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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1301565
돈 없으면 아프지도 마!
■ 의료를 기업의 사냥터로
자본주의에서 공황이나 경제 불황은 참 이상합니다. 자본은 돈이 너무 많은데 투자할 곳이 없고 노동자는 돈이 없습니다. 집은 남아도는데 사람들은 집이 없습니다. 기업이 망하는데 망하지 말라고 자본가들한테 돈을 쏟아붓더니 그 돈을 이제 노동자들보고 메우라고 합니다. 이런 배경이 의료를 비롯한 공공 부문 민영화를 더 부추기고 있습니다.
기업은 최소한의 수익률이 보장되지 않으면 투자하지 않습니다. 기업이 투자를 하지 않으니 정부는 기업의 이윤을 높여 주기 위해 공공의 영역에 있던 것들을 민영화하는 겁니다. 지금까지 공공의 목적을 위해 운영되던 곳을 자본이 돈을 벌기 위한 곳으로 바꿔 주는 거죠. 교육, 의료, 전기, 가스, 철도, 공항, 교도소, 은행, 군대, 연금 같은 분야들이죠.
인천공항 민영화 문제가 한창 시끄럽죠. 국민들은 묻습니다. “잘나가는 공항을 왜 팔아요?” 정부가 솔직하게 대답한다면, 어떻게 할까요? “잘나가니까 파는 거지.” 적자만 나는 공항을 어느 기업이 사겠습니까? 인천공항이 흑자도 많이 내고 전 세계에서 제일 잘나가는 공항이니까, 판다고 하면 큰돈을 들여서라도 사려는 기업들이 많겠죠. 한편으로는 복지 재정을 삭감하면서 의료를 기업이 돈 벌 수 있는 곳으로 만드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의료 민영화의 몇 가지 명분 가운데 하나가 “의료를 신성장 동력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의료 관광 얘기를 많이 하는데요, 선진국 가운데 의료를 통해서 선진국이 된 나라가 있을까요? 없죠. 지금 태국이나 인도처럼 의료를 통해서 발전하고 있는 나라는 있어요. 미국의 의료 시스템이 워낙 엉망이니까 미국 사람들이 미국에서 수술받는 것보다 비행기 타고 태국 가서 수술받고 가는 게 더 싸거든요. 왜냐면 태국의 인건비는 한국의 10퍼센트밖에 안 되거든요. 인도는 2퍼센트밖에 안 돼요. 의료 산업이 굉장히 고급 산업 같지만, 임금이 굉장히 낮은 나라에서만 할 수 있는 산업이란 말입니다. 의료를 신성장 동력으로 삼는다? 인건비를 어떻게든 깎아야겠다는 얘기밖에 안 되는 거죠.
OECD 국가들의 의료 보장성 그래프입니다(그림1). 캐나다가 70퍼센트 정도 됩니다. 캐나다가 왜 이 정도밖에 안 되느냐면, 캐나다에서는 외래 진료 때의 약값은 보험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55퍼센트. 한국보다 못한 나라가 미국하고 멕시코밖에 없습니다. OECD 국가들의 의료 보장 제외 항목 표(그림2)를 잘 보면, 그리스, 독일, 이탈리아 등은 제외되는 항목 없이 모두 보장됩니다. 프랑스, 영국, 오스트리아 등은 치과와 안경 빼고 다 됩니다.
안경이 건강 보험에서 제외되는 것은 좀 이해가 안 됩니다. 눈이 잘 안 보이는 사람한테 안경은 기본적인 치료 아닙니까? 의사가 처방전에 “안경”이라고 쓰면 환자는 그 처방전을 가지고 안경점에 가서 안경을 받아서 씁니다. 그리고 안경점은 정부에서 돈을 받죠. 대부분의 선진국은 이렇게 합니다. 온천까지 보장하는 나라도 있습니다. 의사가 처방전에 “온천”이라고 쓰면 그걸 가지고 공짜로 온천에 가는 거죠.
보장성이 85퍼센트 이상인 나라들을 보면 치과까지 다 돼요. 임플란트도 됩니다. 보장성이 85퍼센트를 넘으면 무상 의료라고 이야기하는데, 왜냐하면 보장성 밖에 있는 15퍼센트 가운데 미용 성형이 10퍼센트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5퍼센트 정도만 자기 돈 내고 치료받는 겁니다. 거기다 치과도 10퍼센트 정도 되기 때문에 보장성이 75퍼센트만 넘어가면 사실상 무상 의료라고 봅니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무상 의료를 이미 실시하고 있다는 말이죠. 이명박 정부가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말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글로벌 스탠다드는 무상 의료입니다.
독일에서는 의료비가 자기 연소득의 2퍼센트를 넘으면 그만큼 정부가 보장해 줍니다. 의료비본인부담상한제를 실시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한 달에 250만 원을 번다고 하면 2퍼센트인 5만 원, 1년에 60만 원 이상의 의료비가 나오면 그건 정부가 대는 거죠. 민영 의료 보험을 들 필요가 없겠죠.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의료비가 연소득의 1~2퍼센트를 넘으면 정부가 내줍니다. 독일처럼 잘사는 나라만 그러는 게 아닙니다. 대만도 의료비가 1년에 160만 원이 넘으면 정부가 냅니다.
태국 사람들이 둘로 나뉘어서 한쪽은 빨간 셔츠, 또 한쪽은 노란 셔츠를 입고서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한쪽은 탁신을 지지하고 한쪽은 왕족을 지지한다고는 하는데, 어느 쪽을 응원해야 할지 헷갈립니다. 그런데 탁신의 정책 가운데 ‘30바트 정책’이라는 게 있습니다. 병원에 가면 무슨 병이든 한 번에 30바트만 내면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30바트면 우리 돈으로 1,200원이 채 안 됩니다. 입원을 하든 뭘 하든 1,200원으로 끝이에요. 탁신에 대한 절대적 지지가 있는 것은 이런 정책 때문입니다.
■ 공립 병원 비율 세계 꼴찌권
여기 사립 초등학교 나오신 분 한번 손들어 보세요. 거의 없죠? 사립 초등학교 나왔다고 하면 꽤 산다는 소리를 듣잖아요. 초등학교 가운데 사립이 5퍼센트 정도 됩니다. 병원의 경우에 대부분 다른 나라들이 이 정도 비율입니다. 대개가 공립이고 5퍼센트 정도만 사립이라는 말이죠.
OECD 국가들의 공립 병원 비중이 평균 70퍼센트를 넘습니다. 캐나다, 덴마크, 아일랜드는 100퍼센트, 노르웨이(99퍼센트), 폴란드(95퍼센트), 스웨덴(98퍼센트), 영국(96퍼센트)도 거의 100퍼센트에 가깝습니다. 우리나라는 7퍼센트. 국세청의 공익 광고를 보면 “여러분이 낸 세금으로” 하고 시작해서 “공원을 만들고 도로를 놓고 학교를 짓습니다” 하고 끝납니다. 세금으로 병원 짓는다는 말은 안 들어가요. 그러니까 공립 병원 비율이 7퍼센트밖에 안 되죠. 93퍼센트가 사립 병원입니다.
워낙 사립 병원이 많다 보니까 어디가 국립 병원인지도 몰라요. 전남대 의대에서 강연을 하다가, 광주에서 제일 큰 국립 병원은 어디냐고 물으니까 한참 헤매요. 답은 전남대병원이거든요. 전남대병원 안에서, 전남대 의대생들한테 물어보는데도 자기네 병원이 국립 병원인 걸 몰라요. 왜냐면 국립 병원은 기본적으로 사립 병원보다 의료비가 쌀 것이라는 인식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서울대병원 가면 싸요? 원자력병원이 싸요? 그렇지 않기 때문에 국립 병원인지 사립 병원인지 모르는 거죠.
근데 해방 직후만 하더라도 국립 병원이 75퍼센트였어요. 그러다가 박정희 정권 말기부터 사실상 민영화가 시작됐다고 봐야죠. 건강 보험은 1977년에 시작됐는데, 건강 보험이 시작되면 사람들이 병원을 자주 가죠. 병원이 늘어나야 하는데 국가에서 병원을 안 지으면 당연히 사립 병원이 늘어나겠죠. 그래서 1980년대 말부터 이른바 ‘재벌 병원’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우리보다 의료 보장률이 낮은 멕시코만 하더라도 국립 병원이 55퍼센트는 되고, 미국도 30퍼센트쯤 돼요. 그런 의미에서 한국은 이미 의료 민영화가 굉장히 많이 진행됐다고 볼 수 있어요.
■ 건강 보험이 무너진다?
여기 민영 의료 보험을 하나도 안 드신 분 계신가요? 우리 국민 가운데 약 70퍼센트가 하나 이상의 민간 의료 보험에 들었습니다. 가구로 치면 80퍼센트가 넘습니다. 왜 그럴까요? 첫째는 건강 보험이 엉망이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건강 보험을 강화하고 무상 의료로 갑시다” 하고 선전할 때 하는 얘기랑 민영 의료 보험 회사 광고 문구랑 시작은 똑같아요. 맨 끝만 다르죠. “큰 병 걸리면 집안 거덜 난다” 하는 얘기는 똑같은데, “그래서 민영 의료 보험 하나 들어야 한다” 하는 게 보험 회사 얘기고, “그래서 무상 의료 해야 한다” 하는 게 우리 얘기죠.
또 다른 까닭은 목돈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요즘 많이 나오는 보험 회사 광고 문구인데, 참 씁쓸합니다. “내가 죽었을 때, 몇 천만 원이라도 나오면 자식들이 얼마나 좋겠어.” 진짜 별짓을 다 한다 싶었어요. 자기가 죽고 나서 자식들한테 돈 남기기 위해서 보험 하나 들고 죽어야 한다는 얘기밖에 더 되나요? 예전에 ‘최악의 광고’ 상을 받은 광고도 있었죠. 젊은 여성과 아이가 정원이 넓은 집에서 자동차에 물을 뿌리는 모습이 나오고 이런 문구가 나오죠. “10억을 받았습니다. 그저 남편과의 약속을 지키는 거라면서. 남편의 라이프플래너였던 이 사람, 이제 우리 가족의 라이프플래너입니다.” 오싹하지 않습니까? 보험에 가입하고 19시간 만에 사망해서 가족들이 10억 원의 보험금을 받은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만들었답니다. 이 정도면 보험을 들라는 게 아니라 로또를 들라는 소리예요, 자기 목숨을 걸고.
근데 이 로또를 드는 건 사회 통념상 복지와 전혀 거리가 멉니다. 미래가 너무 보장이 안 되기 때문이거든요. 돈이 여유가 있어서 드는 게 아니라 아무리 돈이 없어도 과잉으로 막 들어요. 내가 죽고 나서 자식들한테 물려줄 돈을 저축해서 모으는 게 아니라 복권을 많이 사다 놓고 내가 죽어서 버는 거예요. 굉장히 황당한 얘기죠.
제도적인 의료 민영화 방법 가운데는 대표적으로 건강보험당연지정제 폐지가 있어요. 우리나라는 지금 모든 사람들이 건강 보험에 가입하게 돼 있고, 모든 병원은 건강 보험을 받아 주게 돼 있죠. 그런데 남미 쪽에 가면 건강 보험에 모두 가입돼 있지 않고, 병원에서도 꼭 건강 보험을 받지 않아도 돼요. 지금 우리는 건강 보험증을 들고 가면 어느 병원에서나 받아 주잖아요. 근데 건강보험당연지정제가 폐지되면 어떤 병원에서는 건강 보험을 안 받아 줄 수도 있어요. “저희는 건강 보험 안 받고 삼성 보험만 받아요” 하는 병원들이 생긴다는 말이에요.
2008년 기획재정부의 <대통령 업무 보고> ‘의료 서비스 규제 완화’ 편을 보면, 민영 의료 보험 활성화를 위해서 2008년 3/4분기까지 의료법을 개정하려고 계획했습니다. 그런데 2008년 2/4분기 때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시위가 대대적으로 일어나면서 눈치 보느라 못했는데, 지금까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재벌 그룹이 꼭 가져야 계열사가 둘 있는데, 하나는 건설 회사고 다른 하나가 바로 보험 회사입니다. 보험 시장 규모가 어느 정도 되냐면, 지금 건강 보험은 30조 원 정도, 민영 보험은 12조 원 정도 됩니다. 망해서 없어지는 보험 상품들도 있는데 대표적인 게 국내 최대 생명 보험 회사의 요실금 보험입니다. 요실금 보험이 망하고 나서 이 상품을 처음 구상한 임원이 잘렸답니다. 왜냐하면 요실금 수술을 하면 몇 십만 원을 주는 특약이 있었는데, 둘째 애를 낳으면 수술하면서 요실금 수술을 같이 하는 게 우리나라의 관행이었거든요. 그걸 몰랐던 거죠. 그래서 요실금 보험이 손해를 보고 망했습니다.
그래서 보험 회사 입장에서는 보험 상품을 팔 때, 앞으로 이 사람이 무슨 병에 걸릴지, 무슨 수술을 하게 될지, 옛날에 무슨 병에 걸렸는지, 또 우리나라 의료 소비 양상은 어떤지를 알 필요가 있는 겁니다. 이 사람이 병이 많은 사람이면 보험에 가입을 못하게 막기도 하고 그래야 보험금을 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낮아지니까요. 그래서 보험 회사는 환자의 개인 질병 정보를 꼭 갖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개인 질병 정보를 보험 회사가 가지려 한다는 게 굉장히 황당하고 위험한 겁니다. 아픈 사람이 돈이 없어서 치료를 못 받을까 봐 보험에 드는 건데, 아플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 오히려 보험에 가입을 못하는 상황이 생기는 겁니다.
민영 보험은 이미 건강 보험을 대체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차근차근 과정을 밟아 가고 있습니다. 삼성생명에서 만든 <민영 의료 보험의 발전 단계>라는 자료를 보면, 그 제일 마지막 단계가 “정부 보험을 대체하는 포괄적 보험”이라고 분명히 밝혀 뒀습니다. 민영 보험이 강화되면, 의료가 민영화되면 건강 보험이 무너진다고 저희가 만날 이야기하면, 정부는 “운동권들이 늘상 말하는 공포 시나리오”라고 얘기했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아니라 보험사가 공공연하게 민영 보험의 목표는 건강 보험을 무너뜨리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 매출 성적표를 받는 의사들
그런데 제도적인 의료 민영화 추진이 멈춰 있어도 이미 민영화돼 있거나 되고 있는 부분이 워낙 많습니다. 예를 몇 가지만 들어 보죠. 지금 한두 해 사이에 서울에서만 만 병상씩 늘어나고 있습니다. 현대아산병원, 삼성의료원, 세브란스병원, 서울대병원을 ‘빅4’라고 부르다가 최근에 강남성모병원이 서울성모병원을 크게 지으면서 ‘빅5’가 됐는데, 이들이 ‘1조 원 클럽’이에요. 각각의 1년 매출액이 1조 원을 넘는 거죠. 우리나라에서 1,000대 기업에 들어가면 보통 대기업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1,000대 기업의 마지막에 들어가는 기업들이 대개 연매출이 2,000억 원 정도 되니까, 1조 원이면 굉장히 큰 자본이죠.
현대아산병원이 병상을 늘려서 지금 약 2,700병상이 됐습니다. 한국 최대의 병원인데, 병원 건물이 세 동이나 돼서 회진을 하루에 다 못 돌고 이틀에 나눠서 돌 정도입니다. 삼성의료원도 아시아에서 제일 큰 암센터를 만들면서 약 700병상을 늘렸죠. 세브란스병원과 서울대병원도 병원을 새로 지었습니다. 의료계에 법칙이 하나 있는데 병상을 만들면 환자는 채워진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병원이 자꾸 늘어나면 어떻게 될까요? 법칙도 법칙이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죠.
요즘에는 지방에서 서울로 환자들이 다 올라옵니다. KTX가 생기고 나서 그런 경우가 늘었다고 해요. 전국 암 환자의 절반 가까이는 서울에서 치료를 받습니다. 돈 있는 사람은 다 서울에 와서 치료받아요. 돈 없는 사람만 지방의 대학 병원에 입원하고, 그것도 없는 사람은 중소 병원에 입원하는 거죠. 언제부터인지 이렇게 계층이 명확해졌어요. 그러다보니까 동네 병원이 줄어들어요. 어느 군에는 산부인과가 하나도 없는 경우도 있어요. 지역 균등 발전? 다 헛소리죠. 학교도 없지, 병원도 없지, 어떻게 살라는 거예요?
그래도 대학 병원이면 의사들이 다 교수고 선생님이니까 인술을 펼칠 것 같죠? 옛날에 중고등학교에서 1등부터 꼴등까지 학생들 성적을 게시판에 공개하듯이 요즘 대학 교수들한테 그렇게 해요. 국립대 의대 교수 하는 후배의 얘기를 들어 보면, 한 주에 두 번씩 메일이 오는데 교수들 이름이 쭉 적혀 있고 그 옆에 그 사람이 진료해서 번 돈 액수가 적혀 있대요. 일주일에 두 번씩 모의고사 성적표를 받는 거예요. 세 번 이상 꼴등을 하게 되면 그만두는 게 관례래요. 옛날에는 의사가 환자를 잘 살리면 존경을 받았는데 지금은 돈을 많이 벌어야 존경을 받습니다.
인천에 있는 아무개의대병원에서는 몇 달에 한 번씩 외래 진료실 순서를 바꿔요. 돈벌이가 제일 잘 되는 과가 맨 앞으로 오고 제일 안 되는 과가 뒤로 가고. 후배 하나가 거기 있는데, “그렇게 하면 환자들이 찾기가 너무 힘들 텐데요” 하고 항의했더니 “○○○ 교수, 돈 되는 얘기를 좀 하지” 했답니다. 그게 대학 병원의 현실이에요. 국립대조차도 그래요. 의사들이 번 돈에 따라 월급을 줍니다. 그런 사람들이 인술을 펼친다? 말도 안 되는 일이죠.
■ 걸어 들어오는 사람 모두가 수술 대상
대학 병원 가면 어디가 아프다고 말하기가 무서워요. 한번은 의대 학생들이 콩트 하는 걸 봤는데, 환자가 “어디 아파요” 하면 의사가 “무슨 검사!” 하고, 또 “어디 아파요” 하면 또 “무슨 검사!” 하고 체크를 하는 거예요. 실제로 돈이 많이 드는 검사가 너무 많아서 겁난다는 사람들이 참 많아요. 그래서 자기가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도, ‘내가 아픈 데를 다 얘기해야 하나? 아니면 이 검사 하나만 하겠다고 얘기해야 하나?’ 하고 고민하는 웃지 못할 일들이 생긴다는 거죠.
배가 아프면 보통은 그냥 엑스레이만 찍으면 되는데, 그것만 하나요? 초음파도 하죠, CT도 찍죠, MRI까지 하죠. 이것들을 ‘3종 세트’라고 해요. 검사 한번 했다 하면 3종 세트로 하는 이런 나라는 전 세계에 아무 데도 없거든요. 제 동생이 배가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역시 3종 세트를 하려고 하기에 내가 의사라고 했더니 안 하더라고요.
척추 수술, 우리나라가 일본에 비해 일곱 배나 많이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척추가 일본 사람들 척추보다 유전적으로 일곱 배나 약합니까? 갑상선 수술,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들의 평균에 비해 열 배는 많이 해요. 우리나라 사람들의 갑상선이 다른 나라 사람들의 갑상선보다 열 배나 문제가 많아서 그런 건가요? 검사 하나라도 더 하고, 수술 한 번이라도 더 해야 돈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국에 척추 전문 병원이 늘어날 대로 늘어났어요. 심지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에 척추 수술을 받은 것으로도 유명한 아무개병원이 있는데, 의사들 사이에서는 그 병원에서 척추 수술 받지 말라는 것이 상식이에요. 왜냐하면 거기는 수술 대상자가 ‘병원에 걸어서 들어오는 사람’이라서 그래요.
제가 진료하는 한 할머니가 한동안 안 보이다가 어느 날 다시 오셨어요. 어디 갔다 오셨냐고 물으니 그 병원 가서 수술 받고 왔대요. 근데 왜 또 오셨냐고 물으니 그냥 허리가 아파서 왔대요. 수술 받고 몇 달 괜찮다가 다시 아파서 오신 거예요. 어떤 식으로 수술을 하게 됐는지 물어보면 대개 이런 식이죠. 의사가 환자한테 “수술 받으셔야 되는데 최소한 한 달은 기다리셔야 돼요” 하다가, 간호사한테 “급한 환자가 있는데 어떻게 자리가 안 나나?” 하고 묻는 거죠. 그러고 나서 내일 수술할 수 있는 자리가 어렵게 생겼다고 하면서 수술하자고 하는 겁니다. 그러면 환자는 다행이라고 내일 수술하자고 하는 거죠. 왜 내일이냐? 2~3일만 지나서 조금 덜 아파지면 수술 안 하거든요. 아플 때 해야 돼요.
친구 가운데 항문 전문 병원 의사가 하나 있어요. 워낙 바빠서 전화 통화를 잘 못할 정도예요. 그런데 어느 날 낮에 전화가 왔어요. “웬일이냐? 요즘은 좀 한가해?” 했더니, 대답이 기가 막힙니다. “어. 이 동네는 다 했어.” 그 동네에 있는 사람들은 항문 수술을 다 한 거예요. 그럼 이제 어떻게 하냐고 물었더니 그러더군요. “셔틀버스 돌려야지, 뭐.”
무릎 수술도 얼마나 많이 하는 줄 아세요? 무릎 수술로 유명한 아무개병원이 있는데, 그 동네에는 전부 사이보그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돌아다닌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갑상선 종양 수술은 굳이 안 해도 되는 수술이 많아요. 심지어 암이 의심돼도 종양이 작으면 대부분 그냥 관찰만 해도 돼요. 원래 그런 병인데, 병원에 가면 그래요. “그냥 수술 하시려면 1년 기다리셔야 돼요. 근데 로봇 수술 기계로 하시면 다음 주에 됩니다. 흉터도 더 작게 남아요.” 정말 황당무계하죠. 이 갑상선 수술 로봇 기계가 아시아 전역에 32대가 있어요. 그 가운데 한국에 몇 대가 있을까요? 29대예요. 이 다빈치 수술 기계는 아직까지 비용 대비 효과가 검증이 되지 않았어요. 유럽에도 없는 나라들이 많고, 당연히 아시아에도 없는 나라가 많죠.
그리고 행위별수가제도 큰 문제입니다. 중이염이 있어서 이비인후과에 가면 일주일 내내 오라고 합니다. 중이염은 고막 안에 염증이 생긴 거잖아요. 의사가 고막을 닦아 주고 솜을 박아 놔요. 다음 날 가면 솜을 꺼내고 또 고막을 닦아 준 다음에 다시 솜을 박아 놔요. 다음 날, 그 다음 날도 똑같습니다. 외국에서는 중이염 환자한테는 일주일치 처방해 주고 끝이에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일곱 번 병원에 가야 하는 까닭이 바로 행위별수가제에 있습니다. 치료 행위에 비례해서 돈을 받기 때문에 환자를 많이, 자주 병원에 오게 해야 병원은 돈을 법니다. 우리나라처럼 전 국민 의료 보험을 하면서 행위별수가제 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 하나도 없어요.
국민들 입장에서는 한 번 내고 말 돈을 일곱 번이나 내게 되는 거죠. OECD 국가 국민들은 평균적으로 1년에 6회 병원에 갑니다. 우리나라는 평균 14회예요. 유럽에서는 이 숫자가 10회를 넘는 집단은 문제 집단으로 봅니다. 특별한 질병에 시달리거나 아니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집단으로 봐요. 그럼 우리나라는 전 국민이 특별한 질병에 시달리거나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건가요? 굉장히 황당한 일이죠. 의사 자주 보는 것이 좋은 건가요? 아니거든요. 근데 진료를 하는 대로 병원이 돈을 버는 제도 때문에 이렇게 되는 거죠.
지금 병원은 비영리 법인인데도 이미 이런 식으로 돈을 많이 벌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 주식회사 병원, 영리 병원을 만들려고 합니다. 비영리 병원은 병원에서 번 돈을 병원 안에서만 써야 합니다. 그런데 영리 병원은 병원에서 번 돈을 다른 곳에 투자할 수 있습니다. 일반 기업이나 똑같아지는 겁니다. 그런데 국민들이 반발하니까, 일단 제주도랑 인천경제자유구역에서만 하겠다고 하는 법안이 지금 국회에 올라가 있어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국회가 ‘대포폰’이다 뭐다 하고 싸우고 있어서 올해 안에 통과될지는 잘 모르겠어요.
■ 설상가상, 한미FTA
우리 사회의 의료 민영화가 이렇게 마지막까지 와 있습니다. 그런데 한미FTA가 발효되면 상황은 극단적으로 심각해집니다. 투자자국가제소 제도를 많이 얘기하는데, 쉬운 예를 하나 들어 볼게요. 캐나다 정부가 ‘마일드’라는 말을 담배 이름에 못 쓰게 하려고 한 적이 있습니다. ‘마일드’라고 하면 왠지 폐암도 ‘순하게’ 걸릴 것 같잖아요. 그런데 법안을 통과시키기 직전에 ‘마일드세븐’이 주력 상품인 필립모리스사에서, 그 규제는 자기네들의 시장을 침해하는 거라며 캐나다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 거라고 나선 겁니다. 결국 법안은 통과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기업의 이윤 추구에 방해가 되는 정책을 시행하는 국가에 대해 기업이 직접 제소할 수 있게 하는 제도가 투자자국가제소 제도입니다.
이번에 우리도 비슷한 일을 겪었죠? 동네 상권을 위협하는 SSM 규제 법안을 국회에 올리려 했습니다. 그런데 홈플러스의 주인인 테스코가 소송을 걸지도 않았는데, 우리나라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 먼저 나서서 그럴지도 모른다고 국회를 말렸죠. 한-EU FTA에서는 테스코가 직접 한국 정부를 제소할 수는 없고 영국 정부가 테스코를 대신해서 WTO에 한국 정부를 제소해야 합니다. 그런데 한미FTA에서는 정부를 거치지 않고 기업이 직접 소송을 걸 수 있습니다. 실제로 소송을 걸면 국가 측 변호사 한 명, 기업 측 변호사 한 명, WTO 같은 데서 정한 변호사 한 명, 이렇게 세 명이 모여서 비공개로 단 한 번에 판결합니다. 그것도 뉴욕에서요. 국가가 기업에 대해 아무 규제도 못하는 거예요.
자동차 보험은 누구나 가입하니까 자동차 보험을 공적 보험으로 하자는 법안을 캐나다의 어느 도시에서 추진했어요. ‘마일드’ 담배를 규제하려고 했을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났죠. 법안이 의회를 통과되기 직전에 자동차 보험 회사들이 그건 자기네들 상품을 간접 몰수하는 거라고, 간접 수용에 걸리는 거라고 해서 통과되지 못했습니다. 지금 민영 의료 보험 상품이 많지 않습니까? 정부가 만약에 건강 보험을 늘릴 거라고 하면, 바로 “우리가 팔고 있는 상품 시장을 왜 뺏어 가!” 하고 소송을 걸겠다고 나올 수 있는 겁니다.
시장에서 기업의 지분이 줄어들면 간접 수용에 해당돼요. 굉장히 말이 안 되는 거거든요. 소주 상표 가운데 ‘참이슬’과 ‘처음처럼’이 있잖아요. 그런데 만약에 원래 참이슬이 시장의 4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처음처럼이 새로 나와서 20퍼센트로 떨어졌다면, 그렇다고 참이슬이 처음처럼한테 “너네 때문에 우리가 20퍼센트 손해 봤다” 하면서 소송할 수 있는 건가요? 없잖아요. 그런데 기업이 시장에서 지분이 줄어들면 어쨌든 무조건 정부가 잘못했다고 판단하는 게 투자자국가제소 제도예요. 그리고 지금의 시장 지분율을 20년까지 인정해 줘야 돼요. 기업이 잘못해서 지분율이 떨어질 수도 있고, 망할 수도 있는 건데, 20년까지 인정해 줘야 해요. 한미FTA는 이렇게 황당한 것입니다.
한미FTA는 한국과 미국 간의 싸움이 아니에요. 한국이 일방적으로 망하고 미국이 일방적으로 이득을 본다면 한국 재벌들이 한미FTA를 왜 좋아하겠어요? 한국 기업들 절반 정도가 외국 투자자들의 소유잖아요. 삼성전자 주주들 가운데에도 외국 투자자들이 많아요. 삼성전자가 한국 정부를 제소할 수 있는 겁니다. 그보다 먼저 ‘악사(AXA)’ 같은 외국계 보험 회사들이 한국의 건강 보험 제도를 제소할 수 있어요. 건강 보험을 늘리거나 민영 보험을 규제하는 게 아예 불가능해집니다.
■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건강 보험의 보장성을 80퍼센트까지는 높여야 합니다. 그리고 공공 병원의 수를 늘리고 수가 제도를 바꿔야 해요. 건강 보험 보장성을 무상 의료에 가까운 90퍼센트로 높이는 데 1년에 12조 원 정도가 듭니다. 어마어마한 액수 같지만, 2012년까지 ‘부자 감세’로 줄어드는 돈이 18조 원입니다.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등록금을 다 반값으로 해 주려면 얼마나 들까요? 10조 원쯤 들어요. 부자 감세로 줄어드는 세금만 제대로 걷어서 써도 무상 의료, 무상 교육을 할 수 있다는 거죠. 복지라는 게 굉장히 멀리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있는 돈만 제대로 써도 훌륭한 복지 제도를 만들 수 있습니다.
OECD 국가들의 사회보장기여율 비교 그래프입니다(그림3). 사회 보장 재정이 GDP의 몇 퍼센트인지, 그리고 그 돈을 기업과 노동자가 각각 얼마나 부담하고 있는지를 비교한 겁니다. 우리나라 노동자가 내는 돈이 3.3퍼센트, 기업이 내는 돈이 2.2퍼센트입니다. OECD 평균은 노동자가 2.2퍼센트, 기업이 6.2퍼센트입니다. OECD 국가들에서는 평균적으로, 노동자들이 내는 돈보다 세 배나 더 많은 돈을 기업이 사회 보장 비용으로 내고 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오히려 기업보다 노동자들이 더 많이 냅니다. 이런 나라는 한국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우리나라 복지 수준이 낮은 건 우리나라가 가난하기 때문이 아니라 기업들이, 부자들이 세금을 덜 내기 때문이라는 거죠.
따라서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이라는 주장이 한국에서는 정말로 실현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이미 낼 만큼 다 내고 있습니다. 돈을 더 내야 할 쪽은 기업들, 부자들이라는 것을 명확히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제적 수준에서 무상 의료는 지금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그 돈은 누가 내느냐? 불법으로 판결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착취해서 번 돈을 몇 조 원씩 현금으로 쌓아 놓고 있는 기업들이 내야죠. 돈 많은 사람들이 세금 내고 그 돈을 풀어서 사람들을 먹고살 만하게 만들어 주면, 그 사람들이 자동차도 사고 텔레비전도 사잖아요. 이렇게 단순한 일을 안 하고서 나라 경제를 다 망가뜨리고 있는 겁니다. 어차피 나라 경제가 어떻게 되든 자기네들은 잘사니까. 또 이렇게 단순한 일을 못하는 게 자본주의의 모순이기도 하죠.
요즘은 복지 국가 얘기를 안 하면 정치인 축에도 못 들어요. 박근혜조차도 복지 국가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그 말들 가운데 도대체 뭐가 진보적인 건지 따져 봐야 해요.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 노동자보다 많은 나라에서 설사 무상 의료가 된다고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고용이 안정되지 않는 나라에서 실업 보험이 된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그런데 한나라당은 물론 민주당도 고용 안정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고 건강 보험 보장성 강화나 교육의 공공성 같은 얘기를 해요. 이런 부분을 가장 중점적으로 따져 봐야 합니다.
복지 국가를 얘기할 때, 무상 의료나 무상 교육 하나만 가지고 보는 건 한계가 있습니다. 특히 다음 정부 때 조금 괜찮은 정부가 들어서면 어느 정도 복지를 밀어주겠지 하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제가 볼 때 우리 사회를 통째로 바꿔야 복지 국가는 이뤄질 것 같습니다. 큰 파업 투쟁이나 2008년의 촛불 시위 같은 대중적인 운동을 통해서 복지 국가는 이뤄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지 국가를 준비하는 것은 바로 그런 운동을 준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질문과 대답
청중_유럽에서는 어떤 과정을 거쳐서 복지 국가를 만들었나요?
유럽과 미국의 차이는, 이름에 ‘사회’나 ‘노동’이 들어가는 당이 유럽에는 있고 미국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최초의 복지 국가인 러시아는 무상 의료, 무상 교육에 무상 보육까지 했죠. 혁명을 통해 굉장히 급진적 복지 정책을 실시했습니다. 그리고 1940년대에 영국이 복지 국가로 탈바꿈할 수 있었던 것도 노동자들이 국가 권력을 위협할 정도로 힘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나라를 내놓을래, 아니면 복지 제도를 만들래” 하는 형태가 된 거죠. 제2차 세계 대전 뒤에 영국 노동당이 처음으로 단독 집권도 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68혁명이 일어난 뒤에 대학교 무상 교육이 실시됐습니다. 1970년대 스페인에서도 독재 체제가 무너지고 사회당이 집권하면서 무상 의료를 시작했어요. 남부 유럽의 그리스, 이탈리아 같은 나라들도 그때 무상 교육이 도입됐고 1970년대 중반쯤 유럽 전체에 무상 교육이 도입됐습니다.
거의 100년 동안 혁명이나, 혁명에 가까운 사회적 변화가 내내 있어 왔고, 그 결과 복지 국가가 생겨난 것입니다. 확실한 것은 정치인들이 알아서 한 게 아니라는 거죠.
작은책--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
첫댓글 감사하게 읽었습니다. 퍼가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아프면 돈걱정..독일은 병걱정이라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