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평] 볼펜 몇 개로 지층을 오르는 강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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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시인 | 박형준 시인은 내가 재직하던 대학에서 강의한 적이 있었다. 학생들에게 박 시인을 소개하면서 별로 미남은 아니지만 인간적으로 잘 생겼고 시도 그렇다고 한 적이 있다. 지금도 틀리지 않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박 시인이 섭섭해 할지 모르나 정확한 소개였다고 생각한다. 나는 처음 박 시인을 만났을 때 마음이 쓰였다. 손해만 보고 제대로 밥을 먹고 살 것인가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결과는 좋은 시인 노릇에다가 교수도 되고 하는 것을 보면 아주 숙맥은 아닌 것 같다.
모든 인간사에서 구부릴 줄 알지만 자신의 희망이나 시의 본령에서는 구부리지 않는 직선 의지도 그에게 있어 보인다. 그의 어설픈 웃음이나 싱거운 표정 속에 얕볼 수 없는 꼿꼿한 힘이 있다.
특히 박형준의 시는 ‘진심’이라는 줄기에서 흐르는 맑은 샘물 같다는 생각을 한다. 시의 본령을 그는 단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어 보인다. 신춘문예 당선작 〈가구의 힘〉에서부터 〈나는 달을 믿는다〉까지 그는 시를 자기 밖에서 가져온 적이 없다. 울리지 않으면 다가가지 않는 시의 성품은 결국 진정성의 주역이 된 것이다. 나는 박형준의 시에서 ‘지층’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그가 높은 빌딩의 주인이 되더라도 이 지층의식의 시심을 잃지 말아야 하는 것은 시는 모든 사물을 우러르는 사랑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층의 창으로 나무의 끝을 보는 시심은 단단한 희망을 만들어 낸다. 그는 단지 볼펜 몇 개로 지층을 오르는 내적 강인한 힘을 보여주는 시인이다.
그의 시심은 속절없는 것에 끌리고 울 수밖에 없는 인간적 마음에서 떠나지 못한다. 늦은 밤 길바닥에 몇 개의 물건을 펴 놓고 파는 어설픈 여자의 쓸쓸함을 시로써나마 해결하지 못하면 그의 밥숟가락도 느리게 움직이는 약한 심성을 가지고 있는 시인이다. 그래서 그는 너무 많이 울고 너무 많이 사랑해서 지층의 습기를 다 말리느라 시라는 햇살을 가져오는 것일 게다. 그런 햇살로 그는 우뚝 서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번 유심작품상을 수상한 〈나는 달을 믿는다〉 역시 그런 과정을 모두 담고 있다.
달에 골목을 낼 수 있다면 이렇게 하리, 서로 어깨를 비벼야만 통과할 수 있는 골목 그런 골목이 산동네를 이루고 높지만 낮은 집들이 흐린 삼십 촉 백열전구가 켜진 창을 가지고 있는 달 나는 골목의 계단을 올라가며……
지구에 떨어지는 시집 한 권은 지구를 살릴 힘이 있어야 한다. 박형준의 시집은 지구에서 떨어뜨려도 깨지지 않고 원형을 지니며 영원히 갈 것이다. 그것이 시인의 정신이며 유심의 정신이 아니겠는가.
심사위원/ 오세영·신달자(글)
—《유심》2015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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