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희망이다] “공부 못하면 사람 취급 안했어요”
“검정고시로 중졸과 고졸 학력을 딴 것은 기적이었다.” ‘학교밖’ 아이들이 말했다. 거리를 배회하며 고립됐던 아이들을 사역자, 교회 봉사자, 여성가족부, 시민단체 등이 나서 키워냈다. 크리스천 김가연씨가 ‘사랑의 학교’에서 학교밖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2016년 현재 학교 밖 청소년은 39만 명으로 추산됩니다. 학교 밖 청소년은 학교 부적응, 유학, 질병, 가정사정, 비행 등의 사유로 학업을 중단합니다. 이 가운데 가장 큰 사유는 학교 부적응입니다.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도시형 대안학교 ‘사랑의 학교’,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 부적응 이유를 들어보았습니다.
“선생님은 공부 못하는 애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았어요.”(19·철호)
“선생님들과 담을 쌓고 살았어요. 학교가 싫었고 공부도 따라갈 수 없었어요.”(18·수아)
교사들은 그렇게 취급하지 않았겠지만 철호와 수아처럼 공부 못하는 학생들은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성적으로 바닥에 깔린 학생들은 수업 중에 잠자고 교사들은 방치합니다. 학교를 다녀야 할 의미를 상실한 학생들은 잦은 결석과 학칙 위반 등으로 찍히면서 자퇴합니다.
자퇴(自退)란 스스로 물러난다는 뜻입니다. 과연 학생들은 스스로 학교를 그만둔 걸까요. 성적 지상주의에 의해 학교 밖으로 쫓겨난 걸까요. ‘학교 밖’ 청소년 중에는 대안학교 진학과 검정고시 등 학습형이 41.7%, 방황하고 배회하는 유형이 20.1%, 아르바이트 등 취업형이 11.8% 순입니다.
아이들은 가정과 학교의 압박과 무관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학교를 떠납니다. 생존 기술 없이 학교 밖에 나선 청소년들은 정글 같은 세상에서 좌절하고 방황하며 학교와 교복을 그리워합니다. 지난 1월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학교 밖 청소년 실태조사 결과 56.9%의 청소년이 학교 그만 둔 것을 후회했습니다.
“낮에 자고 오후에 일어나 밤새 게임하는 등 밤낮이 바뀌면서 가족과의 갈등이 심했어요.”(19·창훈)
“학교를 그만둔 것을 후회해요. 처음에는 자유롭고 좋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교복 입은 애들이 부럽기도 하고 복학하고 싶은데 후배들과 함께 다닐 자신은 없고 막막했어요.”(18·휘재)
“학교가 싫었는데 그만두고 나서 노는 것이 지겹고 할 일도 없고 혼자라는 외로움이 가장 컸어요. 학교가 그렇게 싫었는데 교복입고 있는 애들이 부러워요.”(20·성훈)
‘사랑의 학교’에서 일어난 기적… 앵벌이 소년 대학생 되다
울타리를 벗어난 양들. 늑대의 공격과 비바람에 시달리는 양, 길을 잃은 채 유리방황하는 어린 양들을 어찌해야 좋을까요. 세상은 약자를 버리고 외면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작은 자를 돌보고, 죄를 범한 형제를 용서해야합니다.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요한1서 3:18)
2001년 공부방으로 출발한 ‘사랑의 학교’는 서울 서초구 ’사랑의 교회’ 청년들의 헌신으로 꽃핀 학교입니다. 이 학교는 제도권 학교에 비해 시설과 재정 면에서 매우 부족합니다만 학교 밖 청소년들은 사랑의 학교에서 희망을 찾았다고 말합니다. 사랑의 학교에선 어떤 일들이 있었던 걸까요.
“공부에 익숙하지 않았지만 일대일 수업으로 모르는 것은 기초부터 가르쳐줘서 적응하게 되었어요. 캠프활동, 여행, 마술, 난타 등 다양한 체험활동과 가족적인 분위기와 맞춤식 학습지도가 도움이 됐고, 중학교 검정고시를 합격하면서 공부에 대한 자신감과 꿈을 갖게 됐어요.”(19·철호)
“적응이 힘들어 나오지 않으면 (자원봉사 교사가) 집으로 찾아와서 처음에는 귀찮기도 했지만 점점 마음이 열렸고 나만 힘들고 불행한 줄 알았는데 나보다 더 불행한 애들을 만나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22·수남)
“초졸 학력이 검정고시로 중졸과 고졸까지 딴 것은 저에게는 기적이었어요. 지금은 옷가게에 취업해서 돈도 벌고, 방송통신대학교 교육학과에 입학해 공부하면서 이제는 앵벌이 안 하고 내가 번 돈으로 월세를 내면서 살게 됐어요.”(20·원진)
앵벌이 하던 원진이는 대학생이 됐습니다. 그의 표현대로 기적입니다. 원진이뿐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희망이 생겼다고 말합니다. 가족 간의 갈등이 해소됐다는 기쁜 소식도 있습니다.
“어머니와는 관계가 많이 회복됐어요. 대안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고 여행 다니고 마을 축제도 하면서 형, 동생들과 많이 친해졌어요. 동물학과를 진학하려고 지원했는데 탈락했어요. 좌절도 했지만 그래도 내년에 도전해 보고 안 되면 군대 가려고요.”(19·철호)
은희(16)는 어렸을 때 손을 다치면서 의수를 했습니다. 학교 친구들은 그런 은희를 배려하기는커녕 놀리고 왕따 시켰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를 그만둔 은희는 사랑의 학교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엑셀, 파워포인트, 한글, 포토샵 자격증 땄습니다. 불편한 몸으로 난타공연을 하고 130㎞ 도보여행을 완주했습니다.
편견과 차별로 얼룩진 학교 밖 세상은 두려운 곳입니다. 어린 은희가 학교 밖 세상에서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기도와 말씀이었습니다. 새벽 기도하는 소녀 은희는 이 말씀을 오롯이 새겼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교사 자원봉사는 내가 받았던 사랑의 빚 갚는 것”
서성구(29·엔젤스헤이븐 해외사업팀)씨는 은희 선생입니다. 2013년 10월부터 사랑의 학교에서 사회 과목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는 빚을 갚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무료 급식 쿠폰으로 허기를 달랠 정도로 가난했던 그는 담임선생님이 베풀어 준 사랑 덕분에 가난한 시절을 극복했다면서 자원봉사 활동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학교에서 상처 입고 밖으로 나온 제자들에게 정을 나누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서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선생님보다는 형과 오빠처럼 지냅니다. 힘든 점이 있냐고요? 그냥 재밌고 행복합니다.”
여가부, 전국 ‘꿈드림’ 202곳서 교육·취업 도와
‘학생’에서 ‘청소년’으로 이름이 바뀐 학교 밖 아이들은 맨 몸으로 비바람을 맞습니다. 일명 ‘사라진 아이들’이라 불리는 학교 밖 청소년은 20만 명가량입니다. 주거가 확실치 않거나 아르바이트 등으로 이동이 많기 때문이죠. 정부는 그동안 이 아이들을 외면했습니다. 그러다 2014년 5월 ‘학교 밖 청소년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2015년 2월 여성가족부에 ‘학교밖청소년지원과’가 신설되면서 이들에 대한 지원과 보호대책이 가동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시급한 일은 ‘사라진 아이들’을 찾는 일입니다. 여성가족부는 교육부와 교육청, 법무부와 경찰청, 지방자치단체 등 유관기관과 함께 학교 밖 청소년 찾기에 나섰습니다. 발굴된 청소년들은 전국 202곳의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꿈드림’에서 교육과 취업 등을 지원합니다. 오는 6월부터 학교 밖 청소년 정기검진을 실시하면서 아이들의 건강을 관리할 계획입니다.
사람들은 ‘학교 밖 청소년’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여성가족부 조사 결과 ‘학교 밖 청소년=비행청소년’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54.4%였습니다.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72.5%, 긍정은 겨우 4.0%였습니다. 학교 밖 청소년 중 비행청소년이 8.9%인데 그 비율에 비해 부정적 인식은 과도합니다. 빈곤과 가정해체 등 어른과 사회의 잘못에 의해 비행청소년이 발생한 측면을 생각하면 학교 밖 청소년에게 씌운 굴레는 가혹합니다.
‘학교 밖 청소년=비행청소년’은 가혹한 편견
지난해 인천광역시가 주최한 ‘대한민국 독서대전 백일장’에서 A양(16)이 중등부에서 대상에 뽑혔습니다. 그런데 수상이 취소됐습니다. 검정고시 출신이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여성가족부가 나서지 않았다면 소녀는 절망했을 것입니다. 여성가족부가 나서면서 소녀는 대상 수상자가 됐습니다. 5월에 열리는 ‘전국 중고등학교 일본어경시대회’ 또한 참가 자격이 중·고 재학생이었는데 여성가족부에 의해 학교 밖 청소년도 참가할 수 있게 됐습니다.
여성가족부 학교밖청소년지원과 김숙자(51) 과장은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거두어져야 한다”면서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정책을 만들기 위해 학교 밖 청소년으로 구성된 ‘꿈드림 자문단’을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학교 밖 청소년의 든든한 편이 생긴 것입니다.
꿈드림 자문단원인 영호(20)의 부모는 이혼했습니다. 아빠가 병이 들면서 학교를 그만둔 영호는 막노동하며 공부해 검정고시에 합격했지만 세상 벽에 부딪쳤습니다. 오갈 곳이 없어진 소식을 듣고 영호 돕기에 나선 김 과장은 “부모 이혼과 가정해체로 어려움을 겪는 학교 밖 아이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영호에게 좋은 소식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학교 안 청소년뿐 아니라 학교 밖 청소년 또한 우리의 미래입니다. 이 아이들의 손을 잡아주는 것은 우리의 미래를 밝히는 것입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있겠습니까. 더 아픈 손가락인 학교 밖 청소년의 손을 잡아주는 것, 그것은 우리의 아픔을 안아주는 것입니다. 비바람에 흔들리는 아이들에게 가림막이 되어준다면 소년들은 틀림없이 희망으로 피어날 것입니다.
가스펠 라이터 조호진(시인)·사진 김진석(작가) jonggyo@gmail.com
첫댓글 “공부 못하면 사람 취급 안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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