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史 金正喜 가 제주도로 유배가는 길에 艸衣禪士 (초의선사)가 있는
이 대흥사(옛 이름 대둔사)에 들렀을 때
李匡師 ( 이광사) 가 쓴 이 대웅전 현판이 보기 흉하다고 당장 떼어 내라하고
자기가 대웅전 현판을 새로 써 주었다 한다.
자신만이 최고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그의 눈엔 이 현판이 우습게
보였던 것이다.
또 함께 차를 마시던 禪房에도 무량수각이란 현판을 써 주고 갔다는데,
귀양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다시 이 절에 들러서는 마음이 바뀌었는지
예전에 달았던 그 이광사의 현판이 아직도 있냐고 묻고
다시 그것으로 바꾸어 달라고 부탁해서 지금의 이 大雄寶殿 현판이
다시 달리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몇 년 전 읽은 유홍준의 완당평전에서 완당과 초의선사가 교유하던
이야기가 여러 번 나온 게 기억난다.

无量壽閣 (무량수각)
이 현판은 진품은 아니겠지만 우리는 명필이 썼다는 이 현판 아래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는데 无量壽閣 의 이 无 자는 없을 無의 古字로
無와 같은 뜻인데
우(尤) 와 혼동해서인지 무 字가 아니라고 우겨대는 친구들이 있었다.
또 이 글씨체가 隸書(예서) 가 아니라고 우기는 친구도 있었다.
반듯하게 정자로 쓴 글씨는 楷書(해서)
조금 흘려서 쓰면 行書(행서)
완전 못 알아 보게 흘려 쓰면 草書(초서)
납작하고 반듯하게 쓴 글씨 隸書(예서)
완전 알아보기 어려운 그림같은 글씨는 篆書(전서)
秋史(중년 이후에는호를 阮堂이라 썼음)도 명필이었지만
圓嶠 李匡師란 분도 당시 명필로서 상당히 인기가 있어
전라도 섬에서 유배생활하는 동안 전라도의 절이란 절은
너나 없이 그를 찾아가 이 분의 글을 받아 갔다고 하는데
끝내 유배에서 풀려나지 못 한 채 한많은 생을 마감한 분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이며 燃藜室記述(연려실기술) 을 쓴 李肯翊이
이 분의 아들이다.
(연려실이란 말은 명아주 지팡이를 태운 방 이란 뜻으로 밤에 어두워
책 읽기가 어려워 명아주 지팡이를 태우며 그 빛으로 책을 읽었다는
고사가 있고 이 긍익의 호 라고 한다.
책의 내용은 태조이래 왕대의 사건을 기록한 野史라는데
고등학교때 배울 때는 무슨 기술을 적은 책인가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의 제호도 아버지 이광사가 써주었다고...)
이 현판도 사실은 그가 유배되어 있을 때 써 준 것으로
이 글씨만 보면 별로 잘 쓴 것 같지 않지만 이 대흥사에 있는
다른 현판들도 그가 써 준 것이라고 하니 수긍이 간다.

行書체로 쓴 枕溪樓 (침계루 ; 계곡을 베게 삼아 누워 있는 누각)
枕 ; 베게 침

위에 있는 노인들이 쓴 글씨와,
젊고 패기 넘치는 정조대왕의 글씨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서산대사 영정)
이 표충사 의 祠 는 사당 사 이고 경상도 김천엔가도 表忠寺 가 있는데
그 寺 는 절 사 자다.
그곳도 사명대사인가를 모신 절이라고 들은 것 같다.
이 날 오후에 목포 유달산 노적봉 앞에 도착하여 우리 몇몇은 힘들여
전망대까지 올라 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 곳 전망대 儒仙閣 (유선각)의 현판은
海公 申翼煕선생 이 목포에 들렀을 때 쓰신 것이라 해서 반가웠다.

(윗줄~ 심상근. 이건우. 정규학. 이수영. 정갑상. 윤중영. 박영준
아랫 줄~ 조민자. 김광자. 김인숙. 임순규. 엄숙자. 신호영. 김양자. 박연우)

民國 卅三 中秋 (卅은 삼십 삽 字)
儒仙閣
申翼熙
1919년 상해 임시정부 수립 해를 대한민국 수립으로 하고
민국 1년으로 쳐서 1951년에 쓰신 것이라 민국 33 이라 하신거다.
이 분이 쓰신 다른 글들에도 다 민국 얼마 라고 씌어 있다.
(이 현판은 낡은 원판을 올 해 다시 복원한 것)
지금 우리 역사책 다시 쓰기에서는 대한민국 수립을 언제로 하느냐하는 문제로
상해 임시정부 수립을 정부 수립으로 보느냐, 아니면 1948년 남한 정부 수립을
정부 수립 해로 보느냐 의견이 분분하다.

( 작은 할아버지가 쓰신 현판 앞에서 감회에 젖은 호영이)
막연히 경치만 둘러 보는 여행이 아니고 이야기를 찾아 살펴 보며
다니는 여행은 더 흥미 있고 의미가 있다.
첫댓글 자세한 설명 곁드려 잘 사진올렸네.
날씨도 좋지 않았고 장시간 버스 타고 다녔는데도 오랫만에 만난 친구들과 함께여서 천리길도 멀지 않았고
뜻깊고 즐거운 여행이었어.
지방자치제로 잘 가꿔진 가로수와 관광명소들을보며 감사한 마음도 들고 모두 잘다녀와서 다행.
여기 저기 찾아 보며 썼는데 제대로 썼는지 모르겠다.
댓글 고마워.
함께 못했지만 함께 한것 같은 기분입니다. 11년전 백수 되자마자 남도 구경중에 대흥사에 들렸는데, 어떤 조폭 왕초가 소천을
했는지 절에 온통 검은양복에 깍두기머리한 건장한 청년으로 뒤덮혀서 구경도 제대로 못하고 두륜산 케불카만 겨우 탔었어요.
jini 님 해박하신 글솜씨 감탄합니다. 덕분에 우리 홈피가 풍성해졌어요. 고맙습니다.
김인숙 박사님으로 명명할께. 재미있고 흥미롭게 잘 읽었어. 부디 건강! 건강하시게!
좋은글 잘 읽었어. 너무 잘 썼다. 해남 頭輪山의 大興寺 를 다녀온것 같은 느낌...해공(海公) 신익희(申翼熙) 님이
호영이의 숙부(叔父)시라니.. 유명하신 분이셨는데.. 지난주에 토론토에 사는 동기 5명 (정관성, 김부태, 김봉화,
권호숙, 나) 오랫만에 점심을 했는데.. 봉화가 호영이 신세 많이 졌다고 고마워 하더라.. 건강히 잘지내..
몰랐구나? 숙부가 아니라 작은 할아버지란다.
봉화는 서울 나왔을 때 머리도 복잡했을텐데 우리 댄스반에 나와서 함께 춤도 추고 합창반에 가서 노래도 함께 불렀다더라.
외국사는 친구들 가끔 나오면 참 순수해. 한국 떠날 때의 그 순수함을 계속 간직하고 있는 것 같아 부러워.
읽어 주고 댓글 주어 고맙다.
좋은 사진, 글 잘 보았읍니다.
고맙습니다.