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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보다 30세가 위였던 포글은 빈 국립오페라의 명 바리톤이었고, 연가곡 [겨울 나그네]를 비롯해 수많은 슈베르트의 가곡을 소개해 슈베르트의 뛰어난 재능을 널리 알렸던 가수였다. 슈베르트는 포글을 위해 많은 가곡을 작곡해 주기도 해 둘은 서로 가까워졌다. 이들이 친하게 된 것은 ‘슈베르티아데’라고 하는 슈베르트를 돕기 위한 모임을 통해서였다.
‘슈베르트의 밤’이란 뜻의 이 모임에는 슈베르트와 어린시절부터 기숙사 생활을 같이 한 슈파운을 비롯, 시인인 마이어호퍼, 천재 화가 슈빈트, 그리고 포글이 참가하고 있었다. 멤버들은 밤마다 모여 음악을 연주하고 춤을 추고, 시를 읊고, 문학을 논했다.
유쾌하고 명랑하게 뛰노는 송어의 움직임
이 가곡은 송어가 유쾌하고 명랑하게 뛰노는 광경을 그렸다. 가곡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거울같이 맑은 시내에 송어가 화살처럼 헤엄치며 놀고 있다. 작중 화자는 이리저리 헤엄치는 송어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그때 한 어부가 송어를 잡기 위해 낚시를 드리운다. 그러나 물이 너무 맑아서 송어가 잡히지 않는다. 결국 어부는 물을 흐려놓은 후에 송어를 잡았고, 작중 화자는 어부의 속임수에 걸려든 송어를 당황스런 마음으로 바라보았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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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악장 Allegro vivace. 광범한 아르페지오의 연주가 시작된 뒤, 먼저 네 개의 현악기가 주제를 연주합니다. 이윽고 부음형(浮動音型)이 나타나고, 피아노가 힘차게 펄쩍 뛰어 오르는듯 연주합니다.
제2악장 Andante.
제5악장 Allegro giusto.
이 악장은 어디까지나 화려하게 진행됩니다. 주제는 희열에 넘치며, 원기 있고 화려하게 맺습니다
슈베르트 Franz Schubert (1797.1.31 ~ 1828.11.19 독일)
' 가곡의 왕 ' 이라는 별명을가진 슈베르트는 샘솟는 듯한 아름다운 선율에 로맨틱하고 풍부한 정서를 지닌 이채로운 작곡가였다. 19세기 독일 낭만파 음악의 창시자 중의 한 사람인 그는 초등학교 교장의 네째 아들로 태어났는데, 11세 때는 빈 궁정 예배당인의 소년 합창단 단원으로서 음악 생활을 시작하였다. 13세 때 작곡을 시작하였고, 15세에는 최초의 서곡을 썼다. 16세에 교향곡을 작곡한 이래 계속하여 2, 3번, 가곡 <실 잣는 그레첸>, <마왕(Erlhonig)>, <들장미> 등을 작곡하였는데, 18세 때까지는 모두 140곡이나 되는 아름다운 가곡을 썼다.
슈베르트는 성가대 훈련소 시절부터 음악 이론을 겸해서 배웠는데, 베토벤에 대하여는 그 당시부터 일생을 통해 흠모하고 존경하였다. 슈베르트는 1813년, 16세부터 그의 아버지를 도와 보조 교원으로 3년간 일한 것 외에는 아무런 공직도 없이 작곡에만 전념하였다. 그는 동료들과의 공동 생활에서 보헤미안적인 일과를 거듭했다.
가난한 생활 속에서 31세의 짧은 생애였지만 600여 곡이 넘는 예술 가곡을 비롯하여 교향곡, 피아노곡, 실내악 등 많은 유산을 남겼다. 그의 음악은 자연스러우며, 베토벤과 같이 무겁거나 격하고 장중하지 않다. 그 교묘한 멜로디의 구사 방밥은 모차르트에 비할 만하며 조국의 향토색을 반영한 <렌틀러(Landler)>에서는 무곡풍의 밝은 면을 보여 준다. 기악곡에 있어서도 성악곡과 같은 맛을 볼 수 있는데, 질서 정연한 형식미보다는 자유로움을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색체적인 화성 기법은 낭만주의음악에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슈베르트는 베토벤을 깊이 존경하였고, 또 평생의 대부분을 빈에서 보냈으며 그곳에서 음악활동을 하였으므로 베토벤과 비교해 보면 슈베르트의 작풍을 잘 이해할 수 있다. 베토벤은 음악을 계시로 생각하고 스스로 선민(選民)으로 자처하였다. 이것은 당시 독일 유식계급의 눈에 비친 프랑스혁명이나 나폴레옹 초기 활동의 지도이념에 바탕을 둔 것이다. 그러나슈베르트는 이와 같은 선민의식을 갖지 않았고, 스스로 즐기며 타인도 즐겁게 하려고 작곡을 하였다.
이 즐거움은 메테르니히의 보수정책에 의하여 언동에 제약을 받아 현실에서 눈을 돌려 예술에서 도피장소 를 찾으려는 오스트리아의 유식계급과, 거기에 안주하려는 서민계급의 즐거움으로 다분히 감상성(感傷性)·안이성·비논리성을 내포하고 있다. 여기에서도 슈베르트 음악의 특징의 하나인 비 구축성(非構築性)이 유래된다. 그의 교향곡·실내악·피아노소나타 등이 형식적으로는 소나타 이기는 하나 실제는 아름다운 선율의 연계로 되어 있음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그 이전의 빈고전파의 작곡가들과 같이 오페라·실내악·피아노곡·교회음악·가곡 등, 협주곡을 제외한 모든 부문에 걸쳐 있고 작품량은 그의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극히 많은 셈이다.
오토 에리히 도이츠의 연대순(年代順)으로 정리된 작품번호(D.로 약기)에 따르면, 작품수는 998 개에 이르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약 633곡의 가곡이며, 이전의 고전파시 대에는 별로 주목되지 않았던 가곡이라는 예술부문이 슈베르트에 의하여 아름다운 선율과 색 채에 넘치는 화성(和聲)에 힘입어 비로소 독립된 주요한 음악의 한 부문으로 취급된 점이다.
1814년의 가곡 《실을 잣는 그레트헨》이 새로운 가곡양식의 제1보가 되는데, 이것은 변주유절 가곡(變奏有節歌曲)의 형식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의 가곡형식은 그 밖에도 다양하여 《들 장미》와 같은 엄격한 유절가곡(有節歌曲), 자유스러운 보통가곡, 낭창(朗唱)양식을 갖는 것들이 있으며, 이 다양한 가곡형식은 그 후의 R.A.슈만, F.리스트로부터 R.슈트라우스에 이르는 독일 가곡의 작곡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그는 교향곡을 비롯한 기악곡분야에서도 풍부한 선율과 아름다운 화음에 의하여 고전적인 단정함과 낭만적인 서정성이 감도는 많은 작품을 창 출(創出)하였다.
W.뮐러의 시에 곡을 붙인 가곡집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처녀:Die sch쉗e M 웞lerin》(작품 25·D. 795·1823·전20곡), 《겨울나그네:Die Winterreise》(작품 89·D. 91 1·1827·전24곡), 교향곡으로는 《미완성교향곡》 B단조 제8번(D. 759·1823), 《교향곡 제9 번》 C장조 (D. 944·1828:종래에는 제7, 또는 제10이라고도 하였음), 실내악으로는 현악4중주 곡 D단조 《죽음과 소녀》(D. 810·1824), 피아노5중주곡 A장조 《숭어 Die Forelle》(D. 67 7·1819), 피아노곡으로는 8곡의 《즉흥곡:Impromptus》, 6곡의 《악흥(樂興)의 때:Moments Musicaux》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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