학을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카돌릭대학교 인간학교육원에서 인간학과 영성과정
을 맡아 가르쳤다.
저서
<책탐>2010년 한국출판평론상 수상
*생각의 인프라에 투자하라.
*생각의 프레임
*위로가 필요한 시간
*나이듦의 즐거움
사람들은 흔히 교육자와 성직자들에게 높은 도덕성을 요구한다. 보통사람들 같으면 그럴 수도
있다고 넘길 수 있는 허물조차 그들에게는 용납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우리가 평소에 그들을 존경하느냐 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게 솔직한 대답일 것이다.
급여가 높은 편이 아니고 일의 강도도 결코 만만치 않다. 그래서 그 직분은 그야말로 소명의식
이 있어야 한다.
사제의 삶도 비슷하다. 공식적으로 교구에서 받는 사목활동비라고는 겨우 1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한다.그런데 그렇게 살아가는 성직자들에게 우리는 거의 무한에 가까운 도덕성을 요구한다.
사실 교사나 성직자들에게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건 그들이 무언가를 가르치는 사람들이기
때문만은 아니다.사회가 엉망으로 망가지고 불의와 거짓이 난무하더라도 그들만큼은 추악한
대열에 끼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마저 거짓과 불의에 휩싸인다면 정말 그 사회는 아무런 희망도 없다. 그러니 그 사람들
이 우리 사회의 마지막 소금이며 횃불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사회가 혼란스럽고 탁해졌을 때 교수나 성직자들이 그것을
비판하는 성명이라도 발표하면 보수언론에서는 그들을 깍아내리느라고 난리가 난다.
어째서 학교와 교회에 있어야 할 사람들까지 나서느냐며 정교분리를 내세운다.정교분리가
어떻게 정립되었는지 그 역사성 따위는 거들떠 보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이른바 변질된 근본주의와 왜곡된 복음주의가 득세하는 한국의 교회공동체에서도 이들을
마뜩잖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냉정하게 따져볼 게 있다.우리가 먼저 스스로 되물어야 할 것은 교육자나 성직자가
사회문제에 대해 발언하지 않을 사회를 만들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을 두려워하고 부끄러워 해야 하는 게 먼저다. 그들이 바로 진리와 정의의 마지막
보루이기 때문이다
이들마저 침묵하고 눈치만 보고 있다면 그 사회에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그들이 진리와
정의를 외치는 이유는 가진자,힘센자들의 편이 아니라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의 편에 서있
기 때문이다
억눌리고 입에 자갈을 물린 사회가 이미 광야이다. 그들이 서있는 곳이 바로 광야이다.
가진자들의 욕망 때문에 겨우 몸 기대고 사는 공간마저 빼앗겨 울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들을 대변하는 것이 어찌하여 공산주의의 사주를 받은 것이라고 뻔뻔하게 타박할 수 있나?
억울하게 해고된 근로자들을 힘내라고 격려하고 살던곳에서 쫓겨나게 된 사람들을 위해
정부에 호소하면 "빨갱이"이라거나 용공세력" 혹은 친북.종북 세력"이라고 입에 거품을
물면서 비난하지 않았는가?
어떻게 약한 자의 권리를 대변하고 그들이 겪는 비인격적이고 반민주적인 고통을 대변
하는 것이 공산주의를 추종하는 것이라는 말인가.
승자독식을 너무나 당당하게 내세우는 이른바 신자유주의라는 비인격적이고 몰염치한
경제논리를 앞세워 대량해고를 남발하는 통에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속출해도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개인적인 이익도 바라지 않고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들을 응원하는 사람들을 잡아
가고 가두려는 세상이다.
그 마지막 순간에 나서야 하는 이들이 바로 교사외 성직자들이다 그들이 나서서 외친다는
것은 이미 사회적 타락이 임계점에 놓여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김경집/눈먼 종교를 위한 인문학
http://cafe.daum.net/daum1000
공감/책속의 한줄
첫댓글 공감합니다
스칼렛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