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들 (외 1편)
김현신
눈발은 숫자입니다 내리막이고
당신은 누구십니까
아침이고 기둥은 기울어질 거예요 우리 모서리에서 만나요
하얀 팔을 벌려 봐요
전송을 담은 창문이 되어
숫자를 세어 봐요 흘러넘칠 것입니다 휴지통을 구부려 봐요 소리가 몰려와요
그를 위해 새싹을 피워 보시렵니까
작은 얼굴, 작은 목소리를 기억하는
당신의 옷깃은 비에 젖은 신발처럼 축축해요
비밀을 숨긴 하얀 얼음이 됩니다 평상에 누운 구름을 세며
침묵을 웅얼거려 봐요
더 단단한 손가락이 될 것입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우린 흙의 슬픔을 지워야 해요 커튼을 흔드는 바람의 이마를 기억하지 못하나요
던져버려요 숫자는 출렁일 거예요 출렁이다 무너질 거예요
싹이 움트네요 무너지는 외투자락을 붙잡고 문자를 찍어봐요
그늘에서 만나요
계단은 나의 밤이 됩니다 숫자를 세면 풀잎은 생글거리고 맑은 종소리와 계단의 눈동자 속에서
몸을 빠져나가는 숫자를
속도에 실려 가는 웃음을
—《시사사》2015년 1-2월호
전송
누군가, 모래언덕을 전송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내가 모래와 인터뷰를 하고
내 왼발이 내리지도 않는 모래비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혼잣말로
취재에 응하는 발자국,
알고 있었나,
나는 45도, 경사의 언덕을 사랑했다
낭떠러지를 좋아했다
이유 없이 전깃불이 두리번거리고
긴꼬리원숭이가 검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나는 미아가 되어갔고
빌딩 사이 강물을 따라 숲으로 갔다
그걸 방향이라 불러도 될까,
자꾸만 바람소리가 났다
지평선을 허락하지 않는 맨발이
모래사막을 지나는 중이다
사실, 내가 그렇게 속삭였다
내 등 뒤로 펼쳐지는 날개 타고
하얀 새털구름을 만지려 했다
이렇게, 누군가의 전송은 이어지고 있었다
—시집『전송』(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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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신 / 충남 청양 출생. 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국어교육)졸업. 2003년 교직에서 정년퇴임. 2005년 《시현실》로 등단. 시집 『나비의 심장은 붉다』『전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