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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풍남문 | 해변 휴양지가 아니라면 여름 여행은 고행입니다. 내리쬐는 뙤약볕 아래서 하염없이 걷다보면 몸의 기가 다 빠져나가 정신이 혼미해 질 지경입니다. 제아무리 좋은 경치라도 눈에 들어올 리 없습니다. 이런 사정으로 선선한 바람 불 때까지 '방콕'에 들어가기로 마음먹은 배낭족들을 위해 임상실험을 거친 테마여행 하나를 추천합니다. '나 홀로 떠나는 1박2일 전주 식도락 여행'입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낮에는 맛의 고장인 전주에서도 소문난 식당만 찾아다니며 식도락을 만끽하다가 선선한 새벽이나 밤에 관광지 구경도 하고 산책도 하는 겁니다. 맛집을 선택하는 조건이 있습니다. 1인분만 시켜도 흔쾌히 내주는 집, 그리고 무엇보다 가격이 만만한 집입니다. 최근 한 그릇에 1만 원을 돌파한 전주비빔밥은 그래서 좀 애매합니다. 한정식은 당연히 패스입니다. 전주 음식에서 비빔밥과 한정식 빼면 뭐가 있느냐고요. 너무 많아서 고민입니다. 한번 읊어볼까요.
# 베테랑 칼국수
점심 먹기에 좋은 '베테랑 칼국수'(063-285-9898)는 한옥마을 성심여고 근처에 있습니다. 원래 이름은 베테랑 분식입니다만 칼국수(5000원)가 하도 유명해 요즘은 베테랑 칼국수로 통합니다. 뭐 별다른 맛이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맛있습니다. 달걀과 들깨를 듬뿍 풀어 국물이 뻑뻑하고 얼큰합니다. 바지락 칼국수처럼 고급스럽게 시원한 맛은 아니고 남녀노소 부담없이 좋아할 만한 분식점 국수 맛입니다.
# 흑임자 빙수
점심과 저녁 사이 나른한 오후엔 달달한 게 당깁니다. 시원하면 더 좋겠지요. 한옥마을 '외할머니 솜씨'(063-232-5804)라는 집의 흑임자 빙수(5000원)가 딱입니다. 솜씨는 외할머니 것인지 몰라도 빙수 제조자는 젊은 훈남입니다.
간 얼음 위 푸짐한 단팥과 쫄깃쫄깃한 인절미는 그다지 특이할 게 없습니다만, 먹어보면 달달한 팥맛 뒤에 구수한 흑임자 맛이 따라옵니다. 단팥과 흑임자의 조화가 오묘합니다. 한 그릇이면 더위가 싹 가십니다.
# 반야돌솥밥
그래도 한 끼는 밥을 먹어야죠. 저녁에는 반야돌솥밥(063-278-3003·본점)이 어떨까요. 추가되는 재료에 따라 쇠고기 돌솥밥, 인삼 돌솥밥처럼 값비싼 메뉴도 있지만 기본메뉴인 반야돌솥밥(7000원)이면 충분합니다. 돌솥밥에 풀어주는 날달걀은 걱정마세요. 뜨거운 돌솥 덕에 금방 익습니다. 짜지않고 맛있는 양념장 끼얹어 먹으면 따로 찬이 필요없지만, 찬도 훌륭합니다. 석쇠에 구운 더덕이며 전, 된장나물무침, 시원한 무물김치 어느 하나 젓가락 안 가는 게 없습니다.
# 여행와서 시원한 맥주 한 잔 안하면 섭섭하죠. 밤산책 후엔 한옥마을 인근 경원동의 전일슈퍼(063-284-0793)를 찾아보세요. 전일갑오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갑오징어를 술안주로 내기 때문이랍니다. 먼저 맥주를 한두 병 산 뒤 테이블에 앉아 안주를 시킵니다. 황태구이, 갑오징어, 달걀말이가 있습니다. 차가운 맥주에는 약간 고릿하면서 쫄깃한 황태가 가장 궁합이 좋습니다. 이런 형태의 주점을 전주에선 가맥(가게맥주)이라고 부릅니다.
# 콩나물국밥
전날 밤 한잔 했든 안했든 다음 날 아침 메뉴는 콩나물국밥입니다. 전주 사람들은 정말 콩나물국밥(5000원)을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전주비빔밥 맛있는 집 물어보면 '아무데나 가도 된다'고 대답하는데 콩나물국밥집 추천하라면 주관이 뚜렷해집니다. 남부시장의 현대옥(063-282-7214)파, 중앙동의 삼백집(063-284-2227)파, 경원동의 왱이집(063-287-6980)파로 나뉘어 말다툼을 할 정돕니다. 세 곳 다 먹어봤는데 큰 차이없이 맛있습니다.
# 꽈배기
점심 먹기 전에 주전부리 생각나시죠. 중앙동 영화거리에 꽈배기를 파는 집이 있습니다. 상호가 '꽈배기'입니다. 노부부가 10년째 하고 있는 가게인데 오전에 반죽해서 가득 튀겨낸 꽈배기가 오후 2시쯤이면 다 팔리고 없습니다. 어떻게 반죽했는지 스펀지처럼 탄력있는 질감이 매력적입니다.
# 상덕 카레
점심 때가 되면 다시 한옥마을로 돌아가 '상덕'(063-288-0824)의 카레를 맛보세요. 고기를 빼고 감자, 버섯, 견과류를 듬뿍 넣어 만든 채식카레(요거트 디저트 포함 6000원)입니다. 밥 위에 얹어주는 공갈빵은 카레에 찍어먹습니다.
# 백일홍 찐빵
오후 출출한 시간대 간식은 찐빵이 어떻습니까. 아쉬운 대로 저녁 대신 먹기에도 괜찮습니다. 한옥마을 인근 백일홍빵집(063-286-3697)에서는 찐빵과 만두를 팝니다. 만두도 맛있지만 역시 대표선수는 찐빵(8개 3500원) 입니다. 탱탱한 빵 속에 적당히 달달한 팥소가 한가득입니다. 설령 방금 밥을 먹었더라도 그 유혹을 뿌리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백일홍 찐빵도 오후 늦게 가면 다 팔리고 없을테니 서두르세요.
짐승보듯 저를 보는 시선, 느껴집니다. 좋습니다. 1박2일동안 이걸 다 먹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일단 전주에 다녀와서 얘기하는 걸로 합시다.
# 아침: 연꽃 활짝 핀 덕진공원… 오목대 오르면 한옥마을 한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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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나선 한옥마을 거리에는 인기척이 드물다. 지저귀는 새 소리와 달아오르기 전의 여름 공기가 상쾌하다. | 한옥마을이 아름답다 한들 한여름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걷다보면 짜증만 난다. 아쉽지만 한낮의 산책은 선선한 가을날의 즐거움으로 미뤄두고 비교적 선선한 이른 아침, 혹은 해진 뒤 전주의 풍광을 즐겨보자.
아침 산책 갈만한 곳이라면 덕진공원을 첫 손에 꼽아야 하겠다. 전주 시민들이 사랑하는 휴식처 덕진공원은 전주역 북쪽 덕진호 일대의 유원지다. 덕진공원의 자랑거리는 호수를 가득 메운 연밭인데 특히 7월 중순께면 연꽃이 활짝 펴 장관을 이루며 이 때쯤 덕진공원 연꽃축제도 열린다. 덕진공원의 사진촬영 포인트는 전망대다. 구름다리를 건너 호수 한가운데 팔각정으로 가면 2층에 커피점이, 3층에 기념품 판매점을 겸한 전망대가 있는데 호수에서는 가장 높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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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온 후 물기를 가득 머금은 덕진공원. 연인이 연밭 위 구름다리를 건너고 있다. | 덕진공원은 아침 산책도 좋지만 저녁에도 거닐기 좋다. 저녁 8시쯤 덕진호 한가운데서 분수쇼가 열리는 데 인근의 도시 야경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한옥마을에서 차로 25분쯤 걸린다.
한옥마을에서 숙박했거나 아침에 살짝 늦잠까지 잤다면 한옥마을 내 오목대에 올라보자. 오목대는 훗날 태조가 되는 이성계 장군이 고려 3도도순찰사로 있을 당시 군사를 이끌고 가다 잠시 머무른 장소다. 금강으로 침입한 왜구가 퇴로를 찾아 남원으로 내려오자 장군이 이들과 맞서싸워 승리한 뒤 돌아오는 길에 이 곳 오목대에서 개선 잔치를 베풀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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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마을의 전망대인 오목대 풍경. | 달력에서 흔히 보는 전주마을 지붕 사진은 대개 이 오목대 전망대에서 촬영한 것이다. 상쾌한 아침 숲공기를 마시며 오목대에 오르다보면 머리를 옹기종기 맞댄 한옥 기와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전주에 왔구나'하고 실감하는 것도 바로 이 때다. 많이 덥지 않으면 내친 김에 한옥마을을 한바퀴 둘러보자.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봉안된 경기전과 전동성당, 전주향교 정도만 돌아봐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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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촬영지로도 유명한 전주향교. |
특히 전주향교는 지난해 말 방영돼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의 촬영장소로도 유명한 곳이다. 유생들을 위한 교육기관으로, 지금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1410년 건립 당시에는 건물이 99칸에 이르렀다고 한다. 기숙사인 동·서재, 강당인 명륜당 등 드라마 장면과 오버랩되는 풍경을 볼 수 있어 성균관 스캔들에 빠져 살았던 '성스 폐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향교 내에는 수령이 250~400년에 이르는 은행나무가 몇그루 있는데 크기도 크기지만 수형이 무척 아름답다.
# 저녁: 경관조명 켠 풍남문 위풍당당… 해질녘 전동성당의 장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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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성당은 하늘에 푸른 빛이 남은 저녁 무렵에 가장 아름답다. | 해가 저물고 한낮의 더위가 가시면 가벼운 차림으로 저녁 산책에 나서보자.
전주에서 낮보다 밤이 더 좋은 곳이라면 뭐니뭐니해도 풍남문이다. 경기전 맞은 편의 남부시장한가운데 서 있는 풍남문은 옛 전주읍성의 남문으로 보물 제308호다. 주위가 어둑어둑해지면 풍남문은 은은한 경관조명을 받아 위풍당당한 자태와 성곽의 고운 곡선을 더 신비스럽게 드러낸다. 시끌벅적한 시장 가게도 모두 문을 닫고 달빛이라도 교교히 비추는 밤이면 정취는 한층 더해진다.
한옥마을 내 전동성당은 막 해가 질 무렵 하늘에 아직 파란색이 남아있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천주교의 대표적인 순교지이기도 한 전동성당은 1908년 프랑스인 신부의 설계로 완공된 건물로, 호남지방의 서양식 근대건축물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래된 것이다.
로마네스크 양식과 비잔틴 양식이 결합된 종머리 부분은 붉은 노을, 혹은 검푸른 저녁 하늘 아래서 검은 실루엣으로 변해 장관을 연출한다. 밤에는 정문을 폐쇄하지만 경관조명이 밝혀진 성당 야경은 볼 수 있다.
한옥마을 밤산책도 분위기를 내는 데 그만이다. 골목마다 어둡지 않게 등을 밝혀두므로 고즈넉한 한옥 거리의 정취를 느끼며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볼 수 있다. 매년 여름방학이 시작될 때쯤이면 전주시가 7시부터 '한옥마을 나이트투어'를 마련하니 참가해보는 것도 좋겠다. 경기전 전동성당 등을 돌아보고 오목대에 올라 한옥마을 야경도 감상한다. 마을 한가운데 600년 된 은행나무에 얽힌 얘기도 들을 수 있다.
설레는 마음에 잠도 오지 않는 여행 첫날 밤, 여행지의 토속주 한 잔이면 단잠에 빠져들 수 있을 것 같다. 전주의 토속주라면 역시 이강주지만 특유의 생강향 때문에 꺼리는 사람이 많다. 그렇다면 전주 곳곳에 조성된 막걸리타운을 찾아가보자. 경원동 삼천동 서신동 인후동 평화동 효자동에 있었던 막걸리 거리를 전주시가 홍보해 관광자원화 한 곳들이다. 막걸리 한 주전자에 1만2000~1만5000원 정도이며, 열 대여섯가지의 안주가 따라나오는 곳이 많다. 삼천동 '두 여인'(063-221-0271)이 블로거들 사이에서 유명하지만 서비스는 다른 곳과 큰 차이가 없다. 한옥마을에서 막걸리 타운까지 나가기가 귀찮다면 경기전 건너편 남부시장에서 막걸리를 마셔도 좋다.
# 낯선 곳, 낯선 이와의 만남…게스트하우스
▶주머니 사정이 뻔한 나홀로배낭족에게 숙박비 5만 원이 넘는 한옥숙소는 부담스럽다. 이럴 땐 한옥마을의 전주게스트하우스(사진·063-286-8886)를 이용해 보자. 전주를 찾는 외국인들을 위해 처음 문을 열었지만 국내 여행객도 이용할 수 있다.
TV는 없지만 2층 침대와 침구를 비롯한 비품이 청결하다. 깨끗하고 온수가 잘 나오는 공동 화장실도 크게 불편한 점은 없으며 약간의 요금을 지불하면 세탁기도 사용할 수 있다.
게스트하우스의 매력은 '낯선 곳에서 낯선 이와의 사귐'이라는 여행의 로망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싫든 좋든 한 방을 쓰게 된 생면부지의 여행객들은 자연스럽게 통성명을 하고 친해지게 마련이다. 12시 혹은 조금 더 늦게까지 개방하는 1층 라운지에서는 그 날 처음 만난 국내외 여행객들이 함께 맥주를 마시며 즐기고, 이 때 쌓은 우정으로 남은 여행 일정을 함께 하기도 한다.
4인실(주중 1만9000원, 금토일 및 성수기 2만2000원), 6·8인실(1만8000원, 2만 원) 및 캠핑룸(1만5000원)이 있는데 이맘때면 주말은 물론 주중에도 이용객이 많아 늘 방이 가득 차므로 예약을 서둘러야 한다. cafe.daum.net/chonjukorea/에 방문해 회원가입한 뒤 예약할 수 있다. 경기전 뒤편에 있다.
▶나무그늘게스트하우스(010-9121-9166)도 한옥마을에 있다. 현대식 내부에 한옥 외관으로 한옥 숙박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예쁜 숙소다. 도미토리(여러 명이 함께 숙박하는 전형적인 게스트하우스형 방)는 5인실 하나밖에 없는데다 여성 여행객만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대학생 여행자가 부쩍 늘어나는 7월 주중에는 대학생에 한해 별도의 화장실이 딸려 있는 2인실을 20% 할인해 준다. 도미토리는 1인당 2만 원이다. http://blog.naver.com/dudntjsdk 를 방문해 안부게시판에서 예약할 수 있다. 성심여고 근처에 있다. |
첫댓글 좋은 여행지 같네. 한번 가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