愚羊 지기님..안녕하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어찌 이렇게 저의 아버님에 대한 정보를 자세하게 기록 하신 건지요.. 제7유격대 소대장 박무상 까지는 정확합니다 만, 전사하신 날짜는 9월 10일 이라고 기재 된 게 다소 착오가 있었던 것 같아요.. 아마도 11월 10일이 전사일 에 가까운 것 같아요. 저의 가족에게 11월 20일에 전사통지서 가 도착하였으니 그렇게 생각 됩니다. 1950년 9월 10일은 선친께서 전선에 입대하신 날 과 비슷하지요...
고이민현 님.. 하세요. 에의 최고의 지성이 모인 전당 경기고등학교 제 56회 동기회 카페가 역시 최고의 지성인 답게 국립현충원 참배운동 을 위한 란이 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 도 대단한 역사적인 일이라 생각 되옵니다. 참으로 감사드리며 우리 다함께 호국영령들을 위로 해 드립시다 고맙습니다..
unclevan 님.. 하세요. 안철수 에 대한 글로 묘한 인연이 되어 이렇게 만나 뵈옵게 되어 무척 영광스럽게 생각 되옵니다. 준회원으로 가입하고서 인사및 요구사항을 말씀 드리려고 글을 쓰고져 하였으나 선택이 국립현충원 참배활동 란 밖에 없었시유. 그 때 저는 즉적으로 오늘이 현충일이니 저의 선친에 대한 글을 올려야 겠다고 작심 하였답니다. 좋은 인연으로 생각하옵고 계속해서 자랑스러운 전당의 귀 카페와 인연을 맺고 싶군요.. 저는 음악에 대하여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습니다.국내 유수의 음악 카페에 음원소스을 제공하며 기고 있답니다. 필요하시면 좋은 음악을 서로 공유 하고 싶군요..감사합니다
김정연 님이 오셨군요 , 오늘이 6월 6일 현충일, 해마다 맞이하는 날이 기도 하지는 감회가 더욱 새롭군요. 나이가 들수록 생리적인 기능이 말라 만 가고 있지만, 오직 눈물샘 만큼은 마르지 않고 왕성한 분비 활동을 하니 어찌된 일 입니까 김정연 약사님 어디 여기에 좋은 처방전의 약이 또 없습니까요
오늘 국립현충원 앞을 지나다가 그 일대 도로를 가득 매운 인파(참배객)를 보고 아~ 오늘 내 친구가 여기에 부친의 영령을 뵈오러 와 있겟구나 생각했었는데 역시 그랬구랴. 선친의 위패앞에 서있는 친구의 모습이 오늘따라 비감해 보이는 것은 선친의 유해를 아직 찾지 못한 한 때문인가요.
이상건 회장 님.. 올려주신 댓글에 감사할 뿐입니다. 그런데 선친의 위페 앞에 서있는 사진은 작년에 찍는 사진이지요 올해는 서초동의 아들 내외와 손자들을 대동하고 이곳을 방문 할려니 당일은 국가행사로 더욱 복잡할 것 같아 돌아오는 일요일( 6월 9일)에 함께 방문키로 일단은 날을 잡았답니다. 그러면 다음주 등산도 어쩔 수 없이 동작동 현충원 동산으로 가족들과 함께 갈 수 밖에 없을 것 같은 데--
경기고등학교 제 56회(1960졸업) 동기회 카페에 오늘 저의 부친에 대한 글을 올렸더니 카페지기 님을 비록하여 뜻이 깊으신 분이 처음으로 대하는 저를 격려하며 올린 댓글에 실로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과연 에서 최고의 지성을 자랑할 만 한 인재들이 모인 집단임을 즉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이 들은 <국립현충원 참배운동> 란이 카페매뉴에 도로 마련된 것을 보고 더욱 놀랐 답니다.
인형의 선친 영전에 고개 숙이고 기도합니다. 소제의 친족들 중 수많은 분들이 인형의 이야기처럼 산화하셨기에 남의 일 같지 않은 감회에 젖어듭니다. 지난 주말엔 이곳 군청 앞마당에 새겨진 한국동란때 전사한 네브라스카의 시골 농부청년들 묘비 앞에서 기도를 했었고요... 인형의 가슴에 새겨진 상흔, 소제의 것처럼 느껴진다면 이해를 하실른지요?
秋思 박웅근 선사 동기님.. 님의 선친께서도 제2공화국 시절에 장면 총리 까지도 인정 할 리 만큼 공직사회의 귀감이 되셨던 존경 받을 만한 어른으로 알고 있어요. 미국의 워싱톤 DC를 비롯하여 네브라스카 의 한 시골 농촌에서 까지도 한국의6.25 전쟁으 로 전사 하신 미군들의 추모행사가 끝임 없이 이어 지고 있다는 미국발 기사를 여러번 읽은 적이 있습니다. 정작 6.25 전쟁의 당사자격 인 대한민국 에서는 6월 달이 호국영령의 달 이라고 정해 놓 고 있지 만, 점점 잊혀져 가는 경향이 있어요.가정마다 국기를 게양하는 곳이 드물며 심지어 관공서 마처 조기를 달지 않은 다고 오늘 조간 신문에 꼬집었더 라구요. 감사합니다. 박선사 님.
담헌정 김박사 님.. 벌써 미국가셨어 안착 하신게 로군요..6월 6일 현충일을 맞아 마땅한 글을 올리기가 뭐해서 저의 선친에 대한 역사를 올렸습니다. 카피지기 하다 보니 저의 밑바닥 속속 드리 다 들어 내어 놓게 되는 군요. 사실인즉, 저의 6촌 형제 중 한분은 사회적으로 꽤 출세 하신분인데, 그분 역씨 저와 같은 유자녀 입장이면서 절대 본인이 그 본태를 드러 내지 않더군요.잘 아시겠지만, 우리 사회에는 유자녀 에 대한 냉대가 심할뿐 아니라 직장 내에서도 그의 본색을 드러 내었다 간 당장 목이 달아 난다고 한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학교 에 다닐 때 만 해도 유자녀라 고 자랑 할 만한 위치가 못 되어 항상 풀이 죽어 있었지요...
이러한 현상은 국가적인 면에서 크나 큰 손실을 낳고 있지요. 우선 미국만 보더라도 국가를 위하여 희생한 분의 본인 뿐 만 아니라 그 가족 까지도 끝가지 국가가 책임지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제 서야 국군 포로 문제며 아직 발굴되지 않은 국군 유해를 감식하는 문제를 인식하여 적극 나서고 있지만 이건 오래 전부터 했어야 할 문제인 걸요. 이런 면에선 오히려 북한이 남한 보다 우위에 있다고 봅니다. 그들은 이인모 와 같이 비전향 간첩까지도 철저히 관리하며 끝까지 그들 공화국으로 대리고 갔었지요. 그리고 그들의 유자녀들을 특별 영웅시 대접을 하여 국가의 최후의 보루에 고루 안배하며 대접을 후하게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황해신 동기 교수 님.. 안녕하셨시유? 현충일을 맞이하여 울러퍼지는 슬픈 곡조를 들으면 더욱 슬픔을 느끼게 되는 모양 이지요. 나이가 들 수록 눈물샘 에 물이 더 많이 고이는 가 보디요ㅎㅎ 그러고 보니 친구들이 박도사 라고 별명을 붙인 것이 제법 연기를 그럴뜻 하게 한다는 의미로 그렇게 지은 걸보면 어설프지만 황교수 님 까지도 감동 할 수 있는 연기력? 이라면 제법 성공한 케이스라고 사료 되는 바이올시다 .감사 하오 황교수 나으리~
요새 현충일은 아무런 의미도 없이 그냥 하루 노는날로 생각하는 사람들(특히 젊은이들)이 많은 것 같은데 선배님께는 꽃다운 젊은 나이에 조국을 지키다 산화하신 아버님을 생각케하는 가슴 아픈 날 이기도 하겠습니다. DNA를 채취하셨다니까 좋은 결과가 오기를 기도드리며 삼가 경의를 표합니다.
여지기 님.. 작년에 현충일 글을 올렸을때 저의 선친께서 강원도 화천군 구만리 전투장에서 전사하셨다고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여지기 님이 그곳 구만리 전투장 유적지 근방에서 군 복무를 하신적이 있다 하시며 지긋지긋한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그곳을 뒤돌아 보기 싫을 정도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 걸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언제 한번 시간이 나시면 그 곳을 함께 답사 해 보자고 제의 한적이 있지요. 지금도 그 제안이 유효 합니다. 일부로 라도 그곳을 함께 답사 하고 싶군요. 시간을 함께 내어 그곳을 함께 한번 가셔 선친께서 마지막 투혼을 불살랐던 6.25의 치열한 격전지 중 한곳을 직접 현장 경험을 하고 ~
첫댓글 경건한 마음으로 조국을 수호하다 산화하신 분들의 넋을 기립니다.
선배님과 가족분들의, 돌아가신 분을 그리는 애절한 마음이 절절하군요.
하루 빨리 유전자 감식의 성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김정연 님이 오셨군요, 오늘이 6월 6일 현충일, 해마다 맞이하는 날이 기도 하지는 김정연 약사님 어디 여기에
감회가 더욱 새롭군요. 나이가 들수록 생리적인 기능이 말라 만 가고 있지만, 오직 눈물샘
만큼은 마르지 않고 왕성한 분비 활동을 하니 어찌된 일 입니까
좋은 처방전의 약이 또 없습니까요
오늘 국립현충원 앞을 지나다가 그 일대 도로를 가득 매운 인파(참배객)를 보고 아~ 오늘 내 친구가 여기에 부친의
영령을 뵈오러 와 있겟구나 생각했었는데 역시 그랬구랴.
선친의 위패앞에 서있는 친구의 모습이 오늘따라 비감해 보이는 것은 선친의 유해를 아직 찾지 못한 한 때문인가요.
이상건 회장 님.. 올려주신 댓글에 감사할 뿐입니다. 그런데 선친의 위페 앞에 서있는 사진은 작년에 찍는 사진이지요
올해는 서초동의 아들 내외와 손자들을 대동하고 이곳을 방문 할려니 당일은 국가행사로 더욱 복잡할 것 같아 돌아오는
일요일( 6월 9일)에 함께 방문키로 일단은 날을 잡았답니다. 그러면 다음주 등산도 어쩔 수 없이 동작동 현충원 동산으로
가족들과 함께 갈 수 밖에 없을 것 같은 데--
경기고등학교 제 56회(1960졸업) 동기회 카페에 오늘 저의 부친에 대한 글을 올렸더니 카페지기 님을에서 최고의 지성을 자랑할 만 한 인재들이 모인 집단임을 즉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도로 마련된 것을 보고 더욱 놀랐 답니다.
비록하여 뜻이 깊으신 분이 처음으로 대하는 저를 격려하며 올린 댓글에 실로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과연
이 들은 <국립현충원 참배운동> 란이 카페매뉴에
인형의 선친 영전에 고개 숙이고 기도합니다.
소제의 친족들 중 수많은 분들이 인형의 이야기처럼 산화하셨기에
남의 일 같지 않은 감회에 젖어듭니다.
지난 주말엔 이곳 군청 앞마당에 새겨진 한국동란때 전사한
네브라스카의 시골 농부청년들 묘비 앞에서 기도를 했었고요...
인형의 가슴에 새겨진 상흔, 소제의 것처럼 느껴진다면 이해를 하실른지요?
秋思 박웅근 선사 동기님.. 님의 선친께서도 제2공화국 시절에 장면 총리 까지도
인정 할 리 만큼 공직사회의 귀감이 되셨던 존경 받을 만한 어른으로 알고 있어요.
미국의 워싱톤 DC를 비롯하여 네브라스카 의 한 시골 농촌에서 까지도 한국의6.25 전쟁으
로 전사 하신 미군들의 추모행사가 끝임 없이 이어 지고 있다는 미국발 기사를 여러번 읽은 적이
있습니다. 정작 6.25 전쟁의 당사자격 인 대한민국 에서는 6월 달이 호국영령의 달 이라고 정해 놓
고 있지 만, 점점 잊혀져 가는 경향이 있어요.가정마다 국기를 게양하는 곳이 드물며 심지어 관공서
마처 조기를 달지 않은 다고 오늘 조간 신문에 꼬집었더 라구요. 감사합니다. 박선사 님.
6-25 사변이 역사이기 이전에 사건인 시대의 일원으로
박 형의 개인사에 큰 충격과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박형의 간절한 마음에 그나마 열매가 영글기를 믿어마지 않습니다.
담헌정 김박사 님.. 벌써 미국가셨어 안착 하신게 로군요..6월 6일 현충일을 맞아 마땅한 글을 올리기가
뭐해서 저의 선친에 대한 역사를 올렸습니다. 카피지기 하다 보니 저의 밑바닥 속속 드리 다 들어 내어 놓게
되는 군요. 사실인즉, 저의 6촌 형제 중 한분은 사회적으로 꽤 출세 하신분인데, 그분 역씨 저와 같은 유자녀
입장이면서 절대 본인이 그 본태를 드러 내지 않더군요.잘 아시겠지만, 우리 사회에는 유자녀 에 대한 냉대가
심할뿐 아니라 직장 내에서도 그의 본색을 드러 내었다 간 당장 목이 달아 난다고 한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학교
에 다닐 때 만 해도 유자녀라 고 자랑 할 만한 위치가 못 되어 항상 풀이 죽어 있었지요...
이러한 현상은 국가적인 면에서 크나 큰 손실을 낳고 있지요. 우선 미국만 보더라도 국가를 위하여
희생한 분의 본인 뿐 만 아니라 그 가족 까지도 끝가지 국가가 책임지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제 서야
국군 포로 문제며 아직 발굴되지 않은 국군 유해를 감식하는 문제를 인식하여 적극 나서고 있지만 이건
오래 전부터 했어야 할 문제인 걸요. 이런 면에선 오히려 북한이 남한 보다 우위에 있다고 봅니다.
그들은 이인모 와 같이 비전향 간첩까지도 철저히 관리하며 끝까지 그들 공화국으로 대리고 갔었지요.
그리고 그들의 유자녀들을 특별 영웅시 대접을 하여 국가의 최후의 보루에 고루 안배하며 대접을 후하게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나는 드라마를 보면서도 울기를 잘하는 성격인데 나이를 먹어가며 더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박이환이 사진을 보는데 마음이 짜해지며 눈물이 나네요.
이환이의 아픔이 전해오는것 같습니다.
황해신 동기 교수 님.. 안녕하셨시유? 현충일을 맞이하여 울러퍼지는 슬픈 곡조를 들으면 더욱
슬픔을 느끼게 되는 모양 이지요. 나이가 들 수록 눈물샘 에 물이 더 많이 고이는 가 보디요ㅎㅎ
그러고 보니 친구들이 박도사 라고 별명을 붙인 것이 제법 연기를 그럴뜻 하게 한다는 의미로
그렇게 지은 걸보면 어설프지만 황교수 님 까지도 감동 할 수 있는 연기력? 이라면 제법 성공한
케이스라고 사료 되는 바이올시다 .감사 하오 황교수 나으리~
安濟 정민용 동기 교수가 별도로 전화로 본인에게 위로의 말을 전해 왔다 . 참으로 고맙다고 생각 됩니다..
요새 현충일은 아무런 의미도 없이 그냥 하루 노는날로 생각하는 사람들(특히 젊은이들)이 많은 것
같은데 선배님께는 꽃다운 젊은 나이에 조국을 지키다 산화하신 아버님을 생각케하는 가슴 아픈 날
이기도 하겠습니다. DNA를 채취하셨다니까 좋은 결과가 오기를 기도드리며 삼가 경의를 표합니다.
여지기 님.. 작년에 현충일 글을 올렸을때 저의 선친께서 강원도 화천군 구만리 전투장에서 전사하셨다고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여지기 님이 그곳 구만리 전투장 유적지 근방에서 군 복무를 하신적이
있다 하시며 지긋지긋한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그곳을 뒤돌아 보기 싫을 정도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 걸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언제 한번 시간이 나시면 그 곳을 함께 답사 해 보자고 제의 한적이 있지요.
지금도 그 제안이 유효 합니다. 일부로 라도 그곳을 함께 답사 하고 싶군요. 시간을 함께 내어 그곳을 함께
한번 가셔 선친께서 마지막 투혼을 불살랐던 6.25의 치열한 격전지 중 한곳을 직접 현장 경험을 하고 ~
직접 현장 경험을 하고 싶군요.. 2000년경 저의 두째 아들이 군법무관으로 화천의 모부대에 발령이 났을 때
우리 가족이 다 함께 강원도 화천의 그 부대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도 실로 묘한 감정을 느낀적이 있었지요..
이환형, 하루빨리 부친의 유해가 발굴되었다는 소식이 오기를 기원 합니다. 지금의 우리들이 이만큼 살고있는게
모두 산화하신 그 분들이 나라를 지켜 주셨기 때문이지요. 외국에 나갈때 마다 그 고마움을 느낍니다.
桐谷 인형 해외에 다니시느라 수고가 많소이다.. 우리들은 안방에서 편안하게 구경 잘 하고 있소이다.. 으로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지요. 배려해 주시는 마음 감사히 받겠습니다.
외국에 계시는 분들은 자동적
항상 건안하시길 빌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