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길/서울대 명예교수
우리 모두가 국토의 분단에서 오는 갖가지 불행을 체험을 통하여 절실하게 느끼듯이
일제시대의 한국인들은 민족적 주권의 상실에서 오는 불행을 주야로 뼈저리게 당해야
했다.
독립을 잃은 민족이 받는 고통과 비애는 모든 사람들에게 직접적이고 현실적이었던
까닭에 대의와 명분을 떠나서라도 주권의 회복에 대한 염원은 누구에게나 매우 강렬
하고 자연스러운 심정이었다.
이러한 염원은 민족의식으로 발전하기 마련이니 일본치하에 살던 한국사람들의 의식
구조 속에는 민족주의적 요소가 도사리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민족 주권의 회복이라는 것이 너무나 어려운 과제였으며 그 쟁취의 시도는 곧 죽음을
각오한 모험이었던 까닭에 함부로 그 심중을 행동으로 나타내지 못했을 뿐이다.
임시정부 내지 독립군에 투신함으로써 생명을 걸고 싸운 사람들도 있었으며 소극적이고
음성적인 반항에 그친 사람들도 있었다.
일본사람들의 앞잡이가 되어 친일파의 오명을 남긴 사람들도 더러 있었으나 이들의 민족
의식은 양심의 가책 또는 기정사실을 실리를 앞세운 변명의 형태로 일그러져 나타났다.
당시 일반 민중의 민족의식이 어느 정도의 잠재력을 가졌는가는 3.1 운동을 통하여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소설가 중에서 민족주의를 대담하게 표명한 대표적인 인물로서 "이광수"를 알고 있다.
그는 <어린 벗에게> <방황>과 같은 초기 작품에서 "조선사람"을 위하고 "동족의 교화"
를 위하여 일신을 바치고자 하는 젊은이의 결심을 통하여 민족주의의 싹을 드러냈고
그의 최초의 장편소설 <무정>을 통하여 민족주의 敎化사상을 피력하였다.
1917년에 발표한 <개척자>에서 춘원 이광수의 민족주의 사상은 한 걸음 더 구체적인
표현을 보였고 그 뒤에 쓰인 역사소설 <단종 애사>와 <이순신> 그리고 농촌을 무대로 한
<흙> 등에서 그의 민족주의 내지 민족 교화 사상은 더욱 원숙한 경지를 보였다.
이광수의 민족주의가 정치적 항쟁의 방향보다는 민족의 교화에 역점을 둔 것은 여러가지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민족주의를 정치적 항쟁의 방향으로 고취하기보다는 교화의 방면으로 전개시키는 것이
일본정부의 직접적 탄압을 피하기 위해 유리했다는 점도 있었을 것이고 민족의 밝은 내일
을 위해서는 우선 교화를 통한 민족의 실력 양성이 앞서야 한다는 판단도 있었을 것이며
더욱 근본적인 사유로는 武骨이 못되는 문인으로서의 춘원의 기질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쨋든 현실에 지나칠 정도로 민감했던 춘원은 30세에 <민족개조론>을 발표하여 "반역자"
로서의 규탄을 받았고 일제 말기에는 "변절자" 또는 "친일 문학가"로서의 낙인까지 찍혔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애석한 마음으로 기억하는 사실이다.
이광수의 작품에 나타난 민족주의는 다른 어떤 사람의 사상을 표현한 것이라기보다. 바로
작가 자신의 사상을 표명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며 타당성있는 견해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당시 한국의 지성인 또는 일반에게 상당히 널리 퍼져있던 사상을 대변한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춘원이 역설한 "민족주의 사상은 일제하의 한국사람이 가졌던 민족 감정의 "원류"에 근원
을 두었던 것이며 특별히 개인적이거나 독창적 성질의 것은 아니다.
그의 민족주의가 독자들의 가장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것도 우리민족의 공통
된 생활감정의 소산이었다는 사실일것이다.
사상가로서의 이광수가 해야 했던 일은 이미 한국의 대중 속에 널리 깃들어 있던 민족의식
에 방향을 제시하고 그것을 조직화함으로써 거대한 역량으로 육성시키는 일이었을 것이다
춘원도 그러한 사명감에 불탔던 사람이며 민족의 계몽 농촌의 부흥.등 구체적인 방법을
통하여 그 사명의 완수를 꾀한 바 있었으나 당시 여건이 그 뜻을 이루도록 허락하지 않았
으며 춘원 자신이 오히려 딜레마에 빠져 방향을 가누지 못한 꼴이 되었다
소설에 나타난 한국인의 가치관
우송 김태길 지음
http://cafe.daum.net/daum1000
공감/책속의 한줄
첫댓글 현재의 정치인들은 민족정신을 알고 있을까 하는 마음입니다
감사합니다 4748님.숫자의 의미가 궁굼하군요
감사드려요
왝더독님
고맙습니다
춘원 이광수에 대한 친일 행적은 여러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제가 이광수의 작품을 제대로 다 읽지도 않았기에
애국적 친일이었는지, 골수 친일이었는지,
그냥 변절자였는지 판단 할 수는 없지만
민족 문제연구소가 편찬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 되어 있고
2009년 대한민국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편찬한
친일인명사전에도 수록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시대상황에 따라서 지식인들의 평가는 달라질것 같기도 합니다
친북 종북.그런 비슷한 친일이라면 억울하겠어요.
일제탄압에 억눌려 눈치보며 글을 써야만 했던 시대의 아픔입니다
작가가 바라본 일본인의 장점을 그대로 표현한것을 친일이라 평가한다면
인간과 자연에 대한 통찰의 결여라 말하고 싶네요.
한 시대의 역작은 보존되어야 합니다
독재정권 때 빨갱이로 몰아 반민족행위로
살상을 당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변절자라는 뉘앙스 ........생각해봅니다
위에 올린 <우리는 모두 이중개념주의자다> 인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것같아서 선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