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필자는 비록 많이 미흡한 내용이지만 교회의 회복과 갱신에 관한 글을 다수 올렸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분들은 이런 질문을 하시더군요. "그래요. 이제 문제가 무엇인지는 대략 알겠습니다. 그러면 지금 당장 우리 성도들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계속 구경만 해야 하나요?"
이는 물론 필자 또한 평소에 늘 생각하고 기도하던 내용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해결책이 그리 간단하고 만만할 리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작금의 상황은 성도들이 더 이상 무조건 손을 놓고 방관할 수만은 없는 막다른 골목에 도달한 듯 합니다. 그래서 부족하나마 필자가 소망하고 있던 잠정적 실천 방안을 간략하나마 요약해 보았습니다. 추후에 다른 분들이 더욱 구체적이고 실효성이 있는 새로운 대안들을 계속 추가하고 보완해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교회다운 교회'에 출석하자
최근 필자는 SNS에 교회 운영과 관련하여 <'목사 중심 교회'에서 '성도 중심 교회'로> 라는 제목의 짧은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글의 요지는 목사직의 교권 집중을 제한하고, '가르치는 장로'인 목사보다는 '다스리는 장로'들 중에서 당회장을 세우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랬더니 거기에 달린 반박 댓글 몇 개가 아주 가관이었습니다. 어느 목사님 왈 "교회는 목사도 성도도 아닌 예수님이 사랑으로 다스리는 신정통치입니다. 성경의 큰 그림을 못보고 모범론적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초보적인 가르침에 속지 맙시다." 라고 하셨습니다. 또 다른 한 분은 아예 한술 더 떠서 "개혁의 이름으로 또 분열을 조장하시네요. 교회는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입니다. 예수님이 세우셨고 예수님이 주인이십니다" 라고 강변하시더군요". 이건 무슨 손오공 구름타고 날아다니는 이야기도 아니고 도대체 말이 안 통합니다.
이는 마치 팔이 가려운 데 엉뚱하게 다리를 긁고 있는 사람을 본 심정이었습니다. 소통이 안 되는 것이지요. 교회 운영에 대한 제도적 개선책을 논하고 있는데, 여기에 갑자기 뜬금없이 무슨 '하나님 중심'과 '예수님 통치'를 주장하시는지 통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목사가 당회장 하면 하나님 중심 통치이고, 장로가 당회장 하면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는 말인가요? 아니면, 하나님이나 예수님을 직접 당회장으로 모시자는 것인지요. 하여튼 알고도 고의로 저러시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도저히 이해가 불가한 댓글입니다.
글 서두에 굳이 이런 이야기를 왜 소개드리는가 하면, 요즘 일부 대형 교회의 고명하신 목사님들 설교와 글들이 자주 저런 식으로 엉뚱하고 궤변적이기 때문입니다. 소통이 불통입니다. 틈만 나면 문제의 본질과 진실을 왜곡하고 딴소리를 늘어놓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분들의 말과 행실이 너무 박자가 안 맞습니다. 돈을 갈취하는 자들이 충성을 강조합니다. 불의는 못 본 체하는 자들이 하나님 나라를 노래합니다. 부패는 모르는 척 하는 자들이 성공을 자랑합니다. 표절과 거짓을 일삼는 자들이 이단을 경계하자고 합니다. 교회 세습은 상관하지 않는 자들이 말씀대로 살자고 떠듭니다. 구제는 생색만 내는 자들이 구원을 열창합니다. 상식은 짓밟는 자들이 율법을 지키자고 설교합니다. 이는 마치 전과 14범인 어떤 위인이 자기집 가훈이 '정직'이란 말을 내뱉고 있던 것과 매우 유사한 느낌을 줍니다. 종으로도 쓸 수 없는 자들이 감히 거룩한 교회의 강단을 어지럽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교회의 본질을 성실하게 추구하는 건강한 교회에 다니는 것은 대단한 복입니다. 바른 교회는 성도들을 바른 생활과 바른 사역으로 이끌어 주고, 삶에 큰 힘과 활력과 등대와 방주가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떤 교회가 진정 교회다운 교회일까요. 구태여 그것을 여기에 다시 길게 서술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바른 성도라면 이미 이를 잘 분별할 능력을 지니고 계신다고 봅니다. 다만, 여기서는 성도들이 필히 '조심'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몇가지 유형의 교회만 언급하고자 합니다.
이런 요주의 교회들을 대충 나열하자면... 설교가 비성경적인 교회, 교회 장부 열람을 허용하지 않으며 재정이 불투명한 교회, 목사 독재로 당회가 어용화한 교회, 장로 독재로 목회자를 자주 교체하는 교회, 교회 정관이 부적절한 교회, 담임목사 임기가 없는 교회, 담임목사 연간 수령 총액이 고교 교사 연봉보다 높은 교회, 불건전한 은사 집회를 하는 교회, 주보나 기도나 광고에 헌금자를 공개하는 교회, 십일조를 강요하는 교회, 자식에게 세습을 하는 교회, 대형화를 추구하는 교회, 선교 단체나 학교나 묘지 또는 기타 사업을 빙자하여 법인이나 재단을 만들고 목사의 친인척으로 이사진을 채우는 교회 등이 그것입니다.
가정 교회 공동체의 확산
두번 째 방안은 교회다운 교회가 주변에 없을 경우입니다. 타지역으로 이사를 자주해보신 분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주변에 교회가 단 하나뿐이라면 굳이 큰 고생할 필요도 없겠지만, 일반적인 경우를 보자면, 오히려 너무 많아서 걱정일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몇 분의 지인들로부터 들은 실제적 경험담을 그대로 옮기자면, 6개월 간 집 근처의 교회들 무려 20여 곳을 가 보았어도 결국은 교회를 선택하지 못 하고 낙심한 경우가 보통이었습니다. 물론 차로 한 시간 이상 떨어진 거리에는 적당한 교회들이 더러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자녀들과 함께 온 가족이 부담없이 출석하며 정상적인 교회 활동을 하기에는 큰 무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럴 경우는 '가정 교회'로 모일 것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이참에 아예 영적 출애굽을 감행해서, 15세기의 그 개혁자들처럼 거짓된 가르침과 불의한 사역과 부정한 교권에 대항하여 '새롭게 헤쳐 모이자'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우선 뜻이 맞는 두세 가정이 모여도 좋습니다. 일단은 주일 예배와 성경 모임과 아이들 교육에 중점을 두고, 나중에 전도와 구제와 지역 봉사 등 필요한 사역은 공동체의 역량에 맞게 점차 확대하면 될 것입니다.
이런 가정 교회의 가장 중요한 장점 중 하나는 일반적으로 가정집에서 모이고 유급 사역자가 거의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관리비나 인건비 지출이 적어 경제적 자립이 용이하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교인들의 자발적인 헌금만을 받아도 충분히 공동체를 관리하며 운영할 수 있고, 오히려 추가로 극빈층 구제와 사회 봉사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보다 자세한 정보를 원하시는 분은 인터넷에서 '가정 교회'를 검색하시면 쉽게 얻으실 것입니다.
아무튼 매우 고무적인 사실은 현재 미국에서도 다양한 모습의 가정 교회들이 급격히 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캘리포니아 주 벤추라에서 종교 변화를 연구하고 있는 '바르나 그룹(Barna Group)'은 몇해 전 실시한 조사에서 미국 성인의 약 9%가 매주 가정교회에 참석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10년 전에 비해 무려 9배나 증가한 것입니다. 또 미국인 7,000만 명 정도가 가정교회에 참석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합니다.
실제로 가정 교회들이 탄탄하게 성장하여 나중에 건강한 지역 교회가 되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다만 이 경우 유의해야 할 점은 새로 세워질 지역 교회는 반드시 교회다운 교회가 되도록 그 기초를 튼튼히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기존의 교회들 중에서 가장 모범이 될 만한 건강한 교회들을 사전에 모델로 선정하고 연구하여 구체적인 계획을 장기적으로 수립하고 단계적으로 실천해 나가면 좋을 듯 합니다.
가정 예배와 동역자
세번 째 방안은 동역할 가정조차 주변에 없을 경우입니다. 제일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할 상황입니다. 이 때는 할 수 없이 단독으로 가정 예배를 보며 동역자들이 생길 때까지 개인 전도에 힘쓰며 기다리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사실 필자는 우리의 가정이야말로 최적의 기도 장소이며, '유형 교회의 가장 작은 기본 단위'라고 생각합니다. 가정은 그 자체로 이미 훌륭한 교회인 셈이지요. 신약 교회에서는 성도들 자신이 그리스도의 지체이며 거룩한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간혹 어떤 분은 그렇게 고립되어 가정 예배를 드리는 것보다는 그래도 '교회답지 않은 교회'에라도 그냥 다니는 것이 좋지 않느냐고 묻기도 하십니다. 물론 그런 선택은 각자가 결정할 문제입니다.
그러나 필자가 지난 30년 간 수많은 지역 교회들에서 직접 경험한 아픔을 토대로 감히 조언을 드린다면, '교회답지 않은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히려 심한 경우는 '맹신 공동체'나 '강도의 소굴'이었습니다. 아니면 '종교 업자들을 위한 장사판'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그런 교회에 출석하여 그들의 사역에 동조하고 열심히 헌금하고 봉사한다면, 결국은 그들의 죄악에 동참하는 것이 됩니다. 부지런히 돈 바치고 몸 바쳐서 기껏 도적들의 배를 채워줄 뿐이라는 것이지요. 반대로 그런 교회에 가서 그들의 사역에 은근히 반발하거나 적당히 회피하면, 결국 나중에는 담임목사의 눈밖에 나서 자녀들까지 왕따를 당하고 온가족이 깊은 상처만 입게 됩니다. 따라서 결과가 뻔한 일을 그리 권하고 싶지는 않은 것입니다.
교회는 돈과 권력을 버려야
한국교회가 유독 개신교 역사상 가장 부패한 교회가 된 근본적 이유는 사실 매우 간단합니다. 제도적으로 서구 교회에 비해 '불필요한 기득권'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좀 더 원색적으로 표현하자면, 교회 내에 종교 업자들이 먹을 만한 것이 너무 많다는 말입니다. 노골적으로 말해서 세상 어디에 요즘 어떤 교회들처럼 돈 빼먹기 좋은 만만한 단체가 그리 많을까요. 변절한 목사님들이 이 핑계 저 핑계 명분을 달아 실컷 빼먹어도 순진한 맹신도들은 그저 마냥 좋다고 하니 말입니다.
그러나 본래 신약 초기 사도들과 교부들의 교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개신교에 목사제도를 세운 개혁자 칼뱅 역시 극심한 가난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책을 내다 팔 정도였지만 철저하게 경건 생활을 유지하며 사역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교회가 점차 성장하면서 돈과 이권이 생기고 온갖 잡상인들이 합류하게 되자, 교회가 그 순수함을 잃고 변질되기 시작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한국 개신교 역시 그와 비슷한 과정을 거치고 있습니다. 그동안 기득권에 취한 정치꾼 목사들이 여러 교단의 헌법을 열심히 손보고 꾸준히 개악하여 한국교회가 구조적으로 부정과 부패에 극히 취약한 체질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배도적 '성직주의'와 '교권주의'가 개신교를 매우 성공적으로 초토화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그래서 이젠 '한국교회는 자정 능력을 상실하였다'고 공개적으로 자폭 선언을 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결론은 명확합니다. 바퀴벌레를 박멸하려면 집주인이 먹이를 주지 않으면 됩니다. 즉 집안에 벌레들이 먹을 만한 것을 쌓지 않으면 됩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흩어 구제하지 않고, 엉뚱하게 부를 쌓거나 건물만 키우니 지금처럼 온갖 잡벌레들이 날뛰는 것입니다. 직분자란 자들이 헌신 대신에 헌금을 탐하고, 교회가 구제 대신에 축재를 하니 이 모양으로 망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돈이나 정성 따위를 바쳐서 복을 받거나 구원을 얻는 그런 저급한 종교가 아닙니다. 개혁 성도들은 바벨탑처럼 돈과 건물을 높히 쌓는 교회는 지금 즉시 떠나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거룩한 탈출은 평신도 혁명의 역사적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돈주머니를 찬 성직자들이 주도하는 '종교적 공동체'를 청산하고, 종의 형체까지 낮아지신 예수님을 따라 흩어 나누며 스스로 가난해지는 참된 '십자가 공동체'를 누리시기를 진심으로 소원합니다.
샬롬!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값 없이 팔렸으니 돈 없이 속량되리라(사52:3)."
신성남 집사 / <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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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